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다는 분의 글을 읽고 나서..
저도 겪었던 일을 써봅니다. 여기다 글 올리는 건 처음이에요.
전 올해 30세 되는 미혼 여성입니다.
기억속에서 잊으려 했던 모든 일이 오늘 떠오릅니다.
처음 부모로부터 당한 폭력은 7살때쯤이었어요.
밖에서 오래 논다는 이유로 친부에게 구두칼이 부러질때 까지 맞았습니다.
어느 날은 엄청 맞고 속옷하나 입지 않은 나체로 거리에 쫓겨난 적도 있고요.
엄마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인생, 학업을 자식이 훌륭하게 이뤄줘야 마음이 편안한 타입이었는데요.
국민 2학년때 밤 11시 넘게까지 공부하고 너무 신경써서 5학년때엔 원형탈모 치료 받으러 다녔고요.
국민학교 내내 저랑 경쟁상대 남학생이 있었는데요.
제 성적과 걔 성적을 항상 비교하며 만족할만한 성과가 안나왔을 때 항상 하던 말...
"가서 철수(가명) X구멍이나 빨아먹어라!"
걔 비위 맞춰주며 뒤처리나 하며 살라는 비하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네요.
어느날은 옥상에서 제 목을 조르며 아래로 떨어뜨리려 한 적도 있었어요.
죽으라고.. 너만 없었으면...! 하면서...
엄마에게도 너무 많이 맞았던지라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도 빨리 결혼해서 딸 낳아서 나처럼 그애 두들겨 패야지! 아.. 걔를 때리면 얼마나 신날까!'
*지금부턴 여과없는 표현을 사용하니 혹시라도 성인 아니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세요*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구요.
1학년때까진 특별한 기억은 없고.. 막 2학년 올라가던 해에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어요.
아버지와 딸은 당연히 이걸 하는 거다. 저를 살살 어르고 달래요.
친부가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원래 그런건가 보다 싶었는데..
당시 전 140정도 되는 키에 발육부진이었고, 막 초경을 시작한 나이였지요.
처음 시도했을 때 찢어지는 고통에 너무나 무서워서 울며 그만하라고 빌었어요.
그날은 순순히 물러나나 했더니, 바로 다음날 목적 달성하고 가더군요..
주로 새벽이나 아침무렵에 당해서, 통증이 이는 가랑이로 어기적거리며 등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가서 의자에 앉아도 아프고 답답하고 불편하고...
어느날은 생리중이라 완강히 거부를 했는데도 하자고 그러더군요.
바닥에 범벅이 되어 뿌려져 있는 생리혈과 친부.. 의 정액 혼합물을 쪼그려 앉아 처량하게 닦고 있는 제 어린날의 모습이 떠오르니 참 안쓰럽네요. 그 장면은 지울래야 지울 수 없어요.
한번은 온가족이 시골 할머니댁에 갔는데요.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여러 식구 뒤엉켜 자는데.. 제 뒤에 딱 붙어 자던 친부가 발정이 났는지
제 아랫도리만 벗겨서 누운 상태로 뒤에서 그짓거리를 했어요.
식구들 깰까봐 아무 반항도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어요. 사정은 어디다 했는지 기억 안나구요.
그런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날은, 무섭고 징그러워서 방문을 잠그고 잤는데요.
밤새도록 밖에서 문을 두드려 대며 "아빠야.. 문열어 XX야...아빠야...문열어줘.."
하고 다정하게 불러대던 목소리가 생생해요. 평소엔 절대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할때마다 안좋아? 좋아야 하는데 하면서 기교 부리던 거... 떠올리면 소름이 돋네요.
어떻게 친딸한테 그런 말을..
하루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제가 실수로 다리를 건드렸어요.
그걸 오늘밤에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왜? 왜그래...???"
라는 말을 반복했어요. 자꾸 그러니 엄마가 "애가 아니라는데 왜 그러는데!" 하면서 화를 냈어요.
저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라!!!" 하면서
제게 왜 그랬냐는 식으로 대답을 유도한 기억도 나네요.
가정폭력도 대단했어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시멘트 바닥에 메다꽂고 주먹질 발길질 하던거 우리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거 보면. 화나면 모든 살림을 부수고 집어던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암에 걸렸고, 발견했을 당시 4기라 신체조직 절단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저를 불러다 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네 아빠 조심해라. 밑구멍 간수 단단히 해라."
