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朝鮮帝國 第2世檀君 夫婁壬儉]
개천(開天) 1658년(신축년): B.C 2240, 오랜 세월 부황(父皇)을 도와 쥬신제국을 천하제일의 대제국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태자 부루가 드디어 대쥬신제국의 제2세 대단군(大檀君)에 즉위(卽位)하였다.
규원사화를 보면,
‘단제(檀帝)는 백성들에게 칼과 창을 가지고 다니게 하고 좁은 산고개나 협소한 산길 모퉁이에는 돌을 쌓아 돌무덤을 만들게 하였다. 이것은 갑자기 산길에서 맹수를 만났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후세의 석자군(石子軍)은 바로 이런 전통에서 출발한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풍속이 남아있어 사람들은 이를 돌성황(乭城隍)이라 하며 자못 공경하고 두려워한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하여 그 당시의 시대생활상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개천(開天) 1658년 9월: 대단군은 첫째 아우 부여(扶餘)를 요서 지방의 망구왕(茫球王)으로 임명하여 보내고, 둘째 아우 부우(扶虞)는 동해일대를 다스리도록 하고 동해왕(東海王)으로 봉했다.
이 해에 우순(虞舜)왕이 부루 대단군이 아직 태자시절에 맺었던 도산의 국경협약을 어기고 위임통치를 허락 받았던 남국(藍國) 인근의 땅을 접수하고 유주(幽州), 영주(營州)를 취하므로 단제(檀帝)가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선라(仙羅)를 대장군으로 하고 도라(道羅)와 동무(東武)를 좌우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이들을 징벌하도록 하였다.
도라와 동무의 양군이 서국으로 진격하니 순나라 군사들은 겁을 먹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이를 본 주변의 제후들은 자칫 자신들에게도 문책이 있을까 두려워 스스로 찾아와 충성을 새삼 다짐하였다.
단제는 개선군의 대장군인 선라를 앙숙땅의 왕으로 봉하고 도라와 동무도 제후로 삼으니 이들이 각각 옥저(沃沮), 비류(沸流), 졸본(卒本)의 시조들이 되었다.
쥬신제국은 제후국(諸侯國)으로 11개의 나라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①신치[神誌]씨의 후(候)가 이끄는 숙신(肅愼)국
②주인(朱因) 후(候)씨의 개마국(蓋馬國)
③부여의 부여국(夫餘國)
④부우(虞)의 진번국(眞番國)
⑤부수기(夫守己)의 예국(濊國)
⑥선라(仙羅)의 옥저국(沃沮國)
⑦도라(道羅)의 졸본국(卒本國)
⑧동무(東武)의 비류국(沸流國)
⑨부소(夫蘇)의 가우리국(句麗國)
⑩치우씨의 후(侯)인 남국(藍國)
⑪고시씨 후(侯)의 청구국(靑丘國) 등이다.
부루단제 2년, 임인년(B.C 2239) 1월: 대련(大連)을 섭사직(攝司職)으로 발령을 내리고, 소련(小連)은 사도(司徒)로 삼아 그들의 충(忠)과 효(孝)를 천하가 본받도록 하였다.
부루단제 3년, 계묘년(B.C 2238) 9월: 임검이 조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머리를 땋게 하고 푸른 옷을 입도록 하였다. 또 되와 말 그리고 저울 등 각종 도량형을 관청의 표준에 따르도록 하고, 베와 모시의 가격도 통일하도록 엄격하게 법을 세웠다.
부루단제 10년, 경술년(B.C 2231) 4월: 백성들의 사사로운 밭(私田)을 모두 압수하고, 새로운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며 토지대장에 근거하여 세금을 공평하게 책정하도록 하니 모든 백성이 만족해 하였다.
부루단제 12년, 임자년(B.C 2229): 신치[神誌] 벼슬의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歷)을 수정 완성하고 새로운 지적도인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부루단제 16년, 병진년(B.C 2225): 남산에 삼일신고(三一神誥) 비를 세웠다. 삼일신고는 국시대와 신시배달 국시대 때부터 있어온 것으로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을 기록한 민족의 경전(經典)이다.
부루단제 18년, 무오년(B.C 2223): 제1황자(皇子)인 가륵(嘉勒)을 태자로 삼았다. 단제(檀帝)에게는 16명의 황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8명의 황자들은 제후국의 왕으로 봉함을 받았고 7명은 친왕(親王)이 되었다.
같은 해 6월, 전국에 조서를 내려 충의열사와 효자효부 그리고 어진이들을 불러들여 상을 주고 다른 백성들의 표본이 되게 하였다. 이때 나라는 크게 번성하여 국경은 남쪽으로 남해(南海), 북쪽으로는 서비로(西非路-시베리아)에 이르렀으며 큰 족속이 9족이고 작은 족속이 14족에 달했다.
부루단제 20년, 경신년(B.C 2221): 벼밭[稻田-논]을 만들어 쌀 경작에 성공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했다.
부루단제 26년, 병인년(B.C 2215): 석자장(石子丈)이 단제를 아뢰고 천부경(天符經)을 해설해 올린 후 삼신전을 세울 것을 건의하니 단제께서는 그의 말을 따라 한님[桓因], 한웅[桓雄] 그리고 부황(父皇)이신 시조 단군님을 같이 모시는 삼신전(三神殿)을 세우고 백성들의 경배를 허용하였다.
부루단제 38년, 무술년(B.C 2183): 부루단군님이 세상을 떠나시다. 이날은 일식(日蝕)이 있었고 누런 안개가 사방에 퍼졌으며 짐승들이 어지러이 울부짖고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었다. 백성들은 집안의 정한 곳을 택하여 단을 만들고 질그릇에 곡식을 담아 그 단위에 놓고 제사하였다.
이를 부루단지(扶婁壇地)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업신(業神)이며 온전한 사람이 계(戒)를 받아 업주가리(業主嘉利)로 삼았다. 이는 사람과 업이 온전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