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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성벽(城壁) The Castle Wall

종달새 |2008.07.19 16:22
조회 853 |추천 0

 

■성벽(城壁)■

1973년 조선작

우리 아버지는 우리 둑방동네에서 개서방으로 불리었다. 훔친 개를 잡아 보신탕집에 넘기는 일로 우리 세 식구(아버지와 나, 그리고 열여덟 살짜리 누나)를 먹여 살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개하고 그렇고 그런 짓까지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내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것은 한쪽 눈알에 백태가 끼인 자전거포의 탱보였다. 나도 어렸을 때 병을 앓아 오른 쪽 다리가 짧기 때문에 동석이라는 이름 대신에 뚝발이로 통했다.

탱보는 자기 아버지가 없는 동안 돈을 삥땅해서 담배도 사 피우고 밤에는 건너편 둑방동네로 배를 타러 갔다. 배란 물론 여자들의 배를 말한다. 어른들은 그곳을 사창가라고 하지만 탱보는 선창가라고 했다.

나는 여자들의 배를 탄다는 선창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여러 번 가보았다.긴 눈섭을 붙인 여자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쩔뚝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재미 있다는 듯이 쳐다볼 뿐 그곳이 어떤 곳인지 눈치도 챌 수가 없었다. 탱보에게 가르쳐달라니까, 고추에 약이 오를 때까지 일년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내 그것도 걸핏하면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탱보가 알 까닭이 없었다. 탱보는 우리 누나와 같은 열 여덟살이었고,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돋아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쯤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4층교실까지 찔뚝거리며 죽자고 계단을 올라가 보았댔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담임선생의 돈 재촉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둑방동네 아이들은 심심하면 탱보네 자전거포로 몰려들었다. 탱보는 그들에게 다리 사이의 그 고무질 물체에 씌어진 헬멧을 구경시키거나 그곳에서 터져나오는 분수 같은 것을 보여 주어 아이들을 웃겼다.

탱보는 나에게 유별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바지 단추 앞은 늘 불쑥하게 돋아 있었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그것을 움켜 잡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야, 뚝발아, 네 누나 똥순이와 좀 어떻게 해볼 수 없겠냐?”

어느날 아침, 학교에 늦은 것처럼 뛰어 자전포로 나갔는데, 탱보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야, 뚝발아, 네 아버지 간밤에 개하고 흘레를 붙었다는데 사실이냐? 히야, 고 기맥힌 장면을 그만 놓져 버리고 말았다니...”

그것은 내게 좀 어리둥절한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버지 친구 두 사람이 찾아왔다.

“어이, 개서방, 자네 뭐 개한테 새장가를 들었다면서.”

“맛이 어떻든가? 연장이 아주 쑥 빠져 달아나 버리지는 않았겠지. 아무튼 이제 자네도 홀아비 신세는 면했네. 술 한잔 사게.”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들, 애들이 듣는데 뭔 점잖치 못한 소리들인가. 나감세. 내 술 한잔 삼세.”

아버지가 훔친 개를 잡아 파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것은 꽤 오래 되어서 그 방면에 진짜로 도사였다. 6개월 과정의 엄격한 애견훈련소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망아지 새끼만한 세퍼트도 일단 아버지에게 걸려들면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둑방동네에는 아버지의 제자가 두 사람이나 생겼다. 운전대만 잡으면 감방으로 직행하는 유사고 운전사라고 불리는 천씨와 불명예 제대를 했다는 젊은 방씨였다. 그러나 그들은 걸핏하면 맹견에게 허벅지를 물려 오기가 일쑤였다. 제자들이 주눅이 들어 오면, 아버지는 혀를 차면서 느리터분한 말투로 이렇게 가르쳤다.

“가이를 몰고 오는데 무슨 중뿔난 비법이 있는게 아니여. 우선 찍어둔 가이랑 눈이 맞아야 헌단 말이여. 말하자면 정분이 통해야 헌다는 말이여. 서둘러서는 못써. 계집 하나를 볼려두 안 그려? 몇 날 며칠을 두고 을르고 구슬려야 겨우 대줄뚱 말뚱 아닌가벼? 첫째로는 맴을 느긋허게 먹어야 혀.”

