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좀 본다하는 사람들에게 라스 폰 트리에는 광인에 가깝게 느껴질거다. 킹덤으로 국내 심야상영관 확대에 일조를 한 그는 그의 영화 만큼이나 도그마 선언으로 인해 꽤나 유명한 감독인데 1995년 발표한 선언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으로
2. 사운드는 현장에서 나오는 것만(현장녹음)
3. 정지된 상태의 카메라로는 촬영 불가(핸드헬드찍기)
4. 필름은 오직 컬러로
5. 옵티컬 작업과 특수조명은 불허(자연조명)
6. 피상적인 행위가 아닌 실제 행위가 담겨야
7. 영화는 공간적으로 지금 이곳에서 진행되어야
8. 장르영화는 불가
9. 필름의 규격은 35mm로
10. 감독이 엔딩크레딧에 나와서는 안된다
테크니션에 기대지말고 영화가 가진 순수함으로 되돌아가자는 ,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이 선언은 라스 폰트리에의 제자의 작품인 '셀레브레이션'으로 확고한 믿음과 함께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선언을 한 라스 폰트리에도 점점 지쳤는지 자신이 선언에 반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씩 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절대 놓지 않는것이 있으니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게 그려주는것이다. 미하넬 하네케가 하나의 떨림없이 파국을 그려낸다면 라스 폰트리에는 극단적 상황속으로 강제로 몰아가면서 느끼는 희열을 그려내는데 그의 작품에 반하는 어둠속의 댄서를 제외하면 백치들이나 도그빌등은 그의 성격이 잘 들어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그를 키워준 칸 영화제에서(칸 영화제에 5번이나 초대되었다.) 2009년 경쟁작으로 출품이 되어서 다음날 기자들이 감독한테 따지는등 극단적으로 평가가 나뉘었던 작품이었다. 나도 라스 폰트리에의 전작들을 좀 봤던지라 제목에서 부터 오는 포스를 느꼈었는데 칸영화제 유력일간지에서는 베르히만이 뽕먹고 찍은 포르노라고 폄하할정도였다고한다. 하지만 불량식품들이 더 땡긴다고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이 영화를 봤는데 적어도 졸작은 아니다. 하지만 걸작일까? 걸작도 아니다. 그럼 왜 별 만점을 주었느냐?... 왜냐하면 이것이 진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자체가 워낙 폭력적인지라 19세미만 ,대한민국의 희망이신 학생네티즌분들께서는 나가주세요.*****************스포 유.************************** 영화의 내용은 이름을 알수없는 남,녀 주인공이 격정적인 성관계 도중에 아이를 잃게 되고 상실감을 크게 느낀 부인을 위해 부인과 아들과의 기억이 가장 행복하게 남아있는곳이자 부인이 두려워하는 에덴이라는 숲(nature)두려움과 상실감을 극복시키게 하기위해 데리고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격정적인 베드씬과 어울리지 않게 나오는 이 영화의 유일한 주제곡인 헨델 울게하소서. 폰트리에의 냉소가 빛을 바란다.>
이 영화는 크게 2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아담과 이브.. 그리고 파멸.
에덴...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그렇다..에덴은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뛰어놀던 숲이다.근원의 숲.
그럼 저 남과 녀는 이름이 무얼까?..아담과 이브로 추론할수있다. 즉. 아담과 이브가 에덴으로 다시 들어간거다.
하지만 둘다 선악과를 먹은 죄로 쫓겨난 곳으로의 회귀이지만 유독 이브만 두려움에 떤다.
이는 인간의 원죄에 대해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물은 질문의 답변으로 알수가 있다.
'이브가 시켰습니다'. 즉 이브가 시켰으니 나는 죄가 없다는 핑계로 여기서부터 모든 죄를 여자에게 덮어 씌운다.
