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승미가 알려준 시골집은 너무나 좋았다.
집앞쪽으로 약간만 걸어가면 맑은 실개천이 초등학생 소풍가는 듯 조잘조잘 귀엽게
흐르고 뒤쪽으로 돌아가면 울창한 대나무밭이 쭉쭉뻗은 그들 몸으로
하늘을 가리고 무슨 애기 그리 재미있는지 하루종일 사각사각 수다가 끝이없다.
관리하시는 할아버지,할머니 또한 선영을 친손자처럼 그렇게 살갑게 대해주어서
고마운 마음에 일이라도 거들라고 싶으면
"아서요..내가 할께요..."
"할머니 저도 도울께요..힘드시잖아요."
"힘들지 않아요. 늙은이가 운동삼아 하는건데..아가씨는 그냥 푹쉬다 가세요."
"그래두요.."
"괜찮아요..아참 대나무밭에는 가봤어요?"
"네에...너무 좋던데요.."
"그래요..거기가면 사람크기만한 넙적바위가 하나있는데 거기에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대나무들이 하는 말이 들려요."
"뭐라고 하는데요?..."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점심먹고 한번 가보세요...뭐라고 하는지.."
할머니는 점심상을 차리자 텃밭에 일하시던 할아버지가 삽을 어깨에 매고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선영은 툇마루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찬이 없어서...어쩌나..혹 입맛이 맞을려나 모르겠네.."
선영은 눈이 휘둥그레지면
"할머니 무슨 찬이 이렇게 많아요.."
"많긴..그냥 우리 먹는것에 몇개 더 얹었는데...어여 들어요.."
"잘먹겠습니다."
"어디부터 먹어야하나? 할머니 이건 뭐죠?"
"죽순회라는건데...먹어봐요.."
"음...심심하면서도 아릿아릿하고 새콤달콤하네요..
할머니 이것은 어떻게 만드나요?"
"쉬워요. 죽순이 요만치 자라면 캐서 그냥 초고추장에
스윽스윽 무치거나 양념발라서 굽기만 하면돼요.
먹을만 하죠?"
"네에..너무 맛있어요.."
역시 음식은 전라도음식이 최고라는 말이 그냥 나온말은 아닌것 같다.
"임자..그것좀 내와요."
"영감이 술생각이 나시는구려.."
하면서 할머니는 술병하나를 가져와서 할아버지한테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는 술병들어서 선영에게 따르려고자 하자 선영은 화들짝 놀라면서
"할아버지 제가 먼저 올려야죠...."
"괜찮아요..그냥 받아요..손님인데.."
"그래도 그러면 안되죠. 법도라는게 있는데요...
주세요..제가 먼저 올리겠습니다."
선영은 자세를 고쳐잡고 정중하게 술을 따랐다.
그리고 선영은
"할머니도 한잔 올릴께요.."
"나는 술 못해요.."하면서 할머니는 손사레를 한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받아요...밤마다 꼴짝꼴짝 마시는것 다알어요"
"제..제가 언제요?"
할머니는 당황하는듯 했다.
선영은 웃으면서 할머니에게 술을 올렸다.
고개를 돌리고 한잔 마시자 입안으로 가득 싸악~ 하고 대나무향과
은은한 솔잎향이 퍼졌다.
"우와~ " 선영은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한잔따라주면서
"이게 우리집 대대로 내려오는 송죽엽주라고 대나무잎이랑 솔잎으로 술을
빚은거죠. 전국 어디가도 이런 술은 없어요."
"네에..정말 기가막히네요...요즈음 애들말로 짱~ 이네요.."
맛있는 음식과 좋은술과 좋은사람들이 있다면 거기가 천국이 아닐까?
선영은 너무 많이 먹어서 숨쉬기가 곤란할정도였다.
'이렇게 며칠만 여기서 먹고 자면 서울갈때는 굴러서 가겠네.'
잠시 쉬었다가 선영은 편한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대나무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이 되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우선 미국인 심사위원 5명이 주제를 내면 거기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거기에 대해서 5명과 상대방이 반박하고
그반박에 대해서 다시 받아치는 형식이였다.
이때 5명의 심사위원은 반박의 논리성과 언어구상능력 화술등등을
면밀히 체크하는것이다.
미국인심사위원중에는 현직 신문기자도 있고 작가,영문학교수등 각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말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날아오는 질문은
말문을 막히기에 충분하므로 적절한 단어선택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것은 아니다.
질문을 받고 거의 동시에 답변을 해야 하므로..
네번째까지 무사히 넘어가고 드디어 마지막 주제가 남았다.
상대방은 연신 땀을 닦고 은진도 이마에 땀을 훔쳤다.
