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문신 합법화" 목소리 고개

1111 |2008.06.28 11:13
조회 472 |추천 0

【서울=뉴시스】

영화 ‘무방비도시’의 ‘백장미’ 손예진(26)은 미모의 타투이스트다. 까만 매니큐어에 섹시한 옷차림, 허리에서 엉덩이 꼬리뼈까지 이어진 천수관음상 문신이 팜므파탈을 완성한다.

club.cyworld.com/tattoomax

백장미는 낮에는 문신숍의 전문 타투이스트, 밤에는 범죄조직 보스로 활동하며 철저한 2중생활을 즐긴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 다 위법 행위다.

과거 한국영화를 장악했던 조폭물 속에서도 문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문의 위기’에서는 세 형제가 나란히 앉아 호랑이의 머리, 몸통, 꼬리 문신을 맞춰보기도 한다. 이후로도 문신은 ‘무서운 형님들’의 상징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영화는 그나마 낫다. 가령 ‘칠성파’라도 경찰에 잡히는 날이면 TV 뉴스는 ‘문신쇼’를 방불케 했다. ‘그림이 되는’ 영상을 위해 팬티로 유니폼도 맞춰 입었다. 그 다음에는 칼이며 쇠파이프 등 흉기와 둔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무서운 사람들’은 문신을 상징처럼 새기고 다녔다. 그러자 대중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문신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문신은 불법’이라는 사회적 동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http://www.cyworld.com/tattoomax
이모(28)씨는 고등학교 때 폭력 혐의로 소년원에 갔다가 왼쪽 허벅지에 문신을 새겼다. 선배 수용자들이 이씨를 데려다 피바다를 의미하는 ‘혈해(血海)’라는 한자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교도소로 가기 전 오른쪽 허벅지에 홀로 용머리 그림도 새긴 적이 있는 이씨는 단순히 “어린 마음에”라고 이유를 댄다.

그러나 사회로 나와 보니 문신은 ‘주홍글씨’와도 같았다. 군대도, 대중목욕탕에도 갈 수 없었다. 문신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해야 했다. 이씨는 결국 문신을 지우기로 결심했다.

10여년 전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칼빵’이라는 문신이 유행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칼로 새겨 상처를 내고, 아물면 딱지가 생긴 뒤 흉터로 간직하는 것이다. 준비물은 필통 속 커터가 전부다. 잠시 고통을 참기만 하면 자신의 우상을 몸에 새길 수 있다는 유혹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아파오기 시작한다. ‘서태지’란 손목 상처는 “학교 다닐 때 좀 놀았구나”라는 추측을 불러온다.

‘문신(文身)’이란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고 물감(색소)을 들여 글씨 ·그림 ·무늬 등을 새기는 일을 뜻한다. 입묵(入墨), 자문(刺文)이라고도 한다. 남태평양에서 흘러나와 영어화된 타투(tatto)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다. ‘글월 문’으로 새기는 ‘문(文)’자는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고대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자를 기원으로 한다. 은나라 사람들이 문신을 습속으로 했다는 증거다.

은나라가 멸망한 뒤 주나라의 등장으로 문신은 부정적인 표상으로 의미가 변한다. ‘경형’이란 형벌의 일종으로 얼굴이나 이마에 무늬나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결국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된 이유는 주나라와 그 권력을 들 수 있다. 고대부터 내려온 문신에 대한 통념은 아직까지도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장발을 단속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지 못하게 한 시절도 있었다. 시대의 촌극이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규제들은 요즘도 여전하다.

의료법 적용을 받는 문신 시술도 그렇다. 2001년 대법원 판례는 “의료행위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서의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수술을 시행해 질병의 예방과 치료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한정했다. 여기에는 반영구 화장, 찜질방식 점빼기 등도 모두 포함된다.

의사협회는 “문신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시술하기 때문에 공중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C형 간염 감염 등 질병에 노출돼 있다”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의사들의 주관적인 소견 만으로도 신뢰도는 충분하다. 문신을 ‘유사 의료행위’에 포함시켜 타투이스트들을 ‘짝퉁 의사’ 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타투이스트들은 문신 시술이 부작용을 낳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주장한다. “문신 시술을 위해 필요한 위생 조치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질병 감염 위험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문신 합법화를 주장하는 타투이스트 이랑(33)은 “문신을 의료행위가 아닌 예술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적어도 문화로 인정받고 싶다”며 간절하다. “평생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불법이란 이유로 간판 하나 걸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반영구 화장과 문신 사이의 애매한 경계도 문제가 된다. 문신을 허용한다면 반영구 화장도 불법으로 내치기 힘든 상황이 된다. 눈썹, 아이라인 문신 등과의 명확한 구별점이 없는 상황에서 두루뭉수리하게 ‘불법’으로 묶여있다. 문신이 예술인가, 의술인가보다 더 큰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는 온 몸을 문신으로 도배했다. ‘미드’ 열풍과 함께 문신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흡수됐다. 극중 스코필드를 가리키는 ‘석호필 문신’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로 올랐다.

케이블 채널들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문신의 세계를 펼쳤다. 지구 반대편 프리미어 축구도 생방송으로 만날 수 있는 시대다. 조폭들의 전유물로 문신을 바라봤던 따가운 시선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다.

서울 홍대 앞에만 100여개가 넘는 타투숍들이 자리하고 있고 ‘출장 문신’이 성행했던 조폭식 문신이 아닌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규제는 존재한다. 갑작스레 러시한 문신의 대중화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법과 상충된다. 사회적 부조화 문제인 ‘문화지체’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신이 조폭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변하고 있다. 이랑은 자신이 문신해준 사람들을 열거하며 시청 고위 공무원, 여자 경찰관, 의사 부인 등을 언급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의 대명사들이다. 문신을 단속해야 할 경찰에서부터 감염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는 의사의 부인도 예외는 아니다.

사행성 오락실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문신 시술이 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는 남녀가 많다. 인터넷에 ‘문신’을 치면 연관 검색어가 수두룩하고 미용 문신시술 전단도 대놓고 나눠주고 있다. 2중, 3중의 잠금장치로 싸맨 성인 오락실과 비교하자면 확연히 다르다. 맘먹고 단속을 시작한다면 무더기로 적발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아무도 단속하려 하지 않는다. 문신 시술자를 잡는다고 해도 실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은 실적에 도움 되지 않는 문신 시술자들을 잡아 놓고 국가에 자원봉사를 해줄 의향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검찰과 보건복지부의 특별 단속기간에만 반짝 단속이 이뤄진다. 타투이스트들도 ‘걸리면 재수 없고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영업을 계속한다. 실제적으로는 법적 강제성보다 도덕적인 의무감으로 문신을 규정하는 것이다. 정도는 칼이 아닌 몽둥이 수준이다.

지난해 3월 당시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유사의료행위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법적 규제가 없으니 국민들은 품질관리도 안 되고 자격 유무가 불명확한 민간인들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료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개별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얽히고 설킨 상황 속에서 결론은 하나다.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것이고, 안 걸리면 그만.”

윤근영기자 iamygy@newsis.com

※이 기사는 국내 유일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Newsis Eyes’제73호(3월17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