순수한 20대 후배님들...여러분은 저와 같은 허탈한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해서 글을 올립니다.
한 바보스런 30대 선배가....
------------- 1부 ---------------
전 34세 개띠의 서울사는 남자입니다.
현재 제 직업은 웹 프로그래머입니다만 제대후 거의 30세가 되기 전엔 본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지 못 하였고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였습니다.
따라서 힘든 백수시절이 여러차례 있었죠.
29세때에 다시 지긋지긋한 백수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때쯤 제 한 친구는 사업을 멋지게 시작해 부러웠습니다. 그 친구는 마치 프로레슬러처럼 근 체구의 소유자였는 데 외모와 달리 직업은 요리사였고 일찌기
장사 쪽으로 머리가 밝아 돈, 돈, 돈 하며 지내더니 드디어 동업해서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역 근처 주택가에서 도시락 가게을 시작하였지요.
전 백수다 보니 주머니에 3~4천원 달랑 넣고 주로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공부와 독서로 소일하였는데 어느날 녀석이 생각나 주머니를 탈탈털어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사갖고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제 상상관 달리 무척 고전하고 있더군요.
동업자는 맘이 안 맞는다면서 떠나가고 수익은 좋지않고, 배달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는데 월급줄만한 여유가 없다면서 울상이더군요.
그 이야기에 안쓰런 맘이 들어 " '수남아!' 내가 도와 줄께, 내가 오토바이 배달할께... 돈은 안줘도 돼" 제의 했고,
다음 날 부터 아침 8시에 저희 집 연신내 에서 3호선을 타고 남부터미날 역까지 많은 사람들에 시달리고 부대껴가면서 언제나 정시에 나가서
친구의 가게를 깨끗이 청소하고 도시락 주문전화 받고 스쿠터를 타고 도시락을 배달하고 적정 시간이 되면 다시 빈 도시락 통을 수거해오고
직접 제 친구가게에 들어 오는 손님껜 음식 서빙을 하고 다시 저녁 시간이 되면 도시락 배달을 나갔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아무리 와도 제 배달 오토바이는 도시락을 싣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훌쩍 밤 9시가 되고 그렇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지하철을 타고 연신내 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하는 음식점일이라 무척 어색햇지만 전 어떤 월급 직원도 할 수 없는 최선으로 친구를 도왔습니다.
저는 친구의 가게일을 돕는 동안 그 친구에게서 15-20만원 정도의 제 차비이상은 받을 수 없엇지만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앗습니다.
제 노고의 댓가는 돈보다 더 큰 것 바로 오직 그 친구와의 "의리"를 다하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자 제 생활을 알게된 제 어머니께서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널 밥만 먹여 주고 종처럼 이용하는 거야 " 라시며...
그러나 전 어머니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아녜요 어머니, 제친구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대꾸했죠.
전 우정을 중시하는 사나이며 일단 돕기로 맘 먹은 이상 하는 데 까진 돕는다고 결심햇기 때문입니다.
전 계속 최선으로 친구를 도왔습니다.
두달이 되자 참다 못한 어머님이 아침8시에 나가는 저에게 "
그 친구가게에 계속 나가면 다신 집에 들어 올 생각말라" 고 울면서 고함을 치시더군요.
하지만 그런 어머니 말씀은 안중에도 없엇습니다.
"어머니, 그 친군 정말 좋은 녀석이예요... 그리고 우정이란 중요한 겁니다. 돈보다 훨씬 " 이렇게 되뇌이며
집을 나섯습니다. 물론 녹초가 되서 돌아온 이 저라는 아들을 어머닌 차마 내쫓진 못하셨습니다.
다만 한숨뿐 ....
이런 집안이야기는 그 친구에게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에게 괜한 맘의 부담을 주기 싫었거든요.
어느날은 옆에 김밥가게 하는 아저씨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요, 여기 주인총각이랑 친구라면서요 ?"
"예"
"월급 많이 줘요?"
"그럼요, 친군데..... 엄청 많이 줘요."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
이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열광적인 팬인 저의 굽혀지지 않는 신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렇게 한달이 더 지났지만 저의 성의는 뜨거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가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번 고비만 넘겨서 잘 풀리면 나중에 큰 술집을 차려서 널 지배인으로 않혀 줄께"
전 그러면 별 대꾸없이 웃고 말았습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전 술장사, 음식장사엔 전혀 뜻이 없엇으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 마음이 아니라 제 현실에 의해 그 친구를 돕는 생활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의리파 생활 4개월 내내 전 항상 주머니가 비어 있을 수 밖에 없었고-그나마 받은 차비도 두차례는 저보다 더 아쉬운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지워드리는 근심걱정과
저의 앞날의 준비를 더이상은 간과하고 미룰 수는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그대쯤 그 친군 도시락은 포기하고 치킨과 호프로 메뉴를 바꾸어 훨씬 적은 노동력으로도 더 많은 수익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락이 대신 술 장사로 바꾸니 그 친구와 친구 약혼녀 만으로도 가게를 꾸릴 수 있겠더군요.