가만 생각해보면 엄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세상 누구보다도 딸이 잘되길 바라고 사랑만 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요..
남편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딸들을 보호소에 보내기엔 강단이 참 없으셨던 거 같네요.
참, 제 동생도 저같은 일을 겪을 뻔 했다더군요. 다행히 끝까지 간 것 같진 않구요.
제 나이 15살때 엄마는 그렇게 돌아가셨고..
저는 12살때부터 명절 제사 음식을 도왔었어요. 엄마가 하나뿐인 며느리였거든요.
엄마가 가시고 나자 그 일들은 저와 어린 동생의 차지가 되었어요.
참고로 시골이 그런 시골이 없는지라.. 겨울엔 수도를 녹여가며 쓰고, 찬물에 설거지해야 했는데요.
한번에 20인상씩 미친듯이 차려내고 설거지하고 할머니에게 욕먹고 구박받고, 손님 올때마다 다과 갖다바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반복.
새 며느리를 받아놓고서도 저 일들은 줄어드는 거 없이 그대로였고.
새아가 힘들겠다고 마실 다녀오너라는 말 엄마 살아계실 땐 한번도 못들어봤네요.
.....
그때부터는 가정폭력의 화살이 제게 날아 왔어요.
제가 그림그리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미술부에 가입을 했는데요..
그당시 제가 배우던 건 평면구성이었어요. 아시는 분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내가 집안일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저의 작업 스케치북을 제 눈앞에서 박박 찢어버렸어요.
보통 아버지는 딸의 꿈을 키워주거나 지지해 주지 않나요?
그나마 갖고 있는 제 꿈을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 내고 화내고 슬퍼하고 있는 절 방치한 생각을 하니..
세상 어느 아버지가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교가 조금이라도 늦거나 마음에 안들면, 제 교과서들을 옥상에 갖다놓곤
불태워 없애버린다고 하고..식칼을 들고 제게 겨누며 꼴보기 싫으니
집구석에서 꺼지라고 협박에 소주병 집어던져 박살내고 베이고 그랬네요.
고2땐 남자친구라고 볼 수도 없고 아무일 없었던 남자애가 하나 생겼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온 집안 살림을 집어던지다가 제게 던진 첫 한마디가
"잤냐?" 였네요.
밥, 반찬하기, 청소, 설거지, 빨래는 장녀인 저의 몫이었어요.
동생들 어르고 달래서 부려먹으며 함께 하긴 했는데. 그 어린 애들이 얼마나 하기 싫었겠어요..
새벽일 나가는 아버지 밥상 봐주고, 저와 동생의 도시락도 싸고..
그러다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참.. 어떻게 똑같은 인간들끼리 만나서!
전 팔자에 없는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어요.
그 여자도 참.... 우리엄마귀신이 꿈에 나타나 자기를 괴롭힌다면서 귀신쫓는 부적을 써와서
안방에 덕지덕지 발라놓고. 귀신 막는 신발정리법을 배워와서 우리에게 가르쳤어요.
들리는 말로는 귀신 쫓는 굿도 올렸다네요.
가정주부면서 매일 어디론가 놀러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데,
제가 밥이나 반찬을 안해놓으면, 설거지 끝내고 싱크대에 물 한방울이라도 남아 있으면,
유리식탁에 남아있는 얼룩을 육안으로 관찰해가며 조금이라도 보일 시 욕 날아왔구요.
33평 넓은 거실에 자기 친엄마랑 둘이 드러누워서 바닥 얼룩 관찰하곤
무언가 보이면 쌍욕이 더블로 날아왔어요.
옛날 엄마는 153cm에 44사이즈로 시집 와서 그 가는 손목으로 미련하게 죽기전까지 5식구 손빨래 해내고 겨우 마련한 세탁기였는데.. 세상에 그 소중한 세탁기에 우리옷 자기옷 섞이는거 더럽고 불쾌하다면서 우리 옷가지 꺼내서 눈앞에서 확 집어던지곤 앞으로 따로따로 세탁하라고,
아줌마옷 먼저 세탁+ 널어서 개서 안방에 갖다 바치는것도 제 몫이었네요...
