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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눈으로 북미를 보다 제8일

황소의눈 |2003.11.30 09:53
조회 260 |추천 1

 

2002. 9. 13(금)

  06:00무렵 어제 다짐대로 아침 산책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도심지 호텔은 혼자서 돌아다니고자 하는 나에겐 기회이기 때문이다. 차량이 붐비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걸으니 고딕식 석조 성당이 보이는데 아직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뒷길은 청소도 덜 되었다. 사람이 많이 나오는 빌딩이 있길래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SUBWAY(지하철)란 표시가 있어 혹시 지하철역인가 했더니, 왠걸 슈퍼마켓 이름이다. Ottawa에 지하철은 없다. 그리고 인디언 말로 통나무 집이란 뜻의 Ottawa에 통나무 집도 안 보인다. 사람이 많은 쪽으로 다가가니 지하철역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짐작컨대 수도권을 연결하는 버스 도심 터미널 같다.

  밖으로 나와 작은 다리를 건너가니 석조의 웅장한 건물과 광장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Ottawa 국회 의사당인데 광장의 가운데에 성화가 타고 있다. 07:00 호텔 복귀 시간을 재면서 다리를 건너 돌아오노라니, 다리 아래 작은 하천으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고 RIDEAU CANAL(리도 운하)이라고 씌여 있는데 한번 일주(CRUISE)에 얼마라고 요금이 써 있다. 어제 버스 속에서 가이드가 말한 리도 운하의 초라한 현실을 본 셈이다. 

  07:10에 서둘러 호텔 현관으로 들어오니 벌써 가방을 버스에 싣고들 올라타는 게 아닌가? 어제 출발 시간을 나만 잘못 들었나? 그런데 나뿐이 아니라 방짝 ㄱㄷ도 없다는 거다. 방에 들어 와 보니 그의 짐은 그대로 있다. 그렇다면 아침 산책을 하지 않던 그가 오늘따라 아침 산책을 나갔다는 건가? 우리 방 두 사람이 단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게 된 셈이다. 아침을 못 먹었다는 말도 못 꺼내고 모두들 기다리는 부릉거리는 버스에 탔다. 

  가이드와 총무가 의논 끝에 버스는 먼저 한식당 비원에 먼저 가고 가이드가 남아 기다렸다가 ㄱㄷ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나는 그제야 모두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이드가 이제야 원인을 알았다며 자기 이마를 치며 말하길, ‘어젯밤 노래방에서 아침 식사를 호텔에서 한식당으로 바꾸었다는 걸 빠짐 없이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방 두 사람이 모두 노래방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걸 깜박했다’.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는 동안 ㄱㄷ이 가이드와 함께 들어온다.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혼자 호텔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집에서 아침 식사 후 커피는 옆 가게에서 무료 제공한다고 하여 들렀다. 무료 커피를 마시다 보면 구매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그 가게의 주인은 비원의 주인과 같다.      

  지척의 Ottawa 국회 의사당에 갔다. 나에게는 벌써 구면인 셈이다. 아침에 봤던 성화 둘레에 캐나다 10개 주의 문장과 상징 동물이 각각 돋을 새겨진 10개의 방패가 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성화는 캐나다산 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 건물을 바라보며 건물 오른 쪽부터 돌아가니 캐나다 여성 운동가들 동상이 있는데 우리 여성 단원들이 그룹 사진을 찍는다. 그 옆에 가로 5m 가량 되는 기념비가 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작은 소리로 말하면 돌이 전하는 소리가 들린단다. 진실하지 않으면 안 들린다고. 정말일까 하고 의심스러워했는데 해 본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 정말...?

  건물 뒤에서는 Ottawa강과 숲 많은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공원 도시란 말이 맞다. 캐나다 건국 위인들의 동상이 있고 경찰 순직자의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에는 We remember(우리는 잊지 않는다) ...라고 씌어 있다. 한 구석에는 동물 냄새가 나 뭔가 하니 개, 고양이 등 버려진 동물을 보호하는 곳인데 시민단체가 운영하고 있단다.

  캐나다의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다. 1970년대 단풍 잎 국기 제정 이전엔 국기에 영국 유니온 잭이 들어 있었다. 영국 국왕은 총독을 파견하였는데 지금은 캐나다 사람 중에서 캐나다 의회의 추천을 받아 형식상 임명만 한다고. 총독은 뜻밖에 홍콩 출신 중국계 여성인데 언론인 출신으로 남편은 백인이다. 넓은 정원과 전시관의 총독 부부 사진을 보고 산책로를 거닐며 관저의 방명록에 기념 서명을 남긴 후 버스로 돌아오는데 중국계 단체 관광객들이 담소하며 의기양양하다. 요즈음 중국계는 어디가도 의기양양하다. 청설모도 의기양양해 사람이 다가가도 잘 비키지 않는다.

