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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에 관한 이야기

블루군 |2011.05.27 15:36
조회 143 |추천 0
이 글은 어젯 밤 아버지와 술 한잔 마시며 나눈, 내가 믿는 천벌에 관한 이야기이다.누군가에게는 꼭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에 난생 처음 이 곳에 글을 쓰게 되었다.말 그대로 '전해들은 이야기' 이기에 의도치 않은 약간의 왜곡은 있을 수 있으나 절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우리가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면서, 천벌이라는 것을 내 피부에 와 닿도록 느끼게 되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내가 아는 악인은 희안할정도로 오래. 그리고 잘 먹고 잘 살아간다. 흔히 말하듯 '귀신은 뭐하나 저 놈 안 잡아가고' 하는 식의 표현처럼 말이다.하지만 제대로 떨어진 하늘의 분노라는 것을 보고 나니 천벌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늘은 바쁘고 세상에 악인이 너무도 많은 것이 문제일 뿐이지, 천벌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보다.19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참 건축업이 흥하던 시절.건축업을 하던 아버지께서는 갑작스런 큰 부도로 많이 힘들어 하셨었다. 두 명의 사기꾼과 한명의 브로커. 그들의 의뢰에 속아 큰 공사를 벌이게 된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생수 공장의 건설 의뢰였는데, 자신들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부족하다며, 아버지의 개인돈을 투자하여 공사를 조금 더 진행하고 장비도 조금 들여놔주면, 그때쯤이면 자신들 자금도 풀릴테고, 아버지가 사용한 액수만큼 회사의 주식을 분배해주고, 이사로서 회사의 이득도 분배 받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아버지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생수를 사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타 선진국들에서는 생수를 사먹는 것이 꽤나 일반적인 일이었으므로 꽤나 전망이 좋은 사업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하지만 공사가 한참 진행되던 도중 두 명의 사기꾼은 많은 장비와 아버지의 투자 자금을 들고 도망쳤으며, 브로커는 그들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아버지께는 어떻게든 시간이 필요했다. 도망친 둘이 경찰에 잡혀 브로커와의 연관성이 밝혀지고, 그 세명에게서 남은 자금만이라도 돌려받을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내야만 했다. 아버지의 표현대로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 이었으리라.자금을 회전시키기 위해헐값에 내놓는 땅들에는 사정을 짐작하고 가격을 더 후려치려는 각다귀 같은 자들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이런 수작이 뻔히 보임에도 아버지에게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사기꾼들이 잡힐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산을 매각하며 수많은 금융회사들을 찾아가 사정하는 일이 계속되었다.그런 식으로 몇 개월인가가 지났고, 모든 금융권은 아버지께 고개를 저었으며, 더 이상은 매각할 자산도 남지 않았다. 결국은 자금의 흐름이 막히고, 회사는 애초에 그렇게 될 것이었다는 것 처럼 힘없이 부도를 맞았다.지금은 아파트촌이 되어있는 약 2400평의 땅,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이었던 산, 땅. 우리가 살고 있던 집. 1987년 당시 17억짜리 부도라는 이름의 어마어마한 괴물은 그 모든 것들을 싸그리 집어삼켰다.부모님은 빚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그 때 당시 6살 꼬맹이였던 나와, 11살의 누나, 9살이었던 형을 이끌고 빚쟁이들을 피해 낡고 허름한 아파트로 도망쳐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짐작되는 24년을 빚쟁이들과 싸우며 어렵게 살아오셨다.이제는 내 나이도 서른. 비록 아버지께서 바라던대로 사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고, 아버지가 내 나이때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셨는지를 들을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만한 모자란 막내 아들이지만, 내가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아버지의 한탄을 들을 수 있고, 적게나마 아버지의 삶을 거들어 드릴 수도 있는 아들이 되었음에 나는 너무나 행복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비록 나는 내 아이를 낳지 않을 계획이기에 이런 부모님의 힘겨웠던 삶을, 희생을, 내 아이에게 전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러했던 부모님의 삶을 잊지 않고 착실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 로 살아가려고 한다.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를 옮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다시 처음의 천벌 이야기로 돌아가 우리 가족의 삶을 힙겹게 만든 사기꾼 A와 B, 그리고 브로커 C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는지에 관해, 경찰과 아버지에게 듣게 된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마무리 하겠다.먼저 사기꾼 A는 수배되어 도망친지 2년도 안되서 전라도 어딘가의 버려진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 여기서 '발견'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지가 기둥에 묶인채로 두개골이 쪼개져 더 이상은 사람이 아닌채로 발견되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당한 누군가의 보복이리라 짐작만 할 뿐이라고 한다.사기꾼 B는 도피 생활 1년만에 '내연녀의 내연남' 의 칼에 무참히 찔려 사망했다. 경찰 수사에서 내연남은 죽은 B가 돈이 많다는 말에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B는 도피생활 1년만에 아버지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빈털털이 신세였다.브로커 C는 불과 일년 전까지도 살아남아 사기꾼 둘보다는 비교적 오래 살았다. 경찰측은 그 때 당시 브로커 C의 사기범죄 가담 여부와 소개 대가로서의 돈을 받았는지 등등의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는 교묘하게 법의 그물을 벗어나 안락한 삶을 누렸다.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 d는 지능이 떨어지는 선천적 장애가 있었고, 둘째 아들 e는 아버지를 쏙 빼닮아 꽤나 약삭빠르다고 했다.둘째 아들 e는 자신의 아버지 C가 병으로 죽자 장남인 d에게 많은 유산이 갈 것을 염려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 지능이 떨어지는 d의 많은 유산을 가로채갔고, 이에 낙담한 d는 자살을 했다. e가 바라던것이 이런 결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어쨌건 그는 자신이 바라던 많은 유산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는 못했다.서울에 살던 C의 내연녀가 나타나 10살인 자신의 아들 f가 C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유산 상속권을 두고 법정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C의 내연녀의 말이 사실임이 밝혀졌고 e는 미성년자인 f에게 많은 유산을 떼어내 줘야만 했다. 이후 e는 부부관계도 소원해져 이혼해야만 했고, 다시 아내에게 많은 재산을 양도해야만 했다. 지금은 어디서 뭐하며 먹고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편한 삶은 아니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결과적으로 C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C는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리라.김기덕 감독님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의 노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결말이다.'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부른다.'천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사람의 손으로 응보가 이루어지긴 셈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위의 알파벳들은 (f는 아직 어리고 사정을 잘 모를테니 제외) 자기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였고, 그 '욕망의 부메랑' 에 의해 크게 다치고. 죽어갔다.그들이 하늘을 향해 배설한 비뚤어진 욕망들이 자신의 낯 위로 떨어지게 되는데 얼마가 걸릴지는 하늘만이 알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그 부메랑을 천벌이라 부르려고 한다.나는 그 '천벌' 에 의해 심판 받지 않는, 선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살리라고. 어제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마지막 인물인 C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제는 아버지도 무거운 짐을 벗고 조금이라도 편안해 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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