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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내귀에 도청장치

농구왕김타자 |2011.03.28 09:39
조회 2,503 |추천 11

"아직도 그런 미친놈이 있냐?"


철수의 말을 들은 진호의 반응은 그런 것이었다. 철수 역시 생각이 다르진 않았다.


"옛날에 왜 그런 녀석 있지 않았나?" 경수가 끼어들고 나섰다.


"누구?"


"왜 그 방송국 뉴스 하는데 뛰어들어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하고 소리친 새끼 있잖아."


"그래, 맞다. 기억난다."


"그 새끼가 그 짓하고는 정신병원에 끌려갔는데, 나중에 다 나았다고 퇴원했데. 그런데 퇴원하고 얼마 안돼서 방송국 복도에서 다시 잡혔대."


"하하. 정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뭐 다시 정신병원에 끌려갔겠지."


"너한테 메일 보낸 놈, 혹시 그 새끼 아냐?"


"그런가?"


사실은 일이 이렇게 된 것이었다. 철수가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가서 메일을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켰을 때였다. 편지함에 '잘 들어라!'라는 난데없는 제목의 편지가 와 있는 것이었다. 또 무슨 스팸 메일이려니 하고 그냥 지워버리려다가 실수로 제목을 클릭 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우스울 정도로 황당한 것이었다.

잘 들어라. 너의 머릿속에는 도청장치가 들어있다. 정확히 너의 왼쪽 귀 뒤쪽 두개골 아래 5센티 아랫부분에 장치는 들어있다. 이 도청장치를 통해서 나는 네가 무엇을 보는지, 네가 무엇을 듣는지,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 알 수가 있다. 너 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도청장치가 들어있다. 우리 모두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 감시되고 있다. 물론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90년대에 들어와서 이런 대대적인 감시 계획이 무산되면서 도청장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용지물로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최근 해킹을 통해서 그 프로그램을 다시 복원했다. 그리고 네가 나의 감시망에 들어왔다. 하하.

별 미친.


철수가 처음 생각한 것은 세상에 별 미친놈도 다 있다는 것이었다. 70년대 80년대에 안기부 같은 곳에 끌려가서 심하게 고문을 당한 사람들 중에 이런 피해망상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많이 정신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아직도 이런 미친놈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긴 아직까지도 전태일처럼 분신자살을 하는 노동자가 있는 판국이니, 알지 못하는 곳에서 고문을 당하고 미쳐버리는 사람이 한 둘쯤은 있을 수도 있지.


철수는 보낸 이의 이름을 확인했다.


아브락사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는 아이디였지만, 분명 제2의 '행운의 편지' 같은 것을 기획하는 녀석이겠거니 하고는 스팸메일로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 오늘, 진호와 경수를 만난 자리에서 철수는 농담처럼 말을 꺼냈다. 그리고 진호와 경수의 반응은 철수의 생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진호나 경수나 철수나 다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니 사람들이니까. 물론 진호의 경우는 둘과는 많이 다른 성격이기는 했다. 경수가 공부를 잘해서 떡하니 대기업에 들어가고, 철수가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해서 그럭저럭 돈을 벌고 있다고 하면, 진호는 아직까지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프로그래밍에 열을 올리는 아마추어 해커였다.


"진호 너의 전문가적 식견에 비춰볼 때, 인간의 뇌에 장치를 넣어서 그 사람의 인식을 모두 감시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철수는 농담처럼 물었다.


"글세? 뭐 기술의 진보가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 말이 되냐? 그게?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하겠냐?"


"하긴 그렇지?"


철수가 집에 돌아온 것은 밤이 어느 정도 깊었을 때였다. 철수는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일요일이라 딱히 중요한 메일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철수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메일함에는 아브락사스로부터 온 편지가 와 있었다.


분명히 스팸으로 처리했을 텐데.


철수는 혹시 어제 자신이 깜빡했나 싶어 생각을 해 보아도 분명히 어제 스팸메일로 처리를 했던 것 같았다. 철수는 '믿지 않는 다면 할 수 없지만'이라고 적힌 편지를 클릭했다.

그래, 믿지 않겠지. 네 친구 진호라는 녀석과 경수라는 녀석도 농담처럼 받아들이더군. 불쌍한 녀석들. 녀석들도 조만간 나의 감시망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네가 오늘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쁘다고 생각했던 여자는 그게 뭐냐? 네 녀석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낮다니 실망이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하마.

