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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버린선비 |2011.05.27 19:29
조회 446 |추천 0

아고라에서 퍼옴...글쓴이의 동의는 받지 않았음(사실 받을 수 있는 길도 없을 것 같네요)

 

저도 결혼을 한지 1년 되는 갓난쟁이 딸아이를 키우는 가장입니다.

 

(아 물론 이혼은 안했습니다.^^)

 

항상 이 곳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막연한 안타까움이 이 두 분의 글에 나타나 있는 이런 감정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퍼옵니다. 추후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들...한 번 쯤 읽어보시길...

 

-------------------------------------------원 글-----------------------------------------

 

제목: 제2의 인생을 사는 한 남자. 아들아 고맙다

 

 

전 36세의 회사원 입니다

현재는 7살난 아들과 같이 살고있고  이혼남성 입니다

 

27세 빠른 나이라면 빠른나이에 결혼을 하여 헤어진지 1년이 쪼금 지난거 같네요

저 또한 한남자라서  가정을 가졌던 사람이기에 항상 행복한가정을 꿈꾸면 그렇게 살기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이혼은 절대안한다   이혼이란건  남녀가  불륜이나 혹은  남자의 도박 등등이 아니면 절대 될수가

없다는게 제 생각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이혼을 하였고  결혼에 실패한 한남자가 되였죠~

처음엔  퇴근후 술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3개월 가량 이어지더군요   모든 만감이 교차하고  모든걸 지킬수 없였던

제 자신에대한 원망과 함께 술을 하루라도 안먹으면 잠이 안올정도로 심각했죠

 

그러한 생활을 하면서 절 옆에서 일으켜주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게끔 해준

제 친구도 아닌 부모님도 아님  나의 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토요일  아들을 재우고  술에 쩔어 잠이들고  아침에  아들이 절 흔들면서 깨우던 그아침을

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미안한 마음에 밥먹자고 아들에게  한마디 던지고  아들과 함께 아침을 먹였드랬죠

그런데  우리꼬마가 밥을먹으면서  저애게 한마디  던진 그한마디는  저을 다른사람으로 만들어 주였죠

저에게 밥을먹으면서 아들이 한애기는  아빠 ~  난  아빠랑 둘이살아도 행복해~

어떻게 그어린아이한테 이러한 말이 튀어 나왔는지  지금생각하면 참 기가막힙니다

 

그당시 그한마디는 저에게 큰망치와 같은 충격을 주였습니다

아빠와  단둘이어도 행복하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전 뒤돌아 서서 얼마나 울였는지 모릅니다

나보다 충격이 더심했을 아들인데 말이죠~

전 모든걸 지키지 못한 남자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몇달안되지만 망가지면서 살았나봅니다~

 

전 착각을 했던거였죠  이혼을 하였기에  모든걸 실패했다고만 생각하였습니다

전  아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였던거 였습니다

 

전 지금 너무나 큰 행복을 아들로 인해 찾았습니다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사는것 같아 너무 행복합니다,

처음 아들에게 그러한 말을 들였을땐  그래 나에겐 아들이 있지

이제부터  나는 몰라도  우리아들에게만은  엄마의 행복은 주지 못할망정

내가 할수 있는 모든 행복을 아들에게 만들어 주자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전 아들에게서 즐거움을 찾았고  지금은 제자신이 더욱 행복한 날을 살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공원에서 놀고  평일에 같이 운동하며  같이먹고  보고 아들과아빠가 장을보고

이모든 평범함 속에서  행복이 느껴지고   이제는 아빠의 주머니 속 사정까지 챙겨가면서

아빠 영화는 조조을 봐야한다고 말하는 아들에게서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면서

 

회사생활에서의 예전의 저을 찾았고  이젠 저의 얼굴에 불행은 절대 없습니다

이러한 글을 쓴건  이혼은  절대 권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혼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길은 무조건 아니란겁니다

사람의 행복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걸 전 잠깐 잊고 살았나 봅니다

 

 

 

----------------------------위 글에 대한 답글 중에 하나---------------------------------

 

얼마전 힘들게 쓴 글이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복사해 봅니다.

