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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한자자격증 따기(2급 어문회)

박세찬 |2011.01.03 19:33
조회 779 |추천 0

 동기

 

2010년 6월 초 주말. 병장 달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나가서 운동하기는 너무 귀찮고 해서 한참을 빈둥거리다가 오랜만에 다른 부대에 있는 내 동기한테 소식도 물을 겸 전화를 했다. 그 쪽 부대는 재밌니, 휴가는 언제 나갈꺼니, 같이 맞춰 나갈까 등등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냥 흘리는 말로 거기서 뭐 자격증 공부는 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응 몇 개 땄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몇 개’에 놀란 나는 뭘 땄냐고 물으니까 ‘“한자3급 따고 이번에 또 한자2급, 컴활1급, 토익 이번에 700대 만들고.. 뭐 이렇게 땄네”라고 말하는데, 나는 하나도 아니고 ’몇 개 땄다‘ 라는.. 그것도 당연한 듯한 그 한마디에서.. 찾아오는 자격지심.. 쟨 나랑 같은 군 생활을 했는데 자격증을 3개나 따고 나는 언제 한 번 자격증 따야지라고 생각만하다가 無자격증으로 여기까지 오고.. 참 한심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운동해서 근육 만든 것도 아니고.. 참 여태까지 뭐했나 싶었다. 순간 엄청난 자격지심이 몰려와서 그 뒤론 동기와의 통화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 휴가 때는 같이 보자고 통화 마무리를 짓고 나서 한동안 깊게 생각에 빠졌다. ’난 정말 지금까지 해온 군 생활 동안 얻은 게 뭔가?‘ 뭐 정신력, 선임에 대한 예절 이런 거 말고 정말 눈에 보이는.. 밖에 나가서도 ’군 생활 동안 나는 이걸 했다‘라고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거 말이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휴가는 며칠 남았네, 전역은 며칠 남았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 자신을 가꾸고 쌓는 일에는 전혀 무관심했었다. 참 한심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보내온 시간이 아까웠다. 1년 6개월 이라는 군 생활 동안 자격증 하나도 따지 않았던 나는 걔한테서 왠지 모를 부러움과 심지어 존경심까지 들게 됐다. 군 생활한다고 공부 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다. 자기가 공부건 운동이건 무엇이든지 하고 싶다면 시간 내서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 자신이 그냥 ’군 생활 동안 공부 할 시간이 어딨고 자격증 딸 시간이 어딨어 그냥 전역할 때 별 탈 없이 나오는 게 군 생활 잘 한거지’ 라는 정말 비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 자신이 비참했다. 이렇게 비참하게 군 생활을 끝낼 순 없었다. 남은 6개월 동안에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뭔가를 남기고 나가야된다. 이런 목표가 그 동기와의 전화 한 통 때문에 생기게 되었다. 뭘 남기는 게 좋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토익? 토플? 컴활? 한자???!!’ 한자가 문득 생각났다. 한자는 정말이지 지금도 마음 속 한 켠에 응어리가 새카맣게 남아있다. 그것도 2급!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눈높이한자로 처음 한자를 재미 붙였는데 7급부터 4급II 까지 탄탄대로 한 번의 불합격 없이 딸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었던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2급을 바로 도전해보기로 했는데 고2까지 3년동안 5,6번 시험을 쳤는데 그때마다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었다. 화도 나고 내 자신이 답답하고 의욕도 상실 돼서 그때 이후로 한자포기선언을 하고 말았다. (고3 수능공부도 해야되고 해서..) 그런 한자2급을 따지 못하고 포기했던 응어리가 가슴 속에서 다시 한 번 스멀스멀 올라오는게 ‘이번에 따서 나 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보내줘!’ 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3년 동안 고배를 마셨던 일이 떠올라 잠시 울컥한 나는 눈물을 훔치고 결심을 내렸다. ‘그래! 이번에 한자2급 도전해 보는거야!’

일단 시험날짜가 언제인지 알아봐야했다. 한자어문회는 8월부터 시작이고 다음 시험은 11월 14일이다. 한 달만에 2급따기는 무리인 것 같아서 널널하게 11월에 치기로 했다.

일정도 생각해놨겠다. 이제 공부해서 합격만 하면 되는거다!

