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며, 현재 우리 정부는 어떠한 일도 하지않고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앞서, 제발 이동영상좀 먼저 봐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리고 제발.. 다 읽어주세요! 정말 제가 기사스크랩을 제외하고 다썻어요 ㅠ.ㅠ..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Gu_ODkgGQho$
99엔의비극
지난11월, 일본 후생노동청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연금 탈퇴수당 99엔(한화 약 1300원)을지급했다. 14살 어린나이에 끌려간 강제 노역의 대가로 65년만에 지급된돈 99엔의 지급 경위를 1월28일 방송된 mbc'후 플러스'가 전했다. 이날'후 플러스'제작진이 확인한 결과, 일본에서 99엔은 컵라면하나, 물 한병 살수도 없는 적은 금액이었다. 이와 관련 일본 후생 노동청의 답변은"당시 임금 수준과 비교하면 99엔도 최고가다"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이들은 추후 물가변동령을 고려할 여지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99엔이 지급된 결정된 비슷한 시기, 일본의 전범기업 니시마쯔 건설 측 이 중국 강제징용자들에게 2억5천만엔(한화약32억원)이라는 보상금을 지급했다. 해당 기업은 공식사과와 하께,고가의 배상금을 지급한 것.이날'후 플러스'는 중국인 피해자들과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피해자들의 보상에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 대처했음을 밝혀냈다. 이들 피해자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의 확고한 입장과 중국기업들의 도움이 컸다"고 답했다.
중국의 피해자 역시 한국과 같이 니시마쯔건설을 상대로 징용에 대한 사과와 임금지급에 대한 소송에서 패한바 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강렬한 반대의사를 표했으며 중국의 주요 기업들도 니시마쯔 건설에 압력을 가한것. 이후 니시마쯔 건설은 입장을 180도 바꿔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반면, 과거 10만명이 넘는 한국인을 강제징용하고 13~15세 소녀 5명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고간 미쓰비시 중공업은 한국 아리랑 로켓 발사 업체로 선정됐다. 이와 관련 항곡우주연구원은"과거사는 선정 이후 알았다"며 "알았다해도 과거사 문제는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의 99엔 지급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소극적인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일본을 비판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야하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이날 방송에서 일본의 양심있는 지식인들 일부는 "한국 정부와 언론의 무관심이 일본 정부의 몰염치한 태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뉴스앤 배선영 기자.2010.1.29
미쓰비시 그룹은 어떤 회사?
(요약)
식민지 조선인들을 대거 강제 동원해 개별 작업장 노역을 시켰다.
일본학자 및 시민운동가들이 2006년 발간한'전쟁책임 연구'에 따르면 미쓰비시 작업장에 끌려간 조선인은 총 10만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아리랑3호 위성발사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가장 많이 했다.
나가사키 조선소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원폭으로 대부분 사망했으며 탄광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생활은 비참해서 말로 할 수 없다.
미쓰비시는 지금도 이사실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책임을 회피하고있다.
우리가쓰는 미쓰비시볼펜있죠? 그게이거임
(기사스크랩해왓어요..)
“근로정신대를 아시나요..?”
공부시켜준다 꼬드겨 노역에 굶주림과 감시.. 사죄도 배상도 못 받아
2011-03-05 오전 9:56:39 게재
최미니 민주노동당 창원시의원과 창원여성회(대표 문현숙)가 공동주최한 ‘근로정신대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사례발표회’가 지난 28일(월) 오후 2시 창원대학교 사회대 105호실에서 학생 시민 등의 참여로 열렸다.
발표회는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가 사회를 맡아 영상소개, 사례발표, 주제발표 순으로 이어졌다. 영상은 2008년 인권영상공모전 출품작 ‘열네살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을 소개. 화면을 통해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전개과정 및 일본에서 조선여성들의 고생과 귀국 후 사회적 냉대에 따른 2차 피해 등을 보여줬다. 이어 사례발표자로 김수자 할머니(가명 81 마산)와 양금덕 할머니(82 광주)가 각각 증언에 나섰다.
