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 글을 처음 써봅니다. 너무 갑갑해서요.
전역 후,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 복학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솔로였지요;; 절 좋아하던 누나가 한 명 있었지만 이등병 때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상처가 깊어, 아직까지 누군가를 만날 수가 없겠더라구요. 군생활을 포함하긴 했지만.. 여튼 2년 넘도록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셈입니다. 친구들과 종종 클럽을 가서 놀긴 했지만, 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마음도 생기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 그대로 늘 춤만 추다가 왔구요.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이라는 말에 웃으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전 정말 그렇습니다. 함께 외박을 나온 선임들의 강요에 못 이겨, 처음 홍등가를 갔던 날, 진짜 생판 처음 보는 아가씨가 들어오는 걸 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정말, 거기서도 대화만 하고 나왔습니다. 연애 경험은 적지 않지만 스물넷 나이에 아직 나이트도 한 번 안 가봤습니다.
암튼, 본론으로 넘어가서 6월 말이었네요. 일 끝내고 집에 들어와서 쉬고 있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오더라구요. 나오라구요. 피곤해서 나가기 싫다고 했는데, 오늘 마지막으로 놀자면서 굳이 사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갔습니다. 친구 녀석이 헌팅을 좋아하는 탓에, 바로 '웨이터가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죠. 저희끼리 술을 먹다가 웨이터분이 오시더니, 제 친구 한 명을 다른 테이블로 끌고 가시더라구요. 전 그 때까지 아무 관심도 없었어요. 헌팅, 원나잇 이런 거 정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친구가 돌아오고, 곧 합석하자는 얘기가 전해지더군요. 조금 있다가, 여성분 세분이 오시고 각자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자기 소개를 하고, 몇 가지 얘기를 나누던 도중에 고개를 돌렸는데 그 아이가 있더라구요. 환하게 웃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스물넷 인생에 첫눈에 가슴이 쿵쾅거리긴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또 바보가 됐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술만 홀짝이고 웃었습니다. 제게 말을 먼저 건넨 건 늘 그 아이였죠.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고 있는지. 학교는 어딘지. 기본적인 대화가 오가다가 생각보다 제가 그 아이와 공유하고 있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음악 취향도, 읽는 책도 비슷했거든요. 헌팅 자리에서 이런 얘기하는 게 좀 웃길 수도 있는데 전 할 줄 아는 이야기가 그런 것밖엔 없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여차저차 2차를 갔다가, 저는 내일 출근 때문에 일찍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아이의 친구분 한 분도 빨리 가야했고, 저랑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죠.
그런데, 택시 안에서 그 분이 제게 말씀하시더라구요. X(그 아이를 임으로 X라고 하겠습니다)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잘해보라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나오기 전에 은근슬쩍 번호를 물어봐서 번호를 얻어놨던 까닭에 바로 카톡을 보냈죠.
그날 밤엔 답장이 없더군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답장이 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연락이 닿아, 첫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식사를 하고 헤어졌지요. 그리고 두번째 만남. 세번째 만남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습니다. 술기운을 빌어, 가볍게 입도 맞췄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알게된 지 정확히 일주일만에 사귀게 되었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실 전 조급했습니다. 9월이 되서 학기가 시작하면 서울로 올라가야 했거든요.
무엇보다 불안한 게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1년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를 잊지 못 하고 있었거든요. 절 만나면 항상 그 사람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걸, 가능하면 더 빨리 보듬어주고 가능하면 더 빨리 그 애 마음에 저를 채워넣고 싶었습니다.
조급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런 두근거림을 준 여자를 놓치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그러니, 점점 불안해지더군요. 뭔가, 더 해야할 것 같고. 무엇보다, 그 아이가 아직까지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분명히 전해졌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진심을 알고 싶었습니다.
