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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속으로.....

돗자리 |2003.10.17 02:10
조회 166 |추천 0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은 둑방길 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강게스(학교옆 작은 내천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길을 따라 걷다가

 

길로 올라서서 한참을 걸어와 집에 거의 다 올 무렵

 

다시 조그만 도랑길을 따라 조금 오면 우리 동네였다.

봄철이면 키 작은 제비꽃, 민들레 또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이 피어 있는

 

남대천옆을 걸으며 언덕에 있는 삐비를 뽑아 먹거나 아카시아 꽃을 따먹으면서 학교에 갔다.

 

논갈이, 밭갈이하는 소를 재촉하는 농부들의 소리가 마치 친구에게 말하는 듯 구성지다.

 

 

'어디여라/ 와아!/ 어디여라/ 이놈의 소야/ 왔다갔다하지를 말고서/ 이러 이러!/ 어디에라/

 

오/ 가자/ 오호/ 와!/ 이랴낄낄'

 

어미가 힘들게 일하는 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송아지는 밭가는 어미소를 따라다니며 젖을 빨

 

아먹기도 하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도 한다.

 

소의 목에 메어 있는 딸랑거리는 워낭소리와 소 울음소리,

 

힘들게 내뱉는 소의 콧김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

 

하교 길에는 모내기하는 동네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사카린을 탄 물이 든 주전자나,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서 집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가 예사였다.

잠에서 깨어나는 새싹들과 함께 봄을 여는 소리도 같이 기지개를 켜는

 

그런 강게스길(남대천옆)을 걸으며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여름철에는 학교에서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강게스나 사냥포 에서 멱을 감아 땀을 씻어 내는 것이 일과였다.

 

물이 얕은 강게스위 에서만 수영하던 조무래기들이

 

중 고등학교 형들로부터 헤엄 실력을 인정받아 강게스에서 수영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면 마치 어른이나 된 양 뽐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나거나 친구들과 다투어 심술이 나 있을 때에는

 

집에 오는 길에 어른바우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애꿋은 뱀에게 화풀이로 돌을 던졌고,

 

재수 없이 걸린 개구리에 보릿대를 박아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기도 했다.

겨울이면 추수가 끝나 꽁꽁 얼어 있는 논들을 가로질러서 남대천둑을 무시한 체 대각선 지름

 

길을 달려서 집에 오기도 했고, 책보를 어깨에 질끈 동여매고

 

귀신바위안으로 들어가 얼음을 타며 집으로 가기도 했다.

 

허허벌판 들을 건너오는 북풍이 너무 차가우면 추수가 끝나고 논에 갈무리한 볏짚 낟가리로

 

비밀스럽게 만든 남향받이 아지트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오거나,

 

고무신 신은 발이 너무 시리면 숨겨온 성냥으로 여자바위나 쑤시바위

 

둔덕에 있는 풀을 태워 언 발을 녹이는 것도 겨울 철 하교길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하지만 몇년 동안의 하교 길에서 맺은 남대천과의 인연 중에서 제일 신나는 때는 가을이었다.

 

하얀 벼꽃이 지고 벼이삭 안의 뜨물이 쌀알로 굳어져 갈 무렵이면

 

사냥포위의 수문을 잠그기 때문에,

 

여름 내 내리던 남대천의 물이 줄어들게 된다.

 

아직 따가운 햇살로 치면 조무래기들에게는 멱을 감지 못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지만 새로운 꺼리가 생기기 때문에 아쉬움도 잠깐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와 잿간을 뒤져

 

삽과 양동이와 쓰기

 

(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싸릿대로 만든 원통 모양의 도구를 그렇게 불렸다.)를 들고

 

하교 길에 보아 두었던 고기가 많을 것 같은 작은 물길로 걸음을 재촉한다.

 

적당한 곳을 골라 삽으로 흙을 퍼서 믈을 막고 물고기가 새 나가지 않도록

 

쓰기를 설치한 다음 양동이로 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물이 거의 떨어져 갈 무렵 다른 사람이 이미 고기를 잡아가서

 

고기도 없는 곳의 헛물을 퍼내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연신 뒤를 흘끔거리며 돌아본다.

 

그러다가 물이 줄어든 남대천 바닥에 큰 물고기가 하얀 등을 보이며 파닥거리는 것을 확인하

 

면 팽팽한 긴장과 함께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

이렇게 한 곳 두 곳 욕심을 내어 품다 보면, 해가 지고

 

초가을의 시린 보름 달빛이 비출 때까지 고기잡이하기가 예사였다.

 

저녁 공기에 몸이 추워질 때쯤이면 집에서 찾을 식구들 생각이 나고

 

누나를 앞세워 찾아 나선 어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나의 초가을의 꺼리는 끝이 난다.

지금 학교도 그 곳에 있고 집도 그곳에 그대로 있건만 그길로 다니는 학생은 없다.

 

시골에 사는 내 아주 먼 후배들은 그길을 걷는 대신

 

학교버스로 학교에 다니고 내 어렸을 적 고기를 잡을 시간에 학원에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게임기를 두드린다.

변한 것은 그길을 걸어다니던 조무래기들만이 아니다.

 

남대천이 먼저 둑방까지 대리석으로 도배가 되더니,

 

몇 년 전에는 경지 정리 사업으로 사냥포마져 시멘트로 칠해져서

 

수초가 무성하고 매기 구멍이 뚫려있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논에 물을 댄다는 본래의 목적 외에 그 어느 꺼리도 제공할 수 없는

 

인색한 수로로 변해 버린 것이다.

수초 사이에 물고기가 헤엄치던 사냥포이 시멘트 바닥에 농약 병이 떠다니는

 

수로로 변한 것이 단순히 조무래기들의 가을날의 꺼리를 잃어버린 의미만 갖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 편리함만 쫒고, 효율성만 추구하다가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그 편리함과 맞바꾼, 잃어버린 것들 중의 대부분이 생명, 사랑,

 

사람들과의 정이라면 우리는 편리함 때문에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은 아닐까?

이 잃어버린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커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게 한 어른들을 원망하지나 않을까?

고향에 갈 때면 이따금씩 허망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요즘도 남대천에서 고기를 잡느냐고 묻곤한다.

 

요즘은 고기가 없다  얼마전 재권이란 친구와 둑방길위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지만........

 

흔적이 희미하다

 

무주 리조트에서 잔디에  뿌리는 독한 농약 성분과

 

작년 재작년 수해로 엉망이된 고향의 하천이 그래도 그립다

 

 

 

그래서 일까 고향도 아닌 강원도에서

 

죽마고우 재권이와 함께하는 강원도 여행이 기다려 진다

http://club.nate.com/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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