(자식의 입장 이란 제목으로 썼던글)

 

아고라의 글 쓰는 것도 처음이고, 37년 인생 스스로 글쓴적도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답글 쭉 읽다가 자식의 입장에 대한 글이 없어서 일기 처럼 써봅니다. ( 일기외에 글을 써본적이 없어서)

 

내가 아직 철이 들기 이전 6살쯤의 겨울이였나 엄마가 집에서 사라졌다. 이불도 같이 사라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짐을 싸가지고 가실때 겨울이불도 가져가셨다)

내겐 2살 많은 형이 있었고 형과 나 그리고 아버지는 무릎까지 눈이 내린 겨울밤에 여름 홑이불을 덥고 밤새도록 울다가 잠이 들었다.

 

- 이혼 그리고 세남자 -

"아버지는 선생님 이셨고 어머니는 한동네 아버지를 졸졸따라다니던 동네처녀이셨으며 할아버지 병(풍)수발과 형을 낳은 후 결혼신고를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중학교까지 나오셨으며 아버지만 바라보며 사시던 분이였단다.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는 등한시 했고 극진한 효부였기에 결혼을 하신듯하다 동네눈도 있고해서, (풍드신분 병수발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내 생각 이지만 어머니가 남에게 극진한 관심을 받았던건 엄마가 사라진 그 해 가을이나 여름정도인가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니는 학교의 다른 선생님과 바람이 났다. (난 잘모른다 아니 스스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닌 이혼을 당했고 아버지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다 포기하신것 같다. 자식교육이라도 잘 받을 것이라 생각하시며 결정하셨단다. 형과 나의 양육 문제때문에 외가쪽 삼촌들이랑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가 없어진 우리는(아버지 형 그리고 나) 재미있게 살게 된다. 아버지는 밥을 하고 형은 빨래를 담당하고 나는 설겆이 담당이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잼있는 기억만 있다. 

(그래서 난 설겆이가 정말 싫다, 그러나 2011년 마눌님께서 "당신 설겆이 정말 잘한다"는 칭찬에 아직도 설겆이 하고 있다 ㅠ.ㅠ 이놈의 설겆이 인생)

  아버지는 엄마없이 산다고 티나면 안된다 하시면서 항상 우리 형제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참고로 아버진 표준키에 술, 담배 안하시고 노래(노래방 혼자가셔서 2시간하심), 운동(유도3단)잘하시고 마지막으로 잘 생기셨다. (아버지 유전자는 형만 받았다, 난 어머니쪽인데 음식 정말 잘하신다고만 말하겠다. ^^;)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3년 마다 이사를 하는 교육공무원 가족인생에 이사를 가는곳 마다 한명 정도의 여선생님(내가 보기엔 처녀였다 ^^;)이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위해 우리 형제에게 굉장히 잘해주었고 집에도 아버지 몰래와서 빨래도 하고 밥도 해놓고 아버지한테 불려가서 혼나고 그래도 또 오고 하여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아버지께 대쉬하던 정말 이쁜 여선생님만 2명은 확실히 기억난다.

 

  그렇게 세남자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끝나게 된다. 어느날 어버지가 분위기를 엄청잡으시면서 당신께서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고 아주 초진지하고 어색하고 껄끄럽게 말씀하시고 형과 나는 아니 나만이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쿨하게 "하 세 요" 라고 말했다. 중학생인 내가 봐도 아버진 정말 고생하셨고 우릴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몇일 후에 난 아버지 결혼식의 국수를 나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된다.)  그 국수써빙이 아버지 당신께 두번째 인생의 시작이라고만 생각했지 내 인생도 두번째 인생이 되버리는 큰일이라는건 생각지도 못했다.