빨래걷기를 조금이라도 지체할 땐 불벼락.
집에서 소외감을 느끼는지 우리 삼남매가 작당하고 자기를 왕따시킨다면서.
피해망상도 대단했어요.
제가 평소에는 정말 고분고분 하지만 못참을땐 입바른 소리를 하는데,
어느날은 말로 못당하니까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서 간질걸린 사람처럼 발작을 하더군요..
친부 들어오니 누워서 바둥거리면서 악을 악을 쓰데요. 제 욕을 하면서요..
상황파악 할 생각도 없이 저보고 당장 무릎꿇고 사죄드리라고 윽박지르네요..
그래서 저는 강제로 무릎 꿇었지요. ㅎㅎ..
맨날 어디 아프다면서 건강검진이란 검진은 다 받고 다니고, 심지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병원가고.
근데 밝혀진 병명은 하나도 없고. 아픈 탓은 우리 엄마 귀신때문이라고 해요.
우리엄만 자식들에게 과자 하나 사먹일 돈 없이 알뜰살뜰 짠순이 생활 하다가
겨우 집 한채 마련한 순간 허무하게 가셨는데요. 그여자는 집안돈 펑펑 써제꼈어요.
집에 의료기기 들이고. 런닝머신 들이고, 고가의 화장품 세트 들이고..
그런데 우리들에게 쓰는 돈은 최악, 린스는 당연히 없고 샴푸기능만 있는거 천냥마트에서 천원주고 사와서 쓰라고 던져줬었어요. 집안에 욕실이 두개였는데, 아줌마 없을때 안방 욕실 몰래 들어가보면...
당시 시중에 판매하던 최고가 용품들이 가득....
제가 전문대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게 된 어느날, 밖에서 사람들 만나고 밤 11시에 귀가한 그날.
평소에 저에 대해 없는 말을 지어대며 행실이 더럽다고 욕하던 그 여자가 친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집 나가래요. 그 밤중에 쫓겨나서 갈데가 없어 같은동네 살던 이모집에 갔었는데..
브라 몇개 옷 몇장 보자기에 싸서 이모집으로 손수 찾아오셨어요.
그러곤 절 복날 개패듯이 후드려 패더군요.. 너같은거 필요없다고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고,
길거리에서 쳐죽던지 창녀가 되던지 내 알바 아니니 그냥 눈앞에서 꺼져라.
그 길로 전 그집과 인연을 끊고 나왔어요.
수중에 돈이 조금밖에 없어서(57만원 받으며 2달 회사생활 했음, 참- 저돈에서 나름 부모랍시고 두분 속옷까지 사다드렸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말은 "누구네 집 애들은 돈벌어서 전부 부모에게 바치는데 이년들은 뭐하는 년들이야" 였어요)
이모한테 이모집에 살게 해달라고.. 생활비 드린다고 빌었는데 거절당하고,
지인에게 100만원 빌려서 부산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올라가 보증금 50만원짜리에 월세 20짜리
원룸 하나 얻어서 독립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론 간간히 들려오는 집 소식을 들으며 지냈는데요.
어느날 막내고모로부터 기가 막힌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자기가 큰딸에게 얼마나 애정을 갖고 키웠고, 독립한다고 해서 전세금 3천만원 마련해주고 달달이 뒷바라지도 다 해주는데, 나한테 연락 하나 없다. 명절에도 안온다. 너무한 거 같지 않냐???
저 고모에게 충격받지 마시고 제 이야기 들으시라고, 전 그런돈 받은 적도 없을 뿐더러
왜 집에 안가고 인연 끊게 된건지 상세하게 모두 이야기했어요...
그 이후로 저도 마음이 많이 안정되어 더이상 이상한 소리로 상처받을만큼 약하지 않고 강해진 듯 한데도.. 올해 초 이모랑 전화로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 엄마 기일날 제사 지내러 집에 가라는 요지의 통화였는데요. 집에 가서 제사 음식도 해주고 하라면서.. 니가 아니면 누가 하냐면서 화를 내시네요.
누구보다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서도,
이모,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이모 딸이 그런 일 당했다면 본인 제사지내러 부를거냐고 악을 써봐도
"넌 너네 죽은 엄마가 불쌍하진 않냐?"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인연끊고 쳐다보지도 말고 시집갈땐 날 부르거라. 내가 엄마역할 하고 아빠역할 할 사람 데려다 줄 테니.
