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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일까? (사연이있어 퍼온글)

정성수 |2003.10.18 11:39
조회 3,063 |추천 0

지금 부터 난 이것이 인생일까? 라는 29년 인생을 바로여기 작성할려구 한다
생각 하고싶지 않는 29년 인생 이지만 과연 이것이 인생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태어날려고 할때 어머님은 시장에 조개국을 팔로 갔다가 그자리에서 놓을뻔 했다고

한다 그 뒷이야기는 모른다..어디서 놓았는지...그래서
1975년 3월 13일에 기쁘게도 세상에 나왔다...
난 세상에 나온날 2살때 어머님과 나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강도가 들어왔다고 한다

2살에 기억은 아무것도 모르지만.이렇게 알고있다
어머님이 고함을 외치는바람에 다들 도방갔다고 한다...
세상에 나오자 마자 뭔 난리람.....
나의 부모님은 바다 가서 조개를 잡는다고 난 항상 할머님과 같이 살아 왔다
그렇다 보니 할머니는 오직 나만 좋아하고 사랑해 줬다

할머니는 잔치집에 다녀 오시는 날은 꼭 희 손수건에
음식을 싸가지고 몰래 숨겨서 나만 주곤 했다...

이렇게 세월이 지나갔다....난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세월은 참빠르다 내가 4학년이였다 비가오는날 난 복도를 청소 하고 있었다..
그놈은 육상부였다 나와는 조금 친한 편이다...
그친구가 육상부 선생님에게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나보다..그래서 그친구가 달려왔어
하는말(야 너 육상부 선생님이 너 오라고 한다..)그말은 날 육상부 시킬려구 하는것이겠지
하고 같이 친구랑 달려갔다...

난 테스트 받고 바로 육상부를 시작했다 ..

육상부를 하게되면 그때부터는 학업에 충실하지 못한다

그날 대회가 있으면 그 전날은 육상훈련 이다보니 학업에는 충실 하지 못해

난 운동에만 열심히 하고 그래서 대회에 나가서 우승도 했다 ...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할때 즘에 육상부 선생님이 조용히 날 불렀다 ...

아마도 운동을 잘하다보니 체육 전문학교로 보낼려구 했다

난 부모님의 반대로 그냥 중학교를 들어가고 말았다

난 방학중에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무릅에 그만 그래서 난 왼쪽다리에

쇄를 넣고 다니고있다 중학교 1학년 난 기초를 배우지 못했다 병원 에서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난 2학기때 공부를 열심히 했어 친구들 따라 잡을려구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기초가 없으니 친구들 따라잡기는 힘들것 갔아서

다시 운동으로 뛰어들려구 노력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된것이다

난 운동을 하고싶어 계속 할려고 했으나 이런 운명이 있을까..운동을 하다가

오른쪽 무릅을 왼쪽과 마치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다치고 말았다

난 중2기초도 배우지 못했다 역시 병원 생활 ( 병원에서는 또왔냐고 놀리고 했지만 ) 나자신은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그냥 아무생각없이 자꾸..

이번에도 수술할때 다리쪽에 수술 해야 했기 때문에 허리 마취를 했다

그때 난 허리마취를 하고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있다 (허리쪽에)

2번째 수술 정신 마취를 했다 수술은 잘끝났다 ..

난 집이 너무 가난했어 다리에 기부스한 상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난 고부를할려구 조금이나마 배울려구 학교를 갔다 목발짓고 그런데

학교정문에서 난 지도보선생님에게 걸리고 말았다 실래화 안가져 왔다는 이유였다

난 다리에 통기부스를하고 엉덩이를 맞고 운동장 한중간에서 벌까지 받았다

통기부스란 발목에서 허벅지 끝나는 부분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눈물이 나는지 벌을 받고 난 그냥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

안하겠다고 난 처음부터 배우지 못했으니까...배워서 뭐하나하고...집으로 돌아가서

한없이 울고있었다 부모님이 알아 버렸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 아버님이 하시는말

=>아버지: 다리가 다 낮지도 않고 통기부스 한상태에 그래도 아이가 공부할려구

학교간다는데 부모 입장으로서 가지말라고 하고싶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고 학교갔는데

정상치 못한 아이를 때리고 벌주고 이런 학교라면 내가 학교 안보낸다며...화를 냈다

그중에 한 선생님이 정중히 아버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아버님은 화가 조금식 풀어지시나보다 그렇게 난 중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역시 오른쪽 무릅에 쇄를 넣고 다니고있다...그래서 양쪽 무릅에 쇄가 현제가지도 있다...생활에 지장은 없다

나중에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될지몰라도 .......



