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을 맞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조례시간, 두런두런 말씀을 이르시던 선생님은 반 학생들을 통해 조사할 항목이 있다며 몇 가지를 우리들을 향해 물으셨습니다.
그러고선 몇 차례 질문과 답이 오가더니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던지 갑자기 ‘이제부터는 눈을 감아라’ 하셨습니다. 다음 질문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이니 눈을 감고 손만 들어라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직감적으로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거치는 바로 그 ‘가정환경조사서‘였습니다. 갑자기 저는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게 마치 죄라도 지은 양 몸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온 지 이제 한 주일이나 되었을까, 그러잖아도 왜 그 연례행사인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고통이 주어지지 않는지 미리부터 걱정과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드디어 닥치게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어쩌면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안 계신 사람?”
눈을 감아라 했지만 눈감고 있는 친구들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받아내는 다짐은 더욱 호기심을 끌어내는지 친구들은 감은 듯 하지만 실눈처럼 눈을 뜨고 있습니다.
전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들까말까 망설이다가 이제 또 다음 질문에 한번만 더 들어버리고 넘어가면 그뿐이라는 생각만으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힘없이 팔을 꺾어 들어올렸습니다.
팔을 들면 소매에서 나는 그 푸스럭 소리에 혹시나 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나말고는 손을 들어올린 친구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조용해서 숨소리만 들려 올 따름이었습니다.
군데군데에서 약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 전 눈을 꼭 감고 있었기에 누가 나를 주시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고싶지도 않았고 그저 선생님이 손을 내리라고 하시기 전에 후딱 손을 내리고 싶은 그런 마음뿐이었습니다.
“아버지 안 계신 사람?”
이제 이 질문에 딱 한번만 손을 더 들면 끝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초등학교 때도 그랬기에 이제는 그 다음 질문이 무엇인지도 뻔히 알고있는 질문일 밖에요.
그러나 그 작은 책걸상에 비틀어지도록 오그라져 있던 내게 두 번을 연이어 손을 들어야한다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이며 슬픔인지 저 아닌 그 누구도 모를테지요.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손을 들어버리고 이 시간을 영원한 망각의 시간에 파묻어 두어야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만.
손을 막 들려했습니다.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그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섭도록 고요가 머물던 그 시간, 전혀 내키지 않지만 그 무서운 압박감에 내몰려 손을 들려하는데, 아아! 바로 옆자리 어딘가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누군지는 몰라도 그도 나처럼 손을 드는 모양이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친한 동무를 낯선 곳에서 만났다고나 할까요.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이 까닭 모를 창피함을 나눠서 가질 수가 있었으니까요.
이러는 시간은 항상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멈추어버린 고통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것은 내 뒤통수에서부터 비추어 찍어 낸, 낡아 비틀린 흑백사진 한 장 속에 오갈 데 없이 갇혀 있는, 바로 얼음처럼 굳어져 있는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멈추어져 있는 시간 속에 갇혀있던 내게, 마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꿈틀거리게 해주었던 한가지 위안은 바로 귓전에서 어렴풋이 들렸던 그 푸스럭 소맷자락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고개를 수그리고 혼자만 덩그마니 오그라져 있던 내게 그 소맷자락 소리는, 말 같지도 않고 한없이 부끄러운 표현일 따름이지만, 아! 그 소리는 정녕 하느님이 내게 손을 내미는 소리는 아닐까. 정말이지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하느님이 손을 내미는 소리라 할지라도 내게는 너무도 슬픈 고통의 시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때론 그것이, 일년에 한 번은 꼭 거쳐나가는 그것이, 앞으로 내 생애에 몇 번의 고통을 더해주고 가련 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형편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열다섯 살 먹던 시절 손가락으로 그 가슴 아리고도 아린 질문이 몇 번이나 남았을 지를 헤어보기까지도 했었습니다.
그 아픔, 까까머리 중학교 2학년 짜리가 두 번이나 연거푸 손을 들어 올린 그 아픔을 털어 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내야했습니다. 새 학년 새학기를 맞아 새 얼굴끼리 서로 어울려 뒹굴고 매달리고 올라타며 노는 광경을 저는 한쪽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례 그래왔듯이 머리 속에 자리한 아픈 기억만큼은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아니, 억지로 떨어내려 발버둥쳤기에 절로 희미해졌다는 말이 어쩌면 옳을 지도 모릅니다.
가슴속의 말못할 아픔의 앙금은 그대로 남아있을지언정 그리하고자 무던 애를 썼던 것만큼은 사실이었습니다.