 

  유년시절 내 모습을 돌이켜 보자면 어머니가 나가신 이전의 기억이 정말로 거진 없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외가집 몇 장면 정도와 사진으로 보이는 기억정도 뿐이다.(어머니와 관련된 물건 및 사진은 다 태우신것 같다) 어머니와의 추억? 애틋함 그리움 같은건 거의 없다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나가신 이후 우리집에서는 "엄마찾아 삼만리"라는 당시 유행했던 만화는 금지였다. 누군가 보지 마라한전도 없었지만 아버지가 우리 형제 눈치를 본다는걸 느꼈으며, 우리 형제 또한 집안에서 엄마라는 말을 꺼내가너 모정을 느끼게 하는 주말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질 못했다. 이유는 하나다! "아버지가 우리들 눈치를 보실까봐서다"

 

- 질풍노도의 시기-

 아버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되지만 왜 지금의 어머니와 (편의상 이제부터 새어머니를 "어머니" 친어머니를 "엄마" 라고 해야겠다.) 결혼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쁜 처녀여선생들을 두고 이혼경험이 있는 화장품가게 아주머니와 결혼을 하셨는지? 물론 교육자라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이시겠지만 아픔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까는 정도로 난 해석하고 있다.

 

  유년기 대부분을 집안에 여자속옷 한번 본적 없이 자란다는건 성적으로 참 왜곡되기 쉽다. 변태가 되기 쉽다는거다. (고등학생 형의 서랍속엔 스타킹이 많았다.^^; 난 중3때 까지 성에 대해서 눈을 뜨지못했다 단지 빨래통 깊숙히 숨겨져 있던 새어머니의 속옷을 보면서 심각하게 저게 왜 저렇게 생겼을까? 할 정도)

"그 당시 성교육은 국가 정규교육 커리큘럼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동네형들의 파란계천표 VCR자료와 만화책 정도가 끝이란걸 말해두고 싶다"

 

  중학교시절 공부를 썩잘했던 나는 어머니와의 뻘쭘한 1년을 그렇게 어중간하게 보내고(엄마라 불러야 하는줄 알면서도 그 뻘쭘함 어색함 등등) 물 건너 유학을 가게 된다. (한강위쪽 고등학교로...) 혼자서 하숙을 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나게 된다. 하숙집 아줌마는 이혼녀에 자녀가 두명인데 한명이 나와 동갑인 여자애다. 거기에 이쁘기까지 하다. 올래! 하숙집 아줌마도 섹시하고 몸매도 좋았다. 단지 초등학생 5학년 짜리 악마도 같이 있다는 사실이 내가 정상생활을 할수 있는 원동력 이랄까? 거기에 하숙생이 3명 더 있었다는거하고 ㅠ.ㅠ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난 그 이쁜 하숙집딸 보단 40대 중반의 하숙집아줌마가 더 꿈속에 나왔으며 가끔 안마도 해드렸다 어깨하고 팔 다리 정도? 추리닝 차림에 엉덩이 뒤로 안빼고 안마할수 있는 고등학생 있으면 장래직업을 천주교 사제나 스님으로 추천하리라.)

 

 내가 왜 이런 말을 할까 요즘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집안에 여자 없이 남자끼리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교육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고등학생 아들의 방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휴지값이 대폭상승할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쯤 나에게 엄마가 찾아오게 된다. 그쯤 알았지만 형은 나도 모르게 엄마와 연락을 하고 했나보다. 사춘기를 맞이하고 그 때쯤 엄마를 찾은거라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우릴 항상 주변에서 보고 있었단다. 초중교 졸업식 입학식 아주 멀리서. 고등학교 입학시 아주멀리서...

  친엄마를 만났는데 별다른 감정이 없다. 누구한테 말도 못하겠다. 말할 사람도 없다. 아버지한테 배신한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친한 친구한테도 이런 이야길 해본적이 없었다.

 

  아! 한가지 에피소드 중학교 2학년 2학기 담임이던 여선생님 처음 부임해서 우리가 제자 1호였던거다. 착하게 생기시고 성격착하고 이쁘셨다. 그렇게 한학기를 담임을 맞으시고 3학년 봄정도 였을거다. 갑자기 교무실에서 그 선생님이 마이크로 날 찾으셨고 교무실 앞 교단 넘어서 갑자기 내 손을 꼭 붙잡으시더니 "엄마가 없는지 몰랐고, 항상 웃고 공부도 잘해서 전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펑펑 우셨다. 