이 변화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이자 전 가벼운 마음으로
"수남아! 이제 나는 나오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어려운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친구가 죽어라 열심히 했고 저도 죽어라 열심히 도왔으니까 결실이 핀 거 였죠.
그 뒤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저는 시상품 업계를 거쳐 다시 천신만고 끝에 웹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빠도 되었고요.
그때 어려운 고비를 넘긴 그 친군 이후 잘 풀려 저의 땀도 뭍어 있는 서초동의 가게를 처분하고
낙성대역 근처 시장에서 치킨 장사를 하면서 목돈을 거머쥐었고
최근에는 발을 넓혀 컴퓨터 부품 유통가게도 하나 차려보겠다면서
남부터미날역, 국제 전자 센터의 삼성컴퓨터 취급점에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4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의 제가 그 친구의 가게일 돕는 것을 그만 둔 다음달 부터 지금까지
그 친군 저에게 먼저 전화 한통 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 4개월을 전 우정이란 것을 몸소 실천한 힘겨웠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떠올리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도왔었을 뿐, "난 이렇게 의리를 중시하는 멋진 놈이다,
"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남인 이 고비를 넘기 힘들었을거야 " 라고 다른 누구에게 한번 쯤 자랑을 늘어 놓는 법도 없었죠...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2003년 9월 22일
제 삶이란 책에서 의리로 씌여진 그 페이지가 너무나 쉽사리 갈기 갈기 찢져져 나갔습니다.
제 청춘에서 우정으로 채색된 4개월이란 그 시간이 모래알처럼 맥없이 제 손아귀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내온 10년의 시간이 먼지보다도 하챦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 2부 -------------------
그 사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 일년 반전 한 작은 신생 회사에 은행및 카드대출까지 받아가며 빌려주는 형식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그 작은 회사의 여사장은 제 아내의 절친한 친구였고 저도 잘 아는 사이 였기에 가능한 일이 었습니다.
4000만원이 넘는 저로서는 매우 큰 돈이었지요.
그 회사는 창립 후 초기 몇개월은 사업이 잘 풀려 저에게 빌린 금액을 다달이 갚음은 물론 투자의 댓가로 두둑한
댓가도 얹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5개월 쯤 지나자 무리한 확장과 거래 업체의 부도로 인한 타격을 받곤 휘청거리더니
이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려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여파로 저 역시 빚에 쫓기는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죠. 불안한 마음에 하루하루가 고민스러웠지만
아침이면 출근해서 회사일에 몰두하다 퇴근하면 가족과 지내고 밤이면 아끼는 노트북을 열고 밀린 회사일이나 개인적인 프로젝트나 공부를 하는
생활엔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회사가 어서 이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길 바랄 뿐 또렷한 대책이 서질 않았거든요.
그러나 수개월이 더 지나도 그 회사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간신이 숨만 붙어 있는 중환자같았죠.
따라서 저의 빚 역시 갚을 수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겨우겨우 간신히 간신히 최후의 저지선만은 지키고 버텨왔습니다.
그 회사의 여사장은 제 아내의 고교 친구로서 둘은 절친한 사이였죠.
그녀는 사업이 어지러워지자 엄청난 적자와 빚, 아버지의 냉대, 주변사람의 멸시와 적대감에 이리저리 치여서 완전히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막 태어난 갓난아이까지 아이가 둘인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두 아기를 몸이 몹시 편챦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매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악전고투하면서도
자신의 친구인 제 아내와의 신의는 꼭 지키고자, 자신의 불행을 제 아내의 가정에까지 전가시키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자 그나마 수익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저와 제 아내의 급한 불을 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우 겨우 간신히 간신히 저와 제 아내는 최후의 저지선만은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분명 그녀는 저의 가정에 불행을 주었지만 그녀는 친구로서의 신의와 의리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지독한 역경 속에서 그녀가 보여준 책임감과 신뢰는 저를 감동케 하였습니다
.
