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살길 소망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 옆에서 돌아가시는 아버지 저의 행동 때문에 돌아가신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방황 이 시작 되었습니다.
매일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는 아버지 그걸 보고 자란 저 아버지의 사망과 저의 방황 속에 저는 술을 마시고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병원으로 119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처음 가보게 되었고 당직 정신과 의사가 내려와서 처음으로 우울증이라고 진단 우울증이 발병 극복하지 못하는 숙제 라 생각하고 치료는 못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거의 것으로 돌아다니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 그게 원인 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요즘 들어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이지요. 지금에 와서 깨우치고 있으니 말이에요 또 그 상황 속에서 이별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또 외로워하고 결국 나중엔 누나 친구가 가출 후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서 저와 누나친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결국 아이가 생기자 누나친구는 아이를 지우려하고 전 말렸고 많은 싸움 속에 아이를 지킴과 동시에 밀려드는 두려움 책임감이라 해야 갰죠. 또 다시 힘이든 나날들이었습니다.
당시나이 20살 하지만 한아이의 생명이 소중 하다 는 걸 알았기에 그리고 내가 한일 책임져야 하기에 먼저 처갓집 장인 장모랑 식사를 하고 나이 차이는 나지만 저를 인정하셔서 좋게 봐주셔서 왕래도 많이 하고 그러던 중 저의 두 번째 아이 임신 그리고 군대 영장결국 연기 시켰지만 여러 가지 부담감이 밀려와 결국 두 번째 자살시도 1996년12월 결국 응급실로가 치료 받고 정신과 의사와 면담후 처음 병원입원 약32일 퇴원 후 두 달쯤 있다가 재입영통지 결국 임신한 부인과 훈련소를 매우 어려운 생활고 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도왔는지 부인이 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동전 지갑을 주어서 편안하게 왔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고 훈련소에 들어가고 정신과나 질병 있는 사람 손들라고 했더니 대전에 있는 국군 OO병원 정신과 상담 그리고 일주일정도 있다 재검 통지 후 집으로 오고 재검을 받아온 상태라 일도 마땅히 못 하던 중 아이들 돌보고 주말에는 놀이터도 혼자 아이들 데리고 다니고 결국 와이프는 일자리를 구하고 수개월 후 이사 그리고 월세 방 시작 1년 정도 이사를 여러 번 다니고 마지막엔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게 되고 아이 엄마는 일을 계속하고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당시 일을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둘 중에 한명은 벌어야했기에 와이프만 계속일 만하다 술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가출 결국 찾아냈지만 돌아오지 않고 나중에 그 집이 사채업자라는 말을 듣고 집을 비우면서 누나와 엄마 그리고 나와 아이들이 다 한집으로 이사 하고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야채배달 일을시작 약2년 정도 일을 하면서도 일이 힘들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일하다 매형의 권유로 아산에서 갈비 집을 같이 하게 되었고 일을 하면서 대인 관계도 좋아지고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가 저의 두 아이를 대리로 목욕탕에 갔다가 오전10시경 아이가 다쳤다는 어머니의 황급한 전화 딸아이가 안 일어난다고 결국 가계 문 닫고 병원으로 가고 병원에서 진료를 첫 출근한 의사라 타 의료기관 가라고 결국 천안에 있는 OOO대학병원으로 이송조치후 여러 가지 검사후 가망 없다는 진단 혼수상태에서 언제 깨어날지 예측불허 집에 가서 산소호흡기 달고 살라고 의사가 말을 하자 강력히 반발 거부의사를 밝힌 후 뇌찰영(MRI) 다시 하고 결과도 가망 없다고 하자 일도 안하고 이래선 안 돼 사랑으로 간병하자 아이가 서서히 눈 도뜨고 결국엔 걸어 다니게 되었지만 정신지체장애인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딸아이의 퇴원이 결정되고 그때 매형은 가계 정리 하면서 결국 전 경기도 이사 두 아이만 오게 되었고 결국 우울증 악화 첫째 아이는 장애인복지원에 가고 둘째아이 굶기기도 하였으며 결국 냉장고도 팔아먹고 끼니를 해결 이래선 않되 하고 방송국에 제보 도움요청하자 집에와 인터뷰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껴서인지 시청에 저의 영상과 내용을 전달 시에서 동사무소 동장님과 사회복지과 전 직원이 찾아와 도와준다고 쌀과 반찬을 가져다주시고
