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중원 대륙을 반으로 가르는 대국 북주(北周)의 황제가 기거하는 처소.
오랜 세월에 걸쳐 차차 이를 완공한 선제(宣帝)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닮은 듯 검소하나 절도가 엿보이는 왕궁이다.
선제는 궁궐을 짓거나 연회를 벌이는 일 등에 낭비하기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위해 국부를 쓰고자 하였으므로 북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 연희궁 역시 그다지 화려한 편은 아니다. 허나 이처럼 궁궐 증축비까지도 아껴 나라를 위했던 선제의 노력은 그다지 실효가 있지는 못했다. 이러한 그의 검소함과 병행된 무른 성격 탓에 그의 절약으로 비롯된 이익은 백성보다는 각 지방의 귀족이 나누어 먹어버린 탓이었다.
황실이나 국가에서 앗아가지 못한 백성의 인력이나 재물은 그대로 지방 귀족에게로 흡수되는 것이 당연지사. 오히려 선제의 노력은 귀족의 세력만 더더욱 키워주어 황실의 힘을 약화시키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당시의 구조적 폐단을 척결하려는 노력 없이 마음만 앞섰던, 자애로우나 무능한 선제의 인간상은 시대의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제의 인성을 그대로 닮은 정제(精帝) 역시 그다지 훌륭한 황제가 될 가능성은 일찌감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제의 외조부인 양견(楊堅)이 사실상 선제 사후부터 황제와도 같은 권한을 행사하였고 정제는 양견의 허수아비처럼 행세했을 뿐이었다. 하여 조양전은 원래 황제의 친정 아래 국가의 정책을 논하는 장소였으나, 이때에 와서는 정제의 처소로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한 이 정권의 뒤안길. 불행한 황제의 처소인 조양전에서 이날은 성대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수백 명의 신하들이 금제관과 금포를 한껏 멋드러지게 차려입은 그들의 새로운 주인 앞에 엎드려 수없이 축원의 말을 외치고 충성을 되새겼다. 주인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신하들을 내려다보았고 신하들은 누구에게 뒤 질세라 목청껏 만세를 외쳐대었다. 평소에 있지 않던 광경이었다. 사실 정제는 신하들의 만세를 이제껏 단 한 번도 듣지 못해왔던 터였다.
"합하(閤下), 경하드리옵니다. 합하는 주(周)의 하늘이며 백성의 홍복이옵니다."
“오오…… 감격스럽사옵니다. 제 생전 이런 영광을 볼 수 있을 줄이야!”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황상(皇上) 폐하(陛下)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문무백관이 모두 입을 모아 황제를 향해 칭송의 말을 끝없이 외쳐대었다. 계속되는 찬사는 빽빽하게 정전을 메운 그들 사이를 한참 헤매다 힘겹게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정전 전체가 찬사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 그들의 칭송과 함께 하늘을 우러르며 대소를 터뜨리던 황제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스스로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여긴 것이었다. 하여 그는 웃음을 참고 권위있는 표정을 지으려 무척이나 애를 썼기에, 그의 원래도 붉은 얼굴은 마치 터져버릴 듯 상기되었다.
그러나 역시 기쁜 날은 기쁜 날이었다. 황제는 두어 번 더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한참을 들뜬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던 황제는, 만세 소리가 잦아들 만큼이나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곧 그는 한 박자 늦추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향해 답사를 하였다.
“고맙다. 나는 이제 새 시대를 열 것이다. 대륙을 일통하여 유례 없는 대국을 건설하고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과인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니라! 오늘은 그 첫걸음에 해당할 뿐임을 명심하라. 허나 역시 경축할 만한 날,오늘만큼은 모두들 마음껏 즐기도록 하라!”
“와아아!”
"황상 폐하 만세!"
"만세!"
간단히 답사를 마친 황제의 뒤를 따라 문무백관은 술잔을 높이 들었다.
황제는 정제(精帝) 우문찬(宇文贊)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황제의 금제관 밑으로 드러나는 얼굴은 젊은 정제의 야위고 파리한 얼굴이 아닌, 빳빳한 회색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난, 주름지고 각진 얼굴의 나이든 남자, 양견의 얼굴이었다.
이날 종일 흥겨움이 흐르는 조양전은 끝없이 울려퍼지는 만세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중원의 새로운 바람. 이날이 바로 581년. 수(隨) 문제(文帝)의 등극일이었다.
한참 궁내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연희궁 동문에서는 무복 차림의 사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고요한 분위기와 더불어 왠지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런 사내에게 경번갑(鏡幡甲)을 입은 한 무장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대장군,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중문(仲文)인가?"
우중문(于仲文)이란 장수가 대장군이라 부르며 따르는 이 사내는 다름 아닌 양견의 둘째 아들 양광(楊廣)이었다.
"상주국공(上朱國公)께서 새 황제로 등극하셨습니다. 많은 문무백관이 상주국공의 즉위를 모두 축하하고 연회가 벌어지는데 왜 대장군께서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시고 홀로 여기에 계십니까?"
"중문, 나는 오늘 주령(株玲)을 죽였다."
양광의 입에서 나온 한 인명(人名)을 듣고 우중문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주령은 북주의 조정에서 태사감(太師感) 직책을 맡고 있던 주기(株起)의 딸로 양광이 연모(戀慕)하던 여인이었다. 양광은 여러 차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것을 청했지만 주령은 이를 거절하고 자신은 천자(天子)의 빈(嬪)이 되고 싶다면서 정제(精帝)의 후비(後妃)가 되었다. 양광은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어린 황제에게 시집을 간 주령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한 여자에 대한 원망은 결국 세상에 대한 증오로까지 번져나갔다.
"부귀를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버리고 황제의 여자가 된 주령... 내가 그런 속물을 한때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 수치스런 과거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 방법은 그녀를 죽여 없애는 길뿐이었다."
"대장군..."
우중문은 양광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양광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대장군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장부로서 야망을 키우실 때가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대장군의 부친이신 상주국공께서 황제가 되셨으니 이제 대장군이 천하의 주인 될 기회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까? 대장군께서는 천하의 주인이 되어 한번 세상을 제멋대로 움직여볼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아버지가 제위에 올랐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아버지는 분명 양용(楊勇) 형님을 후계자로 정하실 것이다."
"양용 공자가 황태자로 책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음 황제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태자 자리는 언제든 빼앗을 수 있고, 빼앗을 방도만 궁리하면 됩니다."
우중문의 말에 양광은 입술을 비틀며 소리없이 웃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다. 나는 반드시 천하의 주인이 되어야 해."
양광의 눈에 불꽃이 켜졌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꼭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이 세상을 깨끗이 청소할 것이다. 가식과 허위에 가득한 사람들을 모두 쓸어 버리고 심성이 바른 사람들만을 가려내어 남겨둔다면 이 세상은 보다 깨끗해질 것이다. 내가 반드시 그 일을 할 것이다."
"이 우중문이 목숨을 다해 대장군의 뜻을 돕겠나이다."
우중문은 양광에게 무릎을 꿇고 포권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김병호 著「고구려를 위하여」하서출판사編(1998년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