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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_<TV를봤네>, TV Addiction model, 문화계발효과이론the Cultivation Theory-

권성민 |2011.07.15 13:39
조회 29 |추천 0

 

장기하의 노래는 맛깔난다.

의도적으로 세련된 표현을 피해 돌아다니는 그의 가사는,

부담없이 귓가에 흘러오는 듯 하지만- 어느샌가 그 속에 진검을 박아놓는다.


김동률, 이적, 하림 등으로 엮이는 싱어송라이터들을 오랫동안 좋아라 해왔지만-

우리말로 쓴 가사의 '말맛'을 우러내는 지점에 있어서는 장기하의 그것이 압도적인 것 같다.


잘근잘근 씹는 맛이 있는 그의 가사는 단연 그 중독적인 운율이 돋보이긴 하지만,

곰곰히 살펴보면 진짜 그 맛은 가사의 소리보단 행간에 숨어있다.


요사이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유행가의 가사들이,

운문으로서의 노래 가사가 가질 수 있는 장점으로 그 음악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여음구로만 가득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그의 문학성은 더욱 빛난다.


장기하의 가사가 가지는 문학성은,

김동률이나 이적의 가사가 상징과 표현, 수사로부터 그 문학성을 얻어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정서는 굳이 표현하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그 행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그만의 색깔이 있는 것이다.


<별일없이 산다>라든지, <아무것도 없잖어>라든지-

그 어떤 강렬한 랩보다 강렬한 풍자로 가득한 노래라 할 지라도-

듣기에 따라서는 그저 황당하고 즐거운 락가(樂歌)일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웃으며 화낼 줄 알아야 한다고, 풍자를 들려주며 결국 너털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도 그의 놀라운 능력 중의 하나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없었는지>와 같은 곡을 듣고 있노라면, 듣는 이의 귀와 상관없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정서를 굳이 표현하지 않는 그의 가사는 그 자체로 역설의 힘을 가진다.

'장기하와 얼굴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애당초 풀풀 풍기는 이들의 독특한 위트에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전 발표한 신보의, <TV를 봤네>는 좀 더 폭넓은 정서의 공감을 얻어낸 것 같다.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봤네) / 아.아.아. 그냥 봤네
TV 속 사람들은 기쁘다 슬프다 말도 잘 해 (잘 해) / 아.아.아. 참 잘 해
무슨 드라마든 쇼프로든 코미디든 뭐든 간에 (간에) / 아.아.아. 뭐든 간에
일단 하는 동안에는 도대체 만사 걱정이 없는데 (없네) / 아.아.아. 만사 걱정이 없는데

왜 자막이 올라가는 / 그 짧디 짧은 시간 동안에는
하물며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 그 없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시간 동안에는

아.아.아. 아.아.아.

결국 나는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봤네) / 그냥 봤네

그러고 보면 난 참 웃음이 많어 (많네) / 아.아.아. 참 많어
TV 속 사람들의 별스럽지도 않은 농담에도 (농담에) / 아.아.아. 이렇게 웃음이 나는데

왜 자막이 올라가는 / 그 짧디 짧은 시간 동안에는
또 보다보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서 / 채널만 이리 저리 돌리다가 꺼버리고 나면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봤네) / 그냥 봤네
TV 속 사람들은 기쁘다 슬프다 말도 잘 해 (잘 해) / 참 잘 해



미국의 미디어학자 Robert Kubey는, 사람들이 TV에 '중독'에 가까운 의존적 성향을 보이는 기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려 했다.

"TV는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명제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즐거움은 '시청하는 동안'에만 제공된다는 점이다.


Kubey의 설명은 직관적이고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TV시청 행위는 즐거움을 제공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시청이 끝남과 동시에 그러한 즐거움은 상실되고 이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그의 논문상에 쓰인 remain relaxed는 사실 '즐거움'이란 능동적 단어로 번역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TV시청은 아무런 능동적 인지행위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시청하는 동안에는 말 그대로 '넋 놓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당사자에게 강력한 '휴식'의 감각을 제공한다.)