방청석에서는 영어가 되는 사람은 그냥 듣고
그렇치 못한 사람은 한쪽에 이어폰을 끼고 통역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숨죽이고 보고 있었다.
마지막 주제는
"전후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위상" 이였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고 논란거리가 충분한 주제였다.
구매부 먼저 말문을 열었는데..
그의 주장은 대충 이러하다.
전후 초창기에 미국의 경제적인 원조가 있어서 덕분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수 있는 근간이 되었고
또한 동북아 아시아의 전략적인 요충지인 대한민국에 세계평화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므로써 힘의 균형을 맞추어져서 아시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인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아마도 저것이 그들이 원하는 답변이였으리라..
그러나 은진은
"물론 전후 초창기에 미국의 원조는 모든것이 폐허가 되어버린 한반도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는걸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발전은 국민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지 단순히 특정나라의
원조만으로 이루어진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 원조에 댓가는 다른 형태로 충분히 갚았다.
우리나라는 휴전중이다..휴전이라는 말은 전쟁을 잠시 중지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수 있음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중간자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공정한 심판으로
역할로써 의미가 있는거지. 군림하는 자리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기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어느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자주국이다."
순간 방청석에서는 와아~ 하는 환호과 더불어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신대리는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많은 반박과 칼날같은 질문이 은진에게 비처럼 쏟아질것이라는걸
그는 잘알고 있었다.
역시나 그랬다.
하지만 은진은 당황하지 않고 하나하나 잘헤쳐나갔다.
마치 2.9미터 거인골리앗앞에서 물맷돌하나 쥐고 겁먹지 않은 다윗처럼..
다행히 무사히 대회는 끝나고 심사위원 채점만을 위한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은진은 강단을 내려와서 영업부가 있는곳으로 갔다.
"수고했다.."
보라가 말하자
"휴~ 언니 두번다시는 못하겠어...아니 다시는 안해.."
은진은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수고했어요..은진씨 그리고 정말 잘했어요."
"고맙습니다. 신대리님."
얼마 시간이 지나고 심사위원 채점을 발표하였다.
"지금부터 채점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정숙해주시길 바랍니다.
음..점수는 심사위원 총8분으로 백점만점으로 총 8백점 만점입니다.
먼저 미국인심사위원 다섯분의 총점을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구매부 박정수 380점
영업부 서은진 480점 "
순간 영업부에서 우와~ 하고 환호성이 터졌다.
백점차이라면 거의 우승이 확정적이다.
사회는 다시 장내를 조용히 시키고 발표를 계속했다.
"임원진 심사위원의 점수를 발표하겠습니다.
구매부 박정수 271점
영업부 서은진 170점
총점 구매부 박정수 651점 영업부 서은진 650점으로 최종우승은
구매부 박정수입니다."
이번에는 구매부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영업부에서는 야유가 나왔다
뒤늦게 통역으로 이 사실을 확인한 미국인심사위원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들도 은진이 월등히 뛰어났음을 인정하는것이다.
170점이라는 점수라면 3으로 나누면 평균 57점이라는 애기인데...
아니면 누군가 0점 처리했거나..
도저히 인정할수 없었다..
신대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심사위원을 향해서
"임원진심사위원 점수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영어경시대회에서
미국인심사위원들이 인정한 영어점수만으로 충분한거지
왜 임원진심사위원 점수라는 것이있어야 하나요?"
그러자 구매부쪽에서..
"앉아라..졌으면 진거지 무슨 토가 그렇게 많냐?"
"승부에 승복해.."
"야~ 넌 뭐야..뭔데 건방지게...앉어.."
신대리를 야유하는 소리가 터져나왔으나 신대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심사위원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심사위원중에 하나가 일어나서 신대리쪽을 향해서
"자넨 누군가? "
"영업부 대리 신현호입니다."
"역시 말썽많은 영업부인가? 그래 내가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영어경시대회면 물론 영어를 잘해야하는것은 너무 당연하네.
하지만 영어만 잘한다고해서 모든것이 끝이 아니야.
영어와 더불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도 중요하지. 왜냐하면
미래에 이들이 중역이 되어서 회사를 이끌어 나갈때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회사가 위험할수 있으므로 올해부터 점수화
하도록 했네....이만하면 충분히 답변이 되었는가?"
신대리는
"그러면 심사위원님들 보기에 은진씨가 생각이 바르지 못하다는 뜻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했는지 몰라도
내생각에는 은진씨의 생각은 너무튄다는거야.
직장생활은 팀플레이지 혼자 독주하고 튄다면 불협화음이 나올수 밖에 없지."
신대리가 더 말을 할려고 하자 박과장이 제지시키자
신대리는 그대로 세미나실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박이사는 그 특유의 느끼한 웃음을 짓으면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