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을 지각한 다음날......
작업실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지하철 노선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와~~~~~~! 아니 언제 이렇게 많이 생겼지? 내가 알고 있는 노선은 4호선까지이다.
그런데... 8호선에 분당 선까지.... 음....그렇게 새로운 노선이 개통되는 동안 나는
너무 나이에 맞지 않게 자연 속에 빠져 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리도 빙빙
돌아온 것은 아닌지... 잠시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봤다. 속초와 설악산에서 몇 해
남한강변에서 몇 해, 북한강변에서의 몇 해......
그 몇몇 해들이 지금 나를 길 잃은 어린 사슴이 되게 한다.
검색결과 대학로가 있는 혜화 역은 4호선이다. 작업실근처의 한양대 역도 4호선이다.
오호~! 빙고~! 한번에 갈 수 있다. 얼마나 걸릴지 아직 시간은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에
막히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문제는 차를 어디다 세워 두느냐가 문제였다.
작업실에서 한대 역까진 거리가 있고.... 아무데나 주차했다가 견인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고..... 그렇다고 유료 주차장에 가자니 주차비 많이 나올 것 같고... 웬만한 역마다 환승 주차장이 있다지만 그거야 정상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얘기고... 갑자기 먹구름이 쫘악 깔릴 무렵 ㅇ선배의 한마디가 그 구름들을 다 몰아 낸다.
"얌마. 막내 보러(작업실 막내) 한대 역까지 태워달라 하고 네 차는 내가 가지고 일하러 가고 넌 일 끝나고 여의도로 오면 되자나" 맞다~! ㅇ선배는 여의도 고수부지 강변에 떠있는
배 카페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그곳엔 여의 나루 역이 있다. 오호라~!
그렇게 만나서 오면 되겠구나....근데 여의 나루가 몇 호선이야? 갈아타려면 어디서 갈아타야 되지? 이렇게 말하던 난...... 밥 값 없어 사온 순대에 맞아 죽을 뻔했다.
그리하여 대충 한시간 반정도 걸릴 거라는 규찬 아빠의 말에( 작업실 후배) 걷는 시간에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에 한 대 역까지 가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막상 들고 걸으니 무거운
기타에 가방까지 들쳐 메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다행히도 손이 시릴 정도로 춥진 않다.
드디어 열차에 탑승을 하여 출입문 위에 붙어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시험 공부하듯
열심히 독해하고 긴 시간 서서 가면 짐도(?) 있고 하니 힘들 것 같아 빈자리 있나
두리번거렸다. 하나 같이 다른 옷에 다른 신발에 다른 얼굴을 한 사람들이 빼곡한
열차 안에 오호~! 의외인걸 빈자리가 있다. 히히 속으로 웃으며 빈자리에 앉아 후배가
알려 준대로 눈을 감았다. " 형.. 일단 타면 거의 끝에서 끝이니까 앉아 갈 수 있고
또 일단 앉으면 눈부터 딱 감고 그냥 자~! 얼마나 편해 차 막혀서 스트레스 안 받지 "
그런 후배의 조언에 난 일단은 한번 해보기로 했다. 배운 건 써먹어야 한다.
한 오분쯤 눈을 감았을까? 도저히 눈 간지럽고 얼굴도 간지러워 눈을 떴다.
가뜩이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라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얼굴이 따가울 정도의
시선은 아니었었는데 열차 안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상하네? 기타가 있어서 더 그런가? 아~! 이놈의 인기는 사그러들 줄 모르니 허허
그런데 이상했다. 내 앞의 좌석엔 할아버지 한 분과 목발 짚은 아주머니뿐이다.
그리고 내 자리 옆에는 아무도 없다. 그 중 유난히 나를 노려보는 목발 짚은 아주머니는
눈짓으로 위를 가리킨다. 의식적으로 위를 보니 창유리에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 스티커엔
장애인이나 노약자 임신부 지정석이라 써있다. 그리곤 안내 방송이 들린다.
노약자 지정석은 장애인이나 노약자 임신부들을 위해 항상 양보하고 비워 두라는.....
훔..... 난 살며시 일어났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열차에 탓을 때 빈자리를 보고도 서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음..... 결국 거의 끝에서 끝이니까 앉아 갈 거라는 후배의 말은 빠르게
달리는 열차의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정확하게 한시간 30분이 걸렸다. 혜화 역에 내려 클럽까지 걷는 시간까지 하면
한시간 40분..... 정확하게 5분전에 도착을 했다. 가쁜 숨을 고르고 차 한잔하고 하려면
좀더 일찍 출발해야겠구나 하고 머릿속에 메모를 해둔다.
결국 10년 전처럼 지하철을 타고 몇 킬로씩 걷고 하며 일을 나왔다.
10년 전과 변한 게 있다면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놀랍도록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다른 옷과 다른 신발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사람들에 비해 모든 게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같은 내 자신이다. 아니 이제 하나 하나
알아 가는 초년생......
지하철 안에서도 얻는 것이 있구나 란 생각에 차를 두고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것이 나를 기다릴지...... 땀 훔치며 내려오는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