정신보건센터와 연계 병원 입원을 권유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2005년 본격적인 우울증 치료가 시작 되면서 전 정신과병원에 입원하면서 둘째아이는 단기보호시설 입소 현재는 보육원에 입소 해있고 병원에서 4개월 입원후 퇴원 그리고 또다시 정신과 병원 입원2005년 약1달반 그 후 퇴원 아는 분을 통해 잠시 일을 해보았지만 우울증 때문에 하던 일도 못하고 일을 그만 두었고 도 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살면서 어머니 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결국 저의 어머니와 집문 제로 의사소통이 안 되어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나자 처음으로 고시원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돼고 어머니에게 보호자 요청하자 거부 결국 자의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고 정신보건센터의 도움을 받아 정신병원에 자의 입원2008년 병동생활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 사회 복지사의 상담과 도움을 주신 끝에 시설 입소 6개월을 마치고 퇴소 그후 일정한 곳 갈곳이 없는 상황에 우울증이 심해져 또다시 입원2009년 6개월 퇴원후 1주일만에 재입원하였고 결국 병원에서 싸움이 일어나 다른 병원으로 이송 하였고2009년11월입원생활중 무릅의 통증으로 인하여 2010년 양쪽무릅 반월상연골 수술과 우측팔 신경이 눌려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2005년부터 본격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고 안구건 조증부터 여러 곳이 아픈상태 입니다2010년 잠시 일을 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한 교회에서 3개월 숙식을 해결하고 또다시 고시원 그리고 올해 3월까지 교회성도와 같지 지내는데 지옥이었습니다.
제가 돈이 없자 같이 살던 분은 먹을 것을 숨겨놓고 먹고 전 며칠을 굶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생활고와 배고픔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었지만 다시 살아보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늘 부족한 인생 업는 인생 생활고에 시달린답니다.
한분의 도움으로 보증금100만원을 빌렸고 이사를 했습니다. 지하방이지만…….
지금 수급비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활사업을 하면서 그것도 없어졌지만요…….
하지만 이곳에는 TV,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물 없습니다.
세면용품도 다 떨어져가고 쌀이랑 라면이 있고 반찬은 전혀 없습니다.
일주일째 4끼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자활사업 교육받으면서 준 점심으로 그 후엔 어제 라면 하나 먹었습니다.
배고픔이 익숙해서인지 배도 고프지가 않습니다.
마실 물 살 형편도 못되어서 전기 주전자로 끓이는데 식으면 먹어야하고 먹으면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마실 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제가 일어설 수 있을 때 까지만 도움을 받고 십을 뿐입니다.
가전제품 핸드폰의 경우는 제가 통신3사 미납으로 인하여 만들 수도 없습니다.
만든다고 해도 지금 상황으론 요금을 낼 형편이 되질 않습니다.
제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TV, 노트북, 핸드폰, 치과치료비(왼쪽 어금니 한 개가 크라운 버끼고 신경치료 1회만 받고 방치 7개월째), 종합검진비용(몸이 여러 군데가 아파요 다리수술한곳 아프고 디스크, 목통증 등), 생활비, 의류, 세면용품 등입니다.
그리고 일정기간 반찬도움
물(가스레인지가 있으면 상관없음)
그리고 가능하면 이사도 하고 싶네요……. 그리고 아이도 보고 싶고
아이를 못 본지도 언 1년이 다되어 가네요.
다들 절 보시면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의 우울증 15년이 넘은 마음의 병은 생활고에 더욱 헤어나기가 어렵네요…….
여러분의 도움이 절 살릴 수 있답니다.
소중한 저의 생명의 줄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세요…
아이들과 살고 싶어요...
[후원 제일은행 김상식 492-20-035366]
[서명 부탁][Daum희망해]우울증과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저에게 아이들과 살수있는 희망을 주세요. 잠시시간내셔서 댓글을...이젠 같이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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