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황제를 비판하자 비공개 재판
안중근은 제3회 공판의 날 오후에 재개된 공판에서 하얼빈의거에 대해 작심한 듯이 그 목적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발언에 놀란 재판장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방청객을 전부 퇴장시킨 가운데 비공개 재판을 시작했다.
안중근 : “이번의 거사에 대해 지금까지 그 목적의 대요는 말했다. 나는 헛되이 살인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큰 목적을 발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진술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다음과 같이 그 대요를 말하겠다.
이번의 거사는 나 한명 개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宣戰詔勅)에 의하면, 러일전쟁은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개선했을 때, 한국인은 마치 자국인이 자국이 개선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통감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의 상하(上下) 인민들을 속여 5개조의 조약이 체결됐다.
이는 일본 천황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모두 통감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어서 또 7개조의 조약을 체결당함으로 인해 한국은 더욱 더 불이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있어서는 안될 일로, 황제 폐위까지 행해졌다. 그래서 모두 이토 통감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삼년간 도처에서 유세도 하고, 또 대한의용군 참모중장으로서 각지의 싸움에도 참여했다. 이번의 거사도 한국 독립전쟁의 하나로, 나는 대한의용군 참모중장으로서 한국을 위해 결행한 것이지 보통의 자객으로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지금 피고인이 아니라 적군에 의해 포로가 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를 보면,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관리가 되고 또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관리가 되어 있으니, 서로 일본과 한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가 통감으로서 한국에 와서부터 5개조와 7개조의 조약을 압박을 가해 강제로 체결하게 하고, 또 이토 개인은 한국의 신민(臣民)으로 취급해야 될 텐데, 심하게도 황제를 억류하여 마침내 폐위시키기까지 했다.
원래 사회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황제이기 때문에, 황제를 침해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인데도 이토 공작은 황제를 침해했다. 이는 신하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이며, 그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불충한 자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지금도 의병이 도처에서 일어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일본 천황의 뜻은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고 동양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토가 통감으로 한국에 오고부터 그가 하는 방식이 이에 반하기 때문에 한·일 양국은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외부와 법부 및 통신기관 등은 모두 일본에 인계하기로 했는데, 그래서는 한국의 독립이 공고하게 될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이토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역적이다. 특히 이토는 앞서 한국인을 교사(敎唆)하여 민씨 왕비를 살해하게 한 일도 있다. 또 이런 일은 이미 신문 등에 의해 세상에 발표되어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인데, 우리들은 일찍이 이토가 일본에 대해 공로가 있다는 것은 듣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천황에 대해서 역적이라는 것도 들었다. 이제부터 그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안중근의 발언이 이 부분에 이르자 재판장은 “이후 본건의 재판을 공개하는 것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하면서 방청객을 모두 퇴장시켰다.
마나베 재판장 : “(재판장은 변호인의 요구에 의해 피고 안중근에게) 피고가 정치상의 의견을 발표하고자 한다면 상세하게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이 어떤가?”
안중근 : “이건 주의받을 만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쓸 수 없다. 또 옥중에서 이렇게 추운 날씨에 글을 쓸 기분은 조금도 없다. 나는 좋아서 여러 가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목적만은 발표하고자 생각했기 때문에 의견을 진술했고 그러던 중에 공개를 금지했는데, 이 일들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진술하는 것이므로 공개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거사를 결행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들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인데, 공개를 금지한 이상 진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판장 : “그러면 피고는 앞서의 진술에 계속해서 진술할 의견은 없는가?”
안중근 : “내가 진술하다가 만 것은 이미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청객이 없으면 진술할 필요가 없다.”
재판장 : “그러면 그 밖에 피고의 흉행목적에 대해 본건 심리 중에 진술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번에 진술하라.”
