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제의 대운하 건설
수황(隨皇) 양제(煬帝) 양광(楊廣)은 수나라의 임금 자리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독선적인 성격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타냈다. 그는 자신이 황제로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양제는 605년에 1백만명이 넘는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동도(東都) 낙양(洛陽)을 세롭게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토목공사는 규모가 아주 방대했다. 매달 백성들에게 강남에서 희귀한 돌과 재료를 날라오게 했다. 목재는 강서로부터 운반해왔는데 나무기둥 한 대를 끄는 데만 해도 2천명의 인부가 있어야 했다. 나무기둥 전부를 낙양까지 가져오려면 수십만 명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부가 지쳐 쓰러지고 사고로 죽기까지 하였다. 농번기(農繁期)에도 부역(賦役)에 동원하고 각종 세금을 부과하여 고혈을 쥐어짜자 여기저기에서 백성들의 원성이 드높았다. 그러나 양제는 백성들의 숱한 희생에도 만족할 줄을 몰랐다. 그는 낙양 서쪽에 서원(西圓)이라고 하는 큰 화원을 수축하게 했다. 서원은 그 둘레가 자그마치 2백리였고, 그 안에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호수 한가운데에 높이가 백여자 되는 섬을 세 개나 만들었다. 섬에는 절묘한 형상을 한 정자와 누각을 세웠다.
호수 북쪽에는 굽이굽이 흘러 호수로 들어오는 용진거(龍進渠)라는 물도랑이 있었고, 그 용진거를 따라 별장이 열여섯 채나 지어졌다. 모두 황제의 첩들이 관리하는 이 별장은 저마다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서원은 짙은 봄기운이 자욱하도록 장식해놓았다. 가을에 궁전의 나뭇잎이 떨어지면 고운 비단으로 꽃잎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달아놓았고, 겨울에 양제가 이곳에 오면 못의 얼음을 깎아내고 비단으로 연꽃과 연꽃잎을 만들어 물 위에 띄웠다. 또 원내에는 여러가지 기이한 조류와 짐승들을 길러서 황제가 그것들을 구경도 하고 사냥도 할 수 있게 했다. 밤이면 양제는 늘 수천 명의 궁녀들을 서원으로 데리고 가서 풍악을 울리고 술을 마시면서 달구경을 했다.
양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운하(大運河) 계획을 발표했다. 남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남북간의 물자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진행하는 공사라고 밝혔지만 동도의 역사(役事)로 인해 부역과 조세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있어 대운하 건설은 재난이나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 통제거(通齊渠)가 개통되었다. 통제거는 낙양 서원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회하의 산양(山陽)에 이르러 낙수·황하·회하와 합수된 다음 춘추시대 오국(吳國)에서 개통한 한구(限勾)와 만나 장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구간의 공사는 그 해 가을에 완공되었다. 운하의 수면 너비는 40보(步)였고 운하 양안에 대통로까지 만들었다. 대통로 양쪽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낙양에서 강도(江都)까지의 2천여 리 길에 이 나무들이 무성했다. 운하의 언덕에는 두 개의 역사(歷舍)를 지날 때마다 황제가 휴식할 수 있도록 재궁(齋宮)을 한 채씩 지었는데 낙양과 강도 사이에 무려 40여 곳이나 세워졌다.
이어 또 남쪽과 북쪽 두 방향으로도 대운하를 뻗게 했다. 북쪽으로 뻗은 운하는 영제거(永齊渠)라고 했다. 심수(沁水)를 황하(黃河)로 끌어들인 영제거는 탁군(涿郡)까지 닿았다. 장강 남쪽에 뺀 운하는 강남하(江南河)라고 했다. 경구(京口)로부터 시작한 강남하는 장강의 물을 전당강변의 여항(余杭)까지 들어가게 했다. 그 길이가 4·5천리에 이르며 해하, 황하, 장강, 전당강을 이어놓은 이 대운하는 6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전부 완성되었다.
남북 지역의 물류유통과 교통을 편리하게 해준 대운하는 남북의 경제, 문화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운하의 양안에는 번화한 도시들이 많이 들어섰다.