(대낮에 1층 교무실앞 교단이면 알겠지만 전교생과 전 선생님이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또는 아래로만 고개를 돌리면 다 보인다. 두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선생님은 학교 마이크로 나를 찾아서  데리고 가셨다 ㅠ.ㅠ) 나도 같이 울어야하는 시츄에이션인데 나와 나를 안고 엉엉울고 있는 갓 24-5살 여선생의 모습을 적어도 100쌍 이상의 눈이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의 과도한 관심과 액션이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난 일주일간 학생부에 끌려다녔다... 무슨짓을 했냐고... 학교의 모든 남자 선생님들이 한번씩은 부른것 같다...난 정말 불려가서도 아무말도 못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라고만 말했지 "아버지 혼자 절 키우셨고 얼마전에 아버지가 장가갔어요 라는 이야길 못했다 맞아죽어도..."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이야길 하면 오는 그 어색함 때문이랄까? 불쌍하게 볼것이라는 선입관? 또는 아버지가 싫어하셨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난 한번도 그 이야길 남에게 해본적이 없다 단 한번 빼고...

 

  재수를 하던 어느 비내리는 봄과 여름사이일거다. 같이 학원을 다니던 애들끼리 많이 친해져서 남자 10명 정도가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한참을 취해가던 우리 중 한넘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 넘아가 우는 이유는 "부모님이 이혼을 할것 같다고 자기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세상의 모든이와 대상을 향해서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덩치는 산만한테 한손엔 소주와 두눈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같이 울었다. 그중에 친한넘도 있었고 안친한넘도 있었지만 한 30분을 아무말 없이 울었다. 다들 울었다.. 근데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 느낌은 그런데? 응? 그래서? 이정도 반응이였다. 나에게 부모님의 이혼은 무감각해야하는 것이였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년기 세남자의 생활은 부모의 이혼이란 단어에게 "감정적으로 받아드리면 안된다"라고 트레이닝 했나보다 나도모르게...

 

  그런데 웃긴건 그 날밤 우리는 자기들 집안문제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는데. 열넘들중 7명의 부모가 문제가 있었다는 거였다. 이혼을 했던가 이혼을 준비중이던가 사이가 않좋다던가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있던가, 편모자식이던가, 우린 서로의 이야길 끝내고 한참동안 웃었다. 소주를 마시면서 세상을 향해서 육두문자를 날리고 마지막으로 그넘들에게 나의 이야길 했고,  "부모인생은 부모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인생이다"

그러니 부모탓하지마라 라는 명언을 남기기고 했다 ^^;; 나도 이야길 해놓고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전까진 아무생각 없었다. (그때 그넘들 중 한넘이라도 있을라나.. 의정부 철뚝길 자취방)

 

어제 갑자기 쓰기 시작한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되었네요.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글을 자의적으로 써본적 없는 평범한 30대지만 단락별로 쓰려고 했고 내가 쓴글을 읽고 수정하다보니 시간이 너무들더군요.

사실 쓰다가 갑자기 슬퍼지고 한참을 써놓은걸 보면서 회상하게 되어서 시간이 더욱 길어졌답니다.

에피소드로 1부 ? ㅎㅎ 를 마무리 했는데 사실 중요한건 엄마와의 만남이였습니다.

 

- 엄마와 어머니 -

고교를 진학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된 나는 지방 중학생의 상경기를 맞게 됩니다. 전교에서도 등수안에 들던넘이 반에서 절반이하로 나락을 치더군요. (요즘 카이스트 학생들 이야기가 화두였는데 이해가 되는부분들이 있었죠.) 밤을 새고 공부를 해도 올라가는 등수는 아주적습니다. 다들 그만큼 공부를 하고 있으니깐요. 따라가기 바쁘고 성문기본도 안본넘이 성문종합을 중학교때 마스터한 애들을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고교1학년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공부를 고피터져라 합니다. 그리고 포기하게 됩니다. ^^; 그 이후로 질풍노도죠 만화, 당구, 술, 담배, 등등. 그때 쯤 등장한게 엄마입니다.

