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실은 마차
1.
나는 배낭 하나만 지고 방랑하는 족속이다.
여름이면 북쪽을 떠돌고 겨울이면 따듯한 고장을 찾아 남쪽을 향한다. 석양빛 머금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들어서는 낮선 동네에서 허름한 잠자리를 찾아든다. 자기 전에 단 한 벌 뿐인 속옷을 빨아 널고는, 겉옷만 걸친 채 저녁식탁을 준비한다. 검게 그을리고 찌그러진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식탁의 꿈,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식탁의 꿈이 생겼다. 하나의 수저에 그림자가 쫓아 다녔다. 딱 혼자서만 먹을 수 있게 만들었던 음식물이었지만, 작년부터는 이상하게 혼자서만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분량의 식탁을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작년 여름에 나는 수메르영웅의 신화를 찾아 중동지방을 유랑하고 있었다. 시간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아주 먼 고대의 숨결, 신과 인간이 거리에서 대화를 주고받던 전설을 찾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홍수신화의 기원이 되는 매소포타미아 지방의 대홍수와 우트나피시팀이라는 신의 자비를 얻었던 전설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부인을 거느리는 이라크남자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골목 끝에 몇 개의 방을 가진 그 남자는 싼 가격으로 배낭족을 투숙하게 해 주며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헛간처럼 누추한 곳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며 대홍수 설화를 생각했다. 인류의 생명이 단절되는 순간에 한 척의 배로 세상을 구한 사람.
하늘의 신인 엔릴은 지상에 넘치는 인간이 질러대는 소리와 싸움에 잠을 깼다. 화가 난 엔릴은 모든 신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였다.
"인간들의 소란스러움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니깐."
그래서 신들은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했다.
인류의 친구이며 보호자인 물의 신 에아는 고민했다. 교분이 두터웠던 우트나피시팀을 가엾게 여기고, 그에게 대재해가 닥칠 것을 예언했다.
"집을 허물고 배를 만들어라. 소유물은 어찌되어도 좋으니 오직 살아남을 것만 생각해라.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영혼을 구하라...... 집을 허물어라.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라. 폭과 길이가 조화로운 배이다. 살아있는 모든 종자를 배에 실어라."
7일간의 대홍수.
하늘의 신인 엔릴의 분노에 모든 신은 침묵하고 겁에 질렸다. 광폭한 폭풍에 하늘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았다. 인내심 많았던 사랑의 신인 이슈타르마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물고기처럼 바다에 가라앉히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인가......"
에아의 자비를 얻은 우트나피시팀과 그의 가족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흙으로 돌아갔다.
날이 개자 나시르 산의 정상에 닿은 배의 문이 열렸다. 첫 번째로 날린 비둘기는 사방에 물이 가득하여 다시 배로 돌아왔다. 두 번째로 날린 제비도 역시 머무를 곳이 없어 돌아왔다. 세 번째로 날아간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트나피시팀은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 정상에서 신께 술을 바쳤다. 나무와 줄기식물, 삼나무, 월계수를 쌓아올렸다. 신들은 달콤한 향기를 맡고 제물위로 몰려들었다."
이라크 사막에서 출토된 도자기에 설형문자로 새겨져 있는 고대의 전설은, 멸망할 뻔한 인류의 생존을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이 지평선으로 넘어간 후에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사막의 바람이 불어왔다. 좁은 골목을 지나서 모래언덕으로 올랐다. 멀리 보이는 산과 끝없는 지평선이 물에 잠겼던 저주의 땅이었다는 말인가,
인간이란 서로의 힘이 합쳐지면 교만의 극치를 이루어 바벨탑을 쌓아 신을 침범한다. 이에 분노한 신은 바벨탑을 허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했다. 언어와 의견을 찢어서 분리해 버렸다. 그러자 인간은 황소 같은 울부짖음으로 서로 싸운다.
사랑의 신 이슈타르가 고뇌의 신음소리로 신의 무모한 짓을 탄식했다. 인류의 친구인 신 에아는 아무도 몰래 생명의 자비를 인간에게 내렸다. 인간은 이단자의 동정심을 의지하여 생존한 것이다. 모든 신들이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한 순간에 뒷문으로 빠져나와 황급하게 신의 비밀을 전해 준 가냘픈 에아의 속삭임은 지금도 귀에 들린다.
"소유물은 어찌되어도 좋으니 오직 살아남을 것만 생각해라......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영혼을 구하라......"
나는 언덕을 내려와 투숙하는 방으로 돌아왔다. 몸을 툭툭 털며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딱 얼어붙었다. 내가 짐을 풀어놓은 반대편 구석에서 배낭에 기대고 앉아있던 여자가 살며시 일어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자.
순간적으로 나 자신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느꼈다. 뒤로 긴 머리를 묶어서 얼굴 전체가 환히 드러나는 여자의 얼굴이 먼 고대의 세계에서 날아 온 것만 같았다. 그윽한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나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배낭 하나만 달랑 지고 그녀도 유랑하고 있었다.