이제 고등학생이다 남들처럼 자랑 하고싶은 그런학교가 아닌
그런학교를 들어갔다
난 공부에 기초는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수없기에
난 여기서 기술이나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그래서 전자과에 들어가서 전자 기술를 열심히 배워 성적은 우수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난 교실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점심시간이라 아이들이 운동을 하며 뛰어 놀고있었다
그때 나의 머리속에는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말이 떠올랐다

의사 선생님의 말: 두번다시 운동을 하다가 다리 다치면 이젠 더이상 수술할수도없고
여기서 더이상 다치면 안된다면 운동은 절대 하지마라고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전봇데에
격투기라는 태국 무술 종이가 붙어있었다....
난 그것을보고 그래 해보자 정말 운동을 할수있는지 못하는 것인지 난 도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면 곳장 도장으로 찾아가 훈련하고 그렇게 반복하다..
1년이 지났다 물론 다리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어느날 부산 구덕 운동장에서 신인 격투기 대회가 열린다고 관장이 나가 보라고 한다
우리 도장에서 체급 별로 몇명이 나가는데 그기서 내가 포함이 된것이다(다리쪽에는 신경이 갔지만
이때가지 아무 이상 없는데 별탈이 있겠냐 하며 난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한달동안 도장에서 자고 먹고 학교가고 훈련하고...
그렇게 대회나가 난 우승했다 관장이 하는말

관장: 너는 상대팀이 원낙 잘하는 사람이라 하필이면 그선수랑 붙었나 하고
이기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이길줄은 몰랐다.이겨서 장하다

난 기분이 좋았다 운동했어 이겨서가 아니라 ...
이제 다리에대한 고정관념 이제는 신경안쓰고 운동하고 싶으면 마음것 할수있다는 생각이
날 기쁘게 했다

이렇게 난 고등학교를 마무리했다

이제 난 전자과 나온기술로 취업을 해야만했고
마치 우리학교 6년선배가 조금한 공장을 구미에서 한다고 학생들 필요하다며 몇명 대려
가야 한다고한다 ...그때 내가 가야한다고 선생님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취업을 경북 구미로 오게 된것이다
부모님에게 난 너무나 걱정을 많이 시켜드렸고
병원 입원 했을때 가난한 형편에 돈을 병원비에 많이 사용했어
그때 생각했다 내가 사회나가면 부모님에게 돈벌어서 드리겠다고 또

사회인이 되면 부모님에게 손 안벌리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구미로 갈때 난 한달전에 부산 신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구미로가면 방값 등등 생활비를 아르바이트했어
그돈으로 난 구미로왔다....

자취생활 하면서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일했다..학교선배라 우리를 많이 챙겨 주었다
한날은 사장님 집으로 저녁 초대했다
저녁을 다먹고 커피 한잔할때 하는말

사장: 너이들도 여기서 기술배워서 나중에 공장 조금한거 할수있게 도와주겠다 열심히
기술배우고 열심히 일해보아라 ...

