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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에 최초로 오른 해에 ...특허청 개청!!![에베레스트 등정의 감격을 특허 분야에서도...

kimsnow |2007.02.27 17:22
조회 480 |추천 0
올해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다.

1977년 9월15일 12시50분, 끝없이 열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에베레스트 정상, 우리의 젊은이가 태극기를 휘날림으로써 국내는 축제 분위기로 들끓었다. 그뿐인가 12월22일은 대망의 수출 100억달러 목표를 그것도 10년을 반으로 앞당겨 달성함으로써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과 희망으로 한껏 고조되었다. 영국이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하여 32년만인 1953년 힐라리와 텐진을 정상에 올림으로써 엘리자베스여왕 즉위식의 큰 선물이 되었듯이, 우리의 정상 등정은 100억달러 수출성공으로 세계무대 중심으로 나가는 신호탄이었다.

에베레스트는 남극과 북극에 이어 제3극지로, 극한의 북극점은 1909년 미국의 피어리가, 남극점은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젠에 의해 처음으로 정복되었지만 에베레스트는 1953년까지 인간의 접근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에베레스트는 1921년부터 1971년에 이르는 50여 년간 10개국 30여팀이 도전하였으나 성공은 다섯 나라에 불과하였고, 모두 봄철 시즌인 프리 몬순에서였다. 포스트 몬순의 가을 원정은 봄보다 눈이 많고 추위로 등반활동이 둔화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71년 봄 히말라야 8,000m급 고산에 첫 도전으로 로체 샬(8,383m)을 목표로 대장 박철암, 부대장 강호기, 그리고 최수남, 박상렬 등 11명 편성은 당대 한국 등산계의 중심인물이었다. 이때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신청서 제출이 1973년 말에서야 비로소 1977년 포스트 몬순 시즌으로 허가를 통보 받았다. 1974년부터 막대한 자금 마련과 훈련은 원정 준비 3년으로는 너무나 짧았다. 정찰대를 보내고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첫 훈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고, 다음해 2월 중순 설악산 훈련에서는 눈사태로 최수남 등 대원 3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원정은 1977년 6월16일 선발대가 출발하여, 대원 18명이 100여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이다. 당시 짐을 모두 배로 수송하자니 수많은 물품 통관과 운송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 1대와 트럭 6대로 램상고에 도착한 후부터는 포터 600여명의 인력과 100여 마리의 야크 조달부터 난관이며, 380km의 25일간의 대 캐러밴은 장관에 엄청난 군중의 이동이었다.

해발 6000m 이상에서 3일 이상을 체류하면 심한 체력소모로 하루 450g씩 몸무게가 줄어 수시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쉬어야 하고,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천막 안은 한증막이라 밖으로 뛰어나가 우모복을 벗어야하지만 아무리 덥고 귀찮아도 검은 고글을 벗을 수 없고 셔츠의 소매도 걷어 올리지 못한다. 고산의 햇빛은 유난히 강한 자외선과 눈의 복사열은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구름이 순간 햇빛을 가리면 벗고 걸치기를 하루에서 수없이 반복한다.

정상 1차 공격조 박상렬씨는 눈이 가슴까지 빠져 길을 여는데 완전히 녹초가 되고 8500m에서 산소마저 떨어져 고소에서 죽음의 비박을 하고 기적같이 생환한다. 정상은 고상돈 대원이 9월16일 정상에 선다.

2002월드컵과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국민의 희망이며 축제였듯이, 당시 에베레스트 등정도 수출 100억달러 달성이 국민의 꿈을 이루었다.

1977년 세계 최고봉에 5번째로 오른 것은 지금 한국의 특허 위상의 순위와 비슷한 것 같다. 조만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특허분야에서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설수 있기를....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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