따로따로 준비하는 저녁식탁이었다. 서로가 눈길조차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좁은 공간에는 냄비와 수저 부딪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나는 캔에서 딴 소시지 한 조각을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드실래요?"
무거운 침묵을 깨고 날아온 내 목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라는 몸짓을 보였다. 싱긋 웃으며 조심스런 손길로 소시지 한 조각을 받아드는 그녀의 뺨에 발그레한 홍조가 띄었다. 어색한 공간을 편하게 만드는 책임은 남자에게 먼저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곳을 유랑하는 목적을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과 행선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나를 향해 있지만 시선은 살짝 비켜가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손때가 잔뜩 묻은 커다란 지도를 펴 놓고 지나온 고장을 서로 이야기했다. 그녀는 페루를 거쳐서 유럽으로 갔었다고 했다. 알프스를 들려서 로마를 지나,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적을 구경한 후에 이 곳에 오늘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떠날 것이라고 했다. 내 입에서 왜 그녀의 행선지인 이집트로 나도 갈 것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녀의 빠른 말투는 어색했으며 들떠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서로의 눈길은 계속 일정한 간격에서 맴돌고 있었다.
몇 일후, 그녀와 나는 덜컹거리는 버스를 서너 번 갈아 탄 후에 피라미드 고대유적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고대와 현대를 드나드는 내 이야기를 그녀는 유심히 들어 주었다. 유한의 몸으로 영원을 헤아리는 나의 어리석음을 이해했다. 태고의 우뚝함으로 서 있는 대피라미드 아래에서 영혼마저 굳어진 채 침묵하는 내 곁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와 나는 석양빛 받으며 길게 늘어진 스핑크스상의 그림자 아래서 이별했다.
여행경비가 떨어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당분간 식당일을 하며 돈을 모을 것이라고 했다. 찌그러진 나의 냄비에서는 이별의 커피를 나눌 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황금의 잔을 나누듯 그녀와 나는 뜨거운 커피 잔을 들었다. 태고의 여성은 이렇게 떠나는 것인가,
무엇인가 말할 듯 하며 머뭇거리던 그녀는 모래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썼다. 빨개진 얼굴을 밑으로 숙이며 자기가 쓴 글을 가리켰다.
"사랑합니다. 처녀별자리를 건너 뛰어 천칭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쓴 그녀의 글이 신화의 속삭임으로 밀려왔다. 나는 그녀의 발밑으로 몸을 숙이며 그녀가 쓴 글 아래에 다음과 같이 썼다.
"궁전의 문을 열어 놓은 채 태양을 실은 마차가 도착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2.
저녁식사를 한 후에 밖으로 나왔다. 시애틀의 초가을은 차가웠다. 속옷을 빨아 널은 채 겉옷만 입은 바지가랑이 사이로 가을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전에 한번 통화한 적이 있는 목사님을 찾았다. 그 분은 시애틀에 한인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넓은 거리의 한쪽에 서 있는 교회에 찾아가 그 분에게 컴퓨터를 잠시 이용하겠다는 부탁을 했다.
아이디: cjscld.
천칭이라는 내 별자리를 영문자판으로 두드린 아이디다.
그녀와 나의 유일한 통로는 메일이었다. 작년에 헤어진 이후로 날아오는 그녀의 메일은 내 안부를 물었으며, 내가 더듬는 영원의 여행을 알고 싶어 했다. 알라스카를 거쳐 캐나다 오지를 유랑했던 나는 한 달 이상 메일확인을 못했다.
아이디: dldzk.
영문자판으로 두드린 잉카라는 그녀의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태양을 실은 마차는 바다를 가로질러 잉카제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안데스의 밤하늘에 보름달이 둥실 뜬 날에, 낙엽 떨어지는 쓸쓸한 궁전으로 환한 태양을 실은 마차는 들어 설 것입니다."
그녀의 메일을 본 후에 날짜를 더듬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은 다음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0월에 뜬 보름달. 앞으로 이십 여일이나 남았다. 멕시코에 있는 아즈텍 문명인 쿨쿠칸 신전을 먼저 들리고 마추픽추로 향하기로 했다.
마지막 태양의 신 토나티우를 달래려 한꺼번에 팔만 명이라는 어마한 숫자의 인간을 제물로 바친 도살장과 같은 쿨쿠칸 신전이다. 조울증 같은 증세를 보이는 제국의 신관들은 올멕인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종말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트나피시팀의 홍수신화는 인류의 구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을 지배하는 신화는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라트 위에 사람의 피가 뚝뚝 흐르는 뜨거운 심장이 제물로 바쳐졌다. 네 개의 태양을 지나서 다섯 번째의 태양을 지배하는 토나티우신을 위로하며 인류의 종말을 뒤로 미루고 미루었다.