그때 난 생각을 했다 나라고 못하는 법이 어디 있겠냐고
그래서 난 일을 더 하기로했다
낮에는 회사일 밤에는 알바 그래서 회사 6시 마치면 웨이타 시작했다
안해 본것은 없었다 처음에
(호프집,레스토랑,노래연습장,노래주점,단란주점,회관 )웨이타 를했다
이렇게 회사생활 하며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을 모아 살아왔다.....
이렇게 살다보니 친구도 못사귀고 그냥 바보처럼 목표를 위해 막무관에 달려 온것이였다


어느날 고향집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님이 교통 사고라며

큰집이 있는데 우리집과는

버스 한코스 였다 할머님은 내가 구미올라 간 뒤로는 주말마다 집에 오는것으로 알고있었다

날 보고싶어 오시다가 차도를 지나다가 그만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은 작은아버님 한달 연후로 돌아가셨다

그렇다보니 이제 우리 아버지만 남았다

병원에서 할머님이 퇴원하시면 우리집에 모시기로 했다

하지만 할머님은 다리에 뼈가 뿌러졌어 움직이지를 못한다

난주말마다 내려왔어 내가 할수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사업준비에 몰두 하고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난 집에가서

할머님 보고싶어 내려갔다 할머님은 이제 아무도 못알아 보신다

우리식구 아무도 단 나만 알아보신다...난다시 구미로 올라 간다고 할머님에게

인사를 할려구 하는데 할머님은 자꾸 구미로 가지 말라고한다 방에있는

뭐하나를 꼭 붙잡으면서 마치 누군가가 찾아왔어 대려갈려구 하는것처럼 할머님은

그 하나의 끈을 놓치 않았다 그러면서 가지말라고하는데 난 내가 시작할려구 하는 사업때문에 올라 갈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구미 오라온 3일뒤 집에서 아버님이 연락이왔다 시간은 저녁 11시즘 이였다

할머님이 위독 하시다고 아버님은 기다려 보라고 한다 문제 있으면 연락 다시 하겠다고

난 불안감에 못이겨 술을 사가지고 자취방에서 술을 먹었다

그러고있는데 아버님이 빨리 오라고한다

난 음주한 상태에 무작정 170~180 놓고 고속도로를 막 달렸다 비상깜박이와 상라이트

켜면서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이세상에 없었다

옆에서 아버님이 하시는말 할머님이 너만찾고 너만이름부르다가 돌아가셨다 라고

난 너무나도 억울했어 눈물이 나지 않았다

3일지나고 산에서 돌아오는데 집에 있어야할 할머님이 없다는것을 알고 그때서야 나의

눈에 눈물이 흘러 나오는 것이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난 구미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로했다


전자 부품 조립공장을 할려면 물량 확보 그래서
조금한 공장부터 뛰어 다였다 모회사에서 물량을 조금준다고 시작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광고했어 조금한 지하 공간에서 직원 몇명과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식 시작한 결과 공장운영이
잘 돌 아가는 편이였다 그래서 아는 사장님이 물량을 소개해줘서
점점 크 나가고있었다
기존에 공장이 작아 30평의 공장으로 이사갔다
점점 물량확보 안정된 본사 이렇게 회사운영이 잘돌아 가고 있었다
직원 도 필요했다 인원모집 직원수 25명 점점 회사운영이 잘돌아 가서
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고아원 장에 복지관
찾아 다니면서 주말에 봉사활동 하기로했다
그러면 회원들이 필요했어 인터넷 클럽을 시작했다
회원들도 많이 참가 했어
대구 중심으로 봉사활동 시작도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I M F 로 회사가 어려워졌다
결국 I M F 에 본사가 부도 난 것이였다
결국 모든 하청업체 사장과 나와 무너지고 말았다
난 굴 하지않고 다른물량 확보 그래서
난 대출했어 직원들과 계속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노력으로 안돼는 것인가 보다 경제난으로 불경기였다 전자제품은 중국으로 넘어가고
하루하루 갈수록 물량은 없어지고 생산은 줄어들고 직원 입금은 맞추지못하고
난 할수없이 포기 해야만 했다 남은것은 대출한 빛더미 뿐이였다 앞으로 나의인생은 어둠속에만
자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인터넷으로 고민 나누는 중에 한 젊은 친구가 서울로 올라 오라고했다
서울역 10시 만나기로했다 돈을 빌려준다는 약속 이였다 그래서 난 기쁜 나머지 무작정 서울 올라갔다
하지만 서울역 3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였다 속았구나 장난친거구나 알고나니
나의 자신은 한없이 억울하고 나자신이 그렇게 미워질수가없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나의인생 도망자였다.....
도망생활을 많이했다 서울에 영등포역 노숙자 생활 등등 나의인생 돌아보면 참담하고 비참했다
갈곳도없고 숨실곳도없는 이세상에 난 죽을려구 약을먹을려니 바른정신 으로는 못할짓이였다
그래서 술의힘을 빌려서 만취상태에서 죽을려구 약을 먹었다
이것이 왠일 10알를 먹는중에 한알이 목에걸려 모든 알약을 토하고말았다...
그리고 만취 한상태에 잠이들었다
그렇게 난 죽을 사람이 아닌가 죽지도못하고 살지도못하는 인생
난 떠돌이 생활를 계속해야만했다
마치 내가 가지고있는 차때문에 그기서 잠을자고 그렇게 살았다 추운 겨울 날이면 휘타 틀고
배고프면 공원에 물로 배를 채워야했고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순간 난 너무추워서 차에 휘타를 4단으로 틀고 차에 창문은 잠겨있고
그렇게 잠이들었다 그런데 꿈에 날 대려갈려구 2마리의 용이 날 물고 가는것이였다
그때 마치 개 한마리가 나타나 물고가는 나를 붙잡고 눈을 뜨고 말았다