철수는 편지를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여자 이야기야 그냥 대충 추측해서 쓴 것이라고 해도 진호와 경수의 이름이 나왔을 때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거지? 혹시 나를 누군가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수는 슬그머니 창문 쪽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는 밖을 조심스럽게 내다보았다. 불꺼진 아파트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하는 자식이길래 이런 장난을 치는 거지?


철수는 아브락사스의 편지를 순전히 장난으로 취급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왼쪽 뒷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보았다. 그리고는 순간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졌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이런 장난에 말려들다니.


철수는 메일을 다시 스팸으로 처리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젠장 그 이상한 메일이 괜히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는군.


철수는 한참을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방안의 불을 켰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분명히 범인은 진호와 경수 둘 중에 하나야. 그래 둘 중의 한 명이 분명히 장난을 친 거야. 하지만 왜 녀석들이 그런 장난을 치지? 아니, 진호 녀석이군. 녀석이 오늘 내 말을 듣고 괜한 장난끼가 발동한 거야. 녀석이 내 메일 주소를 아니까 해킹을 해서 아브락사스란 이름으로 이런 메일을 보낸 거야.


철수는 전화기를 들어 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진호 녀석의 생활 리듬을 생각해볼 때 자고있을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여보세요?"


"진호 네 짓이지?" 철수는 다짜고짜 진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진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녀석 딱 잡아떼기는. 어려서부터 이런 장난을 잘치는 녀석이었지.


"아브락사스 말야. 도청장치. 다 알어, 임마."


"알긴 뭘 안단 말야?"


"메일 내가 보낸 거 아냐?"


"무슨 메일? 오늘 네가 말했던 그 메일?"


"그거 말고 오늘 저녁에 보낸 거 말야. 네가 보낸 거 아냐?"


"오늘 또 메일이 왔어?"


"정말 너 아냐?"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네. 도대체 무슨 메일이 왔길래 그래?"


"아니, 난 또 네가 장난으로 그런 메일 보낸 줄 알고. 메일에 진호 내 이름하고 경수 이름이 적혀있더라고. 그걸 누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서 난 또 네가 오늘 낮에 내 이야기 듣고 장난끼 발동해서 그런 메일 보낸 줄 알았지."


"메일에 나하고 경수 만난 것까지 적혀 있다구?"


"응.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까지 적혀있으니까 섬뜩해지더라구.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네가 혹시 해킹으로 장난해서 장난친 거 아닌가 싶어서. 정말 너 아냐?"


"진짜 난 아니거든. 경수에게 전화해 봐라. 혹시 녀석 아닌지."


"설마 경수가 그럴려구. 내가 녀석 성격을 아는데. 어쨌든 미안하다. 자고 있었던 거 아니지?"


"응. 자는 건 아니구. 막 잘려는 참이었어."


"그래. 잘 자라. 미안하다."


"아냐."


전화를 끊고 나서도 철수는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철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회사로 나갔다.


일찍 나서니까 좋군. 지하철도 안 막히고. 사람이 조금만 부지런하면 편하게 사는 건데.


철수는 피곤한 얼굴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철수 외에는 아직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늘 월요병에 시달려 월요일에 지각을 하는 일이 잦은 철수가 이렇게 일찍 회사에 출근을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철수가 가방을 자리에 놓고 커피나 한 잔 마실까 해서 자판기가 있는 복도로 나오자 마침 경리를 보고 있는 미경씨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머. 철수씨 벌써 출근하신 거예요?"


"아, 네. 미경씨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이렇게 일찍 출근을 하시고."


"저야 늘 이 시간에 출근하는 걸요. 근데 어쩐 일이세요? 벌써 출근을 하시고. 게다가 오늘 월요일인데."


철수는 미경의 말에 머쓱해졌다. 하긴 다들 철수를 지각 대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 사실 어젯밤에 일이 있어서 잠을 못 잤거든요. 새벽에 잠청하기 그렇고 해서 그냥 지하철 타고 출근했어요."


"어머. 그럼 피곤하시겠다."


"아뇨. 괜찮아요."


미경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서 철수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카페인이 들어가니 피곤이 좀 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철수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자신의 컴퓨터를 켰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군.