 

  삐삐도 없던시절 유일한 연락처는 하숙집 전화였고 어느날 학교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됩니다.  1부에서 이야기 했듯이 엄마는 주변에서 기념일 정도에 항상 날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절 정확히 바라봤지만 전 엄마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엄마를 보기전까진 내가 지나가다 엄마를 보더라도 모르고 지나칠거라 생각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듯이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런 장면이 연출될줄 았았습니다.

 그런데 난 정확히 엄마를 알아봅니다. 나만 훌쩍 변했지 엄마는 아주 어린 내 기억속에 모습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난감 그 자체인 상황, 내 이름을 부르는 앞에 아줌마가 "엄마"라는건 알겠는데 뭘 어찌해야할지 몰랐으니.. 친구들도 옆에 있었고, 기억이 잘나질 않습니다. 그날 그 시간 언저리가 전부 뿌였습니다. (참 재주도 좋은 기억력입니다. 난감한 상황은 이렇게 기억이 안나니 남들은 생생하다는데) 그렇게 10년을 뛰어넘어 엄마를 만나게 되고, 드라마에선 울고 불고 하겠지만 고등학교 남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걍 뻘쭘하게 멀뚱거릴 뿐입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 하숙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다음날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가고 야자를 하고 끝나면 당구장에 들리고 뭐 변한것 하나없는 나날입니다.

  엄마가 외제승용차에 운전기사와 함께 좋은 호텔로 가서 "내가 니 엄마다 난 곧 죽는다 내 재산을 너와 형이 물려받아야 한다 아들아 !!!" 올래!!!!!! (지금 생각해본다 ㅠ,ㅠ 꿈처럼) 하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못배웠던 어머니는 그렇다고 미모도 없으셨으니 얼마나 여자 혼자 세상살기 힘들었을까? 내가 처음 봤을때 엄마는 살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서 이혼녀 친구와 둘이서 동네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으셨다. 이혼녀 둘이 하는 미용실인데 간판이름이 각시방 미용실이였다...(아직도 묻지 않았다다 왜 각시방이였냐고 이혼녀둘인데?) 엄마는 아직도 혼자 살고 있었다. 재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고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저 용돈주머니가 둘로 늘었다는게 제일 기쁜일이였다. (역시 질풍노도의 한국 남고생이다)

"누군가 자녀를 두고 이혼을 했다면 추후 자식들이 떠나간 엄마 또는 아빠를 보게 될때 당황하지 않도록 메뉴얼이라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니 이혼을 했다거나 할 생각이면 꼭 만들어 두시길 바란다"

 

 편부 편모 슬하의 자녀들이 어긋나고 공부를 못한다고 한다. 음,, 꼭 틀린말은 아니다 2명이 감시해야하는데 한명이 감시하니 당연 확률은 높다고 해야하나? 두명이 벌어서 교육비 나가는 상황과 한명이 벌어서 교육시키는 확율과도 별다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런거 가지고 핑계대는 넘들이 있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긋났다고!!" 말 그대로 핑계다. 자기가 결정했는데 왜 부모핑계를 대는가! 원인제공은 부모가 했다는 소리도 웃기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가 혼자서 애를 길렀다면 공부못하고 사고치는 자식이 나올거란 생각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공부를 못하면 시험지를 빼올것이고, 사고치면 검찰이 알아서 해결해줬을거다. 자식이 어긋나간다고 "내 탓이다" 하시는 부모님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자식 앞에선 절대 난 잘못없다 난 최선을 다했다 하시길 바랍니다.

 

  난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게 된다. 반학기 정도를 재수학원에 다니다 때려치우고 원래 집으로 오게 된다. 혼자 할수 있을거란 믿음을 가지고 (결론: 재수는 혼자하는게 아닙니다.)

 

  중학교 3학년 1년동안 어머니(새어머니)와 살다가 근 4년을 유학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건 또 하숙집 같았다. 아버지는 학교를 전근가시게 되어 이사를 했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어색하다. (고교 1년정도는 주말마다 내려가고 2학년이되면 한달에 한번 정도 3학년이 되면 돈 필요할때 가게 되는게 집이다.) 갑자기 돌아온 아들?(가끔 봤던 까까머리 새아들이 정확한 표현일듯), 그해가 아마 어머니와 북한에겐 커다란 시련의 시기였을 거다, 형이 군대를 가서 단란하게 아버지랑 두분이 지낼수 있게 생각하셨겠지만 작은 아들이 돌아왔고 . 북한도 영원이 살것같던 김일성이 죽었다 !!!

