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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는 여자

허브 향기 |2003.12.02 21:56
조회 475 |추천 0

점심 무렵 혼자 늦으막히 밥을 먹으려고 밥통을 여니 이게 왠일? 밥이 없다.

아들이 남은 밥을 먹고 나간걸 깜박 잊었다. 못 말리는 건망증이다.

마른 밥알 몇개만 널부러져 있을 뿐이다. 주걱을 들고 멍하니 서있다가 서둘러서

쌀 을 자배기에 넉넉하게 퍼 담아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씻기 시작 하였다.

뽀얀 쌀뜨물을 부지런히 헹구어낸후, 불려서 냉동실에 넣어둔 청태콩을 한줌 넣어서

물 을 맞춘후 예약 1시간 버튼을 눌러 놓았다.

 

30 여분 정도 불었다가 적당히 찰기가 도는 밥이 지어질것을 기대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밀린 옷들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를 들고 가서 세탁기 안에다 집어넣고 세재를 넣어

돌려 놓는다. 그리고 거실로 와서 텔레비젼을 켰다.

여기저기 홈쇼핑 체널을 구경 해본다. 물건을 팔기 위해 갖은 수단을 펼치는 쇼 호스트들의

번지르르한 말솜씨에 씁쓰름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뭐 지금 전국에서 수백명이 동시에 주문을 하니 자동으로 주문을 하면 몇천원 할인이

된다며 연신 숨가쁘게 열변을 토해낸다. 정말 대단한 상술이다.

그들을 보며 진심이 결여된 언어가 주는 삭막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마치 건성으로 책 을 읽는것처럼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숨가쁘게 매끄러운

말 솜씨를 발휘 하더라도 나는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일지를 않는다. 그냥 무심히 바라 볼 뿐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홈쇼핑 체널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날때가 있다.

 

텔레비젼을 끄고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친다. 오늘이 수능 시험 성적이 발표가 되는 날이구나

시누이 아들 둘 도 이번에 시험을 치뤘는데 잘 보았는지 물어 보기가 뭐해서 그저 모른척 하고 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별걸 다 궁금해 한다고 할까봐 시어머님를 통해서 들어보니 그렇게 썩 잘보지는

않았다고 하던데....시누이가 자식들 교육에 유난을 부려서 주위에서 은근히 결과를 궁금해 하고있다.

집안의 대 소사에도 아이들은 빼놓고 부부만 참석을 하고, 뭐던지 자식들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우리 아들 고 3 때 대천 해수욕장가서 몇일 놀다 온다길래 그러라고 하였더니 남편이 더 난리를

부렸다. 아니 이런 에미를 보았나! 지금이 한가하게 바닷가 가서 놀때야?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그래도 아들은 씩씩하게 놀러가서 신나게 놀다가 왔다.

공부보다 세상 구경이 더 좋다는 아이를 억지로 쥐어 박으며 책상앞에 앉힌다고 공부가 되나 말이지

차라리 스스로 깨달을때까지 자유를 주자는 내 생각을 남편은 도저히 이해를 못했다.

나는 지금도 아들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갈 재목이

되줄꺼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느새 밥이 익어 가나보다. 전기 압력 밥솥의 추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슬슬 일어나 밥 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먼저 식탁을 행주로 깨끗하게 훔쳐냈다.

김치 냉장고를 열고 김치통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매콤한 김치 냄새가 빈 속을 마구 자극한다.

몇일전에 담근 배추 김치를 한쪽 꺼내어 머리통만 잘라내고 그대로 큰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주말에 먹고 남았던 삼겹살을 몇쪽 꺼내어서 노릇노릇하게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가스불에다 아침에 남편이 먹고 남은 된장찌개를 다시끓였다.

대파와 매운 고추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서 식탁 가운데다 놓았다.

새빨간 김치와,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그리고 칼칼한 된장찌개, 제법 푸짐한 밥상이 되었다.

혼자 먹는 한끼지만 나름대로 신경을 썼더니 기분이 좋았다. 방금 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공기에 담아서 맛있게 한끼를 해결 하였다. 올 한해도 이제 한달이 채 안 남았다.

 

마흔을 한참 넘기고 나니 사는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주어진 일상들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 하면서 스스로 만족을 할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하며 살아 가고 싶다.

이곳의 모든 님 들도 기분좋은 날 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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