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나와 자신의 고물차를 끌고 경찰서로 가는 수정은 지난밤에 일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생각만 해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주환을 다시 볼 생각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평소처럼 대해야 하는 걸까. 아님 평소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서도 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덫 경찰서에 도착해 있었고
결심을 하고 차에서 내린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른 채 평소와 같이 해맑은 인사로 문을 들어선다.
“ 안녕들 하세요. 황기자 왔습니다. ”
“ 왔어요. ”
“ 오셨어요. ”
“ 황기자~ 여기 먹을 복 있네. 치킨 먹어. ”
“ 우와~ 치킨이요? 저도 먹어도 되는 거에요? ”
“ 그럼. 언제는 뭐 물어 보고 먹었나? 새삼스럽기는 하하하 ”
“ 하하. 그렇게요. 근데.. 정 팀장님은 어디 가셨나 봐요? ”
“ 팀장님. 오전에 탐문수사 나가셨어요. 이제 곧 오실 거에요. 그래도 수정씨 우리 팀장님이랑 여러번 사건 생기더니 친해졌나봐요. 하하”
“ 그럼요.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요. 너무 무뚝뚝해서 한 동안은 정말 난감했다니까요. 히히 ”
그 때 주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주환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말하던 수정이 얼음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하니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 팀장님. 안녕하세요. ”
“ 네. ”
이렇게 짧게 인사를 하곤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아서 서류들을 챙겨 보고 있는 주환. 순간 당황한 수정은 어색하게 한 번 크게 웃는다. 이 남자 그 날 이후로도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냉랭했고 여전히 시선 또한 주지 않았다. 당황해 하는 수정이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던 정수는 어색한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농담을 던진다.
“ 아유~ 수정씨 우리 팀장님이랑 친해졌다면서 이제 보니 아닌데요. 하하하하. ”
“ 김정수! ”
“ 네~ 팀장님 ”
“ 남현동 부녀자 살인사건 자료 좀 가지고 이리 와! ”
“ 아..네..”
그리고 얼마 뒤 강력3반 팀원들이 회의실에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크를 하고 수정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한창 남현동 부녀자 살인사건에 대한 브리핑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슬그머니 의자에 앉아서 수정 역시 수첩에 메모하며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주환의 표정을 살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아 서운한 생각이 든다. 회의실 불이 켜지고 브리핑을 하던 김형사가 자리에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수정을 쏘아 본다.
“ 황기자님! ”
“ 네? 저요? ”
“ 그럼 여기 기자가 황기자님 밖에 더 있습니까? ”
“ 아.. 그렇네요.. 네.. ”
“ 이번 사건은 황기자님이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나가주십시오. ”
모두들 주환의 발언에 깜짝 놀라 일제히 주환을 바라본다.
“ 그게.. 무슨..”
“ 경찰 측 입장이라는 것도 있고 잘못하면 미재로 남은 살인사건인데 함부로 기자에게 정보를 줄 순 없지 않겠습니까? 나가 주십시오. 그리고 신 형사는 국 가수에서 결과 나오는 대로 바로 찾아와. ”
“네.. 팀장님... ”
회의실을 나오는 수정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원래에도 주환은 자신에게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무안하게 만들면서 회의실에서 내쫒았던 적은 없었다. 머리의 혼란이 오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 남자가 왜 저렇게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그리고 어제는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서 마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존보다 더 냉철해진 모습에 놀란 수정.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잠시 받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옥상으로 올라간 수정은 심호흡을 여러번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 자신의 가방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온다. 주차장에 오니 주환이 보인다. 뒤를 따라 주환을 팔을 잡는다.
“정팀장님.”
“ 뭐죠? ”
“ 경찰측에서 기사화하길 원치 않는다면 사건 해결되기 전까지는 기사 안 쓸게요. 그래도 예전처럼 같이 조사하고 제 눈으로 보고 싶어요. 이번 사건에서 제외시키지 말아주세요. ”
수정이 잡고 있던 팔을 뿌리치며 단호하게 말한다.
“ 황기자님. 제가 아까 한 말이 그냥 장난으로 해 본 말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강력 3반은 황기자님을 제외하고 움직일 겁니다. ”
“ 그게... 무슨 말이죠? 무슨 뜻이에요? ”
“ 말 그대로입니다. 수사에 방해가 되니 이런 사소한 일로 저희를 찾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
자신의 말만 하고 차에 올라타 출발해버리는 주환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난다. 모르겠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가슴이 뻥 뚤린 것만 같았다. 어젯밤만 해도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입술에 키스를 한 남자가 맞는 것인가.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내가 잠시 꿈을 꾼 것일까.