철수는 자신의 메일함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아브락사스의 메일을 보고는 거의 몸이 굳을 지경이었다. 철수는 떨리는 손으로 제목을 클릭했다.

그렇게 의심이 많아서야. 괜히 친구까지 의심을 하고, 사람이 그러면 못쓰지. 그러니 잠도 못 자고 아침부터 피곤하기만 하고 그러지. 그나저나 제발 지각 좀 하지 말고 부지런하게 살라구. 그럼 오늘 하루도 네 생활을 엿보며 재미있게 지내야겠군. 안녕.

철수는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걸리면 죽여버려야지. 철수는 메일 운영자에게 메일을 썼다. 이 아브락사스라는 녀석의 개인 정보를 좀 알려달라. 녀석이 이러이러한 장난을 쳐서 사생활에 심각한 침해를 입고 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철수는 메일을 쓰고 보니 자신이 무슨 유명 연예인이나 되어서 누군가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는 그런 투의 메일인 것 같아서 좀 우습게 생각이 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신문에서 우습게 읽고 넘어가는 연예인 스토킹 문제가 피해 연예인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일지 공감이 갔다.


그날 하루 내내 철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브락사스의 메일을 생각하느라고 모든 일이 실수 투성이였다. 사람들에게는 어젯밤 한 숨도 자지 못해 피곤해서 그러노라고 둘러대었지만, 실은 정신은 아주 멀쩡했다. 오히려 아브락사스의 메일 문제 때문에 내내 긴장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답신이 와 있었다.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이 있기 전에는 가입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철수는 낙담하여 그만 아브락사스의 일은 잊어버리고 넘어갈까 생각을 했다. 설마 또 메일이 오진 않겠지. 그리고 그 때 다시 아브락사스의 메일이 왔다. 철수는 다급히 메일을 열었다.

불쌍한 녀석. 그렇게 쉽게 나를 잡을 생각을 하다니. 내가 너에게 이런 큰 비밀을 가르쳐주는 것도 은혜를 베푸는 거란 걸 모르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그런 자들에 비해서 최소한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아는 넌 축복 받은 거라구. 보아하니 오늘밤도 잠을 자긴 그른 것 같군. 하지만 잠을 자려고 노력해 보라구. 그리고 날 잡을 생각은 하지마. 내 정체를 알아봐야 너만 더 혼란스러울 테니까.

철수는 이제 화가 나기까지 했다. 이 자식 무슨 심보로 이런 장난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잡고 말리라.


그날 밤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철수는 아침 일찍 회사 대신 경찰서로 찾아갔다. 경찰에 신고를 해서라도 녀석을 꼭 잡고 싶었다.


"그러니까 뇌 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는 메일이 왔다는 말이죠?"


"네, 그 아브락사스라는 녀석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다니까요. 그리고는 놀리듯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는 겁니다. 제발 좀 그 녀석을 잡아주십시오."


경찰은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다 말고 손을 멈추고 철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선생님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는 그런 말이군요?"


철수를 쳐다보는 경찰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니, 제 말은 제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는 게 아니구요. 그 녀석이 그렇게 말을 하고, 진짜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듯이 메일을 통해 그런걸 적어서 보낸다니까. 제가 만난 사람들, 제가 생각하는 것, 제가 한 일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선생님 머릿속에 그 놈이 도청장치를 심어놓았다는 거 아닙니까?"


"아 참. 제 말을 귓등으로 들으시나? 제가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게 아니고 그 아브락사스라는 놈이 그런 짓을 하고 있을 거라니까요."


"글쎄요. 저희도 일단 수사에 착수하려면 뭔가 범행에 신빙성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바가 워낙에 믿기가 어려운 그런 말이라서 참."


경찰은 난감하다는 듯 과장된 몸짓을 했지만, 그가 철수의 말을 전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철수는 자신만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긴 이런 말을 믿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철수는 경찰서에 앉아있는 자신이 괜시리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철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은 나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있습니다."


"네."


철수는 수사과 사무실을 나와서 그대로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이틀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발걸음으로 휘적휘적 경찰서를 나오자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이제 어디다가 하소연을 해야 하나. 철수는 눈앞이 캄캄했다.


회사로 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철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브락사스의 메일이 와 있었다.

경찰도 너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걸 봤지? 그러게 날 잡을 생각은 버리라니까. 너의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는 이상 넌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거야. 넌 내 노리개, 내 장난감이지.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말라구.

