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노래 ㅣ 재연
폼페이에서 푸나로 오는 기차 속이었다. 차창 밖 황량한 벌판에 퍼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쥐어 짜놓은 듯 꾀죄죄한 거지 부부가 특유의 쇳소리를 앞세우고 찻간에 들어섰다. 북과 손풍금 반주를 곁들여 노래하는 거지들이었다. 이 나라 어디서나 흔히 보는 일이다. 동행한 인도 친구가 동시 통역사가 되어 비감 어린 거지 노래를 내 귀에 가만가만 읊어 댔다.
참 묘한 일이야
우리 행복했던 날
기쁨 함께 하자는
친구들 많더니
이리 서러울 땐
덜어 갖자는 사람
왜 아무도 없지?
참 묘한 일이야
넉넉할 땐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젠 나누고 싶어도
바다 같은 마음 뿐
이 설움 나눌 이
아무도 없어
친구에게 그런 노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작곡일 거라는 대답이었다. 누가 만들었든 멋진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지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노래를 들은 값으로 2루피짜리 동전 하나를 손풍금 앞에 달린 양재기에 담아주었다. 남루한 행색으로 보아 그런 가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너른 땅,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지들에게 그들의 애환과 한을 담은 노래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산스크리트가 일반 대중의 구어로 쓰인 것도 아니고 종교 전적典籍이나 의식儀式에 씐 특수층의 언어였던 것을 생각하면 유식한 거지들이 더러 있었나보다. 물론 거지 노래를 꼭 거지가 지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배부르고 편안한 양반이 심심풀이로 그 구구절절 한이 서린 거지 노래를 썼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거지 노래 중에 하나는 이렇다.
오, 가난이여
엎드려 절하옵나니
당신 크신 은혜로
내 신통력을 얻었나이다
나는 세상을 다 보건만
누구 하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하더이다
길가에 앉아 있어도 못 본 척 지나치고, 옆에 다가가 손을 벌려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 앞에 거지는 마치 은신술을 통달한 투명인간과도 같다. 사람들 눈에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당하는 무시가 모두 다 돈이 없는 덕이니 가난님에게 큰절을 올린다는 것이다. 대단한 거지 시인이다. 무시당하는 것은 서럽지만 또 쳐다봐 주어도 탈이다. 어쩌다 마주친 눈길이 제법 부드러워 혹시나 하고 다가가면 비키라고 호령이다. 아니면 공연한 빈말이다. 어디 사느냐, 몇 살이냐, 처자식은 있느냐? 그래서 조랑조랑 이야기하면 금새 정색을 하며 입 닥치고 조용히 하란다. 거지는 또 노래한다.
오너라, 가거라
누워, 일어나
일러라
입 다물어
돈 있는 양반들
'행여나'에 홀린 거지 갖고 노시나
여기 '행여나'라고 옮긴 산스크리트 단어는 아사asa인데 본 뜻은 '희망'이지만, 으레 '헛된 기대'의 뜻으로 쓰인다. 그렇게 헛된 기대라는 갓을 반쯤 알면서도 달겨 들 수밖에 없는 것이 거지다. 더구나 아직 이력이 붙지 않은 신참내기 거지로서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고, 누구를 무시(!)할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 없이 허둥대는 꼴이 안타까워 고참 거지가 점잖게 훈수한다.
하늘에 뜬구름
모두 다 같은 게 아니란다
비 뿌려 땅을 적시는 것도 있고
헛되이 천둥만 울리는 놈도 있지
오, 가엾은 차타카!
구름 지날 때마다
처량한 목소리 높이지 마라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빗물만 마신다는 전설 속의 새. 차타카야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희망이라는 도깨비에 홀린 거지가 금새 고행자가 될 수는 없다. 그것도 사지 육신이 멀쩡해 가지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펴야 하는 거지는 더욱 괴롭다.
아, 다리 없는 자네 훌륭하이
남의 집에 구걸하러 갈 일 없으니
앞 못 보는 자네는 복도 많네
돈독에 취한 얼굴 보지 않아도 되니
말 못 하는 그대는 얼마나 좋은가
한 푼 얻겠다고
자린고비 추켜세울 일 없으니
아하, 귀먹은 자네 좋겠네
모진 소리 듣지 않아도 되니
그렇다고 멀쩡한 육신 다 접고 쪼그려 앉아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흉내를 내고 있을 수도 없다.
스스로 성자라고 호언하던 사내가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신통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저 만큼에 버티고 서 있는 높은 산을 햐해 호령했다.
"냉큼 기어와 내 앞에 엎드리렷다!"
그러나 산은 들은 척도 않고 뻣뻣이 서 있을 뿐이었다. 사내의 다음 행동은 실로 성자다운 것이었다.
"그럼 내가 가지."
그는 산보다 더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성큼성큼 산을 향해 걸어갔다.
거지 역시 일부러 찾아와 베풀고 갈 사람이 없는 데야 제 발로 다가가는 도리밖에 없다. 그래서 나오는 자조의 도가 훨씬 높아진다. 목 줄 때기를 사납게 훑고 넘어가는 법성포 토종 배갈처럼.
풀잎보다 가벼운 게 솜털
솜털보다 가벼운 건 거지
그런데도 바람에 날리지 않는 것은
'적선합쇼!' 소리 두려워
바람조차 다가오지 않기 때문
희극과 비극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두 마리의 뱀과 같다. 큰 기쁨이 눈물을 몰고 오듯, 너무 슬퍼지면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거지 노래 속의 이런 익살은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의 역설이다. 거기다 아무리 바람마저 비껴 가는 거지라고 체면이나 배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서럽다는 것은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이다. 또, 말짱한 정신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데서 서러움은 더 깊어진다.
고개 푹 숙이고
적선합쇼. 한 푼 줍쇼!
퍼렇게 날 세운 칼로
세 치 혀 베어낼거나
저 치켜올린 눈썹
거들먹거리는 얼굴
장님이라면 모를까
아하, 서럽다
눈뜨고 하는 구걸
아무것도 없는 판에
헛된 희망 끝내 떠나지 않아
한 가지 기대 버리고 나면
소갈머리 없는 가슴엔 또 다른 희망
구걸에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자살도 죄라니
아, 목숨아 제발 덕덕 네 발로 나가다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또 어디 인도뿐이랴. 서울이 그렇고, 평양이 그럴 터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물 펑펑 쓰고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다음 생에 인도에 태어난다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 쫓아가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내 이웃, 내 친구 가운데 '목숨아 제발 네 발로 나가다오!' 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사람이 아니다.
2003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