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보고 마음 티 없이 살리라 빌어보는 저녁
어두워지는 들녘을 뒤로하고 허리 구부정한 농부가 사래 긴 둑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시냇물에 어깨 메고있던 삽을 씻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피 입에 물어 불을 당
기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들녘의 모습입니다.
석양이 지는 노을이 시냇물에 드리워 그 강렬한 빛깔로 잠시나마 시냇물을 아
름답게 덮어 줍니다.
농부의 늙은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그들의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시냇물에 흐르는 모습으로 반영 되어 그림자 길
어 집니다.
밀레의 만종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일까요.
들녘에는 황금빛 풍요롭던 볏단들이 늙은 농부의 힘찬 일손으로 가지런히 누워
있습니다.
동해로 불어가는 큰 바람이 들녘을 어수선하게 쓸어갑니다.
가을 익어가는 바람이겠지요.
세월의 뒷강에 그 바람은 작은 소용돌이를 일어켜 산그늘 앞당깁니다.
동구밖 마을 지키던 장승을 누군가 뽑아 가 버린 후 혼자 쓸쓸한 "지하여장군"
이 청승스러워 다시 짝을 맞추려는 농부의 가슴앓이를 듣고 날 받아 장승 깍는
날 막걸리 한 통이라도 준비 해야 겠습니다.
참새 후려 쫓는 바쁨에 정신이 없었던 허수아비도 한여름 땀흘려 소금기 묻어
난 옷이 빛 바래어 있습니다.
텃 밭의 붉은 고추는 마당에서 빛좋은 가을 햇살에 태양초로 익어가고, 이랑
가득 찬 푸른 무우와 배추가 김장철이 가까워 온다고 눈으로 말 전하고 있습니
다.
잎새 파르라니 단물 묻어오른 살찐 무우 한 뿌리 뽑아 손으로 껍질 돌려 깐 후
한 입 베어 무니 가슴 참 시리도록 맑아집니다.
텃 밭 처음 일구어 씨 뿌린 후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수 있나고 물어 보았
습니다.
늙은 농부가 "아내를 사랑하듯 자식을 사랑하듯 땅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믿음으로 돌아온다" 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슬피 뿌린 씨앗이 가을 풍요로운 결실로 나에게 돌아 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속 살 고운 배추 한 포기 뽑아 된장 푹 찍어 쌈이나 싸야 겠습니
다.
붉은 해 서산 넘자 빨리도 달 올라 옵니다.
휘영청 밝아오는 달, 내 가슴에 포근히 안깁니다.
저문 가을 들녘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기만 합니다.
달 보고 마음 티 없이 살리라 빌어보는 기분좋은 저녁입니다.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