철수는 깊은 절망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혹시 진짜 내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손은 뻗어 왼편 뒷머리를 만져보았다. 여기쯤일까? 철수는 갑자기 주먹으로 뒷머리를 쿵쿵 세게 내려쳤다.


부셔져라! 부셔져라!


그러고 나니 또 그런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젠장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녀석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녀석이 이런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치스러워지기도 했다. 어쩐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래, 진호. 갑자기 철수의 머릿속에 묘안이 떠올랐다. 진호의 해킹 실력으로 메일 사이트를 해킹해서 이 아브락사스라는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진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철수는 당장에 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진호니? 나 철수야."


"어, 웬일이야?"


"부탁 하나 좀 하자. 해킹을 해서 나한테 메일 보내는 그 아브락사스라는 놈 정체 좀 알아봐줘."


"그 녀석 아직 메일 보내니?"


"응. 미칠 지경이라니까. 진짜 이 녀석 내 생각을 읽는 것 같아.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니까. 노이로제 걸려서 미칠 것 같아. 경찰서에 갔는데도 믿어주지를 않더라구. 네가 좀 알아 봐줘. 네 실력이면 할 수 있잖아."


"뭐 해킹하는 거야 할 수 있지. 그런데 도대체 어떤 녀석인데 그렇게 희한하게 사람을 괴롭힐까?"


"그러니까 말야. 제발 부탁 좀 할게. 알겠지?"


"그래. 내가 추적해보고 연락 줄게."


그렇게 전화를 끊고 보니 좀 안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 녀석 정말 잡히면 죽여버릴 테다.


철수는 이부자리를 펴고 옷을 입은 그대로 잠을 청했다. 녀석을 잡을 방도가 생기자 좀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며칠간이나 묵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철수는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딩동. 딩동.


벨소리에 철수가 눈을 뜬것은 막 해가 떠오른 무렵이었다. 철수는 창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눈을 부비며 벨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구일까?


"누구세요?"


"철수야. 나 진호야. 문 좀 열어."


진호? 어제 그 일 때문에 찾아온 건가? 철수는 문을 열었다.


"찾아왔네. 전화로 가르쳐 줘도 되는데."


철수가 문을 열자 진호는 흰색 옷을 입은 두 명의 건장한 사내와 함께 서 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야?" 철수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서 진호에게 물었다.


"철수야. 내가 어제 해킹을 해서 그 아브락사스라는 녀석의 정체를 확인했거든."


"그런데?"


"그 아브락사스는 바로 너였어. 네 이름으로 네 주소로 등록된 아이디였어."


"그게 무슨 말이야?"


"잘 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어서 내가 전화를 해 봤는데, 그러더라구.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신의 이름이라고. 아브락사스라는 아이디가 암시하는 것이 자신의 정신분열 증상일 지도 모른다고. 이중인격 같은."


"뭐라구? 그럼 지금 내가 미쳤다는 거야?"


"그 뿐만이 아냐. 메일 발송 지점까지 추적을 해 봤는데, 바로 네 컴퓨터였어.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


"말도 안돼. 잠깐 그러면 이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나를 데리러 온 사람들이야?"


"아래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잠시 따라가셔서 간단한 진단만 좀 받으시지요."


흰옷을 입은 남자 중 한 명이 철수에게 말을 했다. 권유하는 말이었지만 가지 않겠다면 억지로 끌고라도 가겠다는 표정이었다. 철수는 도저히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진호가 나를 정신병자 취급할 수 있지? 젠장. 이건 무슨 음모야.


철수는 속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일었지만, 그 흥분을 억지로 억눌렀다. 침착해져야 한다. 그리고 냉정해져야 한다.


"뭐 그렇다면 따라가야겠죠. 가서 검사를 해보면 내가 미친놈이 아니라는 게 밝혀질 테니까. 잠깐만요. 베란다에 옷을 걸어놔서."


철수는 태연히 베란다로 걸어갔다. 여기는 일층이다. 베란다로 나가면 밖으로 도망칠 수 있다. 철수는 베란다에 있던 빨아놓은 운동화를 신고서는 베란다의 낮은 난간을 훌쩍 뛰어넘어 밖으로 도망쳤다.


아파트 주차장을 달려서 도망치려니 정말로 앰뷸런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이 녀석들 날 미친놈 취급하다니. 두고보자. 이게 다 그 아브락사스 때문이야. 그 녀석 때문이야.