사귄지 삼일째 되던 날, 새벽에 그 아이 동네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다렸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더군요. 깨어날 시간이 되었을 즈음, 연락을 했습니다. 너희 동네에 와 있다고. 깨어나면 연락 달라고. 조금 있으니 연락이 오더군요. 이러지 말라고. 집에 돌아가라구요. 물론, 그게 부담스러운 행동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날 좋아한다면, 그렇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지금은, 아니구나. 내가 너무 조급헀구나, 하는 것을요.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일어났습니다. 또, 카톡이 와 있더군요. 미안하다고. 아직 자신이 준비가 안 됐다고. 저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좋으니 연락하며 지내자고.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그 애를 제 곁에 묶어두고픈 게 아니라, 그저 그 애가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걸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그 아이와는 다시 친구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친구가 된 거였죠. 만나면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가 제게 말하더군요. 내일, 전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그 아이를 만나보면, 자기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한 번 더 해 볼거라고. 그리고 가만히, 위로가 필요해, 라고 얘기하면 알아들어 달라고. 저는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날, 하루종일 초조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초조하게 떨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냥 행복하길 바라고, 그 사람한테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그 날, 혼자 동네 카페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휴대폰만 보면서, 그 아이에게 연락이 오기를. 위로가 필요해, 라고 연락이 오기를. 그렇게 빌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전화가 왔습니다. 볼 수 있겠냐고요. 당장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는 절 보며 웃었습니다. "고백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어. 아무렇지도 않더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게 그 아이의 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다시 그 아이의 손을 잡았고 그 아이는 손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불안했습니다. 이 자리에, 네 옆에 지금 내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날은요.
문제는 얼마 전이었습니다. 얼마 전, 그 아이가 술을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친구 둘과, 다른 남자 셋. 그러니 삼대삼으로 술을 먹는 거였지요.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성인이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문제는 저도 그 날 약속이 있었고(고등학교 동창들과), 그 아이가 술을 먹은 곳이 저희 동네였다는 겁니다.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들어오더군요. 다른 남자들이랑.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해는 머리로 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못 받아들일 수 있는거니까요. 화장실 가는 길에 그 아이를 마주쳤습니다. 어 너 여기 있었어? 응. 뭐야 너- 하는, 그런 식의 대화를 나누고 술 잘 먹어! 하고 헤어졌습니다. 전 저대로,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그렇게 술을 마셨죠.
그리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답이 없더군요. 얼마 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지 않더라구요.
정말 마음이 안 좋아진 건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카톡은 상대편이 확인한 걸 알 수 있잖아요? 그 아이는.. 확인 했는데도 연락 한 통 없더라구요. 그 때부터, 점점 기분이 상했지요. 그리고 술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아이 바로 옆 테이블만 딱 하나 비어 있었고... 사실 그 때 제 친구들도 기분이 상해 있었지요. 전 나가자고 했는데, 친구들이 그냥 앉더군요. 이건 아니라면서.
저도 거기에 앉았습니다. 휴대폰을 만지작대면서요. 그 아이는 저희를 못 본 것 같더라구요. 봤는데, 모른 척 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 아이는 나중에 우리를 못 봤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아무튼, 그 아이가 그 술집에서 나갈 때가지 친구들과 저는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씁쓸했고,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화가 난 상태였죠. 그리고 그 술자리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친구 하나가, 여기서 우울하게 있지 말고 너도 놀라고. 클럽을 가자고 하더라구요.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통의 전화에, 카톡까지 모두 무시하는, 그 애가 너무 밉더라구요.
새벽에 택시를 타고 클럽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지요. 사실.. 마음이 내내 불편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거지? 내가 먼저 인사를 할 걸 그랬나? 하는 그런 생각이요. 그런데 그게 무섭더라구요. 만약, 그 아이가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으면? 아마, 있다곤 말 안 했겠지요. 그런데 있어? 라는 질문에 없다라고 했다면? 그 때 제가 뜬금없이 나타나면 그 아이가 참 불편해질 것 같아서. 아니, 사실은...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걸 못 견딜 저 자신의 상태가 두려워서 먼저 알은 체 못 했겠지요.
