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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아이 : Boy Alone

박소영 |2011.07.17 02:31
조회 3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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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한 소년이 잔뜩 얼룩이 진 하얀 카펫 위에 혼자 앉아 있다. 닳아빠진 담요 끝자락을 입에 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아이는 손가락으로는 쉬지 않고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이는 친구를 찾는 것 같지 않았고, 아예 사귈 생각도 없는 듯하다. 인사를 해도 쳐다보지 않고, 말을 거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도 않는다. 아이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보면, 금세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ㅇ 자폐증이란 신체적, 사회적, 언어적 기능을 저해하는 신경생물학적 장애를 말한다. 1943년, 정신과 의사인 레오 캐너 박사는 과도한 위축과 편집증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아이들을 상대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외면으로 통하는 문이 닫혀 있는 채로 몽상이나 환상에 지배된 상태'를 뜻하는 'Autism'이라는 말을 썼다.

 

 

ㅇ 아버지는 꿈에서 노아가 말하는 걸 봤다고까지 말씀하시곤 했다. 말을 하는 노아를 보고 싶다. 그것은 세살이 되도록 말 비슷한 발음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노아를 바라볼 적마다 부모님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갈망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안의 모든 일들이 노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이 모조리 그애한테 향하고 있어 나에게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노아는 만물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는 아이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더 사랑을 받도록 만드는 마력을 가신 아이. 나는 그애와는 결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노아보다 나이도 많고고, 키도 크고, 더 똑똑하고 민첩하지만 결코 부모님의 관심을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섯살 꼬마일 적부터 나는 가슴에 단단히 새기고 있었다.

 

 

ㅇ 세상의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는 곧 기어다니게 되고, 스스로 걷는 방법을 배운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글을 읽을 줄 알게 된다. 하나하나의 발육 과정은 기적과 같은 순간임에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는 너무도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이가 발육을 멈추고 퇴화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 나에게는 아내와 두명의 건강한 딸이 있다. 나는 전형적인 아이들을 둔 가정과 교류하며 평온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일상이 너무나 순탄하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때가 있다. 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가 아직 나눗셈을 못해 수학 점수가 형편없다는 정도다.

   우리는  서로 함께 어울리는 걸 즐긴다. 운이 좋은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는 서로 친분을 쌓아가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나에겐 노아라는 동생이 있어서 우리 가족이 너무도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가정과의 교류가 그토록 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ㅇ 아버지는 노아에게 내려진 절망적인 선고들을 모두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노아 때문에 순수문학의 꿈을 접고 상업문학으로 방향을 돌렸어도 신세 한탄을 하지 않고 매일 밤 텔레비젼 드라마의 대본을 쓰고 영화로 탈바꿈할 원고와 씨름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노아와 같은 아들이 있는 아버지라면, 그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아 같은 아이는 그의 에너지와 시간을 모조리 빼앗아갈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 가끔 나에게는 노아가 이대로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

 

 

ㅇ 아버지가 잡지사의 요구에 따라 여행을 가는 일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은 별로 돈이 되지 않는 도서 리뷰나 텔레비젼 드라마 대본에 국한되었다. 어머니 혼자 오랜 시간 노아를 돌보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출장을 가는 대신 집을 지켜야 했다. 그런 판국에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찾으려던 어머니의 희망은 노아의 삶에 가려져 완전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 노아는 우리 가족의 삶에 따르는 수많은 선택권들을 하나하나 박탈하면서 그저 평범하고 순탄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부모님의 소박한 꿈을 가차 없이 빼앗아갔다.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 노아의 치료에 헌신하는 조직이 되어갔다. 그 애가 울면 서둘러 달려갔고 그 애가 조용하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약을 앞에 놓고 전전긍긍하듯 숨죽이며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ㅇ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노아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살아왔다. 이는 자폐아를 자녀로 둔 가정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자폐증의 실체를 알아내려고 애쓰다보면, 그 때문에 가족 전체의 삶이 왜곡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ㅇ 어느 날 우리는 더 이상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부모님은 이제 노아를 언젠가는 보호시설로 보내야 한단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요. 우리는 노아를 보낼 수 없어요. 노아는 내 동생이에요. 관계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 사이엔 분명히 형제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우리 가족은 총 네명이고, 그 중 두 사람이 바로 나랑 노아에요."