안중근 :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말하겠다. 나는 일본의 사천만 인민과 한국의 이천만 동포를 위해, 또한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 천황에 충의를 다하기 위해 이번의 거사를 결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미 수차 말한 대로 나의 목적은 동양평화에 대한 문제에 있고,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과 같이 한국으로 하여금 독립을 공고히 하는 것은 내 평생의 목적이자 또한 평생의 일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제 몸의 생명과 재산의 안고(安固)를 빌지 않는 것은 없다. 하물며 인간된 자는 더 더욱 자신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가 통감으로서 하는 짓은 입으로는 평화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에 반하고 있다. 진정으로 그런 생각이 있었더라면, 한·일 양국인 사이에 서로 격(隔)하는 곳이 없고 한 나라 사람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토는 통감으로서 한국에 온 이래로 한국 인민을 죽이고, 선황제를 폐위시키고, 현황제에 대해 자기 부하와 같이 압제하고,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원래 생명을 아끼는 것이 인정이지만, 영웅은 늘 신명을 던져 나라에 진충하도록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는 멋대로 다른 나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며 십수만의 인민을 죽였다. 하지만 나는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에 있는 것과 같이 동양의 평화를 부르짖고 팔천만 이상의 국민이 화합하여 점차 개화의 영역으로 진보하며, 나아가서는 유럽과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에 온 힘을 다하면, 시민은 안도하여 비로소 선전조칙에도 부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가 있어서는 동양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결행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이토는 통감으로 온 이래로 선황제를 폐하고, 현황제를 압제하며, 또 다수의 인민을 죽이는 등 더욱 한국을 피폐하게 했다. 그러고도 일본 천황이나 일본 국민에게는, 한국은 일반적으로 일본의 보호에 복종하고 있다고 발표하여, 일본의 상하 인민을 속이고 한국과 일본과의 사이를 소격케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기회를 기다려 없애 버리려고 하던 차에, 이번에 하얼빈에서 그 기회를 얻어 일찍부터의 목적에 의해 이토를 살해했던 것이다.”
○ 비하로 일관된 검사의 사형 논고
이날 미조부치 검찰관은 장문의 논고장을 낭독했다. 이 논고장에서 미조부치는 “안중근과 우덕순의 이번 범죄는 자기의 분수역량과 자국의 영고성쇠와 그 유래에 대한 정당한 지식의 결핍으로부터 생긴 오해와, 다른 사람, 더구나 이토 공작의 인격과 일본의 국시선언 및 열국 교섭과 국제법규 자체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부터 생긴 오해로부터, 어리석고 잘난 체하는 배일신문(排日新聞)과 논객의 말을 맹종한 결과, 한국의 은인인 이토 공작을 원수로 생각하여 그의 과거의 시정에 대해 복수하려 한 것이 바로 그 동기이다. 피고, 특히 안중근과 우덕순은 지사인 또는 우국지사로 자임하지만, 그 뜻만 공연히 거대하지 실제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스스로 영웅이라 자부하여 나폴레옹에 비교하기도 하고 혹은 이토 공작과 동등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강탈하고 무전투식하는 등을 평범한 일상사로 생각하는 자들이다”라고 헐뜯었다.
미조부치의 논고는 지극히 유치하고 감정적이었다. 마치 안중근과 우덕순이 이토에 대한 오해와 영웅심에서 거사한 것처럼 왜곡하고 폄하하는 내용의 논고로 일관했다. 미조부치가 ‘철저하게’ 조사한 안중근의 이토 처단 실상은 당일의 진상을 아는 훌륭한 자료가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안중근이 사용한 총기는 정교한 브라우닝식 칠연발 권총으로, 총탄 한 발이 남아 장전돼 있었다. 피고는 권총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노련한 자로, 빗나간 탄환이 한 발도 없었다. 세 발이 이토 공작에게 명중했는데, 피고가 필살을 기한 가공할 십자 모양이 새겨진 총탄은 인체의 견부와 접촉하면서 납과 니켈 껍질의 분리를 촉성하는 효과를 가져와 상처를 크게 했으며, 폐를 관통한 두 발의 총탄은 흉강(胸腔) 내에서 대출혈을 일으켜 십수분 만에 절명케 했다.
어느 증인의 말에 의하면, 이토 공작은 자기를 쏜 흉한이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어리석은 놈’이라고 했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토 공작은 흉한의 국적 취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서거하신 것이다. 이토 공작을 저격한 그 외의 결과로 공작과 피고의 사이에 있었던 가와카미 총영사가 다른 총탄 한 발에 의해 좌상박(左上膊)에 부상을 당한 것은, 관계자의 증언과 감정에 의한 것으로 긴 말이 필요없다.
피고는 공작이라고 생각한 선두에 있던 사람에게 총구를 향하여 네 발을 발사한 후, 혹시 공작이 반대 방향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게 하려고 방향을 바꿔 세 발을 발사했다. 그래서 그 탄환은 모리와 다나카 두 사람을 부상당하게 한 것이다. 그 부상은 감정과 같아 별로 열거할 필요가 없다. 남은 한 발은 플랫폼에 있었다는데, 십자 모양이 새겨진 부분에 옷감의 털이 끼어 있었다. 이는 러시아 관헌으로부터 송치돼 왔는데, 이 역시 증거물로 제출된 것이다. 이 탄환이 바로 나카무라와 무로다 두 사람의 바지를 관통한 탄환일 것이다.”
