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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의 짧은 일대기입니다.

서승원 |2011.02.22 14:46
조회 74 |추천 0

일단 저희 가족은 어머니,형,저 이렇게 세명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5학년 겨울방학때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서 이렇게 가족 구성원이 세명이 됐네요.

구아파트 13평에서 살고있던 저희는 아버지의 폭력과 바람 때문에 참다참다 못견딘 어머니가 결국엔 이혼을 택하신거죠.. 어머니가 물어보셨었어요. "너희는 엄마 따라갈래. 아니면 아빠 따라갈래?" 그 때 저희 형제는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처음에 저희 형은 망설였습니다. 아버지냐. 어머니냐. 형은 저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머니를 택했죠. 그리고 형을 쳐다봤습니다. 형도 바로 어머니를 택하더군요.

어머니가 더 좋았고 어머니가 안타까웠고 어머니와 함께하고싶어서였죠. 그때부터 이혼절차가 밟아지면서 집안 분위기는 항상 냉기가 부는 것처럼 차가웠습니다. 어느정도 이혼절차가 진행되고 난 후에 어머니, 형, 저는 일단 집을 피해 다른 곳에서 잠깐 묵기위해 집에서 10~15분 떨어진 주택가로 잠깐 들어갔습니다. 일단 거길 들어갈때 어머니께서 최대한 빨리 가시려고 많이 챙기지 못하고 저희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냥 옷가지 몇개 이정도. 그리고 아버지가 집에 없을 시간대에 어머니가 들어가서 밥통이나 반찬거리 이런것들을 다시 옮기시기를 몇번하셨었죠. 그리고 저희 형제는 거기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 주택의 2층에서 지냈던걸로 기억은 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네요. 거긴 꽤 좁았습니다 그래도 3명이서 누워서 자기에 부족하진 않았어요 처음엔 새집 같아서 뭔가 신기하고 그러기도 했는데 점차 힘들어지더군요. 집보다 더 멀어서 등하교도 힘들뿐더러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감등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 설키더군요 .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이혼 절차가 끝난후 저희는 다시 본래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으로 오니까 너무 좋더군요 등하교도 문제 없어졌을뿐더러

원래의 안식처로 돌아왔으니까요 . 그런데 이제 그 집엔 더이상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계시지 않은게 아니죠. 더이상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제 저희 셋과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유대에서 벗어났으니까요.

그렇게 셋이서 지내며 어머니는 힘들어하셨습니다. 학비걱정, 각종 세금. 전기세 등등 갖가지 생활비, 그리고 아버지와의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가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보험설계사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택시를 하시긴하셨지만 월급의 절반도 어머니께 갖다주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맞벌이를 어쩔수 없이 하게 되신겁니다. 이젠 그마저도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셔야 하니까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어떻게든 남들 자식들보다 좋게 키우고 잘해주고싶어하셔서 식사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 식사 차려주고 다시 일하러 나가시고 혹여나 밥없으면 못먹을까 밥통에 수북하게 만들어놓은 밥과 대용량의 냄비에 국 등. 하지만 일이 바쁘실때는 형제끼리 밥먹는 일도 수도없이 많았습니다. 대충 밥과 김치, 국 이런식으로 끼니를 떼우거나 라면,김치 또는 밥에 케찹을 비벼서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는 어머니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왜냐면 의지할 사람이 저희형제한텐 어머니밖에 없었기때문이죠.

그러다가 가정주부와 사회인. 두가지를 병행하느라 힘든날(아까 말한 학비걱정,세금,각종생활비,아버지와의 이혼...이런 것들또한 어머니를 힘들게 만드셨습니다.)이면 여지없이 술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도 급격히 많아졌습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신 어머니는 항상 우셨습니다.

한참동안 울고계신 어머니 곁을 가면 항상 아버지 욕을 하셨습니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습니다. 아빠가 뭐길래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느냐고.. 그렇게 아버지를 욕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형제들에게 자꾸만 미안하다고 합니다. 왜 미안하다고 이유는 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그러고는 계속 우시다 지치시면 잠에 들었습니다.

술마시는 날이 많아지면서 저희한테 푸념늘어놓는 날도 많아졌고,

저희 셋이서 운적도 많았습니다.

