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군인입니다. 오늘 느낀게 많아서 다이어리 썼는데
톡에도 한번 올려봅니다. 처음인데 음! ㅎㅎ
다들 힘내세요~
3 am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잠 깨기 위해 찬 물로 머리를 감는다.
4시에 출발하려면 3시정도엔 일어나줘야지..음
요즘 읽고 있는 박완서 할머니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타이밍 좋게 오늘은 여태 못 가본 길을 갔다.
결국 한 번에 못찾고 빙빙 돌아 겨우 갔지만 끙..
그닥 아름답지는 않았다 ㅋㅋ
그 의미는 아니지만 음 ~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대장님께서 목욕탕 앞에서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연대장님이 목욕하시는 동안
나는 밖에서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아 세번의 사람을 만났다.
타고 온 군용 짚차를 보고 중년의 아저씨 두분은
자신들의 군생활의 추억-세월이 지나서야 추억이 된 악몽이지만- 을 떠올리셨다.
한 분은 나처럼 운전병이었고 한 분은 행정병이었나보다.
그 시절,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구타와 폭언욕설을 들으며
3년 정도의 세월을 이겨낸 그 중년의 아저씨들..
군대 다녀온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그 분들도
서로 자신이 더 힘들었고 자신이 있던 부대가 빡셨다고
약간의 기싸움 같은 것을 하시더니
월남 다녀오신 분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승리를 한 것 같다.
한 겨울 새벽 한시에 깨워 팬티만 입힌 채
철모에 물 한바가지 떠서 몸에 뿌리는게 제일 참기 힘들었다던..
운전병을 하신 그 분은 겨울에 선임들이 등에 구리스를 발랐더란다.
따뜻한 물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 구리스를 등에 발랐으니..
살이 벌겋게 다 터지도록 얼음장 같은 찬물로 씻어야 했다던 그때.
월급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 빼앗겨 버리고
1시간 30분이었던 추운 겨울 밤 근무도 후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너시간씩 서야했던 설움.
그러면서 지금의 군대는 많이 좋아졌지? 하며 허허 웃으시는 주름.
동시에 요즘 세상에 치료 못받아서 죽은 사병이 있다는 것에 대해
한탄하는 한숨.
처음 본 분들이지만 뭔가 가슴에 아리하게 남는다.
남자의 군대는 나이, 세대를 무시하는 큰 힘을 가졌더군..
한참을 이야기해도 연대장님이 안나오자
'이럴거면 샤워라도 시켜주지.' 하시며 각자의 길을 가시는 두 분.
그때 난 느꼈다.
날 위해 기다려준 것이구나...
떠나가실 때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인사는 했지만 그 감사합니다엔 날 기다려 준 것에 대한
감사는 담지 못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쉽다.
두 분이 그렇게 가시고 차 안에 앉아 있는데
담배를 입에 살짝 걸친 채 혼다 SUV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먼지 날리며 달려오는 한 할아버지. 차에서 내릴 때
깃을 올린 그의 셔츠와 검은 바지는 보통 할아버지가 아님을
알게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본 내 마음엔
저 할아버지 참 잘 살아오셨구나.. 나도 저렇게 늙고 싶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옮겨 문 앞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에 내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버렸다.
좋은 차에 멋진 패션 감각을 가진 할아버지를 보고
그러한 판단을 한 내 자신에게.
언제부터 이러한 겉모습에서 그 사람의 품위를 판단했지?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동안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좀 전에 만났던 두 중년의 아저씨를 떠올린다.
비록 방금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보다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갖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낸 그 분들이야말로 진짜인 것을!
그깟.. 그깟 차에 옷에 이러한 분들의 노고가 묻혀버리는가.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세상을 미워하기 전에
그것에 물들어버린 나를 미워해본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대장님은 나오시질 않는다.
슬슬 차에 타야겠다 싶어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가는데
젊고 통통한 아주머니가 아기를 안고 차에 탄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시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발 앞에는 한뼘도 안되는 지름의 파이프가 놓여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장애물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닌가보다.
일평생 그보다 더 높은 장애물을 다 넘었다는 증거들이 얼굴과
손에 가득한데 이젠 그 작은 장애물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면
넘기 힘든가보다.
그것을 보며 젊음의 상실을 생각해본다.
세월 앞에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젊음을 가지고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나중에 그 할머니처럼 작은 턱 조차 넘기 힘들어졌을 때
젊음의 상실이 문득 스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젊음을 가진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까?
차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연대장님이 나오셨다.
"가자."
"예!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