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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영어공부

럽이 |2006.11.13 12:16
조회 55 |추천 0

엄마의 영어공부

 

50대 후반인 우리 엄마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태입니다. 가난으로 인해 초등학교 2학년도 채 마치지 못했지만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히 여기고 사셨지요. 이런 엄마가 얼마 전부터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전자부품공장 청소 일을 하시는데 공장 안에 있는 사무실 이름이 ‘VCR’ 또는 ‘HDD’처럼 온통 영어 약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 글자씩 달력 뒷장을 방바닥에 쫙 펴시고 매직으로 알파벳을 그리시며 정말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셨습니다. 한 달 뒤에는 냉장고 로고도 읽으시고, 신문에 큼지막하게 나온 영어 대문자도 알아보시더군요. 얼마나 놀랍고 뿌듯하던지 우리 엄마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자랑스럽게 한마디 더 하시는 겁니다.

 

“나 오늘 우리 막내가 날마다 어디 가는지 알아냈다. ‘PC방’으로 들어가더라. 이놈이 매일 어딜 가나 했더니 거기가 PC방이었어. 이놈 들어오기만 해봐라.”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날마다 집 앞에서 막내아들이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들어가던 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모르셨다니…. 커다란 PC방이라는 간판이 엄마에겐 그저 벽이었던 겁니다. 거리의 수없이 많은 영어 간판과 안내 표지판이 엄마에겐 그저 모두 벽이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왜 한번도 엄마가 영어를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을까요. 내 눈에 보인다고 우리 엄마가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30년 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영어는 어쩔 수 없다지만 되도록 간판이나 안내문에는 한글을 사용하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어른들을 위해 영문 간판 옆에 작게라도 한글을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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