어떤때는 지인들과 술을 마셨는데 많이 취하신 어머니를 지인들이

혼자서 집에 보낸겁니다. 전화한통화만 저희 형제한테 주시고는..

그리고 그 전화를 받자마자 집 밖으로 형이 뛰어나가서 어머니 찾고 오겠다고 나갔습니다. 어찌어찌 어머니를 발견하고 형이 집으로 데려와서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지인한테 다시 전화했습니다. 형은 우는 목소리로 어떻게 이렇게 취한 상태로 어머니를 혼자 보내실수 있냐며 따졌습니다. 거기서도 어이가 없단 듯이 대꾸를 한것같습니다. 그때 울먹거리며 너무 화가난채로 따졌던 형이 기억나네요. 어머니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계셨구요.

세상에 어느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화나지 않을까요

쌩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 지인분이.

그리고 중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는 생활비에 더욱더

쪼들리게 되셨습니다.

학비,급식비,책값,학원비 등등 (남들이 한달에 꼬박 받는다는 용돈은 생각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용돈 받는 것 자체가 죄송했거든요.)

형은 학원을 다니지 못했지만 저는 제가 너무 다니고 싶어해서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매달 나오는 학원비가 나오는 날이면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몇번씩 어머니는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이번 달만 쉬고 다음 달부터 다니지 않을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그냥 고개 숙이며 묵묵부답이었죠. 왜냐면 다니다가 중간에 안다니면 친구들이 왜 갑자기 그만뒀는지 궁금해할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계속 학원에서 보충도 하고싶었고요.

이런 말을 하셔도 힘들지만 학원비는 어떻게든 충당해주셨습니다.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받을때마다 죄송하더군요...

사정을 아시는 담임선생님들도 이것저것 장학금이 나올만한 것도 알려주시며 어떻게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명문고로 들어갔는데 담임선생님,가족 모두 축하해줬습니다. 하지만 집안형편때문에 실업계로 가서 기술을 배울까 생각도 했던 저라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입학은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중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값과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먹어야 되는 석식값, 학교 통학을 위한 스쿨버스 값까지 학비가 장난 아니게 들어 학원은 중3 이후로 바로 끈어버렸습니다. 사교육비 안들이는게 그나마 어머니 부담 덜어드리는 길이였으니까요. 그리고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근로장학생을 신청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관리,정리 하면서 학비를 조금이나마 감면 받을 수 있는 제도였죠.

항상 청소시간대가 되면 도서관이 제 청소구역이였습니다. 친구들이 너만 왜 도서관으로 청소가냐고 하면 그냥 나도 모르겠다며 어물쩡 넘겼습니다. 예.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근로장학생이라는게.. 남들은 이런 제도도 모르고 부모님이 꼬박꼬박 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녀서 밑보이기 싫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어머니가 술을 줄이시긴 하셨지만 매달 여기저기서 나오는 생활비,학비, 그나마 챙겨줘야 할 자식들 용돈을 생각하시면 한숨만 내뱉으셨습니다. 그래서 중고등생때 돈 얘기만 나오면 듣기 싫었습니다. 돈 없다는게 너무 싫었거든요.

처음 반이 정해지고 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뭐때문에 천원에서 2천원 사이의 돈을 가지고 오라고했었습니다.

그돈이라도 어머니께 달라고하기 뭐해서 돼지저금통에 있던 백원짜리들과 십원짜리들을 꺼내 그 돈을 만들었지만 참...내기가 민망할것 같더군요. 그래도 그다음날 돈을 걷는 친구한테 돈을 내는데 '이거 어떻게해'라며 그냥 웃더군요. 저라도 당황했을 겁니다.(하지만 지금은 좋은 친구사이입니다.)

몇번 고등학교 친구들이 신발을 사는데 골라달라고 인터넷을 뒤지면 저로서는 이해가 안됐습니다. 신발 가격이 죄다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더군요. 항상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돈이면 그냥 집앞 신발가게에서 몇 켤레 더 구입할 수 있겠네'라고요.

