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함의 역사 : 고대에서 중세까지 군함은 갤리선(galley)이라고 하는 목선으로서, 노와 돛에 의해 항주(航走)하였고, 노는 거의 노예들이 저었다. 전투는 활쏘기·투석, 그리고 병선끼리 접근하여 접현전(接舷戰)으로 승패를 가렸으며, 그로 인해서 병선을 건조할 때 특히 앞과 뒤를 높게 하여 적을 공격하는 데에 용이하게 하였다. 위·아래 층에서 노를 젓게 만든 2단노선(二段櫓船)도 있었으며, 돛대가 여러 개 있는 병선, 청동(靑銅)으로 충각(衝角:ram)을 만든 것도 있었다. 중세기에는 포(砲)를 사용하였으며, 16세기에는 포가 주무기로 되자, 배수량이 1,000t이 되고, 2층 갑판과 4개의 돛(마스트)에 포가 18문이나 되는 함선도 등장하였다(영국 함선 그레이트 해리호, 승무원은 수병 260, 해병 400, 포수 40명). 당시 노는 사라졌으나, 포격과 접현전이 전투수단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해병을 태우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였다. 해병은 포수를 겸하며, 접현 후 적함에 뛰어올라 백병전을 벌였다.

당시 가장 대형이었던 함정 그레이트 마이클호(영국)는 1,500t, 전장 75m, 수병 300, 해병 1,000, 포수가 120명이나 되는 데 비해 대부분의 군함은 500~1,000t 내외였다. 18세기 항해술이 발달하여 배 밑을 동판으로 싸고, 거의 돛만으로 항해하게 되었다. 넬슨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 군함은 전열함(戰列艦:line-of-battle ship)·프리깃 및 화선(fire ship)으로 구별되고, 전열함은 주력함으로서 지금의 전함에 해당하고 프리깃은 순양함으로 발달하였다. 그때까지의 군함은 전부가 목조(木造)에 돛으로 나가는 함선으로서, 장비된 포의 수에 따라, 120문함·80문함이라고 하였다. 전열함은 3층 갑판, 배수량 2,000t, 포 100~120문, 프리깃은 2층 갑판에 배수량 1,000t, 포 50문 이내로 기민한 기동성이 특징이었다. 1850년 무렵까지 군함은 본질적으로 16세기 군함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으나, 이 무렵부터 증기기관이 보급되고, 철강재료가 선체건조에 쓰이게 되었다. 포도 포탄을 포구에서 장전하던 전장식(前裝式)에서 후장식(後裝式)으로 바뀌었고, 포탄도 작렬식(炸裂式) 포탄이 발명되어 군함의 양상이 달라졌다.
1859년 프랑스 해군에서는 최초의 대형 장갑전함 글루아르(Gloire:5,600t, 13kn)를 건조하였다. 영국에서도 워리어(Warrior:9,000t, 14kn)를 건조하여, 단번에 배수량 1만 t에 육박하는 큰 군함을 출현시켰다. 돛의 장치는 19세기 말까지 보조용·장기 항해용으로 많은 함정에 보존되었으나, 워리어호는 증기기관까지 갖추고, 선체가 쇠로 된 장갑함으로 되어 있어 근대 주력함의 선두적 위치에 있었다. 이 주력함을 본뜬 유사한 함정이 많이 건조되었는데, 대개 돛이 5개, 굴뚝이 2개였으며, 장비된 포는 돛의 장치 관계로 양쪽 뱃전에만 배치되었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때는 기뢰·잠항정(潛航艇)이 활용되었고, 북군의 모니터(Monitor:1,200t)와 남군의 메리맥(Merrimac) 간에 벌어진 최초의 갑철함(甲鐵艦)끼리의 전투는 특히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군함의 건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니터는 포탑함(砲塔艦)이어서 이를 본떠 대형인 1만 t급 포탑식 전함(turret ship)이 건조되어 근대 전함의 형태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형적인 형태로는 영국의 데버스테이션 드레드노트(Devastation Dreadnaught:1875년 건조, 1만 80t, 14kn, 12.5inch 연장포탑 2기)가 있다.

갑철(甲鐵)·갑판(甲板)의 발달에 따라 전함의 주포도 대형화되어 17~18inch까지 달하였으며, 1890년대에는 발사속도와 초속이 우수한 12~13.5inch 포가 주포로서 보급되고, 러·일 전쟁 당시(1900~1910년대)의 전함은, 1만~1만 5000t, 16~18kn, 12~13inch의 연발포탑을 앞뒤에 1기씩 갖춘 전함이 많았으며, 하비갑철(미국인 H.A.하비가 개발)에 이은 크루프식(Krupp式) 특수갑철의 사용에 따라 방어용 갑철(甲鐵)도 10~12 inch까지 이르렀다. 러·일전쟁의 경험에 따라 영국에서는 종전 전함의 2배 이상이나 되는 화력을 지닌 드레드노트(Dreadnaught:2호)를 건조하였는데, 이로써 노급함(弩級艦) 시대가 되고, 대함거포주의 밑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2만~3만 t, 21~23kn, 13.5~15inch 포 8~10문을 장비한 전함, 27~30kn에 주포탑이 1~2기 적은 순양전함이 주력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순양함은 범선시대의 프리깃의 후예로 1880년대부터 고속화되어 대형의 장갑순양함(뒤에 순양전함으로 발전)과 중형의 방호순양함으로 나뉘어 발달하였고, 20세기 초에는 터빈 기관의 출현과 세관식(細管式) 보일러의 발달로, 3,000t급, 25~27kn의 경순양함이 새롭게 등장하였다.또 어뢰(魚雷)의 실용화로 수뢰정(水雷艇)과 구축함이 뒤를 이어 모습을 나타냈고, 20세기 초에는 2차전지(二次電池)와 내연기관의 발달로 잠수함이 출현되면서 해상전(海上戰)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대함거포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워싱턴 군비제한조약(1921)에 의해 종결되었고, 그 후 경순양함·구축함·잠수함이 발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수상기를 탑재, 발진시키는 특수함에서 발달한 항공모함은 군축 시대에 주력함과 똑같이 중요시되었다. 미국·영국·일본의 항공모함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