  난 거의 말이 없었다. 어머니와는 가끔 아버지랑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 대상이 나일거란 생각에 더욱 내 말수는 적어져갔다. 공부는 안하고 지은지 3년 정도된 군립도서관에 매일 출근해서 반년만에 독서왕이 되버렸다. 하루에 책을 3권씩 읽었을 것이다. 무섭도록 책에 빠져서 가리지 않고 읽었다. (연말에 군에서 상도 받았다 독서왕 ^^; 3년간 책 많이 읽은 사람중 3등이였다. 남들 3년간 읽을걸 반년만에 읽은듯...)

 

  그때 상황은 정말 답답했다.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 눈치를 보고 난 아버지와 어머니 눈치를 보고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고. 가족 3명의 대화는 없었고 아버지와 나 사이도 점점 멀어져갔다. 모든게 내탓같았지만 나도 어쩔수 없었다 갈곳없는 재수생인걸 어찌하리오. 집나가면 고생인걸 뻔히 아는데 부모님을 위해서 가출해드릴만큼 효자가 아니다, "어이 가출하려는 학생들 세상을 삐딱하게 보려면 조금 더 뒤틀리게 봐봐. 내가 가출하면 누군가 좋아할지 몰라라고, 그러니 버텨야해. 그럼 몇년 후 결과는 가출하는것보단 좋아질거야" 

 감옥같다고나 할까...

 

 여기서 내 (새)어머니를 이야기 해보자. 경상도 분이시다. 아버진 전라도 ^^; (엄마는 전라도 우리형제도) 입맛도 다르다, 말투도 다르다 어떻게 살아오신 분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동화에서 나오는 새엄마 처럼 독사과를 먹이거나 남몰래 고기힘줄 부분만 먹이거나 하지 않으신다. 그냥 평범하시다. 그렇다고 드라마에 아주 가뭄에 콩나듯 자기 자식처럼 대하지도 않으신다 그냥 중간정도. (우리 마눌님도 나와 마눌에게 대하는 어머니와 엄마의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그 묘한차이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도 평탄치 못했던 같다. 어느날 아버지가 나에게 어머니랑 이혼을 생각할 정도다 라고 말한적도 있다. 하지만 두분다 한번 더 이혼을 할만한 용기는 없으셨던것 같다. 단지 행복만 하기엔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고 달리 살아오신 세월이 길었으며, 정부는 지역감정을 해소하지 못했었다. 우리 가정의 불화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부에게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도 있다. (감옥 같던 당시 모든 불평불만의 책임은 나와 관련없다는 극이기주의였다 ^^; )

 

- 한국에서 남자되기 군대와 결혼 -

책만 죽어라 읽던 나는 언어영역 상위 0.1%라는 경이적인 점수를 기록했고... 언어영역외에 나머지 과목점수가 언어영역과 비슷한 더욱 경이적인 점수를 기록하며 지방대를 가게 된다. ^^;; 또 집을 나와 자취를 한다. 어머니와 같이 산건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시고 일년반정도 일까? 대학에서 아주 즐겁게 학생회생활과 노래패 생활을 하시다 4학년이 되었고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인데 연세대에서 횽아,누님들이 대동단결하셔 내 군 영장을 연기 시켜버린다. 뭐 내가 당연직 대위원이 되어서 "한총련"이란다 털썩 난 반대쪽인디 아무리 이야길 해도 수사를 받고 가란다 지금가면 헌병대로 직행이란다. 그래서 보안과에서 친절히 군대연기를 해줬다.