한참 뒤에 차에 오른 수정은 준하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이동한다. 준하를 만나 저녁을 같이 먹는데도 표정이 좋지 않자 조심스럽게 묻는다.
“ 수정이.. 너 오늘 무슨 일 있었어? ”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 수정아..! ”
“ 어? 아... 미안.. 준하 오빠. 뭐라고 했어? ”
“ 오늘 이상하다.. 너 너답지 않아. 무슨 일 있었던거야? ”
“ 준하오빠! 나다운게 뭔데...? 오빠가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
“ 무슨 일이야? ”
“ 모르겠어.. 이 기분은.. 뭐가 뭔지.. 하나도...휴... ”
준하는 보았다. 수정이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봐왔기 때문에 수정의 표정만 봐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은 짐작이 가곤했다. 수정은 표정관리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서에서 수정과 주환이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을 수정에서 붙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 그 타이밍에 맞게 준하가 알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기분이 상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으려고 노력하는 준하.
“ 자리 옮겨서 술 한 잔 할까? ”
“ 그래... 우리 술 한 잔 하자.. 오빠.... 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
BAR로 이동하여 와인을 마시는 두 사람. 술을 많이 마셔 취해 쓰러지자 준하가 안아 자신의 차에 태운다. 그러나 수정의 집으로 가지 않아 자신이 살고 있는 고급빌라로 데리고 간다. 자신이 쓰는 침대에 눕히고 잠든 수정을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 입술에 살짝 키스한다.
아침이 되어 깨어난 수정은 머리가 아프다. 어제 준하와 마신 술의 양이 많았었는지 속도 좋지 않다. 모르는 장소이긴 하지만 이 곳은 준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하의 향기가 곳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협탁 위에 놓여진 D자의 옷과 메모를 본다.
[일어나면 씻고 이걸로 갈아입어 - 준하-]
참 고마운 사람이다. 장준하라는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의 곁에서 가족 같은 존재로 있어주니 말이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수정은 거실로 나온다. 주방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걸어가 보니 준하다. 남자가 앞치마를 하고 요리하는 뒷모습도 꽤나 매력적이다. 이 남자가 준하가 아니라면 반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한다.
“ 준하 오빠. ”
“ 어. 일어났어? 아침 먹어야지? ”
“ 오빠가 요리하는 거야? 멋있다~ 오빠도 이제 연애해서 결혼해야겠네~ ”
씻고 나온 수정의 머리가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자 옆에 있던 수건을 들고 와서 손수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는 준하.
“ 이러다 감기 걸려. ”
“ 오빠랑 결혼 할 여자는 행복할거야~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 될 것 같아... 히히 ”
그 말을 듣던 준하가 수정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품안으로 밀어 넣는다. 준하의 행동에 놀라는 수정.
“ 오빠....?”
“ 내가 나중에 누군가와 결혼이라는 걸해야 한다면.... 그건.. 너 일거야.. 수정아..”
“ 그게..무슨...? ”
“ 난 오래 전부터 널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았어. 너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해지는 생각하면서 지난 5년도 뉴욕에서 버텼고. ”
“ 준하오빠...”
수정을 안고 있던 준하의 손이 스르르 풀리면서 서로 마주보게 된다.
“ 수정아... 나랑 결혼 해 줄래? ”
갑작스런 준하의 고백의 놀라고 당황한 수정은 얼음이 되어버린다. 이내 준하가 수정에게 다가오고 입술을 취하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수정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행동에 준하도 당황한다. 그러나 다시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다시 키스를 시도하려고 할 때 준하의 가슴을 밀어내는 수정.
