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땐 아무 것도 몰랐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 최현수는 현재 경비보안업체에 근무한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비밀처럼 싸안고 살아간다..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상태였던 그가 아내에게 등떠밀려 새로운 근무지(세령댐)와 사택을 확인하러 가던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가해자가 되고 만다... 피해자 12살 소녀(오세령)는 아버지 오영제의 ’물리적 교정’을 피해 달아나다가 맞딱드린 최현수에 의해 세령댐으로 사라진다... 마침 세령댐 건설로 수몰된 옛 세령마을에 대한 호기심으로 몰래 댐 밑 세계를 염탐 중이던(잠수) 세령댐 보안직원인 안승환은 12살 소녀의 시신과 물 속에서 마주친다.. 그 밤 오영제는 연기처럼 사라진 딸을 미친듯이 찾아헤매고, 그 밤 연락두절된 최현수를 찾아 아내 강은주는 미친듯이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다.. 그 밤 물 속을 나온 안승환은 시신을 모른 척 하기로 한다.. 그밤 최현수는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라고, ’그날 밤’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처음 세령댐을 찾은 사람처럼, 아내 강은주와 아들 최서원과 함께 세령마을에 이사를 오는데...
갑옷을 입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거나 같아요. 숨이 턱턱 막혔죠. 제 레인에서 벗어나고 싶었고요.
제대하고 어찌어찌 철도청에 입사했는데 2년도 못 채우고 도망쳐버렸어요.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 받고, 승진에 매달리고, 한 집안의 가장 노릇하는 미래가 제 앞에 있었어요.
그것이 삶이긴 하겠지만 과연 나 자신일까, 싶었던 거죠. 나와 내 인생은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거든요.
고양이는 천둥이 치기 전에 뇌에 자극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뇌 변연계에도 비슷한 감관이 하나 있다.
재앙의 전조를 감지하면 작동되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시계. 자리에 누운 후루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째깍대는 초침소리를 들으며 기억 속으로 뒷걸음질 쳤다.
7년 전 그날, 아저씨와 경찰서에서 헤어진 후로..
한편의 영화를 본듯한 기분.. 이토록 세세한 묘사가 가능할까..
실제 세령마을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드는 작가가 무섭게 느껴졌다.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세령호라는 곳은 철저한 허구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보다 더 짜릿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기분... 영화는 내가 보는것에 대해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이책은 나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살아나고 행동하고 나의 상상은 결국 이 책을 다읽고서야 책을 덮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