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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혹시 파룬궁 사건을 아세요???중국 이지만 넘 하네요~!

내가소시다 |2011.05.14 23:53
조회 38,782 |추천 13

1999년 7월 20일 새벽, 중국 전역에서는 각 도시에 연공장을 열였던 수십명의 파룬궁 자원봉사자들이 지방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많은 사람들이 무작위로 끌려가서 다시는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파룬궁 박해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틀후인 22일 갑작스러운 탄압 중지를 청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수만명의 파룬궁 수련생들 역시 체포됐고 구치소와 대도시 경기장에 감금됐다. 이날, 파룬궁의 창시자인 리훙즈가 언론에 파룬궁 박해의 오해를 풀어달라며 성명을 내기도 했다.

 

CBS와 인터뷰 중인 리훙즈

 

당시 미국에 상주했던 리훙즈는 "파룬궁은 대중적인 연공 활동일 뿐이며 조직도 없고 정치적 목적 또한 없다. 나는 그저 중국인들의 건강을 위해 파룬궁을 전파했을 뿐이다. 석가모니와 내 생일이 같다고 해서 나와 석가모니를 연관시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중국 정부와 지도자가 파룬궁을 적으로 대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그 시각 천안문 광장에서는 사복경찰들이 수련생들에게 칼을 들이대며 체포하기 시작했고, 이후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합법적으로 청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막혔다. 변호사는 파룬궁에 관령된 모든 사항을 중앙정부에 보고해야 했고 수련생들은 정부 민원실을 출입할 수 없었으며, 파룬궁 탄압 철회 청원을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체포됐다.

 

 

정부 산하에 있던 매체와 신문, 방송들은 파룬궁을 비방하거나 증오게 하는 흑색선전을 시작했고 파룬궁 수련자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탄압 철회를 주장했다. 1999년 7월 말, 중앙정부는 압수한 파룬궁 관련 서적을 공개적으로 소각하기 시작했다. 중국 전역에 걸쳐 150만여권의 서적과 비디오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를 모아 모두 불태웠다.

 

당시 발행된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매일 만여 명의 사람들을 구금하고 파룬궁을 반대하는 공표를 사람들에게 외체게 했다고 한다. 파룬궁 탄압 후 한달 동안 인민일보에 실린 파룬궁 반대 기사가 347건이나 됐다고 하니 매일 열 건 이상의 기사가 나간 꼴이다. 이러한 정부의 대대적인 주입식 강제 교육으로 중국인들은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적개심을 같게 됐고 수련생들은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1999년 12월18일에 소개된 시아오 지방위원회의 공고문

 

파룬궁 조직은 정부 전복 기도죄로 정부 상관기관에 고발되었으니 누구든 파룬궁 수련 포기를 거부하는 자는 범법자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뿌려졌다. 공공안전을 위배한 수련생들은 고액의 벌금을 부과받고 식수 및 전기공급, 전화 연결 등이 금지됐다고 한다. 지방기구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파룬궁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국영시설과 직장에서 추방되고 소송을 처리하거나 각종 문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고 공표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장쩌민의 학살 정책은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한다' , '때려 죽여도 자살로 친다' , '신원을 조사하지 말고 즉시 화장하라' 였다고 한다. 이때 파룬궁 수련생들을 고문하기 위해 100가지 이상의 고문 방법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고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파룬궁이 좋다는 외침이나 플랜카드만 들고 있어도 수련생들은 체포되어 각종 고문을 당했으며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기를 강요 받았고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더한 고통의 고문이 이어졌다.

 

해외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 수련생들의 전기쇼크 고문 상황을 시연하고 있다.

 

전기쇼크는 경찰, 교도관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고문 방법이었다고 한다. 30만 볼트에 달하는 전기봉으로 수련생들의 입이나 귀, 발바닥, 손바닥, 성기, 유두 등에 전기 쇼크를 가했는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전기봉 몇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연속 7시간 전기 쇼크를 받아 얼굴이 훼손된 가오룽룽(36, 랴오닝성 선양시 루쉰미술대학 재무과 직원)

 

경찰들은 담뱃불을 수련생 얼굴이나 몸에 지저 시커먼 흉터를 남기는 고문 방법도 사용했다.

라이터로 수련생의 얼굴과 턱, 손등, 팔, 허벅지, 성기 등을 지젔고, 자체 제작한 쇠막대를 불에 달궈서 수련생의 가슴과 허벅지 등을 지지기도 했다.