“ 하....잠깐만.. 오빠.. ”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운 수정은 머릿속에서 혼동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준하의 집에서 나와 버린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준하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듯 나온 수정은 택시를 잡아타고 한강으로 향하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다. 준하를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준하는 그저 어릴 적부터 자신을 잘 챙겨준 고마운 사람. 고마운 오빠. 때론 기댈 수 있는 아빠 같은 존재였다. 남자인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눈물이 난다. 왜 지금 이 상황에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현재 수정 자신도 어떤 게 자신이 마음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확인 할 길이 필요했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목에 갈증을 느껴 냉장고 문을 연다. 결혼 안 한 모든 남자가 그러 하듯이. 자취하는 모든 남자들이 그러 하듯이. 냉장고 안에는 이곳에서 사람이 먹고 생활을 한다는 것이 믿겨 지지 않을 만큼 텅텅 비어 있다. 1.5리터 물병 몇 개와 소주병이 있을 뿐이다. 물병의 뚜껑을 열고 물을 목젖이 다 보이도록 벌컥 벌컥 들이 마신다. 그리고 옆에 보이는 소주병을 꺼내 병따개로 뚜껑을 따고 소주병채로 입에 털어 넣는다.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도. 그런 느낌이라도 들어야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도저히 이런 느낌으론 한순간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소주 한 병을 입 안에 털어 버리고 다시 소파에 와 서랍장 문을 열고 라이터와 담배를 찾는다. 손가락 두 개로 담배를 들어 라이터로 불을 지핀다. 이내 담배에 불이 붙고 연기를 빨아 모았다가 다시 뱉어버리기를 반복 한다. 아직 전등이 켜지지 않았지만 날이 점점 밝아 오고 있음을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 덕분에 알았다. 시계를 보니 저녁10시가 다 되어 간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친 몸을 기대고 눈을 잠시 감았을 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전화를 받는다.
“ 네. 정주환입니다. 서장님 . 네. 아..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겉옷과 핸드폰을 손에 들고 집에서 급하게 나온 재원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 2층 버튼을 누른다. 1분 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검정색 차에 오르고 시동은 건다.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 순간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재원의 발이 브레이크를 밟는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반동으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상황파악을 위해 앞을 본 재원의 표정이 굳어진다. 한 동안 정지자세로 있던 재원은 벨트를 풀고 차문을 열어 차에서 내린다. 성큼성큼 다가가 한 여자 앞에 선다. 이 여자가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여 가로막았던 장애물이다. 어깨까지 간신히 내려오는 웨이브 머리를 하고 머리색은 마치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황금빛 갈색을 띠며 칠부 청 자켓을 상의에 걸치고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채 자신의 차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도록 양 팔을 벌려 막고 있는 것이다.비를 맞았는데 온 몸이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주환.
“지금 뭐하는 겁니까? 위험했잖습니까. ”
“당신보단 덜 위험하겠죠. ”
“이렇게 여유부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
“한 가지만 물을게요...”
단호한 눈빛의 수정을 보자 더 이상 이 여자를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머리를 숙이며 포기했다는 듯이 수정에게 말한다.
“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죠. ”
“ 도대체 왜 날 싫어하는 거죠?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내가 정팀장님께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
“ 그런 거 없습니다. ”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상대방의 얼굴조차 바라보지 않고 성의 없게 대답하는 이 남자가 야속하기만 한 수정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고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 그럼 제가 왜 취재하는 것 자체를 막으시는 거 에요? 이번 사건이 정팀장님께 중요한 만큼 저한테도 정말 중요해요. 분명 서장님께 말씀드려 허락까지 받았는데 왜 절 자꾸 밀어 내시는 건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 ”
“ 이유는 하납니다. 살인사건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황수정기자가 잘 안다면 아마 덤벼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건 아이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난 내가 맡은 일에 여자가 끼어 복잡해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말이 끝나고 다시 뒤돌아 차 문을 열고 오르려는 순간 닫히지 않게 수정이 문을 붙잡는다. 그리고 주환에게 다가가 기습키스를 하는 수정.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 몸이 굳어 버린 주환은 잠시 주저하다 이내 자신의 몸에서 수정을 떼어내 밀쳐낸다.
“ 하..뭐하는...뭐하는겁니까? ”
“ 정팀장님께서 저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요. ”
“ 그게 무슨..! ”
“ 당신도 나한테 흔들리잖아! 그런 감정을 나만 느꼈다고 거짓말하지 말아요. 갑자기 이러는 이유. 난 알아야겠어요. 말해 봐요. 나 혼자 당신 보고 있는 거에요? 그래요? 당신도 나 보기 시작했잖아. 아니에요? ”
“ 그런 적 없습니다.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하셨나본데.. 이제 오해 풀고 돌아가세요. ”
다시 차에 오른 주환은 이 자리를 떠난다. 백미러로 보이는 수정의 모습이 안쓰러워 가슴이 무너졌지만 고개를 돌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