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번 구경만하고 리플 몇개 달고 가는 네티즌입니다.
한번.. 제 사연도 읽어주시고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어 글을 올려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두분 모두 6.25를 격고 먹을것을 찾기에도 급하던.. 그 시절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월남전 참전하셨고, 어머니는 방직공장이나 음식점에서 일하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도배나 시멘트 바르는 일도 척척 해내시는, 정말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 가족은 밥먹는 것만 문제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쭈쭈바 짜장면... 두세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 했습니다.
아버지는 비올때마다 지붕을 수리하셨고, 항상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몇십원 더 아끼기 위해 저 멀~리 있는 장까지 걸어갔다 오셨습니다.
저는 2녀1남의 막내.. 그리고 장남..
당시 남자를 원하는 풍토는 우리집 또한 그러했고,
저는 누나들에 비해 남성상위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살면서 운명으로 만난,
가정과 가족... 그리고 크게 짊어질 짐을 느끼며.
가족에게 철저히 순종하며 자랐습니다.
그것이 식용유 하나 사기 위해 먼 시장으로 나가는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었고,
매일 한밤중에 돌아와 지쳐 잠드시는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었고,
항상 차별대우받아 부족하기만 하던 누나들에 대한... 작지만 성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다보면..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지요.
친구들과 놀러다닌고..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뛰어가고.. 때론 이성에 설레이면서..
그러나 저에겐 그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인생의 모든 것을 투자하듯.. 저에게 잘해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만큼 작은 것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등학교.. 시험 전과목에서 하나 틀리면 한대 맞았습니다. 두개 틀리면 두대 맞았습니다.
처음으로 8개를 틀린날... 저는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전과목에서 말입니다.
집밖에 나가질 못했습니다.
나가서 노는 것은 나쁜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두개이상 다니는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흔히 듣던 얘기 중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개를 묶어놓고.. 패고, 패고, 패고, 패고, 또 패면...
맞아죽기 전에 미쳐서 스스로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는다고 하지요.
그래도 작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모르는 공부...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자그만 도피구가 마련되었고,
어머니가 모르는 사랑... 이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
학원 시간 외 외출 금지는 기정 사실..
....그게 사실이지 않을까?
대학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대학만 가면 자유라는 것..
대학은 관심 없었지만.. 첫사랑이 대학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오직 그녀에 대한 생각과 공부에만 매달려...
친구들도 스스로 지워버리고, 이상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왕따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적.. 좋아졌지요. 그것마저 않좋아지면 제가 병신이지요.
1학년. 반에서 22등... 졸업시엔 반에서 5등.. 수능은 전교에서 15등...
본고사를 볼 만큼의 성적이 되었으나, 당시 너무 지쳤던 나는.
남산 밑의 어느 학교에. 특차로 들어갔습니다.
사랑.... 그리고 하고 싶은 공부..
그러나 그 때에도 어머니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속.. 구속.. 구속.. 가난.. 가난.. 가난..
체크카드 통장을 매일 확인하는 잔소리..
전 그때 왜이리 정직하게 살았나 모르겟습니다. 뻥치고 비자금 마련하면 될 것을..
학교에서의 식사를 굶어 그 돈으로 책을 사고,
어머니가 허락하는 사소한 이유들로 조금씩 돈을 모아 미팅을 나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첫사랑 시작..
그리고 대학생... 이제 6년째.
남자가 여자 앞에 서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들보다 나아지려면...
일단 만나야 하므로.. 결국 돈..
대학생활 내내 이곳저곳에서 취업하며 다녔습니다.
단순 알바가 아닌 인턴이나 정식 직원으로죠..
그러나 제가 관과한 게 있었으니,
어떤식으로건 외출을 하면 보고를 해야 하고, 수익이 있으면 어머니께 먼저 들어간다는 겁니다.
인턴으로 한달에 60~70만원 돈을 받아도.. 결국 제가 쓰는 돈은 늘지 않았습니다.
참.. 한달에 식비교통비 포함하여 10만원.. 그리고 모자라면 그때그때 이유를 얘기하고 타서 썼습니다.
그렇게 대학 4년이 지나고..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학교 거리가 좀 멀어졌다..정도?
억울했습니다...
스무살 넘도록 뭐했단 말인지..
스스로를 완성도 못해보고 사회로 진출.. 그럴 순 없었습니다.