하지만 이브는 그렇지가 않다. 선악과로 쫓겨났지만 아이를 잃은 상실감이 적어도 자신이 탓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태초의 자연 에덴...>
자신의 아이와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죄책감때문에 두려워한다. 아니 숲이 그들을 거부를 한다.사실 숲이 거부하는건 이브와 아담 둘다 거부한다. 하지만 남자는 이 거부를 못느낀다. 오히려 철저히 이성적이다. 아이가 죽은뒤 부검을 신청하고 끝까지 아이가 죽은건 우리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그녀를 이해할려고 하는게 아니라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의 발마져 당신탓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결국 그의 숨겨져 있던 본능(nature)가 폭발한다. 죄를 부정하는 그에게 원죄라는 커다란 돌을 다리에 달아버린다. 그리고 아이를 잃게 만들었던 성욕을 잘라버린다. 성스러운 땅 에덴에서 살인이 일어난것이다.
2.교회와 여자...그리고 마녀사냥.
소설 다빈치 코드를 보면 랭턴박사는 기독교는 남성의 종교이며 수많은 여성들과 여성상징들을 죽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마녀사냥은 실제로도 있었고 12세기시작된 이 광기어린 학살은 정확히는 15세기 부터 18세기 까지 약 50만명의 여자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교회는 이를 그리스도의 뜻이라며 잘못된 교리를 사람들에게 강요하였다. 이를 빛과 소금 즉 치유이자 치료라고 말하였다. 그렇다고 이 치유가 유럽의 대폭설을 막지도 못했고 페스트로 부터 구원해주지도 않았다. 십자군전쟁을 승리로 바꿔주지도 않았다. 마치 치료를 못하는 남자처럼, 이브가 자신의 아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신발(사고)를 신킨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장면에서 까마귀의 등장의 의미는 교회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준다>
동방박사가 기독교의 탄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환희 웃음을 전파해주었다면 중세시대 교회는 여자들에게 시대의 고통과 비난 슬픔을 전가해주었다. 이는 3명의 거지들이 상징하는 바인데. 자학하는 여우는 자괴감에 빠진여자를 ..흙에 묻혀있던 까마귀는 족쇄를 차여진 여성을.. 유산하는 사슴은 여성성의 박탈을 그려준다.
3.왜 하필 에덴인가?
<음침한 에덴>
하느님의 가르침이 강령하사 예수의 말이 성령이 되고 예언자와 성직자들을 통해 교리로써 다음세대로 전파가 된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자연은 이 교리가 통하지 않는곳이다. 엘튼존의 노래제목처럼 circle 즉 순환과 순리. 약육강식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는 그당시 교회입장에서는 이교도적인 발상이자 이를 숭배하는 모든것들은 없어져야할 안티 크라이스트적 가치관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을 가장 마지막에 만드셨다.
에덴이라는 숲도 죄악과 사탄이 있는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에덴을 숭배했던..모든 여자들을 마녀로 지칭해 죽여버렸다. 그래서 숲은 치유가 불가능하며 한이 서린곳이다. 오죽하면 다시 돌아가는길이 그렇게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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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영화라는거 자체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영상문학이라면... 영상 테크니션들로만 무장된 모든 것들은 영화가 아니라는게 도그마선언의 핵심이다. 라스 폰트리에는 자신의 선언을 스스로 깨면서도 2시간도 안되는 영상으로 자신의 선언의 핵심을 표현해 내었다. 그것도 수백년간의 학살의 역사를 두명의 주인공으로서만 표현해 내었다. 아주 매몰차게. 쇼킹하게 냉소적으로... 영화관을 성당으로 관객을 성직자로 만들어버리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처럼 비슷하지만 반대의 의미로 모든걸 불태워 버린다. 어쩌면 그가 불태운건 단순히 교회가 심어준 잘못된 교리 뿐만이 아니라 영화의 본질을 잘못이해하는 우리들의 생각이었을줄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영화크레딧의 첫자막. 영화사 마지막 성인,영화사 100년의 기적이라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이름이 무척 권위있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