 

 

공부

 

우선 휴가 나가서 책을 샀다. 한자어문회주관으로 만든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그리고 같은 주관인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기출·예상문제집’ 2권을 사서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앞부분에 있는 2급 배정한자를 ‘ㄱ’자부터 'ㅎ'자 까지 그냥 달달 외웠다. 외울 때는 각 한자마다 설명 되어있는 뜻풀이 보다 앞에 10장쯤 되는 ‘2급 배정한자’ 이걸 달달 외우는 게 훨씬 단순하면서도 뜻풀이 보면서 외우는 것 보다 7~10배는 훨씬 빨리 외워진다. 그 이유가 예를 들어 집 가(家)자를 외울려고 할 때 배정 한자에서는 ‘집(갓머리(宀☞집, 집 안)部)안에서 돼지(豕)를 기른다는 뜻을 합(合)하여 '집'을 뜻함’ 대충 이런 식으로 한자를 풀이 할 것이다. 쉽게 외워지는 것 같지만 이런 설명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그냥 무식하게 집 가 = 家 이런 식으로 그냥 무식하게 외우는 게 훨씬 머리에 무리 없이 외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배정한자 부분을 찢어서 휴대하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했다.

외우다 보면 너무너무 헷갈리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옳을 가(可)자가

柯 軻 阿 何 河 荷.. 이런식으로 파생이 되는데 너무 비슷해서 외울 때마다 헷갈린다면 이것들만 따로 체크해놓고 수첩 등에 적어놔서 틈만 나면 외웠다. 한눈에 비슷한 글자들이 다 보이기 때문에 차이점이 잘 구분이 돼서 쉽게 외울 수 있었다. 외우다 보면 ‘이 글자는 아무리 봐도 안 외워진다’ 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문제를 풀 때마다 이 글자 때문에 자주 틀렸다. 이런 자 들은 우선 체크를 했다. 그리고 뜻풀이를 보면서 그 글자를 쉽게 이해했다. 뜻풀이는 뜻풀이를 보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도저히 안 외워지는 자 가 있을 때마다 집어봤다.

배정한자를 거의 100% 외웠다고 생각했을 때 기출·예상문제를 풀어봤다. 한자의 훈과 음 쓰기와 한자어의 훈음쓰기 이 두 파트가 총 72문제인데 거기서 적어도 한,두문제 틀려야지 다음 부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틀린 문제는 따로 적어놔서 또 외웠다. 이렇게 따로 적어놔서 외우는 게 도움이 크다. 다음부분은 사자성어, 동의어, 반의어인데 이것 역시 아예 찢어서 스템플러에 찍어서 틈틈이 봤다. (이 때쯤이면 배정한자는 모르는 부분 체크한 것만 외웠다.)그리고 이것 역시 100% 외웠다고 생각하면 기출·예상문제를 풀어보는데 그러면 적어도 훈음쓰기와 훈과 음쓰기 그리고 사자성어 동의어 반의어 다 합하면 5개에서 7개는 틀렸었다. 이제 그 틀린 부분을 또 따로 수첩같은데 적어뒀다. 그렇게 하루에 2~3번 풀어봤다. 그리고 풀어보면서 틀린 모든 것들을 수첩에 적고 틈틈이 외우면 다음 번에 틀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한글로 되어있는 단어를 한자로 바꾸는 부분 이건 상당히 까다로웠다. 예를 들면 부부에서 부 자가 夫인지 父인지 헷갈렸다. 문제를 풀다보면 이런 것 외에도 듣기 생소한 단어들을 한자로 바꾸라는 것도 있어서 어렵고 헷갈리고 난리이다. 이 부분은 그냥 소신껏 한 번 풀어보고 틀린 것들은 따로 적어놔서 무식하게 다 외우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학교 - 學校.. 이런 식으로 쭉 써서 외웠다. 적다보면 분명히 시험에 나오는 단어가 있고 그게 차츰 많아지면서 동시에 맞는 양도 많아지는 걸 보면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 졌었다. 장음 단음 문제는 솔직히 찍었다. 배정한자 외울 때 이 것 까지 같이 외우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객관식이니까 그냥 같은 숫자로 쭉 찍었는데 찍으면 분명 하나는 맞고 운 좋으면 두 개는 맞았다. 약어는 맨 마지막에 외웠다. (어느 정도 점수가 탄탄해지고 웬만한 실수 안한다 싶었을 때) 양이 작아서 다 외우길 추천하는데 시험 날짜가 임박해졌고 아직 점수가 배정한자도 완벽하게 외우지 않았다면 차라리 배정한자를 굳히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능력따라 시간여유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하루 1~2회 많게는 3회 정도 풀어봤다. 반드시 풀어본 다음에 틀린 문제는 무조건 수첩에 적고 틈틈이 암기! 틀린문제가 또 틀리지 않도록 하기위해선 이방법이 최고인 것 같다. 필자는 강박증이라고 할 정도로 한자2급과 함께했는데 그냥 시간 날 때마다 공부했다. 주말엔 기본이고 밥 먹으러 이동할 때 잠 안올 때 후레시 켜들고 혼자 외워대고 이동시에는 한자수첩이 내 몸과 항상 하나였었다. 심지어 한자시험이 토요일이었는데 금토일요일에 외박을 나가서 금요일,토요일에도 한자공부를 했었는데 외박까지 나가서도 이래야하나 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 해서라도 따야지 외박 때 공부하고 한자2급 딴다면 그 보람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기쁠 거란 생각에 그리고 외박 때 공부한 결과가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것 같다. D-day 4시간 전부터는 문제 풀어서 다른 것들이 입력되는 것 보다 그냥 외운 것만이라도 확실히 하자라는 심정으로 한자수첩만 쫙 훑어봤다. 시험장 내에 들어갔을 때까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봤다.