“원통하다.. 이 울분 어디 풀꼬”
창원지역의 유일한 근로정신대 신고자 김수자 할머니는 마산성호국민학교에 다니던 1944년 후지코시 군수업체에 동원돼 2년 가까이 착취만 당한 뒤 임금 없이 귀국, 현재 12년 째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군복 입은 남자 2명이 교장과 담임을 찾아온 뒤 담임이 우리를 불러 활동사진을 보여주며 “일본 가면 공부할 수 있으니 부모를 설득해라”했다. 며칠을 굶어 겨우 승낙을 얻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군수업체 후지코시 공장에서 일했다. 중학교도 보내주지 않고 공장에서 일만 시켰다. 하루에 비행기 부품 베어링 200개를 만들어야 했다. 일본놈한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해 하루 300개 정도 만들었다. 그곳은 2층까지 눈이 쌓이는 추운 지역이었는데 공장 기숙사 2층 다다미방에서 달랑 담요 1장 덮고 잤다. 추워서 잠도 오지 않았고 고향 생각이 나 많이도 울었다. 1년3개월 후 공장이 황해도 청진으로 옮김에 따라 청진에서 일하다 휴가 조치를 받았다. 월급 달라 했더니 도장 찍힌 종이 한 장 줬다. 그것을 역무원한테 보이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해방 뒤 여러 차례 일본 공장 정문 앞에 가서 임금을 요구했지만 사장도 못 만난 채 싸우다 그냥 오기도 했다"고 증언.
66년 전 아픈 기억을 더듬으며 "배가 고파 원통했고 돈 한 푼 못 받아 더 원통했다. 나라 없는 설움과 울분을 어디다 풀까. 일본 사장 잡아 모가지를 비틀어도 안 풀릴 것 같다"며 눈물 흘렸다.
“시민모임이 있어 恨 절반 풀었다”
양금덕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38명에 섞여 여수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고야로 가 미쓰비시 군수업체에 동원됐다.
현재 일본을 오가며 미쓰비시와 협상을 진행 중인 양 할머니는 "우리는 일본 여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았다. 처음 며칠 동안 일본의 좋은 곳만 보여주다 공장에서 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학교 갈 수 있다며 강당에 가둬놓고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게 했다. 그렇게 1년 8개월가량 일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도중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갔다. 화장실에 가려면 순번 대기표를 줬는데 기다리다 옷에 실례하기도 했다. 반장에게 따지면 오히려 뺨을 때렸다. 배가 고파 다꽝(단무지)이나 일본 사람이 먹고 버린 수박 껍질을 먹기도 했다. 빨간색이 얇게 붙은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1945년 22명이 귀국했는데 돈을 얼마 가져 왔냐고 묻는 어머니께 할 말이 없어 마음이 아팠다. ''위안부''로 오인돼 결혼하기도 힘들었다. 세월이 지나 광주에서 먼 화순으로 시집갔지만 10년 뒤 시댁에서 사실을 알게 돼 눈물도 엄청 흘렸다. 모두가 수군거리는 것 같았고 시장도 저녁 때 갔다. 말도 못하고 그렇게 냉가슴으로 65년을 지내왔다”고 증언. 눈시울을 붉히며 "66년 전 일을 생각하면 가슴에 대못이 박힌 것 같다. 눈물도 못 거두고 죽는 줄 알았는데, 시민모임이 만들어져 절반 정도는 풀었다. 더 건강해서 일본의 사죄를 꼭 받아내겠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한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10만 희망 릴레이'' 진행 중
최미니 의원은 발제를 통해 “2008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동원 건수 총 183명(신고당시 생존자 161명. 후지코시 도야마공장 1089명,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300여명, 도쿄아사이토 누마즈공장 300여 명 등 구술조사와 당시 신문 기사 등의 자료를 보면 1700여 명에 이름), 마산 창원지역 신고 접수 24건(생존 22명), 진해경화초등 창원상남초등 마산성호초등 등 경남의 학교단위동원은 150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1965년 당시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받은 8억 달러의 반은 포항건설(55.6%) 등 광공업에 투자, 나머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 자본 시설확충에 사용돼. 정작 그 배상액을 수령했어야 할 일제강점 하 피해자들은 소액의 배상액을 받거나 그 마저도 당시 파악된 피해자에 한함에 따라 배상금 구경조차 못한 피해자가 대부분”이라 밝혔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창원시민모임 이경희 대표는 "이 겨레 여성들은 일제 후반 들어 더 큰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했다“며 ”근로정신대 문제는 민족 성 계급의 문제가 중첩된 것으로, 피해 여성들이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동원된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한 역사와 결부됐기 때문"이라 역설. 그들은 노동력 착취와 함께 여성에게만 강요한 일방적인 정절, 순결이데올로기의 이중피해자라고 강조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광주소재) 김희용 대표는 시민모임의 활동 과정과 성과 등을 소개하며 "2억3000만 엔대에 달하는 미불임금 및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 사건“에 대해 언급. 1인 시위와 13만5000여명에 달하는 항의서명운동 및 미쓰비시를 65년 만에 협상장으로 끌어낸 경위 등을 설명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함께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국민 10만 명이 천원씩 기금하는 ''10만 희망릴레이''를 진행하고 있다.