  여기서 에피소드 엄마는 아들이 가끔 최루탄을 마셔주고 있다는걸 넌지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세대 사건때 신문에 사진이 대문짝하게 나왔는데 멀리서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학생중 한넘이 나랑 닮았단다. 분명 난 아니다 마스크 쓰고 있는데 다 비슷하게 보일뿐이지 하지만 엄마 눈엔 다 자식같은걸 어찌하리오 그래서 나를 겁나게 찾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마 그 시점에 농활을 갔었고 그 시절 핸드폰은 걸리버였나? 농활가면 안터졌다 !!! 엄마는 보시지도 않던 뉴스와 신문을 연세대 사태가 끝날때까지 보셨다고 한다. 어디 개천에서 최루탄 안경쓰고 자식이 떠오를지... 광주사태의 간접적이지만 겪은 분들이다...

 

  기소유예라는 당연한 결과와 함께 4학년을 마치고 가짜 졸업식에 부모님까지 모시고 사진을 찍었다. 가짜 졸업식을 실전처럼 연기해 주었던 여러후배들에게 감사하고. 2년후 우리집에 전화해서 "오빠 제대안했어요? 왜 학교를 안오신데요? 라고 해맑게 내가 아직 미졸업자라는 사실을 부모님께 친절히 알려준 과후배에게도 격정적으로 감사한다 ㅡ.ㅡ;

  빨간꼬리표를 달고 군대를 가게 되는데 부모님과 어머니 다들 면회 한번 오시질 않았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나이먹고 군대갔는데 면회는 무슨 면회냐고 쪽팔리다고 오지 말라고. 라고 했지만 정말 한번도 않오실줄은 몰랐다. "부모님들 한번정도는 가보셔요" 형은 부모님도 어머니도 자주 가셨다 물론 의경으로 서울에서 근무했기때문에 접근성이 용이하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첫째라는 희소성이 컷던것 같다.

(아. 왠만하심 형과 동생의 면회 횟수도 맞춰주시면 감사합니다 부모님들)

 

 이렇게 나는 부모님의 눈을 속이고 엄마와 연락하고 만났으며, 형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형은 더 심했다. 내가 군대 있는동안 형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형 결혼식에서 엄마와 이모분들이 대거 오셨다. 이 얼마나 삭막한 상황인가. 부모님도 엄마도 싸했다. 난 당시 군인이였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 자릴 피해서 아버지 결혼식때와 비슷하게 국수그릇을 세는걸 했다. 아마 난리였을거다. 동네잔치에 쑥덕쑥덕 아버지도 난감 어머니와 외가친척들도 대충 눈치를 채기 시작했고, 엄마는 내 아들 결혼식이니 누가 뭐라해도 이런 포스셨다. 다행이 당시 내 신분이 군인이였기에 정부에선 날 복귀라는 명령으로 그 삭막한 분위기를 피할수 있게 해주었다. 군인되길 잘했다고 생각한건 그때가 태어나서 마지막이였을 거다.

 

  군대를 재대하고 나머지 학점을 메꾸고 간신히 코스모스졸업을 하면서 졸업식 다음날 취직을 한다. 그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나이가 점점 차고 결혼할때가 되어서 예전부터 연락하고 지냈던 노래패동아리 후배를 마눌님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한달치 월급으로 다이아반지를 준비하고 운전하면서 줬다.. 반지를..

(마눌님은 그날을 국치일로 지정하시고 그 생각하면 날 일본놈과 동일시 한다. 난 단지 뻘줌한게 싫었을 뿐이였다)

 

 우리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일요일은 안된다 하셨고 나머진 알아서 하라하셨다. 엄마는 미장원 하시면서 머리결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타 등등 사람의 됨됨이를 알수 있다하시면서 마눌님 머리를 뚥어지게 보셨다. 뭐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마눌님께는 속사정 전부는 이야기 못했지만. 시어머니가 두명이야 라고 말해주었고 두분중 한분은 우리가 모셔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부+모 (장남)/ 친모(차남)  뭐 이런 경우가 올지모른다고 설명하고 확인을 받아두었다. 그러나 드라마 같은 상황이 오게 되었다. 된장 내 인생에서 이런 시츄에이션이 올줄이야. 장모님께선 상견례 하시고 마지막으로 조용히 불러서 한마디 하셨다 본인께서 시어머니가 두분이셨단다. 그래서 너무 힘드셨다고 그것만 아니면 된다고...마눌을 부탁한다고... 된장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나 ^^; 마눌도 알고 있는내용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결혼을 하게된다. (아직도 모르고 있으시고 될수 있으면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 ㅠ.ㅠ) 참고로 형은 사돈어른들께 이야길 한것 같다. 엄마가 사돈어른도 뵙곤 하신다.