아버지는 대개 새벽같이 집을 나가서 아침을 먹기 전에 모든 일을 깨끗히 해치웠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개를 자전거 꽁무니에 달아매어 돌아왔다. 일찍 일어난 동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자전거를 따라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개를 목매달고, 불에 그을리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도축장은 동네 끝에 있었다. 아버지는 기다란 전기줄 한 자락을 전봇대의 쇠갈고리에 걸치고 있다가, 개가 덥썩 먹을 것을 물었을 때, 낚시군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전기줄을 나꿔챘다. 순간 개는 허공으로 떠 오르며 발버둥을 치고 누 눈을 까뒤집는 것이었다. 아, 그때 핏발이 서고 불거져 나온 아버지의 그 눈에서 나는 증오와 분노, 끓어오르는 원한의 빛을 보았다.

아버지가 만약 그의 생전에 우리들의 어머니를 붙잡는다면 아마 개처럼 그렇게 목매달아 죽일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농사꾼이었던 모양이었다. 농사꾼인 주제에 어쩌다보니 꽤 아리따운 여자를 아내로 얻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무덤 속에 들어갔지만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인물좋은 기집은 여수(여우)여”하고 말했었다. 아이들을 둘이나 낳고도 그 여자는 떠돌아다니는 노름꾼과 배가 맞아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았던 옛날 이야기였다. 실지로 누나와 나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하고만 살았다. 내가 다섯살 나던 해 어디서인가 아버지가 돌아왔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했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그 다섯 해 동안 도망쳐 버린 여자를 찾아 팔도강산을 헤메고 다니면서 개도둑질을 배웠으리라.

아버지는 내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아침마다 빈 가방을 들고 찔뚝거리며 집을 나서는 나를 대견스럽게 쳐다보며 “공부 열심히 하거라.”하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에 회비를 갖다 바치지 못한 것은 아버지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회비라면 아버지는 두말 하지 않고 내주는 성미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곱배기로 타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써버렸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 가는 길 쌍굴다리 근처에서 찐드기파라고 불리우는 불량배들에게 털렸다. 이렇게 당한 것을 나는 아버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담박에 나를 의심할 것이었다. 언젠가 나는 아버지의 호주버니를 뒤졌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달 회비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만화가게의 미니 당구나 공기총 사격같은 것이 무척 하고 싶었다. 나는 학급문고를 훔쳐다가 고물상에 팔았다.

체육시간에 (나는 뚝발이기 때문에 교실에 남았다.) 담임선생님의 바지주머니를 털었다. 나는 옆반의 선생이 당했던 것처럼 사기를 쳤는데 담임선생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전날 옆반 체육시간이었다. 어떤 젊잔아보이는 사모님이 교실에 와서 당번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에게 가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말해 줄래?”

선생이 당번 아이와 함께 교실로 돌아와 보니 그 귀한 손님은 선생의 양복주머니를 털어 달아난 뒤였다.

그렇게 훔친 돈을 나는 돈놓고 돈먹기 삼딱지 놀이를 해서 털렸다. 그럭저럭 하다가 학교도 그만두어버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요즘에 와서는 그저 탱보처럼 부시기(담배)나 피우고 선창가로 진격해서 배를 타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탱보는 조금도 다친 곳이 없는데 치료를 해야 한다며 마이싱이란 약을 먹었다. 그때 땡보의 아버지는 경찰에 잡혀가 버렸다. 어쩐지 항상 자전거포는 탱보에게만 맡겨두고 어딘가 싸돌아 다니기만 하더라니. 사실 주인도 없는 자전거가 풀어헤친 채로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송아지만한 세퍼드 한 마리를 끌어온 것은 그 즈음의 일이었다. 메리라는 잘 생긴 암캐였으니까 잘 생긴 년이었다. 배에는 콩알만큼씩한 젖들이 쌍줄로 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웬일인지 메리를 쉽게 메달려고 하지 않았다. 부엌 문짝에 매놓고 우리에게 밥을 나누어 주라고 했다. 나는 의아해졌다. 전에도 아버지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았을 때, 우리 집에는 며칠을 두고 잘생긴 검둥이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다. 나는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화장지 공장에 포장공으로 취직된 후, 누나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그짓좀 그만두어 달라고 졸랐다. 누나의 말에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여차하면 어딘가에서 또 개를 끌어다 목을 매달았다. 아버지는 동네의 술친구들과 어울리는 때가 많았고, 대개는 아버지가 술을 샀다. 밤이 되면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돌아와 집 담장에 오줌을 갈기고 방으로 들어와 벌렁 드러누워 곯아떨어졌다. 그때쯤 야간 당번에서 돌아온 누나는 눈물을 흘리면 호소했다.

