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한 네달째 되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원래 알다가 남친한테 고백을 받고 사귀는 거라 서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해서 싸울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남녀간에 완전평화는 없더군요.
워낙에 나쁜 남자한테 데여봐서 이상형이 착한 남자였고 회식 때 내 앞자리로 반찬을 이것저것 밀어 넣어주는 배려심에 반해서 사귀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배려가 비단 나만을 향한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학원서 강사일을 하면서 학교도 다니는 가난한 학생이고 남친은 학원 실장이라 월급이 많지는 않지요. 그리고 원체 사람이 좋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돈을 못 모았습니다. 저한테도 그래요. '좀 손해 보면서 살자고.' 저도 제 배불리 살면서 남에게 인색한 스타일한테 진저리치는지라 그런 생각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 데이트할 때 그 동네에 친구가 살면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밥 먹자고 하고 사주고, 얘는 생일이었으니깐 내가 사고, 이번에는 내 생일이었으니까 내가 사고... 참 그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그 친구 월급이 떨어지면 제가 보조를 해주면서 나도 타격을 받으니 슬슬 열이 받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 그런 걸로 다툼이 있었죠. 근데 내가 쪼잔해 보이고 친구들관계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어요.
그러다 사건이 이틀 전에 벌어졌습니다. 우리 둘 다 달의 마지막 날에 월급을 받는지라 무일푼이 되어가던 찰나 저는 점심, 저녁을 돈 아낄 요량으루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밥을 이인분을 쌌지요. 점심시간이 되어 밥 먹으려는데 남친이 학교에 놀러왔어요. 그래서 점심을 먹자 했더니 생각이 없대요. 그러더니 남으면 자기가 학원가서 먹는다고 두라고 하네요. 혹시나 밥값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저는 괜히 앞서 생각하구(이것이 사건의 발단, 요놈의 앞서 생각하기 --;;) 1/3정도만 먹고 그럼 이따가 학원에서 라면 사서 먹자고 하고 남친 손에 도시락을 들려 보냈습니다.
그날이 기말레포트를 쓰는 중이라 신경도 예민하고 타자질을 몇 시간 하고 나니 배가 무지 고프더라고요. 학원에 일을 하려 가는 중 남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라면 몇 개 사가냐고 (저희와 친한 학원샘이 한 명 있어서 그 샘이 혹시 같이 먹을거면 먹으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남친 왈 '지금 부원장과 다른 실장도 있고 딴 샘도 있다. 한 번 물어봐야 될 것 같은데 물어보고 나오겠다.'
여기서 저는 빈정이 상했어요. 아직 학원서는 우리가 사귀는 것을 몰라요. 그래서 다같이 먹으면 도시락 꺼내놓기도 민망하고 꺼내 놓는다 해도 내가 먹던 밥인데 남이랑 먹기도 그렇고 한 명 추가도 아니고 세 명 더, (거기에 부원장은 많이 먹기로 소문까지 나신 분).
배고픈 저의 이기심에 순간 남친이 너무 미워버린 거죠.
일단 끊고나서 그 땡볕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려니 더 열받더라고요. 남친은 편의점 앞에서 라면을 한 봉다리 사서 아주 햇살담은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저를 기다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얼굴에 냅다 '나는 혼자 가서 먹겠다.' 고 내질렀더니..
... 그러래요. 이차로 열받았지요.
분식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랑 김밥이랑 배터지게 먹고 나서 들어와서 아주 쐥하니 찬바람 돌게 얘기도 안 하고 수업만 하고 끝냈습니다. 끝내니깐 남친이 다가오더군요. 또 미소는 싱그레,..
어디서 쳐웃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무심한 척, 먹다 남은 도시락 따위 관심 없다는 척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그때까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이 '나한테 미안해서 수업이 끝나면 나랑 도시락을 나눠먹겠지?'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상황은 또 ...
남친: 왜 밥 혼자 먹었어?
나: 다 같이 먹으면 어떻게 도시락 꺼내냐? 얼마 있지도 않은데.
남친: 그 도시락 꺼내서 맛있게 먹었는데?
나: ...
이런 죽빵을 쳐날릴 놈. --;; 여기서 삼차 앵그리대란,
저는 거기서 정말 폭풍분노를 했어요.
나: 야! 이거 우리 엄마가 나 먹으라고 싸준거야!
누가 너 먹으라고 싸준 줄 알아!
이렇게 유치하게요.ㅜㅜ... 누구는 도시락 싸고 다니는게 좋은 줄 아는지, 나도 돈 없어서 싸온걸 자신도 없으면서 그걸 또 나눠먹겠다고,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 백번 맞지만 막상 내가 콩 한쪽만 있으니까 누구 못 주겠더라고요. 근데 남친은 그걸 온몸으로 행하시는 분이지요.
차타고 가는데 얼마나 억울한지 눈물까지 나는 거예요. 집에 가서 설거지를 박박 하면서 너가 아무리 성인군자고 착해도 나는 그렇게까지 못살겠다. 왜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고 예수님이나 석가가 부인이 없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있었다 해도 홧병 걸려서 자리에 누웠겠죠.
저는 그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붓고 몸살이 나서 아침수업을 처음으로 빠지고 말았고 그 화는 아직까지 가고 있습니다.
그날 밤에 온 남친의 문자는 '미안하대요.' 그래 미안하면 다지...
너무 착한 남친이라 내가 악녀가 되는 것이 싫어요.
남을 배려하는 남친의 모습이 존경스러워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귀었는데 결국 오늘 이별을 고했네요. 내가 심한 말을 했는데도 남친은 '그럼 운전 조심하고.' .. 이러네요.
전... '아주 끝까지 착한 척이구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악녀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악녀였나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