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사촌오빠로 만난 너.
반말하는걸 제일 싫어하는 너지만, 오늘은 반말 좀 써야겠다.
사귀기전 몇번 가진 술자리에서 예전 여친 얘기하며 힘들어하던 너.
얘기 들어주다보니 동병상련의 아픔이랄까.
나도 그때 헤어진 남친 때문에 괴로웠었고,
둘 다 3년 동안 그 전 사람들 때문에 연애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길 니가 했지.
2년 넘게 동거했었다고.
요즘 세상에 흔해빠진 동거스토리,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건 오산이었지.
그 후 넌 나한테 대쉬하기 시작했고,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라는 내 의지와는 달리
나도 널 좋아하게 되서 그렇게 시작한게..지금까지 왔구나.
사귀면서 조금씩 너의 과거때문에 힘들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넌 다 알고 시작했잖아..라는 당당한 태도.
하긴, 니 말도 틀린게 아니니까 혼자 많이 괴로웠지만 견뎠다.
사귀고 1년 후 니 방에서 그 여자의 사진, 편지, 선물 한 박스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때는 너도 미안해하더라..
그 일 있은 얼마 후 술마시고 니가 그랬지.
넌 나한테 바랬다고.. 그 여자와의 아픈 과거 아픈 상처를 내가 다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를.
동거했던 예전 여친까지 이해할 만큼 속이 넓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나서는 나도 그 여자에 대해 다 잊었다.
그 여자는 어디선가 잘, 아주 잘 살고있을텐데
나만 힘들다는게 억울해서 억지로 지우고 잊고 살았다.
나이가 있고 만난 기간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오갔지.
5월에 상견례, 11월에 날 잡고 하나둘씩 준비해 가고 있는 요즘..
그래도 너와의 결혼에 들뜨고 설레어 있는 나와는 반대로
넌 결혼을 하는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만큼 결혼준비에 무관심으로 일관했지.
아무리 너네집이 있는 곳이 아닌, 우리쪽에서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손도 대지 않는지..
과연 나랑 결혼하고 싶은게 맞는지..
난 점점 지쳐갔더랜다.
너도 알게다. 우리집에서 널 달가와하지 않았다는거.
동거 얘기뿐 아니라, 니가 나한테 못해준 얘기는 하나도 모르는 데도.
우리 부모님은 세상에 너같은 남자 없는 줄 알고, 너가 나 떠받들고 사는줄 아신다.
흔히 말하는 조건, 어른들이 말하는 잣대만으로도
당신들 딸 보다 니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거니까 그건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결혼하면 너 있는 구미가서 살아야지, 거긴 내가 취직할 만한 곳도 없다.
장남에 장손이지, 하나있는 남동생은 결혼식도 안올리고 애 낳고 살고있지,
너 나보다 학벌 낮지, 월수입도 나보다 적지,
그래도 난 모든거 다 이해하려 했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잘 살아보려 했다.
결정적으로 너라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결혼까지 다시 생각한건,
너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
초복이었던 저번주 토요일.
그 더운날 엄마와 난 마트가서 장보고 와서
너 우리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삼계탕 내어주고,
과일 좋아하는 너 온갖 과일 대접하기 바빴지.
이번이 한 4-5번째 일거다.
너 올때마다 우리엄마 아구찜에, 해물탕에, 회에, 쇠고기전골에 온갖 요리 다 해주고,
사위는 백년손님답게 손 하나 까딱 못하게 대접했지.
암튼 그렇게 초복 다음날,
둘이 나가서 밥먹으면서 결혼준비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내가 너 제수씨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어머님이 나 불러서 밥 사주신다고 해서 드릴 말씀도 있고 잘됐다고 나갔는데
너네 제수씨 애 안고 떡하니 나와서 나 얘기도 제대로 못했고,
내가 손윗 동서가 될텐데 제수씨가 먼저 애낳고 살고 있으니 내 입장이 좀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그냥 정말 그렇게만 얘기했잖아?
얘기할 수 있는거 아닌가?
근데 너는...너네 제수씨가 나한테 뭐 잘못한거라도 있냐며,
어차피 니가 혼자 감당해야 될 문제 아니냐며,
나를 이상한 년 취급하고, 너네 동생부부 역성들기에 바쁘더구나.
내가 싫다고 했냐? 욕을 했냐?
나 너네 조카 태어났을때, 백일때 두번이나 선물 사다 날랐고
잘 받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받았어도 한마디 하지않았던 사람인데..
우리 엄마가 지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내가 고작 그 한마디 했다고 저러나..
어이없어 하고있던 나한테,
그렇게 온갖 화를 내고서도 너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산하고 나가버렸지.
따라 나가서 장난반, 미운마음 반으로 팔을 꼬집었더니,
그길로 돌아서서 가버리더구나..
그냥 가버리더라.
우산도 없었는데 비 맞고 택시타고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렇게 열통이 넘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나도 그 길로 나가서 친구랑 밤새도록 술마시고 들어왔더니,
고작 전화 한 통 와있더라.
그후로 이틀 후 전화 한통.
4일동안 연락없다가 또 한통.
오늘 내가 전화걸어서 말했지.
나 자신이 없어졌다고, 그만두자고.
이제서야 미안하다고 말하는 너...이제서야...
지금이라도 너라는 사람에 대해 똑바로 보게 되서 다행이야.
내 인생을 모두 걸 정도의 사람이 고작 너까짓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