이상한 꿈이였다 .........

몇달이 지나고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속에 심한 몸살을 알코 말았다 그때도 잠자는곳은 차안 이였다
그런데 난 약을 사먹어야 했지만 돈은없고 죽을려구 그냥이대로 죽자 그렇게
난 다짐을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개한마리 않고 나를 바라보면서 계속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렇게 잠에서 일어나보니 몸이 언제 아파는가 나의몸이 날아갈듯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이였다
그렇게 계속살았다 한날은 화장실 급하여 찾아갔는데 화장실에 장기 기증이라고
기증하면 돈준다라는 문구를잃고 전화를했다 돈을 76만원 입금시키면 서류작업했어
5천 정도를 맞추어 준다고했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문득 생각나는것이
나를걱정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고생을 하고있다 가난한 형편에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그렇지만 가난속에 살아가는 부모님 이렇게 다짐했다
나를 고생했어 키워준 부모님이 소중하나 나의 몸 장기 하나가소중하나
이 두가지를 생각한결과 장기기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임금을 시키고 난 수술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이 사기극인줄 누가 알았단말인가.....
앞이 까마득했다 돈을 어렵게 구했는데 여기서 포기못해 다시 화장실 뒤지고 다녔다
이번에는 간이식 수술 이라며 사기아니라며 나에게 자세히 상세히 설명을 했어 믿음이

갔다 하기사 사기치는사람이 그정도 능력은 있어야 하니까...
92만원원 검사비가 들어 간다고 입금했다 그리고 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결국 사기였다 ...
난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또화장실 뒤지고 다녔다
다른 전화번호가 있어 또전화했다 그런데 그사람설명은

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맞아 떨어졌다 믿음이갔다 서울로 올라 오라고했다
얼굴도 보여준다고 얼굴보여주는데 사기치는 사람 보았냐고 ..
무작정 돈을 마련했어 서울로 올라갔다 같이검사를 받고 기다리라고 피 검사 나오는데로
연락준다며 난 기다렸다 그런데 또 속았다
장기 기증할려구 마련한돈은 말로 표현못하는 피나는 돈이였다
난정말 한심했다...내가 이렇게 어리석은 나인줄은 정말몰랐다.....
이렇게 1년 5계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나의 사연을 이글로 다 표현 못할것이다
글로 다표현한다면 얼마나좋을까 .....
이제는 내가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실용신안특허를 신청했다
하지만 자금이없다 온통빛이다
하루하루 용돈은 현제 용역회사 노가다로 생활하며 도망다니 고있다
이것이 인생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가 이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나만이 알고있을뿐...
나의고통은 여기 글남긴 겨우 70%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29년의 인생이였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보다 더 참담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이상.더 작성한다했어 세상이 달라지는것이
아닌것같다 그냥 여기까지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 할려구한다....
난 끝가지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어떻게든 살아 남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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