  Ottawa 강변의 숲과 저택을 차창으로 보며 왜 캐나다가 살기 좋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도시를 나와 이제 낯익은 숲의 벽 길을 한참 달려 버스가  Ottawa강을 건너니 경작지가 더 많아지고 주택이 마을을 이룬다. Montreal섬에 들어 온 것이다. 갈수록 주택과 빌딩, 고가도로 등이 어지러운데 낡은 데다 뉴욕 할렘처럼 낙서도 많다. 낙서는 처음에 볼 때는 무질서한 줄로만 알았는데,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Montreal은 Ottawa강이 St. Lawrence강으로 흘러드는 수로 교통 요지에 자리 잡은 큰 섬으로, 프랑스계 Quebec주의 최대 도시이다. Quebec주의 다른 지역보다는 프랑스계와 영국계 문화가 잘 어우러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업 부진에 따른 재정의 어려움으로 도시 정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방문 예약된 Vincent Massey Collegiate에 닿았다. 주변 집들도 영국식 붉은 벽돌집들이 많다. 남자 책임자가 ㄴㅅ의 통역으로 설명하는데, 영국계 카톨릭이 세웠으나 캐나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프랑스어도 함께 가르치며,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학생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3:1정도이다. 이번에는 질문을 모아 통역에게 주어 일괄 답변을 들었기 때문에 문답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강의실 안내는 의외로 여학생인 거구의 학생회장과 단신의 부회장이 맡았는데 해맑은 얼굴... 강의 안 받고 안내를 하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학생회 임원들에게는 학교를 안내하는 일도 대표자로서의 명예로운 임무란다. 복도에는 졸업생 단체 사진이 졸업 연도별로 붙어 있고, 성적우수 등 명예학생 명단이 놋쇠판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어 놀라웠다. 그 명단을 훑어보니 이탈리아계 이름이 가장 많았다. 이탈리아는 우리하고 비슷한 점이 많다더니...

  학교를 나와 늦은 점심을 프랑스식 뷔페 Vichy Buffet에서 먹고 401번 고속도로를 숨가쁘게 달려 Quebec에 다가드니 대륙의 노을이 타는 듯이 붉게 물든다. 미국, 캐나다 고속도로에는 도로번호 위에 방향 표시가 있어 편리하다. 

  Quebec은 캐나다 10개 주에서 가장 큰 Quebec주의 수도이며 Quebec주의자부심이다. Montreal이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어우러져 사는데 비해, Quebec은 프랑스계의 순수성을 지키며 산다. 단풍잎의 캐나다 국기가 Toronto에는 큰 건물마다 게양되어 있는데 Montreal에서는 몇 개 밖에 안 보이고 4개의 백합 문장으로 된 Quebec 주기가 자주 보이더니 Quebec에 오니 아예 단풍잎 기는 없고 백합 기만 나부낀다. 사자가 영국 왕실의 상징인 것처럼 백합은 프랑스 왕실의 상징이다. 도로 표지도 영어, 프랑스어를 아울러 기재하는 Montreal과 달리 여기는 오직 프랑스어로 씌어 있다.

  버스가 어둠 속에 불빛이 반짝이는 예쁜 구 시가 거리를 깊숙이 들어가 멈췄다. 높이 솟은  옛 성의 연녹빛 둥근 지붕이 조명 빛을 받아 어둠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우아하고 섬세하고 화려한 것, 프랑스적이다. 그 성의 이름은 Chateau Frontenac : Quebec의 랜드 마크 1호다. 과거에는 뉴 프랑스 식민지 총독 관저로서 Quebec을 침입했던 영국, 미국 등에게 여기가 프랑스의 땅임을 선언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름 끝에 Hotel자가 더 붙었다. 성 앞의 광장을 로얄 테라스라 하는데 나무 판자로 포장했고 초대 총독 샹플렝 등 개척자들의 동상을 세웠다.