“아버지, 이제 술 좀 그만 잡숫고 정신 차리고 살아봐요, 네? 우리도 잘 살아봐야 하잖아요, 네?”

내가 메리라는 세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탱보는 내게 입을 맞추며 좋아했다.

“오늘 밤까지 그냥 놓아둘거지?”

“이따가 밤에 저쪽 개천으로 끌어낼 수 있겠지?”

“네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붙어야겠다. 사납진 않겠지? 너도 알지, 내 병. 네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고쳤다지만, 그 병에는 마이싱 천개보다 개의 호찌가 최고라더라. 잘 부탁한다. 뚝발아. 오늘 밤에는 나도 한번 개서방이 돼야겠다.”

탱보가 득의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날 밤 탱보는 암캐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세퍼트를 끌고 나가 목을 매달았다.

그날 밤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돌아왔고, 그보다 늦게 돌아온 누나는 곯아떨어진 아버지에게 눈물을 흘리며 또다시 호소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여전히 대낮부터 술에 취해 다니며 개판을 쳤다.

누나가 집을 나간 것은 그로부터 두 달쯤 뒤였다. 누나는 아버지와 내가 한 주일을 퍼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게 많은 밥을 지어 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화장지 공장으로 누나를 찾으러 갔지만 거기도 그만둬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젊은 놈팽이가 뛰어 나와서 오히려 나한테 누나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청계천 다리 밑에>를 목이 메인 음성으로 웅얼거렸다.

청계천 다리 밑에 따라라라

개떡 같은 집을 짓고, 따라라라

귀신 같은 마누라와

쥐약 먹고 죽고 싶네.

아버지도 개를 목매달 때와 같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누나를 찾으러 다녔으나 헛일이었다.

“년도 참 오도방정이지. 애비도 봄부터는 개훈련소라도 하나 차릴려 했는데...”

그러나 그따위 말은 이미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들기였다.

누나가 없어지자 아버지는 여간 불편해진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말년에 고생줄이 훤하게 트인 셈이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아버지가 갑자기 중풍에 쓰러졌다. 측간에 앉았다가 문짝과 함께 꼬꾸라져버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방에서 똥과 오줌을 쌌다. 이번에는 내게 고생줄이 훤하게 트이고 말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아버지가 갈겨 놓은 배설물을 치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버지는 바로 옆에 있는 요강을 잡아당겨 올라탈 수가 없었고, 입이 삐뚤어져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술친구들은 모두 한 번씩 문병을 왔었다. 그들은 모두들 아버지 앞에서 비방과 비약을 떠벌였지만 그런 것을 구해다 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살아남은 기능이라면 눈시울이 시뻘겋게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알아주는 것은 탱보밖에 없었다. 탱보는 때때로 우리 집에 둘려 라면 같은 것을 몇 봉지씩 놓고 갔다. 우리 집에는 먹을 양식조차 떨어져 버린 형편이었다. 라면을 삶아 국물을 아버지 입에 떠 넣고 건더기로 주린 내 창자를 채웠다. 이꼴을 본 탱보는 내게 자기 집에 와서 식모노릇을 하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제안이었다.

낮동안 나는 탱보네 자전거포에서 살았다. 탱보는 밤이 이슥해지면 선창가로 나가는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은 밤늦도록 아니면 밤을 숫제 탱보네서 보내야만 했다. 솔직히 나도 되도록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약 한 첩 쓰지 못하는 중풍환자의 모진 목숨은 지저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서 탱보는 숫제 자전거포는 나에게 맡겨놓고 밖으로 나가 온종일 싸돌아다녔다. 이따끔씩 어디서 새 자전거를 신바람 나게 몰고 들어왔다. 탱보는 진짜로 호경기였다. 선창가가 아니라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부두로 나간다고 말했다.

“부두에는 모두 잘생긴 계집들인데 비싸기도 하지만 기술도 그만이더라.”