철수는 하루 종일을 거리를 걸었다. 피곤과 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도 겁이 났다. 분명히 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가 나를 잡아가겠지? 미치겠군.


철수는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천원짜리 한 장밖에 없었다. 컵라면이라도 사 먹을까? 그러나 철수의 발걸음이 향한 것은 피시방이었다. 분명 아브락사스 녀석이 또 나에게 메일을 보냈겠지.


역시나 메일은 와 있었다. 이것 봐. 난 결코 아브락사스가 아니라니까.

고생이 많구나. 오늘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건 네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니까. 내가 말했잖아. 날 찾으려고 하면 너만 힘들어질 거라고. 넌 결코 나를 잡을 수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다고. 너의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는 이상. 알겠어?

철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천원으로 계산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도청장치.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도청장치. 젠장.


철수는 이미 어둠이 내린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발이 아파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철수는 아까부터 왼손으로 뒤편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전파가 차단되어서 내 생각을 잘 읽지 못 할거야. 내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는 이상 내가 어딜 가든지 녀석은 알 수 있겠지?


철수는 인적이 드문 인근 산으로 올라갔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래로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퇴근을 서두르는 차의 행렬이 보였다. 붉은 미등들이 마치 모르스 부호 같았다. 저기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다 도청장치가 들어있단 말이지. 불쌍한 녀석들. 자신들이 감시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행복한 듯 살아가고 있겠지? 하지만 난 아냐. 난 도청장치의 존재를 이미 알아버렸어. 난 이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나야만 해.


철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철수의 눈에 반짝이는 무엇이 들어왔다. 깨진 사이다 병이었다. 산행을 하던 사람들이 멋대로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철수는 깨진 사이다 병의 주둥이 부분을 쥐고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깨진 쪽이 칼처럼 뾰족했다.


왼쪽 귀 뒤쪽 5센티 아래. 그래 도청장치를 제거해야만 해.


철수는 깨진 병을 천천히 들어올려 자신의 머리 뒤쪽으로 가져갔다. 도청장치를 제거해야만 해. 철수는 귀 뒤쪽을 날카로운 병 끝 부분으로 그었다. 더운피가 왼쪽 손에서 팔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도청장치를 파내어야만 해. 철수는 두개골의 딱딱함이 병 끝에 느껴질 때까지 자신의 머리를 후비고 또 후볐다. 뼈에 닿아 병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자 철수는 병을 자신의 머리 뒤에 내려쳤다. 도청장치를 찾아야 해. 철수는 손가락으로 피가 흐르는 살점을 벌리고 안을 더듬었다. 젠장 도대체 도청장치가 어디 있는 거야.

"오늘 아침에 뉴스 봤어?"


"뭐?" 민주의 물음에 현희가 되물었다.


"어떤 남자가 자기 머리에 구멍을 내서 출혈과다로 죽었대."


"정말?"


"그런데 왜 자기 머리를 팠는지 아니?"


"왜?"


"자기 머리에 도청장치가 들었다고 그걸 파내려고 그랬대."


"세상에. 진짜 웃긴다. 그 왜 옛날에 방송국에 들어와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들었다고 소리친 사람 있었잖아. 요즘도 그런 사람 있나보네."


"그러게 말야."


민주가 현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민주는 피곤한 몸을 의자에 털썩 내려놓고는 컴퓨터를 켜서 메일함을 열었다. 안에는 새로운 편지가 한 장 와 있었다.

아브락사스? 누구지? 또 스팸인가?


민주는 처음 보는 아이디가 보낸 그 편지를 열었다.

참 웃기는 일이지? 사람의 머릿속에 도청장치가 들었다니?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너의 머릿속에도 네 친구 현희의 머릿속에도 도청장치는 들어있지. 왼쪽 귀 뒤쪽 머릿속 약 5센티 아래에. 너희 모두는 감시 받고 있어. 물론 믿을 수 없겠지만, 곧 믿도록 만들어주지. 그럼 안녕.

민주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며 코웃음을 쳤지만, 현희의 이름이 나왔을 때는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이거 혹시 현희가 장난치는 거 아냐? 그래 현희가 오늘 내 말을 듣고 장난치는 거야. 기집애 딱 걸렸어.


민주는 미소 띄 얼굴로 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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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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