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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 - 조타 히로시

하하네가족 |2011.05.18 14:07
조회 2,902 |추천 8

 

살인자 정보 :
이름 : 조타 히로시(造田博)
출생 : 1975년 11월 29일
사망 : 현재 생존(사형 확정 후 수감중)
살해 실적 : 2명(1999년 9월 2명)
살해 동기 : 스스로가 불행한 삶을 보내고 있는데 반해 남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질투심을 느껴서
기타 범죄 : 절도, 총도법 위반


피살자 정보 :
피살자 1 : 스미요시 카즈코(住吉和子, 66)
피살자 2 : 타카하시 마미(高橋真弥, 29)

*.나이는 모두 피살 당시를 기준합니다.


독자 제위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열심히 총질해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
조는 주변 환경에 불만을 품고 별반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총질을 한 사람으로,
이르자면 '남불나행'이 아닌 '남행나불' 즉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조타 히로시는 일본판 조승희라 할 수 있다. 아니, 조타가 조보다 8년이나 먼저
범행을 감행했으니 조승희가 미국판 조타 히로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조타 히로시는 1975년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형이 한 사람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문제는 1978년, 조타의 아버지가 상속받은 땅을 팔아 큰 돈을 입수하고부터 였다. 점차 조타의 부모는
경정, 도박 등에 빠져 조타가 고2 때인 1992년, 조타를 남겨두고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형은 이미 대학교에
들어가 따로 살고 있었기에 집에 혼자 남겨진 조타는 계속되는 채권자나 채권추심 대행인의 방문에
떨어야 했다.

부모는 밤중에 무슨 비밀작전 수행하듯 돌아와 조타에게 생활비를 주고는 했으나, 그나마도 1993년 11월,
조타의 부모는 가재도구를 챙겨 잠적해버렸다. 이후 부모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조타가 크게 한 건 해서 유명(?)해 지고 난 뒤로도 전혀 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할 정도라니 말이다.


여하튼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을 계속하여 고등학교도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여 입학했던 조타에게
이는 치명적이었으며,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취업했다가 1994년부터 후쿠야마에서 살고 있던 형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타의 정신 상태는 꽤 불안정해져 있었는지 하나의 일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이 일, 저 일을
전전했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조타의 형은 종종 조타를 꾸짖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조타는 더더욱
폐쇄적으로 되어갈 뿐이었다. 또, "미국은 진지하지만 일본인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공공기관에 편지를 보내는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나타났다.


이후 1996년 11월 도쿄로 온 조타는 취직에 실패하고 돈이 바닥나 노숙자 신세가 된다. 결국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되어 파출소로 끌려가 소지품을 검사당했다. 이 때 칼을 가지고 있어 절도에 총도법
위반이 붙어 벌금 10만엔의 처벌을 받게되었다.

그 외에도 철도나 택시의 부정무임승차를 상습적으로 했으나, 적발될 때마다 형이 물어주고 해서 추가적인
전과가 생기지는 않았다.

1997년 3월, 조타는 오카자키에서 취직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일도 오래 하지 못하고 7월에 다시
도쿄로 와 신문배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조타는 공공기관에 의미불명한 편지를 보냈는데,
보통 이런 편지에는 허위의 이름이나 주소를 쓰는 것이 보통인데 조타는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똑바로
적어서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들 중에는 자신의 형을 비방하는 것도 잇었다.


1998년 6월, 조타는 동경하던 미국으로 갔지만, 지인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조타가 취직을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조타는 극도의 정신 착란을 일으켜 현지의 일본 영사관과 일본인 교회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아 9월 귀국했다.

이듬해인 1999년 4월, 조타는 다시 신문배달원으로 취직했다. 이후 9월에 신문보급소 점장의 권유로
휴대전화를 장만하게 되는데, 조타는 점장에게만 번호를 가르쳐 줄 생각이었으나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끈질기게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문제는 조타는 이 사람을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아 몹시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9월 3일, 조타의 휴대전화로 무언 장난전화가 걸려왔다. 조타는 이 전화를 문제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몹시 분노했고, 그로 인해 잠이 들지 못했다. 결국 조타는 다음 날인 4일,
오전 3시경 집을 나섰고, 출근하지 않고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4일 당일 조타는 토큐핸즈에서 범행 도구인 식칼과 쇠망치를 구입했다. 이날부터 7일까지 4일간,
아카사카와 이케부쿠로를 오가며 범행을 저지를 때와 장소를 물색했으나 범행에 이르지는 않았다.

1999년 9월 8일, 조타는 오늘이야말로라는 결의(?)를 가지고 이케부쿠로 썬샤인시티의 지하통로에서
범행했다. 가방에서 흉기인 칼과 망치를 꺼내든 조타는 "빡돌았다! 죽여버리겠어!"라고 외치며 지나가던
젊은 커플을 뒤쫓다 에스컬레이터에 타고 있던 스미요시 부부를 공격하여 부인인 카즈코를 살해하고,
남편인 타다시(直)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어 걸어오던 타카하시 부부를 목격하고 부인인 마미를 찔렀다.
마미는 달아났고, 남편인 카쓰토시(勝利)는 창졸간의 일에 상황파악을 못하고 마미를 뒤쫓았다.

이어 조타는 이케부쿠로역 쪽으로 이동하며 마주친 고교생 그룹을 비롯한 행인들을 닥치는대로 공격했다.
이후 행인들에게 제압되어 출동한 이케부쿠로 경찰서의 경관들에게 체포되었다.

최종적으로 스미요시 카즈코와 타카하시 마미가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되었다.


체포된 조타는 변함없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싫었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남들이라고 해서 놀고 거저 먹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변호인은 조타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근거로 당시 심신상실상태였고, 책임능력이 없음을 주장했지만
결국 사건으로부터 2년 반 뒤인 2002년 1월 18일에 도쿄 지방법원은 조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조타는 항소했으나 2006년 9월 29일, 2심인 도쿄 고등법원의 하라다 쿠니오 판사는 조타가 처음부터
묻지마 살인을 목적으로 흉기를 구입했고 범행 전에는 나름 망설이는 등, 심신상실 상태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사형을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고 조타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어 3심인 대법원에서도 닥치는대로 행인들을 공격한 범행이 매우 악질적이며 아무 잘못이 없는 2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결과도 중대함을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시켰다.

추천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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