그럴 때면 나도 빨리 삥땅을 뜯어 부시기를 피워 물고 선창가로 진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얼굴에 여드름이 한개도 돋아나지 않아 실망이 여간 아니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어느날 밤이었다. 부두에서 늦게 돌아온 탱보는 잠든 나를 발길로 차 깨워 놓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뚝발아, 이젠 날 매형이라고 불러라.”

“뭐라구, 우리 누나를 만났어?”

“만났다. 그냥 만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합까지 맞췄지. 기가 막히게 딱 맞더라.”

“그런데 왜 데려오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 말도 했는데 안와?”

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식식거리며 말했다.

“시끄럽다. 내가 그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뭣하러 하냐? 괜히 나까지도 산통 깨지게...” 탱보가 완강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새파랗게 죽은 낯빛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탱보는 내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흥분할 것 없다. 네 누나는 곧 내가 데려다 살테니까. 너도 꼽살이 껴주지. 이건 진실이야.”

나는 탱보가 말하는 부두라는 곳을 찾아 버스를 타고 시가지 골목 골목을 누볐다. 탱보의 뒤를 밟기도 했으나 허사였다. 그는 교묘히 나를 피해 달아나 버렸다. 나는 분통이 터졌다.

나는 청계천까지 갔다가 지친 다리를 끌고 집에 돌아와 녹아떨어져 잤다. 아침에 깨어보니 옆에 누워 있어야 할 아버지가 귀신이 곡하게도 없어져버렸다. 이웃에서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개를 잡아서 그을리던 모래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누가 아버지를 거기까지 옮겨 놓았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 들었다.

“개서방 아니야? 운신도 못하던 사람이 예까지 이게 웬 일이야?”

“죽을 때면 젖먹던 기운까지 솟아난다고 하데요.”

이때 내 또래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내가 보았어요. 새벽에 신문 가질러 나갈 때 여기를 지났걸랑요. 그런데 저 사람이 엎드려서 기어갔어요. 난 도둑놈인 줄 알고 무서워서 도망쳤어요.”

아침까지 아버지의 시체는 거기에 버려져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아버지의 시체를 치우는 일로 의논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아침부터 우리 둑방동네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내일이면 청량리에서 전기철도가 완성되어 제트기처럼 빨리 달리게 되는데 그 개통식에 누군가 아주 높은 어른이 타고서 우리 둑방동네의 건널목을 지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저분한 둑방동네가 내려다보이지 않도록 가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인가 인부들이 까맣게 물려들어 둑방 양편에 담장을 치기 시작했다. 담장이 아니라 이것은 숫제 성벽이었다. 아버지의 시체는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기에 알맞은 장소에 놓여 있었다. 인부들은 침을 뱉은 다음 모래밭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묻어버렸다. 그리고는 그 위를 마구잡이로 밟아 가며서 작업을 서둘렀다. 인부들은 밤까지도 그 높은 성벽에 전등불을 밝혀놓고, 아름다운 색으로 페인트를 입혔다. (끝)

24. The Castle Wall

Written in Korean by Jo, Sunjak in 1973

Edited and Translated in English by Lim, Sunjae in 2007

My father was called Mr. Dog-man in the neighborhood on the embankment of an open sewer. Because he stole dogs and sold them to a soup-of-dog's meat eating house as a means of living. We were a family of three; my father, my older sister aged 18 and me. Word had been spreading that my father made love with dogs.

I heard of it from Tangbo who worked at his father's bicycle shop. He had a morbid coating on the eyeball. They called me Clubfoot instead of my name Dongsuk, because I limped noticeably, since I was taken ill and my right foot became shorter when younger.

Tangbo pocketed a kickback from the sale during his father' absence to buy cigarettes and visit prostitute quarters.

Out of curiosity, I wandered around the quarters. Girls and young women with thick eyebrows and heavy make-up looked at me limping about with interest. I could not understand them well enough. Tangbo was also 18, the same age as Sister.

I quitted school at the 5th grade, because it was hard for me to climb up to the 4th floor and teachers demanded fee money from me on occasions.

Many of the little boys in our neighborhood often gathered in groups at Tangbo's bicycle shop. Tangbo liked to show off his larger genital thinly haired and spurting some white liquid like milk from it. They looked at him and laughed uproariously.