클럽에 가서도 노는둥 마는둥이었습니다.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면서, 그 아이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그 아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늦은 새벽이었지요. 고민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 웃으면서 말했지요. 그 아이가 말을 하더군요. 휴대폰을 같이 술 먹던 사람 차에 두고 내렸었다고. 그랬었냐고. 걱정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늦게라도 연락 와서 다행이라고. 집에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난 지금 클럽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다구요. 그랬더니 알았다, 고 말하고 우물쭈물 하더군요. 저는 물었습니다. 왜? 갈까? 라구요. 그러니 응, 이라고 답이 왔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바로 클럽을 나왔습니다. 또, 비가 내리더라구요. 비를 맞고 택시를 잡고, 그 아이 앞까지 갔습니다. 가게 밑에서, 술에 조금 취한 채, 비에 젖은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보듬어주고픈 모습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집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절 보더니, 어디 가서 좀 쉬고 싶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 아이가 어떤 의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아직까지 이 아이와 그까지 나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술에 조금 취했고, 외로움이 많고, 그래서 충동적이게 된 이 아이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쉬고 싶다는 말에, 정말 흔들렸습니다.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요. 오늘 하루종일, 이 아이 때문에 너무 불안했으니까요. 그리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같이 모텔에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저도 옆에 누웠습니다. 키스를 했습니다. 순간, 잠깐 절제력이 끊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꼭 안고, 그냥 재웠습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더라구요. 이 아이도 그냥 나와 같이 있고 싶었던 것 뿐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못된 생각을 했구나, 하구요.
그 다음날 아침, 모텔을 나왔습니다. 밤새 빗방울이 더 굵어져 있었지요. 그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 홀로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내게 바라는 게 뭘까. 그 아이는, 나를 남자로 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구요.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하루종일 기타를 치는데 그 날 그랬어요. 하루종일, 기타만 치다가 밤에 연락을 했죠. 편안하게 잡담을 나누다가, 물었습니다. 나랑 만나면 어떠냐고. 두근거리냐고. 그러니 그 아이가 말을 하더군요. 그건 아니라고. 그냥 편하다고. 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내가 네 옆에 친구로 남는 게 너한테 더 좋지 않냐고. 조금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그냥 네가 외로운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잘 지내라고. 제 마음을 그 아이한테 빚처럼 떠맡기고, 강요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아이도 잘 지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여자들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사랑한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여자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제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날, 한 침대에 누워 나랑 있으면 어때? 라는 질문에 그 아이는 우물쭈물하다 제게 말했습니다. 네가 날 정말 좋아하구 있구나...
그게 전부야? 라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 내가 사랑하는 일 때문에 이 아이가 내게 왔다면 전 그게 아직 연인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인이라는 이름에 묶여 오히려 제가 품은 사랑이 그 아이를 부담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 저는 그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선뜻 돌아서는 길을 선택했지만 며칠째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헌팅으로 만나서, 며칠만에 이렇게 진지한 마음을 품었다고 하면 다들 웃지만, 저 정말, 이만큼 깊게 생각했던 것, 이 아이 포함해서 딱 두번밖에 없었습니다.
이등병 때 헤어진 여자친구, 그 아이와는 2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쌓은 정이었고 이 아이에겐, 손만 잡아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짧은 순간에도 틀림없이 진심은 있습니다.
어제는 용기 내서 카톡도 보냈습니다. 여튼, 어떤 모습으로든 지금은 그 아이의 곁에 있고 싶다는 게 제 마음입니다. 힘들 때 이 아이가 절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고향에서, 이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있더라구요. 오늘 혼자서 그 표를 예매하기도 했습니다.
8월 말이면, 전 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그 아이는 고향의 직장에 남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아이가 제 연인이 아닌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아이와 저와의 인연이 끝나는 건 그보다 더욱 슬픈 일입니다.
좀 더 솔직한 맘을 말하면, 전 그 아이가 제게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의 맘은 대체 어떻고,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