교문을 나서는 길 옆 화단엔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이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봄에 핀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습니다. 새 학년 새학기에 맞는 봄엔 새로운 친구들의 얼굴보다도 그런 꽃들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온 까닭이었거든요.
친구들을 사귀기가 서먹서먹한 시기였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번쩍 손을 들고 죄 아닌 죄를 고백하는 우울한 시간을 보냈던 쓰라린 기억만큼은 교문만 나서게 되면 다 사라지기 때문에 하교 길에 바라보는 화단의 꽃들과 나무가 절로 반가워 그리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화단의 꽃과 나무를 친구 삼아 학교에 다니는 나 자신이 점점 보잘 것 없어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아픈 기억을 하나하나 떨구어나갔습니다.
그 쓰리고도 시린 기억이 가물가물해져갈 때쯤입니다. 부지런히 책가방을 꾸리던 아침, 전날 종례시간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가져오라 일러주시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발적으로 내라하셨는데 얼마를 내야할지,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먹었지만 엄마께도, 아버지께도 어리광 한 번 부려보지도,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자랐던 터라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삼촌께 말씀드렸습니다.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고 선생님이 일러주시는 말씀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삼촌은 거무튀튀한 색깔의 오백 원짜리 한 장을 주셨습니다. 70년대 초, 오백 원이면 가장 큰 지폐였다는 걸 알고있습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고 고스란히 선생님께 드릴 생각이었지만 학교 가는 중간 길에서 문득 ‘거슬러서’ 적당히 ‘이백 원만 낼까‘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큰돈을 ’거슬러 갈까 말까’하며 고민만 잔뜩 하다가 그만 아무 가게도 없고 담장만 덩그라니 둘러쳐진 학교 정문 앞에 버스가 서버렸습니다. 돈을 거슬러 가기 위해선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어야 될 터인데 말이지요.
어쩔 수 없이 오백 원을 다 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만은 털끝만큼도 마음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거스르지 않은 만큼의 성금이 고스란히 내 손을 통해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조례 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불우이웃돕기’성금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조례가 끝이 나고 곧 바로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학과 수업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정식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교탁에 의자를 바짝 붙이며 서류를 몇 장 들춰 펴놓곤 성금접수에 들어갔습니다.
“사십일 번, 사십이 번, 사십삼 번, 사십사 번...”
곧 내 차례가 올 것이므로 주머니에서 빳빳한 돈을 꺼내 펴들고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얼추 들여다보니 다들 몇 십 원 정도씩만을 들고 왔습니다.
제 생각은 많이 낸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었고, 또한 자랑할 거리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지 삼촌께 받은 성금을 전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친구들도 제법 많이 사귀어두었기에 수업 한 시간이 성금접수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그야말로 재미있게 한 시간을 놀면서 뚝딱 보낼테니까요.
제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가서 두 손으로 공손히 오백 원을 냈습니다. 그리곤 좀 전까지 깔깔거리며 놀던 장난질을 마저 끝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제 자리로 되돌아가던 순간이었습니다.
책상 자리를 향해 두어 걸음 옮기던 바로 그 순간, 뒤통수에서 들려왔던 선생님의 한마디에 전 그만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다리에 온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이 놈들아. 고아도 오백 원 낸다 이 자식들아!”
큰 소리에 돌아보니 금방 내밀었던 거무튀튀한 오백 원짜리를 손가락으로 움켜쥐고서 우리를 향해 펄럭펄럭 흔들어 보이시곤 일성을 날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이런...
자리에 겨우 앉은 나는 더 이상 눈을 뜨고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향해 날아 온 모든 시선을 피해 책상으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멈추었던 장난질을 이제 막 해보려던 참에 등뒤에서 날아온 비수.
다시 또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가슴 한 구석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론가를 향해 냅다 벼락같은 소리질이라도 내지르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걸상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고 억지로 참아내며 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잊혀졌던 빛 바랜 흑백사진 한 장처럼 시간은 그렇게 정지되어 숨까지 멎어놓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한없이 떨구었습니다.
겉으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겪었던 마음 속의 그 아픈 상처 위로
하염없이 눈물을 떨궈냈습니다.
눈물이 내 마음의 생채기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지
수업 시간 내내 책상 위에서
알 수도 없는 분함의 눈물을 하염없이 떨궈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가 슬플 뿐이었습니다.
아! 선생님!
정말... 정말 우리 선생님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