학교 자체에서 구입해오라는 책 말고는 쓴적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구입하라는 책값도 간당간당히 샀었거든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내고 수능을 친뒤 남들처럼 인서울해서 서울 대학을 다니고 싶었지만 자취비 등록비 이런 것들때매 엄두조차 나지 않아 그냥 국립대로 들어가기로 하고 지원을 했습니다. 수능을 마치자마자 남들 수능 스트레스 날린다고 놀기 바쁠때 저는 신문을 가지고 집에와서 한번도 해본적 없던 알바자리를 찾았습니다. 왜냐면 아직 입학은 하지 않았지만 등록금이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국립대라 하더라도 거의 200에 가까운 등록비가 드니까요. 아직 성인이 안됐기 때문에 할만한 알바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전단지같은 걸 돌렸죠. 근데 겨울이라 너무 춥고 집과도 멀어서 오래는 못하겠더군요. 그리고 다른 알바자리로 갔습니다. 시급도 괜찮은데다 풀타임으로 뛰면 짭짤하겠더군요. 그런데 가게가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한달정도 하고 그만두게됐습니다. 인건비가 오히려 더 나가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렇게 여차여차 돈을 어느정도 벌고 등록비에 보태려고 하는데 국립대에 지원했던 2개 모든 과가 약간의 장학금은 물론 다른 대학교에 붙은 과는 전액 장학금이 나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인서울은 못했어도 장학금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2개중 가고싶던 과가 장학금을 제외해도 꽤나 비싼 등록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얘기를 했더니 일단은 등록비가 싼 과로 가고 나중에 전과나 복수전공 이런 걸 생각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왜냐면 일단 당장 있는 돈으로 등록비를 내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싫었지만

형편을 알기에 그쪽으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니까 알바한 돈 조금을 쪼개서 가방과 옷을 좀 샀습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최저가격순으로 해서...정말 질 구리더군요...)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고 1달 보름 후쯤에 다시 편의점 알바를 구했습니다. 학교에서 쓸 식사비 교통비 책값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었죠.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 11시에 가서 아침 8시까지(월,화,수,목,일) 하고 바로 학교로 갔습니다. 매일 이렇게 생활하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아침마다 안타까워하셨지만 이게 그나마 저에겐 최선이었습니다. 그렇게 1,2학기를 보내고 2009년 1월에 입대를 했습니다. 참..입대 날짜가 다가오면서 어머니께 괜한 짜증만 많이 부렸던거 같습니다. 입대 전날 어머니께서도 화가나셨는지 " 너는 왜 입대도 이제 얼마 안남았는데 엄마한테 따뜻한 말도 못하고 짜증만 부리냐"고 그냥 전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어머니한테 죄송했지만 말로는 안나오더군요. 친구와 같이 입대한다는 저를 끝끝내 따라가겠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저,친구2,형,어머니 이렇게 의정부로 향하는 버스를 저녁에 타고 숙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입대 당일 아침 부대찌개를 친구들한테도 어머니께서 사주시고 연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연병장에서 조교가 입대자들은 강당으로 모여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나팔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저하고 친구2명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강당을 향하고 있었죠. 그리고 한 10m 쯤 갔을때쯤 뒤를 돌아봤더니 절대 눈물 한방울 낼것 같지 않던 어머니가 정말 눈물샘이 마를만큼 펑펑 우시고 계셨습니다. 차마 오래는 볼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울수도 없기에 어머니를 보고 웃기만 했습니다. 못난자식 울고 있으면 더 슬퍼하실거 같아서요. 그리고는 다시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저것 신체검사를 마치고 사복들을 죄다 택배상자에 넣고 군복을 입는데 어색하더군요. 그리고 신병교육대대로 가서 설명절이라고 집에 3분동안 전화할 시간을 줬는데 콜렉트콜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근데 어머니는 절대로 콜렉트콜을 안받으십니다. 왜냐면 통화비가 수신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죠.ㅎㅎ 그걸 알고도 콜렉트콜로 전화를 했지만. 역시나 안받으셨습니다. 재시도도 안했습니다. 왜냐면 3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거든요. 그래서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도 물어보고 역시나 콜렉트콜을 안받는다고 어머니를 원망했죠.ㅎㅎ 형이 어머니가 사복들어있는 택배를 받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우셨다고 하니 가슴과 코가 찡하더군요. 그렇게 신병교육대대를 마치고 나머지 군생활도 잘 마무리하여 전역자가 됐습니다.