이 거대한 공사에는 무려 1억 5천만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그때 전국의 호수가 8백 90만호였으니 호당 평균 20명의 노동력이 동원된 셈이 된다. 통제거를 구축하는 데만 해도 1백여만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는데 그 중에서 3분의 2가 공사장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양제는 운하가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배를 만들게 했다. 그는 605년 가을에 그 배로 숱한 수행인원을 데리고 강도(江都)에 가서 유람했다. 양제가 타는 배를 용주(龍舟)라고 했다. 길이가 2백자나 되며 4층으로 된 이 배에는 제일 위층에 정전(正殿)과 내전(內殿) 그리고 동서 조당(朝堂)이 있었고 중간의 두 층에는 환관이나 내시들이 드는 방이 있었다. 배를 끄는 사람을 전각(殿脚)이라고 했는데 용주를 움직이는 전각이 1천여명에 달했다. 그 뒤로 비빈과 대신들, 승려, 도사들을 태운 수천 척의 화려한 배들이 뒤를 따랐는데, 그 행렬의 길이가 2백여 리에 달하고, 운하 양안에는 기병대가 배를 호위하며 줄지어 따랐다. 호위병들이 펄럭이는 깃발은 또 다른 수로를 만들었고, 색색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양제는 낮에는 배 위에서 마음껏 노닐며 주위의 경관을 감상하고 밤이 되면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연회를 베풀어 즐겼다. 흥을 돋우기 위한 북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져 나가면 주변 오백여리 안에 사는 백성들은 그 지방의 진귀한 음식을 가져다 바쳐야 했다. 백성들은 이로 인해 가산을 탕진했지만 음식은 양제의 일행이 배불리 먹고 난 뒤에도 남아서 떠날 때 구덩이를 파고 묻어야만 했다.
완성된 수로를 직접 눈으로 살피고 지방의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직접 대운하를 따라 순행(巡幸)에 나선 양제는 호화로운 유람을 즐기며 통제거를 지나 한구의 초입인 산양 부근에 이르렀다. 그런데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선도선(先導船)이 갑자기 멈추어 서자 이에 자연히 뒤를 따르던 배들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용주가 멈추어 서자 한참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양제가 의아하여 물었다.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을 텐데, 어찌하여 배를 세우느냐?”
대작을 하고 있던 대신들 역시 연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제의 옆에 서 있던 시위장이 밖으로 나가 선도선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돌아와서 아뢰었다.
“수로의 깊이가 계획보다 얕아서 선체가 큰 용주는 지날 수 없다 하옵니다.”
그러자 술기운으로 붉었던 양제의 얼굴이 노기로 인해 검붉은 빛으로 변했다.
“아니, 짐이 지시한 일을 어찌 이리도 소흘히 할 수 있단 말이냐? 이는 곧 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이러고도 저놈들이 정녕 살아남기를 바란단 말이냐?”
양제는 자신의 명령을 어기는 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엄격했다.
이때 양소(楊素)가 황급히 나섰다.
“이는 필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감히 저들이 폐하를 능멸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간의 공사 책임을 맡고 있는 양산태수(陽山太守)는 그의 조카인 양각(楊覺)이었다. 양제의 포악하고 충동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양소로서는 양각의 신상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양제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지금 전국에서는 짐의 명에 의해 역사에 길이 남을 대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저놈들처럼 짐의 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지역에서 짐의 권위가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 이번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다면 짐의 의지가 천하에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으리라.”
명령을 받고 출동했던 금위병들에 의해 양산태수를 비롯한 수십명의 아전들이 끌려 왔다.
양제 앞에 무릎 꿇려진 양각의 얼굴은 핏기라곤 찾을 수 없을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네놈이 감히 짐의 명을 우습게 여기고도 살기를 바랐단 말이냐?”
양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양각은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소신이 감히 손톱만큼이라고 폐하를 능멸할 마음을 먹었겠습니까? 이는 수로 설계상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일입니다. 소신이 감독의 책임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는 전적으로 공부(工部)에서 파견된 기술 감독관의 일입니다.”
이 당시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대운하의 공사를 위해서 공부 소속의 관리들과 차출된 장인들이 각 지방에 파견되어 있었다. 금위병들에게 끌려온 무리들 속에는 이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도 섞여 있었다.
“저들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는 이번 역사에 참여했던 자들 모두의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한 지방을 맡고 있는 관장으로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네놈의 뻔뻔함은 정말 참기 어렵구나.”
양제는 도열해 있는 금위병들에게 명령했다.
“여봐라. 저놈을 비롯해서 이번 공사와 관계가 있는 자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산 채로 수장(水葬)시키도록 하라. 내 이번 일을 만천하에 본보기로 삼겠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신들은 경악으로 인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이를 말리지 못했다.
이리하여 양제의 명령에 따라 양산태수를 비롯해서 중앙에서 파견된 감독관과 장인들, 그리고 수로를 만드는 부역에 동원됐던 백성들까지 수만에 이르는 목숨이 수로 밑바닥에 수장되었다. 이에 양산 지역에서는 통곡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각지의 백성들은 양제의 흉폭함과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이 사건 이후로, 양제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고 있던 백성들조차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것은 백성들에게 있어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다. 양제의 광기는 이미 고삐를 풀고 내달리는 야생마 그 자체였다. 양제는 민심의 동향과는 상관없이 고구려와의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