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서재 책상 위에 놓인 담배와 라이터를 와이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고 출근을 했다.
이제는 하나의 습관처럼, 출근 준비를 하는 내게 익숙한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와이셔츠 주머니가 텅 비어버린 날이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이.
출근과 동시에 업무준비를 하고 선 잠깐의 짬을 내 지하 흡연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 잔돈을 주머니에서 찾아 자판기에 밀어 넣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뽑으며 다른 한 손은 예외없이 주머니의 담배를 찾아-그것도 기술 좋게 한 개비만을-꺼내 입에 문다.
라이터의 불이 담배 끝에 가 닿을 때쯤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생각.. '오늘도 담배 끊기는 글렀군!'
나와 똑 같은 흡연 동지들을 사이에 두고 한 모금 마신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뿜어낸다. 퍼져 공중으로 날아가는 연기를 보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를 지나 제법 심각하게 중독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담배에 손을 댄 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어섰다. 대학 시험을 치르고 해방된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해 겨울 한 가운데에서 난 친구 놈들의 아름답지 못한 유혹에 그만 넘어가 피우게 됐다.
아마도 분위기와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멋모르고 피운 그 담배 한 개비. 몽롱한 의식과 띵한 머리를 만들어 버렸던 그 것으로 인해 다시는 피우지 않으리라 얼굴 찡그리며 유혹한 친구 놈들을 째려 보았었다.
하지만 그 결심 아닌 결심은 흐지부지 했고, 며칠 후 또 다시 내 손에 쥐어진 담배.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이번엔 내 돈을 주고 산, 한 갑의 담배가 내 바지 주머니 속에 보란 듯이 들어가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담배를 피운 이유는 아마도 성인 되었다는, 나도 이제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을 해야 한다는 자못 그럴싸한 행동의 산물이리라.
또 하나 내가 담배를 피운 이유는 아마도 멋 때문이었으리라.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흉내내며 입 한쪽으로 몰고 담배를 피운 나를 보면서 유치한 나르시즘에 빠졌고, 자유로워진 행동으로 인해 카페를 찾은 나는 친구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제법 의젓함이 배어 있는 우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일 것이다. 담배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은...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담배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 한 개비 담배는 군 시절 속에 녹아 있다.
긴 머리를 깎고 어색한 머리를 모자로 눌러 감추어 쓰고 훈련소로 향하던 내 스물 한 살의 시절, 또 다시 구속되는 나를 불안감 속에서 붙잡고 입대하던 그 순수한 젊음의 시절...
훈련소 생활이 애초의 각오를 뒤집을 만큼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던 어느 날, 지난 모든 훈련보다 강도를 더한 훈련으로 지치고 피곤에 쌓여 속으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올 무렵 하늘을 향해-그 때 하늘은 왜 그리 파랬던지-누워 휴식을 취하며 입에 문 담배.
그 때 피운 담배는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의미로 새겨졌다. 담배를 피우면서 누군가 시작했던-아마도 조교의 지시였으리라-어머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로 끝내는 다 피지 못하고 만 그 담배 한 개비.. 그 때의 담배를 다시는 피우지도 맛보지도 못할 것이다.
내 젊은 날의 한 때와 같이 했던 군 생활에서 난 본격적인 흡연가로 변신하고 있었다. 제대를 앞두고는 제대후의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 두 갑을 소비하기도 했었다.
밤하늘의 별을 향해 흩어지는 연기를 태웠던, 손에 쥔 그 때의 담배 역시 또 다른 의미로 각인 되었다.
내 젊음의 헛된 허비에 따른 안타까움과 미래의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 속에서 유일하게 잠깐이나마 나를 위로해 주었던 담배.
그러나 지금의 내가 피우고 있는 담배는 단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며, 그나마 반은 습관성에서 피우는 담배로 탈바꿈을 해 버렸다.
십 오년의 세월 동안 꽤 많은 금연을 시도했었다. 번번이 실패로 끝을 낸 담배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확고하지 못한 내 결심이 한 몫 했을 것이며, 딴엔 피울 수 밖에 없도록 조장해온 환경과 그러한 상황을 제공해준 현실이라고 변명을 해 본다.
누구 말마따나 한 시간 참을 거 두 시간 참고, 하루 버틸 거 이틀을 버티고, 그러다 보면 끊지 않겠느냐는 이론적으로 타당한 방법론을 적용해 보라고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또 다른 이는 물리적인 방법(금연초 같은)을 써 승리하라고 하지만 난 굳이 그렇게 까지 하면서 끊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그렇게 까지 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은 것이며, 담배를 피움으로써 생겨나는 갖가지 부작용에 대해 그리 크게 지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사뭇 다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하면서 흡연에 집착을 가져야만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한 달 전, 회사가 안국동에서 충무로로 이전을 했는데 하필이면 금연빌딩에 입주를 한 것이다. 몇 개월 전 처음 이전 사실이 공고되면서 나를 비롯한 회사 내 애연가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한 숨을 쉬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불평불만의 소리가 차츰 잦아들며 대부분 '그래 잘됐다! 이 기회에 끊자!' 는 분위기로 흘렀지만...
이전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한지 한 달. 그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실행으로 옮긴 사람은 아마도 없는 듯 싶다. 불편함 조차 이겨내는 이 강렬한 욕구!
담배를 피우기 위해선 1층 정문 옆이나, 아니면 지하 흡연실로 가야만 한다.
전 사무실에서는 사무실 내에 휴게실 겸 흡연실이 같이 있었다. 가끔씩 그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옆 건물(그 건물 또한 금연빌딩이다) 정문 옆 한 쪽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 피우던 사람들의 모습을 자못 불쌍한 표정으로 보았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저게 뭐야? 궁상맞게.. 나 같으면 끊는다, 끊어!' vv
'담배는 끊어야 한다.' - 어떻게...?
'조만간 담배를 끊는다.' - 무조건!
내가 현재 세우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최후이자 유일한 나의 전략이다. 이 이상의 전략은 현재 내겐 무리이다.
그 안에 무슨 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다소 웃기지도 않는 안일한 생각을 현재 나는 가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나면 또 한 개비의 담배를 없애려 걸음을 옮기라고 또 다른 나는 속삭이고 있다. 그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우는 나를 보며 과연 내가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 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