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탄에서 댓글 달아주신 두분 감사합니다.
3탄에 대해 기대도 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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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에 결혼해서 2006년 3월에 집을 사고 그것도 가진것 하나 없는 우리가...
정말 나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콧대가 하늘을 뚤고 올라갈 기세라고나 할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가관인것 같다...ㅋㅋ
그렇지만 남편도 인정해주고(사실 이게 제일 기분이 좋았다. )
시부모님도 인정해주고.
시댁식구들도 인정해주고.
시댁 모임에 가도 이젠 당당할수가 있었다.
가진것 없이 시집을 와서 식도 올리지 못하고 시아주버님 집담보로 빌려주신 2000만원을 갚아 가면서 지하방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기가 많이 눌렸었나 보다.
시댁에 가도 이젠 고스톱도 끼어주시고(시댁식구가 6남매라 항상 나는 낄수가 없었다. ㅋㅋ) 시부모님도 가면 반갑게 만나주시니까...
하지만 내코가 너무 하늘 높이 올라가서 하느님이 노하셨나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말하기 남편 회사가 망했단다. 천천병력같은 말이 날라왔다. 그것도 집을 산지 이제 6개월인데...
정확이 그해 11월 남편은 백수가 됐다. 남편 나이가 그해 33, 곧 34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그래 당분가 쉬면서 재 취업준비하자.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남편 나이가 어중간 해서 재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시간은 흐로고 취직은 안되고 집담보대출 입금날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정말이지 하늘이 노랬다.
결국 여자인 내가 일자리를 찾기 쉬웠다. 난 전공으로 중국어를 배웠다. 당시 또 한참 중국어학습지가 뜨기 시작했다. 교사도 많이 필요로 하고 바로 학습지교사로 취직을 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친구와 장똘배기 사업을 시작했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아파트에서 완구를 파는 일이였다. 승합차도 새로 구입하고 그 승합차에 완구를 싣고 지방마다 돌아 다녔다. 꼭두새벽에 나가 밤 늦게 들어 왔다. 애들은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겼다. 아침 9시30분시부터 저녁 9시까지.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
남편의 일은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므로 항상 새벽4시5시에 집을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또 12시넘고. 아니면 며칠씩 밖에서 지내다 오기 일수였다.
그때 나는? 처음 시작한 학습지일. 나는 교사로 취직했는데 이건 애들 가르치는 일보다 학습지 전단지 배포하는 일이 더 많다.
아침 출근해서 전단지 접고 10시부터 12까지 교육받고 오후에는 맡은 지역에서 하루종일 전단지를 뿌렸다. 그것은 그래도 쉬웠다. 그다음은 아파트를 돌아 다니며 문마다 전단지 붙이는 일. 그날 저녁이 되면 다리가 부어서 너무 아팠다. 그래도 애들 씻기고 저녁 먹이고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였다. 눈물만 나왔다.
아파트를 팔려고 마음을 먹었다. 근데 구입한지 2년미만이라 양도소득세가 어마어마하게 붙어 나왔다. 알아보니 5천에서 6천만원 가까이 나왔다. 그래 조금만 참자. 1년동안 내봤자 1000만원도 안되는데 내가 죽도록 일해도 1년에 4천만원을 못벌거야. 그러면서 이를 악물었다.
첫달 17만원, 둘째달 33만원, 3째달 105만원 그러면서 고정적으로 수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다행이도 중국어붐이 일어서 수업은 시간이 없어 못했다. 수업은 가리지 않고 했다. 그사이 운전면허도 따고 중고로 마티즈도 구입했다. 36개월 할부로. 차가 있어서 수업도 더 많이 할수 있었다.
그러다 새벽수업을 받았다. 한 기업체에서 출근전에 임원들 중국어수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침 7시. 거리가 있었다. 17km . 갈때는 새벽이라 2~30분이면 도착할수 있었다. 수업이 8시30분에 끝나는데 올때는 출근차량과 겹쳐서 간혹 늦어지기도 했다. 월수금 3번이다. 금액적으로는 72만원. 큰돈이였다.
원래 내 생각에는 9시까지 집에 와서(항상 9시 넘어야 일어 났으니까) 애들 깨워서 씻기고 유치원 보내가 회사로 가면 되니까...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애들은 내가 수업하러 가는 날이면 일찍 일어났다.
엄마가 없어서 집에 애들만 있는게 무서웠나 보다.
애들이 나시랑 팬티만 입고 자는 편이다. 그 옷차림으로 그냥 문을 열고 나와서 울면서 엄마 찾아 돌아 다닌다. 정말 챙피했다. 그러는 애들을 달려주기는 커녕 화가 났다. 이제 3살5살된 두아이한테 버럭버럭 화를 냈다. 엄마가 일하고 곧 온다고 했으니 집에서 TV를 보면서 조금 만 기다리라고. 왜 나와서 엄마 챙피하게 만드냐고.ㅠㅠ
그 어린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그랬는지. 나도 너무 힘들어서 애들이 힘들어할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렇다고 또 어쩔수 없었다. 애들이 그러고 다닌다고 일을 그만 둘수도 없고... 애들이 이 상황에 맞춰갈수 밖에 었었다. 그때나는 처절히 느꼈다. 남편없이 혼자 애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많이도 싸웠다. 남편도 힘들었겠지만...
남편 장돌배기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처분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사주보러 갔다. 남편은 장군의 기운이라 칼을 휘둘러야 한단다. 앞에 진두지휘 해야 하는데... 그 이유도있고 해서 남편은 고민 끝에 요리사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등록했다. 다행이 서울시에서 무료로 해주는거라 교육비는 들어 가지 않았고 교통비도 나왔다. 그 과정도 6개월 과정이였다.
그러면서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는 학습지 일을 더 열심히 할수 있었다. 그 과정에 전국1등도 2번이나 하고 분기 1등 년2등도 달성했다. 부상으로 금을 모두 합치니 10돈도 넘었고 년말에는 32인치LCDTV도 받았다.
한참 잘 나가던 차에 이명박 대통력이 당선되고 그놈이 오렌지. 영어교육 확대실시가 되고 엄마들 중국어할 시간이 없단다. 서서히도 아니고 급속도로 회원이 줄었다. 코앞에 불을 꺼야 하니까...
남편은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다시 취직을 하게 됐다. 너무나 다행이 였다. 수입이 확 줄었는데 남편이 취직이 돼서. 난 결국 학습지회사에서 나와 애들도 보면서 간단히 중국어 과외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식당에 취직해도 월급이 너무나 적었다. 카드 빚이 점점 늘어 갔다. 아니 이미 많이 늘어나 있었다.
1금융권에서는 추가 대출도 되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수입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2금융권에 추가 대출을 받으려고 갔다.
그때 정말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다. 대출을 무려 7000만원을 받았다. 카드빚을 갚고 남든 돈으로 남편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별로 소득 없이 되 팔고 줄기차게 이자만 내다 보니 사업은 손해는 안 봤는데 결국은 마이너스.
소득이 없다 보니 받은 대출로 생활을 하게 되고 없으면 적게 쓸텐데... 있으니까 ㅠㅠ. 이제 2년 거주 3년소유로 양도소득세 없이 팔수 있었다. 근데 살 사람이 없다. 집이 1층이다 보니 더 살 사람이 없다. 결국 전세로 돌리고 그 전세자금으로 2금융권 대출 갚고 지금은 완전지하에서 우리식구 살고 있다.
집이 있다는 이유로 영세민전세자금대출도 받을수 없다. 각종 대출도 다 제한이 있다. 우리는 4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명박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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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탄 : 나는 수퍼우먼이다.
기대해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