 

  결혼을 하기로 하고 난 마눌님께 감사하며 몇가지 다짐을 하게된다. 만약 우리가 살다가 이혼을 하게될 상황이 오게 된다면 자식이 없는 상황이면 언제든 쿨하게 헤어지기로. 단 자식이 생긴 후에는 다 같이 죽을거라고 했다. 나 너 그리고 아무 죄없는 자식도...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결혼식이다. 정신이 없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이셨고 손님 대박이다. 우리쪽 손님만 1500명이였다. 1부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아버지와 엄마는 한동네 사람이다. 아버지 고향친구후배들이 엄마의 동네오빠 친구들이다. 그렇게 얼키고 설키고 사람엄청많아서 다행이 처가쪽 분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결혼식은 무사히 넘겼다. 한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어머니도 덤덤히 넘기셨다. 그럴줄 알았다하시듯..

  하지만 문제는 신혼여행을 갔다왔을때 집안의 분위기 였다. 냉랭도 이런 냉랭이 없다. 어머니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 상황에 마눌은 우리집에서 자는첫날 긴장해서인지 여독때문인지 밤 12시에 응급실로 실려간다. 배가 아프다고.. 상황은 이랬다. 우리가 신혼여행가 있는동안 엄마가 나에게 부탁해서 발송한 청첩장이 반송되어 본가(어머니)로 배송됐고 거기에 신랑측 모친함자는 엄마 함자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몰래 알려주셨다. 반송비까지 어머니가 내셨단다. 정말 어머니한테는 충격이상의 비수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어머닌 더욱 교회에 정진하셨고, 몇 달이 지나 집사님이셨던 우리 어머니는 권사님이 되셨다. (동생이 만약있었다면 아마 어머닌 목사님이 되실듯 했다)

 

  난 한번의 이혼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우린 나름잘 넘겼다. 또 다시 힘든 시련이 찾아올 무렵 우리에게 광복이가 생겼다. 마눌님이 임신중이시다. 태명이 "광복" 이다. 예정일이 광복절 부근이라서 그리 붙였는데 딸이란다 된장 ㅠ.ㅠ 내 나이 37되는 올해 8월이면 난 아버지가 된다.

 

 자녀를 두신 이혼남녀분들, 이혼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여러분들의 선택으로 인해서 수천가지 자녀들의 삶이 결정되겠지만 그 중에 한 삶은 이렇게도 될수 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다.

 

  이혼을 하지마라 해라 하는게 절대 아니다. 이혼을 하던 안하던 그건 당신들의 삶이고 그 결정에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것 같아서 썼을 뿐이다. 자식의 입장으로..

 

난 내 삶을 원망한적 없다 질풍노도의 재수시기 빼곤 ^^;; 그 당시 난 날서있는 칼이였고 그 칼은 건드리는 사람마다 다 베어냈었으니 잊고 싶은 기억일뿐,  내 삶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평탄치 못한 삶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다. 인생에 파도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에게 아버지, 어머니, 엄마 모두 그냥 부모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어떤 잘못을 했을지라도 엄마인데 어찌할까. 내 인생시작은 거기부터 인걸... 아버지가 당신 인생의 기로에서 홀로 선택을 하셨듯이 성년이 된 나에게도 엄마를 만나고 안만나고의 선택은 내가 하게 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보고싶어 몇 수년을 주변인으로 바라보시다 용기내여 앞에 서셨을 것이다. 그걸 막을 권리가 또 누구에게 있을까 ?

 

나도 곧 아버지가 된다. 내 자식에게 나와 똑같은 고민을 주긴 싫다.

인생에 파도는 있어야 맛이고, 내 자식은 나와 다른 파도를 맞이하길 바란다.

 

                                           2011년 4월 21일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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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소중하니까요....ㅜㅜ 울 딸 ..아빠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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