Tangbo was unusually friendly to me. His crotch always bulged out. He held it tightly wriggling to and fro like a snake. One day he said to me, "Hey, Clubfoot, please help me make love with your sister."

One morning, he made strange remarks, "Is it true your father made love with a dog last night? How I missed such a wonderful sight!"

Then, that evening, a couple of my father's friends called for my father and asked, "Hey, I heard you got married to another bitch."

"I'm sure you had a very good time. Your thing is all right? It didn't fall out? Now you are no long a widower."

Father started his trade quite a long time ago and a real expert at his job. Even a shepherd who was strictly trained for 6 months was bound to follow him joyfully.

Father took two apprentices. One was Chun, a very bad driver; everytime he sat behind the wheel, he was thrown into a cell in no time. The other was Pang, who was discharged dishonorably from the Army. More often than not, the two were beaten at the thigh by ferocious dogs and lost their nerve. Then, Father, clicking his tongue, instructed them in a slow and hesitant voice.

"There is not a secret formula for alluring a dog. You must fall in love with your target. You should have a friendly relation with the dog.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Haste makes waste. It's all the same as seducing a woman."

Father usually started his job early in the morning and handled all the work before breakfast. He went by bicycle to the neighborhood of rich people and returned hauling a dog tied at the end of his bicycle. At that time, little boys early risen came running after Father to the slaughtering site at the edge of the neighborhood. He hung a noose made of electric cord over a hook of an electric pole. At the moment the dog snapped up at a piece of meat in it, Father snatched the cord with a jerk as quickly as an angler. Instantly the dog soared up in the air, writhing itself desperately, frantic with pain. At that moment, I saw hatred, anger and malice combined in Father's bloodshot and swollen eyes.

If Father should find our his wife(my mother) while alive, surely he would hang her in the same manner. When young my father was a common farm-hand. He seemed to have married a woman, who turned out a surprising beauty unbecoming to a poor countryman. My grandmother, dead long ago, used to say that 'a beautiful woman is like a fox'. Indeed, my mother, who gave birth to two children, ran away with her lover. My father went out and wandered all over the country in search of his wife for long in vain. Admittedly, he learned the skill to catch and sell the slaughtered dogs during his wandering life.

From time to time, Tangbo made a fuss; getting medical treatment and taking medicine called streptomycin. It seemed to me that he was sound and healthy.

About that time Father brought a large shepherd, a bitch called Mary. Anyhow, Father didn't hurry to hang her. He asked me and my sister to feed the dog on time.

When my sister was employed as a worker for a toilet paper factory, she asked Father earnestly to quit his dirty job. Father remained mute and silent while she talked to him. He would be boozed up, urinating at the fence and slept like a dog almost every night. My sister wept and wept.

Sister left home two months after that.

I went to the factory to look for Sister. She was not there. A young man in great dismay begged me to let him know about her whereabouts.

Father was eager to find her out, muttering, "She was too rash. If fact, I was preparing for a dog training job."

It was when spring came that Father was stricken with paralysis suddenly. He was laid up with palsy for two years. Dealing with his body wastes was the worst. The only faculty he still possessed was shedding burning tears.

One day Tangbo spoke to me very cheerfully, "Hey, Clubfoot, Call me brother-in-law."

At that, I was stunned, "you mean you met my sister, eh?"

"That's correct. Besides, I made love with her." He beamed.

That day, I went to the infamous prostitute quarters in Seoul in search of Sister all day long till night. I was terribly tired out.

Then a miraculous event took place. Father was found dead at the place where he used to slaughter his dogs. Neighbors gathered and clicked their tongue at the sight. "How come his being here? It's quite a distance, isn't it? He could move an inch for a long while. Somebody must have brought him here. But who and why?

Adult neighbors were discussing about his burial.

And the next morning an unexpected construction work took place at the very spot all of a sudden.

A great number of workers hurriedly gathered up there from nowhere. They were building a great fence. No, it was a structure higher and thicker than a castle wall. Nobody saw and knew where Father's dead body was.

They said that the most important man in Korea changed his schedule of a trial ride in a recently completed electric railways. The workers lighted brightly at the top of the castile wall and painted it in a hurry.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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