Daum카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
문의 : 010-2646-7931 / 010-2729-4496
윤영희 리포터 ffdd7777@hanmail.net
박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란
태평양전쟁의 말기인 1944년~45년 사이,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거나 12~17세의 어린나이에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회유에 의해 강제동원 돼 후지코시, 미쓰비시 중공업 등 군수회사에 강제 노역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해방을 맞을 때까지 굶주림과 감시 속에 가혹하게 시달렸으나, 해방 65년이 되도록 임금은 물론 어떠한 사죄나 배상도 받지 못했다. 특히 해방과 함께 귀국한 후 ‘군 위안부’ ‘몸 버린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과 오인으로 인해 파혼당하거나 차가운 주위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어왔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사회 국제적 관심에 비해 ‘조선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낮고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윤영희 리포터
너무나도 쓸 글이 많지만, 어느하나를 정할수가 없어 대충 추려서 가져왔습니다.
저희학교는 광주 에있는 D여고입니다.
저희학교 근현대사 선생님이 이야기를 저희 교재에다가 첨부하셔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희는 이런 일이있는줄도 몰랐습니다.근현대사를 배우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요.
저희는 미쓰비시 협상 기금 마련을 위한'10만 희망릴레이' 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날부터 저희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1000원씩(혹은 그이상)을 모금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일본지진이다 뭐다 일본지진에 돈을 기부해야한다 어쩌고저쩌고 하던 때 였던것같아요(시기는 비슷합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청산하지도 못한채 기부를 하는게 좋은 짓일까요..? 사과도 못받은채..? 그상황에서 일본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있죠.]
돈이모여서 '양금덕' 할머니께 전해드렸는데 할머니가 너무 고맙다고 저희학교에 오늘 찾아오셨습니다.
양금덕할머니와 목사님과 교육위원회(이름이기억안나요ㅠ.ㅠ..)일명'김마담' 이 세분이셔 오셨습니다.
저희가 먼저 본것은 제가 처음에 링크건 저 동영상이였는데요, 거의 모든아이들이 울었습니다.
너무나도 슬픕니다.
그런다음 양금덕 할머니께서 1945년당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양금덕할머니도 우시고, 저희도 울었습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비단 이분만이아니라 다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또 위안부분들은 또 얼마나 외로우실까요. 그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도와주지않고있습니다. 앞에 기사에서 보셨듯이 미쯔비시는 아리랑3호 위성발사 사업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것이아닙니다.
제발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사람들이 못하면 저희들이라도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께는 너무나도 큰 힘이됩니다.
지금이라도 학생분들은 미쯔비시 볼펜을 사지말아요! (저도 있습니다 이볼펜..ㅠ.ㅠ.. 지금있다면하찮게써주세요..그리고 다신 거들떠보지도말아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카페입니다제발들어가서 회원아니여도 볼수가 있어요. 회원가입굳이안하셔도 볼수있으니까 꼭 관련기사 하나라도 읽어주세요 ㅠㅠ
국민 '10만명'이 '1천원'을 투쟁기금으로!
참여방법
-1인당 1천원. 개인은 물론 가족 명의로, 단체 명의로, 학교 명의로, 동호회나 각종 모임으로도 참여하실수 있습니다. 후원계좌로 송금하시고, 참여자 이름과 간단한 거주지 및 연락처(이메일,휴대폰)는 우편이나 팩스로 보내주시거나'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다음 카페(http://cafe.daum.net/1945-815) 에 올려 주십시오.
기간
2011.2~5.30
후원계좌
광주은행 146-121-844142 김희용(근로정신대 시민모임) 국민은행 793301-01-512245 김희용(근로정신대 시민모임) 농 협 302-0306-1997-81 김희용(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신한은행 110-319-547640 김희용 우 체 국 504126-02-087988 김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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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발 추천해주셔서 이 글이 신변잡기적인 내용에 묻히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