  프랑스 개척자들의 이름은 도시, 거리, 산하 등 각 지명으로 수없이 되풀이 붙여져 있고 그들의 동상이 각지에 세워져 있다. 프랑스 전통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기억 보존 노력은 대단하다. 미국의 고층 빌딩, 학교에 붙어 있던 America Remember..., Jaguar Remember...라 쓰여진 현수막, 심지어 잊혀진 한국전 전사자까지 다시 기억해 기념비와 동상까지 세우는 철저함, 캐나다 경찰 기념비의 WE REMEMBER...그리고 많은 동상들...그리고 여기 Quebec주의 자동차 번호판에 새겨진 구호 :

                          ‘Je Me Souviens’

                            (I Remember)     

  나무 판자가 깔린 테라스 길을 가게 불빛을 받으며 내려가 강이 가까운 유서 깊은 골목 Peti Champlain으로 들어섰다. 200~300년된 돌집과 나무집이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데, 지금은 기념품 및 옷가게와 식당이 몰려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마치 동화 나라의 예쁜 길가에 프랑스 민속 의상을 차려 입은 인형 같은 소녀가 메뉴판에 두 손을 모으고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으니  안 들어 갈래야 안 들어 갈 수가 없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이러니 Quebec을 떠나는 이들은 누구나 ‘Je Me Souviens !’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식사 시간에 모두 모여 그 골목 Peti Champlain의 프랑스식 레스토랑 ?Le Vendome?으로 들어갔다. 테이블마다 깔린 하얀 식탁보가 촛불에 눈부시고 포크와 나이프, 접시가 세팅이 되어 있는데, 벽마다 Quebec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져 있다. 뉴저지의 메송 마드리드 레스토랑 이후 처음 레스토랑다운 레스토랑에 들어 왔나 보다. 웨이터가 먼저 포도주를 가져오더니 test인지 taste인지 하란다. 용감(?)하게 잔을 받고 ?good!?했다. 떨떠름한 맛, 이걸 dry하다고 한다던가? 하여튼 내겐 dry보다는 sweet가 좋지만 잔말을 했다간 그 다음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쏟아져 나올테니 ?good!?이 정답이다. 그가 병을 놓고 가길래 산지를 보니 스페인이다. 나이아가라 강변에서 맛보았던 RIVERVIEW 포도주는 없나?

  우리 테이블의 남녀 각2인은 ㄴㅅ, ㄱㅇ, ㅇㅎ, 나. 서로 잔을 채운 뒤 일행 전체와 함께 건배하며 잔을 부딪쳤다. Quebec 위해, 이 밤을 위해, 아름다운 숙녀들을 위해 다시 잔들을 부딪쳤다. 분위기에 취하고 와인에 취했다. 메뉴는 스테이크다. 포도주가 한 병씩 추가되는 바람에 더욱 취했다. 취하고 싶은 밤. 오늘 같은 밤... 그러던 중 꽃 파는 아가씨가 나타났는데 우물쭈물하자 가이드가 선뜻 나서 숙녀들에게만 한 송이씩 장미꽃을 선사했다. 역시 서양 물 먹은 사람은 매너가 달라... 나도 꽃을 선물할 기회가 있었으면... 동작댁의 애칭을 받은 ㅇㅎ은 이번 여행에서는 패션 감각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왈 ‘나도 감성 있는 여자’. 그렇다! 그녀의 연분홍 실크 블라우스가 Quebec의 촛불에 잘 어울린다. ㄱㅇ 이 자타가 공인하는 ‘영국 신사’는 숙녀에 대한 매너도 깍듯하다.

  식후에 가이드가 바로 호텔로 갈 사람은 버스를 타고, 더 즐길 사람은 15달러 정도니 몇 명씩 택시를 타고 오란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치안이 되어 있단다. 우리 4인방은 남는데 의기투합해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거리를 배회하다 보니 그만 ㅇㅎ, ㅈㅇ, 나 이렇게 여성 1인 포함한 3인방만 남고 말았다. 내가 한 잔 쏜다고 했는데...어쨌든 맥주 가게 앞에서 한잔 따라 놓고 밤에 흠뻑 취했다. 환상의 밤!

  우리 3인방은 택시를 잡았다. 운전사 : ‘Where are you from?' ㅈㅇ : ‘We are from Korea, Seoul World Cup? 운전사 :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 ㅈㅇ : ‘지단’ 그러자 운전사는 신이 나 이야기한다. 나는 가이드가 Je Me Souviens을 퀘벡을 보고 떠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의문가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내친 김에 물었다. 한 잔하니 영어가 된다(?) 나 : ‘Je Me Souviens가 무슨 뜻이냐?’ 운전사 : (더욱 신이 나서) ‘Quebec의 전통 문화를 지키자 라는 뜻이다. Quebec이 어떤가?’ ㅈㅇ :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와 아름다운 경치를 가졌다. 쥐 메 수브니엥’ 운전사 : (발음 교정까지) ‘쥐 뮈 수비엥’... 예상했던 답변까지 얻고 영어가 마구 나오니 취흥은 고조될대로 고조..

  만리타향 Quebec의 Clarion Hotel 1층 방에서 오늘밤도 변함 없이 그 남자와 자다. 

추천수1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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