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위어
배우: 로빈 윌리엄스(존 키팅)
책으로도 그리고 영화로도 수많은 생각을 전하기에 충분한 작품...오래전에 자유란 무엇인가를 말하기도 하고 치유란 말도 했었지만 그 대목의 정확한 기준이 없던 나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배풀어준 이 작품...
정말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삶이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자유란 무엇인지를 알게되었다. '닐'이라는 학생이 부모의 강요에 자신의 삶을 바꿔야만 했을때 "왜" 자살을 했는지도 명백하다.
새로 부임한 키팅선생님은 사춘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벌써부터 꿈과 야망을 잃어버린 상태란것에 아쉬움을 표현한다. 학생들은 부모가 만든 계획표에 따라, 그리고 부모가 그들에게 기대하는것에 따라 기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렇다. 그것은 육체가 자율스러워도 정신적으로는 같혀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학생 각자가 의사나 변호사나, 은행가가 되려는 인생설계를 가지고있었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부모가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강요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감금상태에서 육체의 자유가 속박되는 상황을 연출할박에 없다..
이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가슴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것은 현대 우리의 사람들이 격는 하나의 단편이 아닌지 생각된다.
영화의 핵심은 영화 앞장면에서 보여진다. 키팅선생은 소년들을 데리고 학교의 로비로 내려가 트로피 진열장에 전시되어있는 개교 초기의 졸업생들 사진을 보여주고는 말한다.
"이 사진을 보아라"
키팅은 학생들에게 다시금 말한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이 젊은학생들은 한때 너희들과 똑같은 불길같은 야망을 눈동자속에 간직하고있었다. 그들은 폭풍과같은 힘으로 이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멋진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70년전의 일이다. 이제 그들은 모두 죽었고 무덤에는 데이지 꽃만 자라고있다.
그들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진정으로 실현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웠던 야망을 성취했을까?"
그리고 나서 키팅은 이 학생들에게 몸돌려 큰소리로 말한다.
"카르페 디엠!(이순간을 즐겨라) 이 순간을 붙잡아라!"
처음에 학생들은 이 이상한선생을 이해할수없어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가 하는 말들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차츰 키팅선생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숭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
자신의 육체는 자율스러울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자율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은 육체적인 자율도 허락받지 못한다는 말이 될수있다는것이다. 그것은 결국 지금 한국사회가 떠앉고있는 10대들의 아픔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또한 그렇다.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강제력을 만들어 자신을 억압하고 힘들게 만들지만 하나만 버리면 될것을...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점에서는 보다 낳은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자유스러운 상태로 살아간다. 그점은 나또한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즐거운 것이라 생각된다.
그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은 어쩌면 속박속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되찾게 해준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찾아준것이다. 그것은 희망 그들이 바라던 본래 가지던 희망을 되찾게 해준것이다.
자유란? 희망이란? 그리고 자신의 삶과 목숨마져 바칠수있는 뜻이란? 이 영화에서 함축적으로 다룬다는것을 나는 많은 사고를 통해 느낄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