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지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하느님. 예수 그들은 인류역사에 분명 존재했었다.
늘 상위에 있고 인간은 짐작 못하는 분들임에는 일고의 부정은 없다.
아니 그런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임은 안다.
좀 비유가 당신들에게는 좀 이상할지는 모르나 마치 어제 웃으면 즐겨 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그 할아버지가 존재했었던 것처럼 인류의 역사속에 분명 존재했었다.
또한 그 정신이나 하고자 하는 것 업적등은 비록 문서상으로 보존이 힘들어 남지 않았더라도 그 정신은 면면히 사람들 뇌리에 혹은 인간의 DNA의 T,C,G,A 이 네가지 요소로 되기도 한 엄청난 배열로 인한 지식을 넘어서는 지혜로써 우리 인간속에 머물고 있음이다.
그런데 굳이 그를 믿으라는 이유를 모르겠다.
믿기 이전의 근원적인 것임인데 그를 왜 믿음이라는 것으로 치장을 하는것인지 참으로 의문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이나 창조주 그리고 예수등은 '믿음'이라는 치장으로써가 아닌 '인간의 근원'의 하나로 자리잡아 있거늘 굳이 그렇게 치장해야만 하는 것이 참으로 미소를 짓게 한다.
안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믿음' 이전의 '인간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있었고 늘 인류의 역사에 같이 하거늘....
참으로 믿음으로 치장하는 당신들을 보면 한 편으로는 우습기까지 하다.
당신들 개독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하는 모든 것이 마치 물을 먹으면서도 물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왼손에 휴대폰을 들고 걸으며 보이면 "앗! 휴대폰이 있다"
그러다 살작 안 보이면 "앗! 휴대폰이 없어졌다"하는 '단기기억상실증환자'들을 보는 듯한 기분에 참으로 씁쓰레한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 가면서 늘 선택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선택의 순간 '좀 더 보편적이고 올바를 선택'을 하게 하는 '근본'이 있다.
그 '근본'을 보이는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자'가 바로 하느님이고 예수의 마음이다.
이렇게 굳이 '믿음'이라는 치장을 하지 않아도 '근본'으로 머물러 있거늘 그걸 모르고 마치 엄청난 무엇인가를 하는듯 하는 당신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한 편으로는 '에휴~! 사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믿음;이라는 껍질에 연연할까"'라는 연민도 가진다.
기독교를 모욕함도 아니다.
기독교를 부정함도 아니다.
사실 그런 능력은 아예 없는 한 갖 무지렁이의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무지랭이인 저 같은 비천한 사람조차 아는 이미 존재하는
'근본'으로써의 '하느님의 다함 없음'이나 '예수의 마음'을 아는데 그걸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껍질로 만들고 그를 입으라고 강요하는 당신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껍질로서가 아닌
'근원'으로 채 인식하기도 전 이미 우리들 영혼의 주인으로 늘 함께 함을 왜 알지 못할까?
참으로 당신들 기독교인들은 너무 답답하다.
'형상'만 보고 '형'을 알지 못하고
'믿음'이라는 껍질로 인해 가려진 '근원'을 모르다 못 해 알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
하기사 사람 사는 세상 어찌 다 똑같을까?
영생동안 먹지도 잠들지도 않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속박없이 늘 찬송하고 찬양하는 천국이라는 형상의 틀만 바라는 당신들.
인간의 틀을 버리고 삶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의 뜰에만 들어가려는 당신들.
그게 당신들 궁극의 삶일지 모르지만, 한 편으로는 참으로 연민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