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개그맨에서 영화제작자로! 심형래는 누구인가

임재학 |2010.11.30 23:58
조회 691 |추천 34

 

 

몇 일 전부터 여러 포탈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라스트 갓파더'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검색해보니 '라스트 갓파더'는 영화제목이었다. 나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에도 영화정보를 자주 검색하는데 '라스트 갓파더'를 검색했을 때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반가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2007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디 워' 이후 정말 오랜만에 감독 심형래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심형래는 82년도 KBS 특채로 데뷔한 개그맨이다. 개그맨으로 데뷔한 후 여러 프로그램에서 영구, 펭귄, 파리, 칙칙이 등 다양한 바보들을 연기했다. 특히 드라마 ‘여로’의 패러디인 ‘영구야 영구야’에서 주인공 영구 캐릭터를 연기한 심형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988년 KBS 코미디 대상, 1990년 KBS 코미디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1984년 ‘각설이 품바타령’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연작과 ‘영구와 땡칠이’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화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영구와 땡칠이'는 비록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1989년 개봉당시 전국관객 200만명을 동원한 기록도 있다. 

그 시절 그는 전국민이 아는 스타였고 4년 연속 연예인 고액 납세자 1위를 차지 할 정도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최정상의 코미디언이었다. 남들 웃기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었던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계로 뛰어든것은 1993년. 그 해 자신이 직접 '영구아트무비'라는 이름의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국적에 상관없이 전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장르는 SF장르라고 생각한 그는 영구아트무비 창립 작품인 '영구와 아기 공룡 쭈쭈'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디워'까지 SF장르만을 고집해왔다.

1993년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영구와 아기공룡 쭈쭈'가 개봉했을 때 함께 개봉했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었다. 쥬라기 공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쥬라기 공원 한편의 영화가 창출해내는 수익이 그 때 당시 현대차 수출로 벌어들이는 한 해 수익과 맞먹는다며 한바탕 호들갑을 떨어댔다.

당연하게도 흥행은 쥬라기 공원의 압승. 

영구와 아기공룡 쭈쭈는 상영할 극장조차 찾기 힘들어 예식장과 구민회관등을 전전했다. 심형래는 쥬라기 공원을 상영하는 극장에 앉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진짜 살아움직이는 듯한 공룡들을 보면서 꼭 자기 손으로 헐리우드에 뒤지지않는 기술력을 갖춘 영화를 만들것이라 다짐했다고 한다.

실패로 막을 내린 첫 영화 이후로도 심형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SF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SF장르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특수효과에 투자와 개발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국기술의 도움없이 순수한 국내 기술력만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1994년 '티라노의 발톱'으로 다시 한번 공룡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도전했고 1995년 '파워킹', 1996년 '드래곤 투카'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SF장르 영화들을 제작, 감독하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지금보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특수효과들이지만 분명한것은 해가 지나고 한편 한편 그가 완성하는 작품들이 늘어날 수록 심형래 스스로만의 노하우가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98년 5월.

칸 영화제 프리세일 마켓에서 그의 후속작 '용가리'가 300만 달러에 팔리게 된다. 완성전부터 용가리는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고 심형래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침내 공개된 용가리는 진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 전 세간의 엄청난 기대와는 달리 완성도가 너무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 혹평을 쏟아냈고 수익 분배 문제로 미국 배급사와의 소송, 국내 투자자들과의 마찰 등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용가리라는 영화는 너무나도 빨리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당시 나는 어린나이였지만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용가리가 개봉 전에 얼마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또 개봉 후 얼마나 빨리 외면을 받았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용가리의 실패 이후 심형래라는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없었다. 다시 영화제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자세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2007년 여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영화감독 심형래가 희미해져 갈 때쯤 그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 '디워'로 다시 대중들에게 찾아왔다. 디워에서 그가 보여준 특수효과와 CG들은 9년전 용가리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 헐리웃 영화들과 맞붙어도 손색이 없을정도의 기술력을 구현할 수 있게 된것이다. 디워가 개봉했을 때 기술력의 진보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줘야한다는 여론과 특수효과는 볼만하지만 영화내용 자체는 엉망이다라는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어쨌거나 국내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화려한 특수효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셈이다. 우리 기술로 헐리웃 영화에 버금가는 SF영화를 만들어보자며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던 심형래의 무모한 도전이 마침내 어느정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디워는 국내에서 관객수 약 830만명의 좋은 흥행을 기록했고 비록 미국 내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영화 최초로 미국 1500여개 극장에서 와이드 릴리즈되었다.

 

아기공룡쭈쭈부터 곧 개봉할 라스트갓파더까지 심형래는 근 20년간 전세계에 통할 수 있는 '한국산'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하나로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들과 세상 사람들의 조롱도 받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으며 영화에 대한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나는 심형래라는 사람이 좋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 열정이 부럽다.

한 인터뷰에서 다른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칫 무모하다거나 바보같아 보일 수 있는 일들에 도전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심형래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저는 바보니까 하는거에요. 영구니까 하는거지.."

때로는 말만하는 수십명의 천재보다 행동하는 한명의 바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될 바보 심형래의 무한도전을 지지하고 싶다. 

 

 

추천수34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