  부모님이 노아를 언젠가는 보호시설에 맡겨야할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아버지와 우리 형제가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가끔 노아가 좀 뒤처지거나 길바닥에 주적앉을 때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노아야, 자꾸 그러면 우리가 너를 놓고 가버린다." 아버지는 노아가 스스로 일어나서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하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덜컥 겁이 났다.

  .. 주위 사람들이 노아를 결국 보호시설에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고, 로바스 박사의 프로그램이 노아를 치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깨닫게 되자 이제 부모님에게 그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ㅇ 피를 나눈 형제일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인식이 하상 나의 뇌리에 깔려 있었다. 한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동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든지, 장애아인 동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준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장애아로 태어난 동생이 오히려 나에게 삶이 기쁨을 알게 해주었으니, 그 아이가 내겐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주는 쪽은 항상 나였고, 그것은 노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집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축복은 커녕, 노아는 내 삶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독재자였다.

 

 

ㅇ 부모님이 BMI에 노아를 맡기기로 결심을 굳힌 것은 그 무렵이었다. 노아의 상태와 맞물려 두 분 사이의 갈등이 상황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BMI에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다보면 영원히 노아를 보낼 수 없을 거라는 체념도 한몫을 했다.

  그 무렵, 우리 집안에 아주 나쁜 일만 연속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먼 곳에서 온 손님>의 성공으로 일본 유수의 잡지사들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의 내 기분은 묘하다 못해 참담했다. 나는 부모님이 '덜떨어진 아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찍어내는 공장처럼 여겨졌다. 중증 자폐증을 앓는 노아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아온 두 분이 이제 똑같이 그로 인해 유명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아이러니였다.

  작가로서의 잇단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상업적인 작품을 쓰는 데 인생을 탕진하는 자신에 대해 일종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실패작이라는  생각도 아울러 갖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이따금 반드시 실행에 옮길 것처럼 너무도 쉽게 이혼에 대해 내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두 분에게 이혼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노아 때문에 서로를 떠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 역시 아이러니였다. 노아가 두 분을 그렇게도 아프게 하여 이혼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면서 결과적으로는 단단히 결속시키는 끈이 되기 때문이다.

  

 

ㅇ 노아는 근육조직이 발달하면서 자신이 힘이 세졌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노아는 어머니보다 키가 컸고, 때로는 아버지보다 힘이 셌다. 노아는 이제 부모님까지도 난폭하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들이 가족과의 이별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노아뿐이었다. 부모님이 다시 BMI를 방문했다.

 

 

ㅇ 심신의 휴식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사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목표가 된다. 바로 이것이 아이와 헤어지게 하는 부모의 결심을 앞당긴다.

 

 

ㅇ 우리는 노아를 소파에 앉혀둔 채 그곳을 나왔다. 노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에게 무심히 손을 흔들었다. 우리 가족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노아야, 안녕. 아무도 겉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러했듯이 부모님도 그말을 수없이 중얼거렸을 것이다. 안녕, 안녕이라고.

   한 아이가 혼자 앉아 있다.

 

 

ㅇ 한 아이가 혼자 앉아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내가 손을 내밀면 노아는 움찔하면서 경계한다.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도, 겁먹은 표정으로 일단 주위부터 두리번거리다 별다른 징후가 없다는 걸 확인하곤 옆걸음으로 다가온다. 아주 작은 기척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몸을 떤다. 이 모든 게 BMI에서 당했던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ㅇ 노아는 종종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끝도 없이 지껄이곤 했다. 오래된 습관이지만 이로써 생기는 심각한 문제는 그러는 동안에 부모님까지도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작이야."

