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의 어원
두만강 연변과 그 북쪽에 살던 여진족 가운데 한 부족.
한자로는 올량합(兀良哈)이라고 쓴다. 원래 우수리 강[烏蘇里江]의 지류인 무링허 강[穆陵河] 유역에서 살아온 듯하나 명나라가 세워질 시기에 두만강 유역으로 옮겨갔다.
〈연산군일기〉에 보면, 이들은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간도에서 함경도 무산쪽으로 압록강 상류에 이르는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부족은 1명의 추장 밑에 수십 호가 작은 부락을 이루며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통일이 어려웠고 세력도 약해 고려와 명나라에 복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흉년이 들면 우리나라의 변방을 자주 침입해 토벌당하기도 했다. 기원을 살펴보면, 그들의 시조가 본래 개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을 오랑캐라고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한 재상이 얇은 껍질로 만든 북을 만들어놓고 이 북을 찢지 않고 치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고 했다. 아무도 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개가 꼬리로 북을 쳐 재상이 딸과 개를 혼인시켰다.
밤마다 개가 딸을 할퀴고 물어뜯자 참지 못한 딸은 개의 네 발목과 입에 따로 주머니를 씌웠다. 이들이 자식을 낳자 북쪽으로 쫓겨나 후손을 퍼뜨렸다.
그뒤 '오낭(五囊)을 낀 개[狗]'라는 뜻인 '오랑구'가 '오랑캐'로 변해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를 자주 침입한 북방 여진족에 대한 적대감과 멸시감 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