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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27살 ; 운명같은 사랑

님프이나 |2008.07.13 18:25
조회 451 |추천 0
 

“잡지에서 하는 것을 진짜 그대로 따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네가 앉아서 인터넷이 보여주는 세상만 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용호의 말이 맞았다. 유리는 인터넷 회사에 다니며 콘텐츠를 메우는 일만 했다. 그래서 유리에게 보여주는 세상도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용호는 유리의 손을 계속 잡아끌었고 용호의 손에 이끌린 유리는 아파트 꼭대기에서부터 빠져나와 나른한 거리의 한복판을 걸었다. 오전 안개가 걷힌 거리는 태양을 향해 잠식하듯 더욱 뿌옇게 나른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어?”

“아까 잡지에서 보여줬잖아?”

용호에게 이끌려서 유리가 본 세상은 온통 크리스마스였다. 12월이 아닌 크리스마스였다. 거리를 돌아 한 모퉁이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우연을 믿죠?”

“운명을 믿죠?”


“운명이 보내는 계시를 잘 읽어야 행복을 찾습니다. 그 계시는 사랑입니다. 이제 곧 행운의 계시가 밀려 올 것입니다.”

“애인 있어요?”

“애는 있고 난 얼마 전까지 있었어요.”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거리의 한 가판대에서였다. 가판대에서 요정을 연상시키는 한 자그마한 여자가 머리를 산타의 소녀처럼 질끈 동여매고 우연과 운명을 외쳤다. 그녀는 그것을 마치 사랑의 계시라도 보여주는 것처럼 말했고 용호와 유리가 잡지의 한 컷에서 본 풍경에 빠져 가판대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용호와 유리에게도 애인을 말했다.


“많이 뵌 분 같은데? 혹시 그 분? 제이슨 우의?”

가판대의 여자는 유리를 흘깃 보았다.


“맞아요. 그렇게 한 때 잘나갔었죠.”

“만나서 반가와요. 사실, 애인 있는 분들이 대부분 사가세요. 잘생긴 사람들이 더 얼굴을 자주 고치듯이.”


“동전이 마지막 2개 남았습니다. 60퍼센트 세일가격이면 진짜 공짜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뭔가를 줄듯 말듯 하면서 뜸을 들인다. 그녀도 금빛으로 빛나는 원모양의 동전 두 개를 들어 올렸다.

“빨랑 주세요.”


“잠깐! 동전을 가져가기 전에 하나의 의식이 있어요.”

“뭔데요??”


“고백하세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이 보란 듯이 동전을 가판대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덮었다.

“최근에 한 가장 못된 짓은?”


“난 그런 거 없어요.”

유리는 짜증이 났다. 잘한 것도 없지만 못된 짓하는 것도 없는 유리이기 때문이다.

“맞아요. 캘리포니아 해변에서의 꿈같은 로맨스가 있었을 뿐이죠. 왕자님과 매끈한 인어 한 마리의. 하지만, 여기 꽃미남은 아닌 것 같은데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감추고 숨기는 못된 짓을 한 것이 막 보이네요.”


“어디요!”

여자는 깜찍할 정도로 독심술이라도 있어보였다. 그녀는 까르르 웃어넘겼다.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일이라는 말인가? 용호는 자신이 알 수없는 질투심에서의 일들이 떠올랐다. 회사 신년파티 2차에서 욱하는 마음에 유리네 집에 들렸 던 용호는 제이슨의 프로포즈 반지를 유리가 케이스를 열어보지도 못하도록 집에서 훔쳐 빼내 온 다음, 회사 변기통에 버렸다. 어떠한 의미에서 그것은 시가 몇 백만 불상당의 선물보다 비싼 눈물의 반지였다. 용호는 찔끔했다.


“아무튼 30만원입니다.”

“60퍼센트 세일이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30만원보다 더.


“물론, 세일해서 30만원이에요. 하지만 사랑을 이루어줍니다. 결혼정보회사 가입비만도 3백만 원이에요. 그리고도 짝을 찾기까지 돈 천만 원은 들어가요.”


“옙!!”

알 수 없는 죄책감까지 밀려오는 용호는 단박에 카드로 유리의 동전까지 계산해버렸다.


“고마워 내 것 까지. 하지만, 정말 이루어질까? 난 이런 게 정말 싫어. 나이든 얘들 서른 살 넘은 애들이 하는 고민에 내가 포함되는 거! 내가 원하는 건 운명 같은 사랑이야.”

“구체적으로?”


“돈, 결혼 뭐 그런 촌스런 이야기에 내가 연류 되는 거. 그런 식으로 나이 먹는 거 싫어. 그런 생각을 하면 내 머리 색깔 내 옷 내 구두 모든 게 싫어져.”

“나랑 똑 같구나.”

가판대를 빠져나와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일 것만 같은 거리를 걷던 용호는 걸음을 멈추고 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했다.


“하지만 우린 나이 먹지 않아. 오늘부로 우린 언제까지나 27살이야.”

힘주어 말했다.

“ 아니 곧 죽어도 27살이야.”


“ 정말?”

꼭 영화 찍는 것 같았다. 유리는 크리스마스 거리의 한 복판에 단 둘이 서 있는 기분이 꼭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함께 웃음이 나왔다.

“너 소리 지를 때 여자 같은 거 알아? 네 눈, 네 머리, 네 눈. 짱 난다.”


“너 오늘 이상해! 혹시 나한테 숨기거나 감추는 것 있어?”

“Never!”


어쩌면 친구도 하루 정도는 남자가 혹은 여자가 될 수도 있는 지도 모른다. 배가 아픈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던 것처럼 유리는 날라 갈 것 같았다. 용호도 마찬가지였다. 27살의 어느 날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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