그리고 더이상 저도 그녀가 사업을 잘 해주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 만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회사가 살아야만
저와 저의 가정도 살아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녀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고 제가 선택한 방법은 그 회사의
쇼핑몰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익을 낼 수 있을 지는 의심스러웠지만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였고 퇴근후 밤이면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일주일 전 새벽, 잠결에 찬 기운을 느끼고 우리 아기가 감기들까봐 창문을 닫으러 일어나 몇발자욱을 움직였는 데 제 왼발에 무언가 밟히며
깨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놀라 살펴보니 저의 노트북이 박살이 나있었습니다.
설상가상 총을 잃어 버린 군인, 컴퓨터없는 웹 프로그래머가 되어 버렸죠. 수리비가 85만원의 견적이 나왔는데 상황이 상황리라 수리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고
퇴근 후 쇼핑몰 구축 작업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전긍긍....
그러다 어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난 내가 이렇게 빚때문에 역경에 처하는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의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내 친구들에게 작으나마 양보하고 주면서 살아왔다"
"그러니 이제 나도 내가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해보자."
그리고 총각 시절 한 친구에게 제 월급 봉투 채로 줘 버린 적도 있엇지만
역시 제가 가장 크게 도와 준 친구는 앞서 말씀드린 서초동에서 도시락 가게를 하였던, 이제
넉넉하게 성공하였고 지금은 컴푸터 부품사업도 해 보겠다며 일을 배우고 있는
요리사 친구 "전수남" 이었죠.
녀석이 워낙에 연락을 주지 않던 터라 머쓱한 저도 연락을 거의 않다 어제 오랫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수남아 나야, 유정이, 잘지내냐? "
"응 , 오랫만이다. 뭐하고 사냐?"
"웹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그런데 나 그냥 안부 전화한 것 아냐. 나 무척 어렵다. 나좀 도와 줄 수 있겠어? "
"어떻게? "
"85만원만 빌려줘..내 밥줄인 노트북을 고칠라 그래. 컴퓨터가 없으면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거든 "
"유정아.....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저래서 이러쿵 저러쿵
해서 빌려 줄 수가 없어. 내가 있으면야 주지 "
"그리고 나 요즘 이러고 저러고 이렇게 저렇게 이러고 저러고 이렇게 저렇게 이러고 저러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 "
"아 바쁘다. 담에 또 전화하자 "
뚜우 -----------------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럴수가 ....아니 이럴 수가 .." 전 계속 되뇌엿죠 ...
예, 친구에게 돈 빌려 달라는 게 결코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청을 거절하는 친구가 결코 잘 못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전 과거에 그 친구 수남이를 크게 도왔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역경에 처한 전 여유있는 그에게 작은 도움을 청했습니다.
허탈감에 가슴이 져며 오더군요
제 삶이란 책에서 의리로 씌여진 그 페이지가 너무나 쉽사리 갈기 갈기 찢져져 나갔습니다.
제 청춘에서 우정으로 채색된 4개월이란 그 시간이 모래알처럼 맥없이 제 손아귀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내온 10년의 시간이 먼지보다도 하챦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친구 "전수남"이가 옳고 이 "남유정"이가 틀린 겁니다.
예 제가 잘 못 한 거죠..
그 당시
제가 먼저 도와 준 다고 시작했지 그 친구가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니까요 ..
제가 자발적으로 4개월을 도왔지 그 친구가 계속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니까요
제가 "돈은 안줘도 돼, 아무런 댓가도 원치 않아 " 라고 했지 그 친구가 "보수를 안주겟다" 고 한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밥은 먹여주고 차비도 주었쟎아요
그리고 이미 지난 일 ...그때야 어쨌던 지금에 와서 그 친구 수남이가 절 도와야 한다는 법률이 있는 것도 아니쟎습니까?
그리고 분명 그때 당시 제 입으로 "아무런 댓가도 필요없다"고 하곤 오늘날에 와서 그 친구 수남이가 저를 돕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난 허탈해 하는 것은 모순이지요...
또 그 친구처럼 살아야 잘 살죠...성공하죠.... 한번 뿐인 인생, 크게 성공해서 벤쯔도 굴리고, 이 여자 저 여자도 굴리고 ,돈도 원없이 굴려 봐야 하는 것이쟎아요
예 제가 잘 못 한 거죠..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친구 "전수남"이가 옳고 이 "남유정"이가 틀린 겁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신 20대 후배 여러분 절 마구 욕해 주세요
그리고 미련하게 신의를 지키려 들고 매일 울면서 일하는 제 아내의 친구도 마구 욕해주세요
이상입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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