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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고 마음 티 없이 살리라 빌어보는 저녁

김명수 |2003.10.18 13:41
조회 248 |추천 0

 

달보고 마음 티 없이 살리라 빌어보는 저녁



어두워지는 들녘을 뒤로하고 허리 구부정한 농부가 사래 긴 둑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시냇물에 어깨 메고있던 삽을 씻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피 입에 물어 불을 당

 

기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들녘의 모습입니다.

석양이 지는 노을이 시냇물에 드리워 그 강렬한 빛깔로 잠시나마 시냇물을 아

 

름답게 덮어 줍니다.

농부의 늙은 아내가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그들의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시냇물에 흐르는 모습으로 반영 되어 그림자 길

 

어 집니다.

밀레의 만종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일까요.

들녘에는 황금빛 풍요롭던 볏단들이 늙은 농부의 힘찬 일손으로 가지런히 누워

 

있습니다.

동해로 불어가는 큰 바람이 들녘을 어수선하게 쓸어갑니다.

가을 익어가는 바람이겠지요.

세월의 뒷강에 그 바람은 작은 소용돌이를 일어켜 산그늘 앞당깁니다.

동구밖 마을 지키던 장승을 누군가 뽑아 가 버린 후 혼자 쓸쓸한 "지하여장군"

 

이 청승스러워 다시 짝을 맞추려는 농부의 가슴앓이를 듣고 날 받아 장승 깍는

 

날 막걸리 한 통이라도 준비 해야 겠습니다.

참새 후려 쫓는 바쁨에 정신이 없었던 허수아비도 한여름 땀흘려 소금기 묻어

 

난 옷이 빛 바래어 있습니다.

텃 밭의 붉은 고추는 마당에서 빛좋은 가을 햇살에 태양초로 익어가고, 이랑

 

가득 찬 푸른 무우와 배추가 김장철이 가까워 온다고 눈으로 말 전하고 있습니

 

다.

잎새 파르라니 단물 묻어오른 살찐 무우 한 뿌리 뽑아 손으로 껍질 돌려 깐 후

 

한 입 베어 무니 가슴 참 시리도록 맑아집니다.

텃 밭 처음 일구어 씨 뿌린 후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수 있나고 물어 보았

 

습니다.

늙은 농부가 "아내를 사랑하듯 자식을 사랑하듯 땅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믿음으로 돌아온다" 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슬피 뿌린 씨앗이 가을 풍요로운 결실로 나에게 돌아 왔습니다.

오늘 저녁은 속 살 고운 배추 한 포기 뽑아 된장 푹 찍어 쌈이나 싸야 겠습니

 

다.

 

붉은 해 서산 넘자  빨리도 달 올라 옵니다.

휘영청 밝아오는 달, 내 가슴에 포근히 안깁니다.

저문 가을 들녘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기만 합니다.

달 보고 마음 티 없이 살리라 빌어보는 기분좋은 저녁입니다.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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