나오자마자 전 다시 알바자리를 구하기 시작했죠. 형편은 그대로였으니까요. 같이 전역한 친구가 공장으로 같이 가자고했는데 정말 단순노동이었습니다. 자석붙이고 풀붙이고 이런것들. 지루하기도하고 8~90%가 외국인 노동자여서 대화할 사람이라곤 친구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하지 못하고 알바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더니 며칠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월급이 일단 괜찮아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형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한테 무슨 안좋은 일 있냐고, 형한테 전화왔었어"라고요. 형은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니 혼자 술을 드셨는데 펑펑 우시는겁니다. 그때 손님도 많아서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바빴는데 울기만 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해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미안하다며 그냥 끈으셨습니다. 걱정이 태산이라 정말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사장님 말이 귀에도 안들어오더군요. 그래서 후문으로 나가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도 펑펑 우셨습니다. "그럼 좀 엄마 진정되고나면 얘기하자" 이러면서 끈고 10분정도 뒤에 다시 통화하고 끈고 다시하기를 몇번 반복하고 형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사기를 당하신거같애. 한 150?정도.." 그 말을 듣고 안도했습니다. 그나마 천만원이 아닌게 다행이었습니다. 150만원이면 제 월급으로 어느정도 메꿔드릴수 있기때문이죠.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일단은 푹자면서 쉬라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그렇게 좋아라하시던 보일러 대신 조금이라도 더 아끼시려고 온풍기를 꺼내놓으시고 주무셨습니다. 그냥 어머니가 귀엽다라고할까요 ㅎ 그냥 온풍기를 보면서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몇시간 자지않고 억지로 일어나 어머니께 정확한 사정을 들었습니다. 외삼촌 덕에 LED 대리점을 대출 받으며 냈는데 건축회사에서 150만원어치 샘플을 받고 부도가 났다는겁니다 컨테이너 박스에도 가보고 전화도 해봤지만 연결이 안된다는 겁니다.

증빙서류 이런 것 한장 받아놓지 않은 상태에서 샘플값 150만원이 달아난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서류조차 받아놓지 않았던 어머니는 경찰서에도 신고하지 않으시고 그냥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월급으로 어느정도 충당해주겠다고 하니 됐다고 하시지만 어느정도 표정이 피시길래 저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있을 어머니 생일에 맞춰 돈도 드리고 간만에 외식한번 하려고했는데 어머니가 먼저 돈이 필요하신것 같아 드렸더니 "힘들게 한달간 번돈 사라지는데 안씁쓸해?" 이러시길래 쿨하게 얘기했습니다. "난 돈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라 괜찮아ㅎㅎ"라구요. 쓸하다고 얘기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돈 안받으실걸 알기때문이었죠.

그런 일들이 지나고 얼마전 직장형이 자기가 아파서 보험으로 입원비 받았던 얘기를 하길래 원래 제가 항상 앓고 있던게 있어서 보험비를 받으며 싸게 해볼까하고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어머니가 보험 넣은지 얼마 안돼서 지금 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상태가 이런데 나보고 죽으라고?아들 죽으라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제 자신한테 너무 화가납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럼 우리 돈으로라도 진단 받자며 걱정말라고 그냥 계속 아들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전화로 반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니 신발장 바로 앞에 이 종이가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또 술을 마시셨더군요..

정말 방에 들어와서 계속 자책했습니다. 어머니가 심장이 약하셔서 장난으로라도 엄마 놀래키지 말라고하셨었는데...그리고 제가 유치원때부터 어머니가 갑상선이 안좋으셔서 지금까지도 약을 복용하는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저는 그렇게 맘아프게 했던 거였습니다.  "나는 엄마 맘 아프게 한 불효자식이다"라며 계속 욕했습니다.

그리고 방에서 저도 A4용지에 글을 썻습니다.

누가 못난 엄마냐고, 나는 O O O씨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고 본받아야될 엄마고, 우주최강의 엄마라고(좀 유치하죠?ㅎ) 맘아프게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요...

 

그다음 아침에 저희 부자는 그냥 그얘기에 대해선 아무말도 안했습니다. 서로 맘속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ㅎ 쑥쓰럽기도하지만요 ㅎ.

 

만약에라도 이 글을 어머니,형이 읽고 있다면~

 

사랑합니다 ! 나의 가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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