미조부치는 논고장에서 이토 히로부미 총살 의거에 대해 이들이 형제 처자와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이토 암살을 기도했다고 폄하했다. “만약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과대망상에 걸린 미 친 사람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검사의 논고라기보다는 삼류 작가의 소설과 같았다.
미조부치는 또 한국에서는 ‘불량도배’들의 살인사건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있어서 유사 사건이 재발한다면서 스티븐스를 살해한 장인환이 유기 25년의 금고형을 받은 것과, 이재명이 이완용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 안중근이 본보기로 삼은 것이라면서 중형 선고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안중근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따라서 국법이 존재하는 이상 형의 응보적인 본질을 발휘하여 본건이 가장 흉악한 사건임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만, 유동하에 대해서는 어린 나이로 안중근에게 유혹됐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 가급적 감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본인의 구형은, 첫째 안중근에 대해서는 사형, 둘째 우덕순과 조도선에 대해서는 예비의 극형, 즉 징역 2년, 셋째 유동하는 본 형을 3년 이상의 징역으로 하고, 법률 종범(從犯)의 감형, 즉 형법 제62조와 제71조 그리고 제63조 제3항에 의해 형기 이분의 일을 감등하여 1년 6월 이상의 징역에 처해야 하지만, 정상작량(情狀酌量)의 여지가 있으므로 형법 제66조와 제67조에 의해 최단기인 징역 1년 6월에 처해주기 바라며, 또 범죄에 사용했거나 사용하려고 했던 권총에 대해서는 형법 제19조 제2항에 의거 처리하고, 이에 대해 각각 언도 있기 바란다.”
○ 일본인 관선변호사의 황당한 변론
관선변호사 두 사람은 변론준비를 위해 공판의 연기 신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12일 오전 9시에 변론이 있었다. 먼저 카미다가 입을 열었다.
“본래 이 사건은 우리 제국의 원훈이고 또 한편으로는 세계의 위대한 인물이라 할 이토 공작을 암살한 사건인데, 이 비보가 한번 전해지자 일본 제국의 상하 신민들은 물론 세계 열국을 놀라게 하고 있으니, 저는 이 흉포한 작자를 어떤 극형에 처해도 아직 남음이 있을 줄 믿습니다. 지금 이 공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공판의 결과에 대해 얼마나 크고 비상한 결의를 가지고 관망하고 있는지는 실로 예상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검찰관의 기소장을 검토해 보면 명백한 것처럼, 참으로 단순한 하나의 살인사건에 불과합니다.”
카미다는 하얼빈의거에 대해 세계의 위대한 인물을 안중근이 암살한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법리 해석에 있어서 “입법상의 문제로 보면 피고 등을 처벌하기를 바라지만, 법의 불비(不備)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죄라고 반론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여기서 ‘법의 불비’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재판이 열리고 있는 관동주는 일본이 재판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형법은 아직 이곳에서 효력을 갖지 않았다. 따라서 카미다는 특별히 이를 시행할 법규를 기다린 다음 비로소 시행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법 논리상으로는 타당한 변설이었다.
미즈노 변호사도 비슷한 ‘변론’을 전개했다. 먼저 “재판장님께서 이 세계의 주시 속에서 본건을 심리함에 있어서 극히 근엄하고도 친절하게 다스리는 모습을 보고, 저희 변호인들은 단지 피고인을 대신해서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 법조사회의 명예로 알고 축복해 마지않습니다”라는 아첨을 늘어놓았다.
미즈노 변호사 역시 이 사건은 일본 형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한국 형법을 적용해야 하지만 한국 형법의 결함으로 처벌할 만한 정당한 조항이 없다고 밝혔다.
곧이어 카미다 변호사는 “형벌의 주의에서 생각하든지 우리 형벌의 위치에서 보든지, 피고에 대해서는 가볍게 처분하는 것이 지당하다”면서 “형법 제199조와 제166조에 의해 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극히 가볍게 처단하기를 희망한다”고 변론했다.
변론이 끝나자 재판장은 안중근과 의거 관련자들에게 최후진술을 하도록 했다. 우덕순이 먼저 간단하게 그러나 의미심장한 진술을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장벽을 만든 사람이다. 내가 이 장벽을 없애 버리려고 한 것은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었기 때문에 본 사건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 밖에 별로 할 말은 없다.”
▶ 출처; 김삼웅(金三雄) 前 독립기념관장 著《안중근평전(安重根評傳)》시대의창編(2009년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