인류를 보호했던 에아와 같은 신은 이곳에 없었다. 동정심에 탄식하던 이슈나르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하고 완벽한 종말만 예언했던 저주의 신.
그녀는 돌계단 아래에 앉아 세월의 저 편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인간의 가슴에서 심장을 움켜쥐고 꺼내는 신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으며. 토나티우 신은 피에 젖은 혀를 날름거리며 군침을 흘렸다고 말했다.
인류는 이렇게 끌려가다가 기어이 마지막 날을 맞아야 하는 신의 장난감인가 보다. 끊임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하여 맛있는 제물을 챙기다가 인간이 조금만 시끄럽게 굴면 잠자리를 방해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물 속에 쳐 넣고야 마는 비정함이 신성의 본질인가 보다.
역사는 많은 것을 망각으로 은폐한다.
한 쌍의 남녀가 만나서 자식을 낳으며, 그 자식은 커서 또 한 쌍이 되어 대를 이어간다. 지금 눈앞에 솟아있는 돌계단으로 이어진 지구라트를 쌓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무명의 인간들이 사라졌으며 제물로 숨져갔는지...... 단순히 신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탄생을 기뻐하고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생명의 젓이 흘렀는가,
신의 눈 아래 위대함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의 비명은 외면당했고, 종말의 협박신화에 피의 제전이 벌어졌다. 햇빛이 반사되는 계단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앉아있는 내 엉덩이는 질퍽한 피로 젖어든다. 그러나 역사는 높이 솟은 제단만 이야기하며 위대한 신의 도래만 예언한다.
망각의 역사로 떠나자. 신의 역사가 아닌 무명인간의 역사로 떠나자.
제물로 바쳐지는 비명이 아닌, 인간탄생의 산고에 신음하는 산모의 곁으로 가자. 문 밖에는 가슴조이는 남편이 서성거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굵은 주름으로 손자의 탄생을 기다리는 조바심의 그늘로 가자. 신은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인간탄생을 말하자.
나스카평원에 섰다.
그림으로 가득한 대평원은 돌과 모래바람만 날리고 있었다. 너무 커서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림으로 가득한 나스카문양의 불가사의에 인간을 넘어선 신비로움에 젖었다. 우주는 시간을 불허한다. 영원한 존재는 시간을 잴 필요가 없다. 시간의 감옥에 갇혀 종말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의 초라함이 어깨를 누른다.
그녀가 말한 비라코차는 지혜와 교화의 신이다.
바다에서 나타난 그는 인간을 신뢰했으며, 인간에게 실망했다. 신성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기적을 일으켰으며 풍족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항상 교만으로 자신을 망치는 인간모습이 이 곳에도 나타났다. 화가 난 비라코차는 하늘을 뒤엎고 땅을 흔들었다. 역시 대홍수로 사람들은 죽었으며 겸손한 자 몇몇만이 살아남아 목숨을 구걸했다.
비라코차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인간을 모아놓고 말했다.
"다시 돌아올 것이다. 너희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동쪽 바다로 사라지는 신의 모습에 사람들은 통탄했다. 그렇게 구원의 신화는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신은 다시 돌아온다고......
쿠스코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널려있다. 역사를 알 수 없는 의문의 부호들이 새겨져 있으며 신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사랑과 분노와 용서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역사의 이방인처럼 배낭 하나를 등에 지고 서성이는 내 그림자가 돌기둥에 드리운다. 하나의 목숨만 지닐 수밖에 없는 한숨은 영원의 벽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쿠스코의 고대유적 틈에서 버너를 켜고 식탁을 준비했다. 우주의 먼지 같은 왜소한 몸을 기둥아래 쭈그려 앉힌 후 배낭에서 찌그러진 냄비를 꺼냈다.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녹슨 캔의 뚜껑이 열렸다. 참치의 속살이 가득 들어있다. 하나의 수저에 쫓아다니는 그림자.
어제 한국대사관에서 본 그녀의 메일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태양을 실은 마차는 잉카의 제단을 향하고 있습니다. 궁전의 문은 닫지 않으셨겠죠?"
마추픽추를 오르는 계곡,
인디오들이 소를 키우며 살다 죽어가는 그 계곡을 그녀는 말했다. 평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사는 인디오들처럼 비라코차 신이 먼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기다림 속에서 살 것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긴 내용의 글을 보냈다.
태양이 정오에 도착하는 궁전에서 방황하는 두 개의 혼을 구원의 신에게 바치렵니다. 영혼을 하늘에 매달고 유한을 넘어서 무한의 우주를 가슴에 품으렵니다. 당신이 보아두었다는 마추픽추계곡 언덕에 인디오들처럼 움막을 짓고 무명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청춘.
당신과 나의 젊음을 신전에 바치고야 말 정열은 스핑크스의 약속을 거쳐서 신의 제단을 지나 마추픽추의 돌기둥에 새겨질 것입니다. 궁전문 밖에서 태양을 실은 마차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천칭자리 올림 -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