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를 내세우기 위한글은 아닙니다,,그냥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높은곳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자동차의 윗부분이랑, 사람들의 머리, 어깨쪽만 보이고,
거리가 멀어서인지 또 아주 작게 보입니다,,,
높은 건물 9층정도에서 창문틈새로 내려다보면서,
갑자기 세상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니 시시함보다는 별로 큰 결점이 없어집니다.
다 조그맣게 보이는 때문이지도 모릅니다.
바닷가의 파도를 쳐다보면,,,,
그저 왔다가, 가기만 합니다,,,,
어떤 욕심도 없이 와서 땅 끝에 손 한번 대고 다시 떠납니다.
그런 파도를 대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우리네 모습이 우스울 뿐입니다.
이곳 도시 한가운데서 파도 모양을 딴 걸음새로 바다 흉내를 내 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측정할때는,머리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슴을 측정한다-
완전한 절망은 神, 하나님으로부터도 허락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희망이시기 때문입니다,,
겨울 추위속에 봄 기운을 묻어 두시는 것처럼,
우리 삶엔 언제나 어떤 모양으로든 그분의 손길을 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절망은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음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소유하지 못해 안달하며,
어떻게 인정 못받을까, 성공 못할까 안절 부절 합니다.
마음속에 헛된 보화를 쌓기 위해 창고만 크게 지어놓고 그 창고가 덜 찻다고 매일 투덜거리는
자신은 보기에도 딱합니다.
이젠 작은 창고를 만들고 작아도 크게 만족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때 사람들이 조롱하고, 약 올리고, 포악하기 그지없게 굴었지만,
그 분의 말씀은,
"아버지, 저들은 그들의 하는일이 뭔지 모르고 저러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말씀만 하시다니,,,
'바보'같다는 생각뿐이 안듭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 나만의 人生을 위해서 자신을 조건없이 버려주는 바보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이상은 그 불길이 꺼져버릴수도, 꺼져서도 안됩니다.
이상이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만, 우리는 오늘 현재를 살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상을 품고 사는 사람은 그 이상에 점차 닮아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천국을 가슴에 품고 기리며 사는 사람은 천국을 땅 위에서 실현해 나갈수 있을겁니다.
성경의 한 구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씩이나 물어 보십니다.
대답하는 베드로는 마음이 슬플 지경이었지만, 이제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편하게 쉽게 입으로만 말해서만 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마음을 깊이,,깊이,,,쳐다본 다음에 할 수있는 사랑한다는 말일 겁니다,,,
가끔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이 만큼 까지는, 이렇게 까지는 안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큰 사랑을 주십니까?,,,,하고 말입니다.
자신의 본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하루의 은혜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신앙에 대해서 가끔 이렇게 정의를 내리기도 합니다.
'신앙은 기다림이다,,'
비단 신앙뿐 아니라 인간사의 많은 것들이 그 본질에 '기다림'이라는 요소를 품고 있는것 같습니다.
아주 작게만 쳐다봐도 나를 오해하는 사람에게,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모함하는 사람에게도 그 상대방 감정의 소용돌이가 끝날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이 있을때,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노동을 벌로써 주셨는데,,,,
역시 그속에도 '숨겨진 은총'이 있었나 봅니다.
더구나 자기의 일 속에서,,,,힘겨운 일 속에서도,,,,,기쁨과 즐거움을 느껴갈수 있다면
하루의 노동이 은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루의 끝 시간,,,,,,
오늘 하루도 내가 한 일들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나의 느낌대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아프더라도 그 사람들이,
나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 놓아야 겠습니다....
**오래 전의 메모중의 일부입니다./패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