한참을 계산하던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하였습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Y,K,H 등등...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고,
어찌되었든 하나의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아핻스럽게도 연구실이 빡세서.. 하루 온종일 있어야 했던 관계로,
집에서 나와 있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몰래 알바도 하여 조금씩 비자금을 모아 데이트도 하고.. 그렇게 2년을 보냈습니다.
그 2년의 노력끝에.
저는 모 대기업에 취업하였고,
스스로에 대해 돈과 장래를 확인한 저는,
15년을 끌었던, 그 첫사랑을 만났습니다.
15년간 의지할 수 있던 유일한.. 어쩌면 종교과 같은 그녀. 현실에선 많이 다르더군요.
그리고 대화 몇마디에서 느껴지는.. 남자를 돈으로 평가하는 성격..
나의 오랜 사랑은..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대학원을 졸업.. 취업을 하였습니다.
취업을 하니 다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비자금 만들 시간이 모자라는데, 통장이 어머니 손에 있는 거죠.
체크카드와 통장으로 제 돈을 관리하는 것은 여전...
그리고 그때 사귀기 시작한 여자는 뭐가 그리 급한지 몇달 만나지도 않았구만 빨리 결혼하자고..
당시 미장원에서 이쁜 모습에 기뻐서 실수로 긁은 체크카드의 10만원..
어머니의 통장에 남아 1년이 넘도록 시달림 당했습니다.
어머니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아무것도 소용 없다고 생각한 저는,
여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선 후,
어머니와 남이 되기 위한 전쟁에 돌입합니다.
통장을 이중으로 만들어 정식 윌급 외 시간외 수당을 따로 챙기고,
체크카드는 회사 사정이라고 말하여 폐기,
모든 통장을 제거하고 인터넷으로만 조회 가능.
야근 없어도 야근한다고 거짓말.
다행스럽게도(?) 회사의 업무가 너무 힘들어,
회사 앞에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그 자취방에도 2,3일 간격으로 계속 드나드시는 어머니.
결국 저는 어머니께 '자취방 출입 금지'를 선언했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녹음기처럼 말하며 화내고 우는 어머니와 한달 가까이 투쟁.
그리고 내 통장은 내가 관리한다고 정식 선언.
역시 '어떻게 키웠는데'와 '전에 여자한테 10만원씩이나 주고 미장원 갈 때부터 알아봤다..'등 갖은 짜증(?)을 이겨내고..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건 일하는 것밖에 없는.
개성이 없고 재미가 없는..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동안의 노력으로 마음이 많이 풀어지셨지만,
어쩌다 급한 상황이 되면 그 성격이 그대로 나오시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리고 또하나..
사회적으론 성공하였으나, 히스테리가 좀 있고 아이를 포기한 첫째 누나.
학생시절에 여러 일을 겪고, 이제야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둘째 누나.
평생 돈만 버시고 어머니께 시달리시가.. 정년 퇴직하자마자 바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내 평생 딱한 번 진심으로 울게 만든.. 불쌍하신 아버지의 추억이 있습니다.
무척 긴글이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과거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셨던 간에,
저는... 지지리도 가난한 학생에서, 서울 소재의 대학생, 그나마 이름있는 대학원, 주목받는 대기업 사원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을 해왔다는, 일말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32살.. 결혼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야 한다.. 는 단지 타인의 말일 뿐입니다.
저 자신은 더 많은 발전을 하고 싶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때론 여자와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최근 기회가 있어 만나는 여자들은,
이제 나이가 찼으니..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결혼해야 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러 남자를 만나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을 돌아..
끼니를 걱정하던 가정의 아기에서.. 대기업의 훤칠한 청년으로.. 그렇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제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안주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계속 달려온.. 더 나은 삶을 위한 달리기를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혼하면.. 제일 먼저 어머니로부터 아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이 힘듭니다.
네티즌 분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필요를 하지도 신경쓰지도 않는 결혼을, 사회적인 이유로 해야 하는지,
저와 같은.. 재미는 없는 삶을 산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있는지,
되도록 많은 분들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참, 한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가난..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보태긴 하였지만 학비를 계속 대 주셨고,
제가 대학원 갈 즈음, 단층집을 허물고 3층집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어느 날에도, 야근을 하시고 주말 출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년 퇴직 후 얼마간 일을 더 하시다가,
그동안 참고 계시던 것이 암이란 것이 밝혀지고 두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두달이 아버지 생의 유일한 휴가였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난 아버지의 성격, 어머니의 성격 모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역사가 반복되듯 제 삶도 부모님의 그것과 비슷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 또한 원래 그런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