요는, 이러한 현상을 사람들 스스로도 충분히 인지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TV 시청행위를 끝내는 순간 자신이 인지적인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을 기피하기 위해서 점점 더 TV에 의존하고자 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중독'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오늘날에는 TV를 비롯한 인터넷이나 게임에 정서적/인지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현상을 정확하게 '중독'으로 진단하고,

약물중독자와 동일한 패러다임을 통해 이러한 중독을 치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상화 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전혀 생소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만-

Kubey가 그의 연구를 발표한 2002년에만 해도 약물 중독에 적용되는 패러다임을 TV에 적용하여 이론화한 움직임은 주목할 만 했던 모양이다.

 

다만 일상에서 용인되는 수준의 '중독'증세를 유발하는 약물인 알콜이나 니코틴에 비해 (물론 이 약물들 역시 정도가 심해지면 심각한 증세를 낳지만)

그리고 똑같은 미디어중독을 유인하는 인터넷이나 게임에 비해-

TV의 미미한 중독증상은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고마운 마약'에 가깝다.

온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에 모여서, 시청이 하나의 마을 행사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컬러 TV가 집집마다 들어서기 시작한 시절에도 가장 이상적인 TV시청의 풍경은 '온가족이 다함께'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방안에 틀어박혀 혼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임이나 인터넷에 비해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미디어에 몰입하게 되는 정서적 의존은-

실질적으로 그러한 정서의 만족을 제공해 주어야 할 일상세계의 대인관계로부터 시청자를 분리시킨다는 점은 자명하다.

'온가족이 다함께'의 풍경도, 정서적 의존도가 높아진 집의 거실에서는 '채널다툼'으로 번질 뿐이다.

더구나 이제는 1가정 1TV의 시대가 아닌, TV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진 1인 1멀티미디어의 시대 아니던가.

TV의 관계통합적 기능은 이미 그 빛을 바랜지 오래다.

 

Kubey의 모델과 함께 장기하의 가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George Gerbner의 문화계발이론, Cultivation Theory이다.

(종종 '경작이론'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 Cultivation Theory를 아주 잘 보여주는 유명한 조사 사례가 있었는데-

남녀 모두 TV를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연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다는 연구결과이다.

이유는, 참으로 자명하지 않은가-

TV속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미남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자신의 연인이 초라해보일수 밖에.

(이는, 퀴즈를 푸는 게임을 하는 도중, 순간적으로 등장한 광대의 사진을 보았던 피험자들보다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보았던 피험자들이

 전반적으로 스스로의 지적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실험의 'Priming Theory, 점화이론'과도 연관된다)

 

자신과 오랜 시간을 같이 해온 소중한 연인을, TV속에 연출된 미남미녀와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장기하가 노래하 듯, TV속 사람들은 기쁘다, 슬프다 말도 참 잘한다.

아니, 사실- 허구가 됐든 논픽션이 됐든, 기쁘다 슬프다 충분히 말할 만한 사연이 아니고서야 전파를 타기도 어렵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이 보여주듯-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는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TV속의 학교에는 온통 미남미녀들만 등장하고, 하루에도 수천만원씩 돈을 써대는 재벌들도 수없이 등장하고-

혹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념과 정의감을 가지고 항상 바른 판단을 내리는 멋진 주인공들도 셀 수 없다.

바로 이 연출된 허구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시청자는 자신의 일기장에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글자를 적어대며 툴툴 거리게 된다.

눈이 시뻘개질 때가지 TV를 보며, 실체가 아닌 허구 속에 우리를 넣고 재고 비교하노라면,

'아. 아. 아.'- 단말마의 한숨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을 더 많이 담아내기에 이르는 것이다.

 

난 TV를 별로 보지 않지만, 글을 죽 써내려오면서 나 역시 TV 속의 그와 스스로를 비교하게 되었다.

난 이토록 길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해놓은 얘기를, 그는 200단어도 채 되지 않는 몇줄의 가사로 훨씬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버린 거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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