 

 

10여 곳에 불고문을 당했던 광둥성의 탄융제, 그는 휴스턴에서 13곳에 3급 화상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야만적인 고문 방법으로 중국 감옥과 강제 노동수용소에서조차 금지됐던 음식물 강제 주입 고문방법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사용됐다. 금속 펜치나 쇠막대로 입을 강제로 연 후 튜브를 입에 쑤셔 넣어 목까지 내려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입술이나 입이 찢어지고 이가 부러지며 튜브는 식도나 폐, 위장을 손상시켜 심한 출혈과 감염이 일어난다. 튜브를 삽인한 후에는 농축된 옥수수나 염도 높은 소금물 용액, 고춧가루 등을 펌프질하여 넣는다. 중국 가오양 강제 노동수용소에서는 배설물까지 주입했다는 주장도 있다.

 

직접 자신이 당한 음식물 강제 주입을 시연하는 왕위즈

 

성공한 사업가였던 왕위즈는 파룬궁 수련으로 병을 고쳤고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번 불법 감금됐다. 왕위즈가 헤이룽장성 완자 강제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있던 시절 음식물 강제 주입 고문을 받았다. 당시 잔혹한 고문 떄문에 실명 위기에 사망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지독한 고문을, 여성에게는 성고문을 서슴지 않았던 중국 교도관들. 그들은 여성 수련자들을 강간하고 윤간했다. 2000년 6월, 선양 마싼자 강제 수용소에서는 18명의 여성 수련자들을 알몸으로 흉악범들의 감방에 밀어 넣었고, 2003년 5월 13일 충칭대학교생 웨이싱옌은 한 경찰에 의해 베이징 시내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했다고 한다.

 

고문과 강간으로 정신이상자가 된 주샤(32)

 

쓰촨성 신진구 세뇌센터에 불법납치됐던 주샤는 2004년 4월에 풀려났지만 이미 정신이상자가 된 후였다. 그녀의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문과 반복적인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성고문 외에도 여성 하복부에 나무판자를 대고 그 위에 서너 명의 남성이 올라가 하지를 압박하는 고문방법도 있었다고 하는데, 특히 이 고문은 젊은 여성 수련자들에게 사용했다고 한다.

 

 

수련생의 발과 다리를 단단히 묶은 다음 두 팔을 뒤로 묶고 다시 목과 다리를 하나로 묶어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든 다음 침대 밑에 밀어놓고 경찰이 침대 위에 올라가 수련생의 척추가 부러질 정도로 힘껏 누르는 압박침대 고문. 이 고문이 오래 지속되면 수련생들의 척추가 부러지고 불구자가 된다고 한다. 세뇌센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행했던 고문방법이다.

 

 

수련생을 발가 벗긴후 가슴 높이까지 오는 더러운 물 속에 집어 넣은 채 햇빝을 차단하는 물감옥 고문. 이 물감옥에 같혔던 대부분의 수련생들의 전신이 부패했고 심한 경우 사망한다고 한다.

 

 

가장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고문 방법 중 하나가 구타였다. 베이징 공상 대학의 강사 자오신은 베이징 하이뎬 감옥에서 경추가 3개 골정되도록 구타를 당했고, 6개월동안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한 후 2000년 12월 11일 저녘에 사망했다고 한다.

 

파룬궁 수련생 학살을 세상에 알린 사건은 강제동상으로 사망한 천쯔슈 사망 사건

 

월스트리트 저널의 랜 존슨(Lan Johnson)  기자가 파룬궁 탄압 관련 연재기사로 풀리쳐 상을 받으면서 파룬궁 탄압 사건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그가 취재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구타와 강제동상 고문으로 사망한 처쯔슈 노인 사건이였다.

영하 20~30도에 달하는 혹한기에 경찰이나 간수들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속옷만 입힌 채 밖에 서 있게 하거나 맨발로 걷게 하면서 파룬궁에 다한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산둥성 웨이팡시에 거주했던 천쯔슈 노인은 고무몽둥이와 전기봉, 가시달린 막대로 구타당한 후 그녀가 죽기 전날 몽둥이로 맞는 고문을 당했다. 그녀가 죽던 날 경찰은 강제로 그녀를 맨발로 눈길 위를 걷게 했고 결국 노인은 사망했다.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생들에게는 중추신경계를 파괴하는 약물을 강제로 투입하기도 했다. 정신이상이나 사망에 이르는 이 고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깟다. 이 외에도 긴 대나무 꼬챙이를 손톱 밑이 박아 넣는 고문과 임신중인 여 수련생을 강제노역시키기 위해 강제로 낙태를 시켰던 상제낙태고문, 수련생을 차 혹은 오토바이에 묶고 빠른 속도로 달려 수련생의 몸을 닳게 하고 상처 투성이로 만들었던 고문도 서슴지 않고 벌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고문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장기적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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