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멀쩡한 청년입니다.
고3졸업하자마자 자그마한 의대 합격하여
지방에서 의대를 다니고 이제 졸업반이라 국시공부를 열심히 하고있지요..
낚시글인지 뭔지는 몰라도 가끔 '제 스펙이에요'하면서 올라오는 젊은 분들 돈버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습니다. 제 나이쯤에 벌써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네, 연봉이 얼마네 하는..
오늘따라 그런글이 왜이렇게 많은지요?
이놈의 의대는 졸업하고 나면 좋은데,
저같은 가난한집 자식에겐 다니는 것 자체가 참 괴롭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가난한 집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계신 학생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절대 의대는 오지 마라고.
아버지는 연로하신데다 신체장애가 있으셔서 수입이 없지요. 하긴 그럴만도 합니다. 사지 멀쩡한 젊은이들도 일하기 힘든 시대에.
어머니는 하루에 3만5천원 받는 일용직해오시면서 근근히 살아왔습니다.
온통 삐그덕대며 녹물이 줄줄나오는 17평 짜리 주택, 이런 집도 집이라고 기초생활 수급따윈 되지 않더군요.
6년동안 등록금만 꼬박 5천이 들었습니다. 잡비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드는지 모릅니다. 동문회 동아리 ..돈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 그런지 모임도 비싼데밖에 안갑니다. 모임 한번 나가려면 회비가 3,4만원인데 이런 모임이 한달에 1개씩은 꼭꼭 있지요.책값을 제외한 메뉴얼 복사비만 한학기에 15만원이 나가고, 그밖에 각종 책값하며..최근엔 한질에 22만원하는 국시문제집을 두셋트정도 샀더니 정말 죽을 맛입니다.
지금은 정말 인간적인 시대가 되어 선배가 후배를 때리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제가 어린 예과생이었을때는 모임 안나온다는 이유로 맞고 머리도 박고 열심히도 굴렀습니다. 꼴에 자존심에 회비내기 아까워서 못나갔다는 말은 못하겠고, 열심히 굴렀더랬고.
덕분에 각종모임에 대한 정은 일절 사라졌죠. 그저 빨리 졸업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 학교 생활중에 용케도 좋아하는 감정을 가질만한 사람을 만났지요. 1년여 남짓 만나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애틋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예과생때, 의대교수 딸이 뭐 그리 대단하냐며 시작한 사랑은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전 80평이 넘는 아파트가 있을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는데, 대궐같은 그집을 보면서 처음 세상은 불공평한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날 그러더군요. 솔직히, 부모님이 너무 반대하신다고.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 나이에도.. 이 나이에도 그런걸 따져가면서 사랑해야 하냐고.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더군요. 예과때도 그랬지만 본과 와서는 더욱, 의대 여학생들은 같은 의대 남자 아니면 소개팅 따위의 만남 자체를 피한다는 것을, 저만 몰랐던 걸까요? 그렇게 스펙 따지면서 사람 보고 있을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후에 이악물고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잠이올때면 내가 축낸 등록금 생각을 하면 저절로 잠에서 깨곤 했지요.
본과와서는 하지 못했던 과외 아르바이트 대신 학기당 200만원의 장학금을 따냈고, 부모님께 모두 드리고 싶었지만 위에서 말한 각종 잡비들 때문에 부모님껜 얼마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졸업할때가 다 되니 미래도 걱정되고, 이병원에 남을까 다른데로 갈까 고민도 많이 하다가 비빌 언덕도 없는 내가 무턱대고 수도권 가봤자 텃세에 가고싶은과도 못갈것 같아 그냥 이곳에 남기로 했습니다.
돈없는 것도 서러운데 요즘은 줄없는게 더 서럽다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만 같습니다. 의사 아버지는 또 뭐 그리 대수라고, 벌써부터 내가 가고싶은 과에 교수 자제분들이 지원하진 않을까..노심초사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제 꼴이 우습구요.
고등학교 친구들의 모임에서,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 2년차가 된 친구를 보고 있자니, 왠지 지금의 내 꼴이 더 서글퍼보였습니다.
이 지역에선 우리 학교 1년 등록금이면 교대 4년 등록금을 낼수 있습니다.
싼 가격에 다녔다고 그 친구가 안 힘들었다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졸업하여 벌써부터 돈벌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통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수 없었습니다.
고3시절, 아버지께선 '남자는 꿈이 커야한다'며 교대를 가겠다던 절 끝까지 설득하여 이곳으로 보내셨는데..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벌긴 한데 그것도 나이먹어서 이야기고, 내년에 인턴이 되면 연봉이 3000쯤인걸로 알고 있고..지출이 큰 이 집단의 성격으로 볼때, 제 학비는 어느세월에 다 갚을꼬 싶습니다.
밤낮없는 인턴 레지던트가 끝나면 학비도 갚고, 통장에 돈도 쌓이겠지만, 제 20대는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릴테구요..
예전엔 그저 '돈,돈,돈'만 생각했다면, 요즘엔 욕심이 많아져서 저도 젊음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듭니다. 개원 따위는 꿈도 못꿀걸 알기에 개원하지 않아도 되는 과, 그중에서도 수입이 괜찮은 과를 생각해보니 밤낮없이 굴러야하는 힘든 과들밖에 남지 않고, 그렇게 학자금 갚다보면 내 20대도 지나가겠구나..하는 생각에
요즘은 부쩍 억울한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드네요.
공부도 안되고,
다들 어렵다 하는 이런 시대에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놔봐야 욕밖에 더 먹겠냐는걸 알면서도
이런데서 끄적이고 있는걸 보면
제가 답답하긴 답답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