  나는 어머니의 이런 넋두리를 자주 들어야했다. 부모님은 이제 50대의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잠못이루는 수많은 밤과 노아를 둘러싼 지리멸렬한 싸움, 그리고 나로 인한 걱정으로 인해 두 분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ㅇ 노아만 아니라면 아버지는 어떻게는 순수문학에 열정을 바치면서 명망 있는 작가로 살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지금보다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을지라도 훨씬 더 성취감을 느끼면서 삶이 주는 기쁨을 음미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화가를 꿈꾸었던 어머니는, 붓을 던지는 대신 펜을 잡아서 이름을 얻었다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커다란 것을 포기하면서 얻은 작은 무엇이라고 여겼다.

   노아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그 애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서가 아니었다. 노아 때문에 놓쳐버린 수많은 것들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지라도, 두 분은 희미한 자취의 냄새만이라도 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가 그 중의 하나였다.

 

 

ㅇ 한 중년 사내가 로스앤젤레스 남부 지역에 위치한 보호 시설이 잔디밭에 혼자 앉아 있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그는 무척 외로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함께해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굳이 그럴 사람을 찾고 싶은 의욕도 없어 보였다. 노아였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 평생을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옮겨다니며 다치고 상처받는 가운데 더욱 거칠어진 자폐아로 살아오면서, 그의 가슴에 아주 작게나마 존재했을 영혼은 더욱 피폐해졌다.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노아는 지금도 발달장애인들을 수용하는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ㅇ 나는 노아가 예전에 머물던 시설에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자폐 환자들, 또는 가족이 더 이상 찾지 않아 혼자 방치되어 있는 환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의 참상은 노아가 어린 시절에 보호 시설을 전전하면서 겪은 혹독함 그 이상이다.

  그들은 결코 오래 살지 못한다. 어느 누가 그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고 확실히 보장해줄 수 있을까?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귀찮게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주고, 왜 상처가 났는지 궁금해할까? 대개 그들은 중년의 나이에 죽는다.

 

 

ㅇ 노아가 UCLA의 로바스 박사를 만나 행동 개선 치료를 받았을 때보다 오늘날의 자폐증 치료는 많이 발전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이 여타의 질병에서처럼 혁명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다. (중략) 자폐아를 자녀로 둔 부모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자폐증은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의학으로도 완벽하게 치료될 수 없다. 자폐증은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뇌의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제기하고 있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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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고록은 어떤 희망적인 결과를 말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인 노아그린펠트는 1966년생이고 저자이자 노아의 형인 칼 그린펠트는 1964년생이다. 40년 전과 오늘날, 중증발달장애를 둘러싼 의료적, 치료적, 교육적 환경이 획기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절망적이다. 그 사실을 '더할나위 없이' 실감나게 표현한 책이라는 서평에 이 책을 사서 읽는 것이 도리어 망설여졌다.

 

노아의 가족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한 모든 치료기관을 전전하였고 모든 의학 서적은 두루 섭렵하였다. 그 부모가 그러하였고 지금은 그의 형이 그러하다. 가족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서로 상처입혔으며 삶은 왜곡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전혀 나아진 것 없이 한 시설에서 속절없이 가혹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년의 중증 자폐증 환자 노아이다. 그리고 이건 소설이 아니라 한 가정의, 그리고 자폐아를 둔 많은 가정의 현실이다. 발달장애아 모임 카페에서는 이 책을 읽고 일기를 보는 것 같아 많이 울었다는 부모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비장애자녀를 함께 둔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울지는 않았지만, 어떤 희망이나 혹은 사소한 해결책이라도 찾아 볼 수 있을까 하여 밤을 꼴딱 새워 읽은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내상을 입지 않을 수 없었고 이 기분과 고민은 얼마쯤은 오래갈 듯하다.

 

 

그러나 정직한 절망은 언제나 거짓 희망보다 나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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