 

 

시험

 

문제지를 받자마자 1번부터 미친 듯이 풀어재꼈다. 모르는 문제 애매한 문제 5초 고민하고 바로 넘겨버렸다. 순식간에 다 풀렸다. 그리고 빈 공간을 봤는데 3분의1이 비어져 있었다. 심호흡 후 다시 한 번 집중하고 1번 문제부터 빈 공간을 하나하나 채워 넘겼다. 문제 푸는동안 내가 적은 것 중 조금이라도 틀릴만한 꼬투리가 생면 망설임 없이 화이트로 수정했다. 진짜 기억안나는 거 빼고 다 푸니 6문제가 남았다. 일단 6문제 빼고 나머지는 다 확실히 맞게 적었는지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쭉 훑어봤는데 실수로 적은 게 4문제가 있었다. 점검 안했다면 4점이 날아갔다. 비록 못 푼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점검은 필수이다. 후딱 고치고 시간을 보니 10분정도가 남았다. 초집중에 집중을 겸하면 기억 안나는게 없다. 한 문제에 6분정도를 투자하니까 2문제가 풀렸다. 찝찝한 기분으로 4문제를 남겨두고 시험장을 벗어났다. 그래도 집중하니까 안되는 게 없다는 걸 이 2문제가 보여줬는데 포기하지않고 2문제나 풀었다는거에 내 자신이 참 대견했다. 느낌 좋았다. 그러나 발표 때 까진 아무 말 안하기로 했다. 괜히 느낌 좋았다니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니 하고 떠벌리다가 떨어지면 그만한 창피가 없기 때문이다. 시험결과가 정확히 한 달 후인 12월 13일이다. 그 때 동안 합격발표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정말이지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다.

 

 

합격발표

 

2010년 12월 13일. 이 날을 위해 꼬박 한 달을 기다렸다. 민간인이었으면 13일 밤12시가 되자마자 인터넷으로 결과를 알아봤을 건데 지금은 군인이고 취침시간도 오후 10시 인지라 13일이 되더라도 오전과업하고 점심식사하고 시간 남을 때 컴퓨터 사용을 해야했다. 그 때가 아마 정신적 고통과 긴장이 최고봉에 달했을 거다. 점심식사시간 되자마자 사이버지식정보방으로 달려가서 결과를 알아봤는데.. 이럴수가.. 합격!! 내..내가 진짜 합격?!!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혼자 박수치고 고함치고 난리가 아니었다. 역시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른다더니 아 진짜.. 여태까지 군대서 공부 했던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크윽... 후임들한테도 자랑했다. 축하해줬고 부러워했다. 후임 두 명이 한자2급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내가 2급 따면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떨어지면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내년에 같이 또 공부하자고 웃으면서 말했는데 당당하게 가르쳐 줘도 될 것 같다. 우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내무실 애들한테도 말했다. 그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다. 특히 어머니께서 가슴 졸이며 합격을 바라고 계셨는데 이번 합격으로 십년묵은 체중이 빠져나간 거 같다며 기뻐해주셨다. 그리고 온 동네방네 자랑을 해주셨다. 어머니께서 기뻐하시는 걸 보니 나도 참 내 자신이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합격 후 깨달음

 

앞에서도 말했지만 군대서 원하면 누구나 공부 할 수 있고 자격증도 딸 수 있는 데 군복무 2년 동안 아무 얻은 것 없이 그냥 전역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난 이런 2년이 싫었다. 뭘 하나라도 얻고 만다라는 맘으로 공부했더니 결국 한자2급을 따냈고 내 꿈은 이루어졌다. 전역 전에 뭘 하나 해내고 나갔다는 점에서 한자2급 자격증은 나에게 뜻 깊은 자격증이다. 이제 앞으로 제대해서도 이런 목표, 열정,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떤 난관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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