하시던 분이... 얼마나 세뇌를 당했는지.. 이모도 답답한게...
친부한테 5백만원 돈떼먹히고, 미지불시 빌라를 주겠다는 공증 각서 받아놓고서도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2천만원 빌려가서 안갚는 몹쓸년이라는 욕 먹고..
최근에 남동생에게 전해들은 말 때문에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막내고모가 친부한테 전화해서 제 이야길 했나 봅니다.
남동생은 막 군대 휴가받고 집에 있던 참인데, 자기 방에서 통화소리를 들었대요.
" 큰딸이 내가 성폭행범이라고 고소할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난 맹세코 그런적이 없다.
얘가 왜 이렇게까지 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다"
하면서 매우 억울한 목소리로 어디론가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둘중 한사람이 거짓말 하는 거라고..
하지만 누구의 말도 믿고 싶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친부는 다시 자기 친가쪽에 제 욕을 하면서 자기방어를 하겠지요.
처음엔 너무 억울하고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짐승이 아닐까? 내가 어째서 저런인간에게서 태어났지?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너무 서럽고 슬퍼서 하루종일 울었는데요.
이젠 그러거니 말거니... 쉴드 치고 절 악마같은 년으로 만들어도 별로 반박하고 싶지도 않아요.
들리는 이야기론 재혼부인이랑 별거중. 남동생이 휴가 받아 나온 다른 날, 밤에 집에 들어왔더니
아무도 없는데 바닥에 뿌려진 피가 흥건해서 소름이 끼쳤다고 하네요..
저에게 지독하게 굴었던 여자지만, 저런 인간이랑 십몇년을 참고 살아준거 참 대단해요.
내 인생사 왜이런가 싶어도, 남탓 하며 절 학대하지 않은 건 참 다행인 듯 해요..
제가 모은 돈으로 여행도 다녀 보고, 연애도 줄곧 하고..
반려동물을 들여서 못받은 사랑을 쏟아주기도 하구요. 학사학위 따려 공부도 하고 있어요.
직장다니며 착실히 저축해서 통장에 적히는 숫자 늘어가는 재미도 느끼고 있구요.
다만... 결혼은 못 할거 같아요.
어릴 때 정상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한것 때문인지..
부모가 될 만한 소양은 갖추지 못했네요. 가끔 우울증도 와요.
*추가
어젯밤 올린 글인데.. 너무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위로해 주셨네요.
어느 분께서 하고싶은 이야기 다 하라고 하셔서.. 오늘 내내 일하다 떠올랐던 걸 써요.
평범한 가정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
당시에는 당연한 일인 줄 알았지만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더니 다르게 보이던 일들이요.
- 남동생에게.. 못해도 초등학생일 당시 길거리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친부에게 장우산으로 구타당했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폭력 대상, 장소도 구별 못하는..
- 워낙 후진 동네에 살았던 탓인지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성추행 당해보지 않은 적이 없어요. 그 어린것들이 도대체 무얼 안다고.... 거기다 덤으로 작은할아버지 아들들도 성추행 했어요. 제 여동생 포함 그집안 여자 아이들이란 아이들에게 전부... 삽입만 안했다 뿐이지 행위까지 정확히 기억나요.
한번은 두 형제가 이불덮고 나란히 앉아 아랫도리 벗고, 제게 이불속에 들어가 두놈 걸 만지라고 하데요. 눈앞에서 사정하는 모습도 보여줬어요. 그사람들은 이런 일 기억이나 할까요?
가해자는 지난 일 다 잊고 산다지만 피해자는 평생 가도 잊지 못합니다.
- 눈감기 전 어린 우리를 앞가림 할때까지만 부탁한다는 언니의 유언에 근처 살면서 우릴 돌봐주시던 이모 .. 그런 이모가 우리집에서 자고 가셨을 때 전 밤중에 듣고 말았어요. 그인간이 이모에게 추근거리던 소리를... 두분 사이에 뭔가 있었는지 어떤지는 그때도 지금도 모르겠지만 충격이었어요.
나에게 손대고, 동생도 찔러보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모한테도 그러는구나.
- 5식구 차에 싣고 시골로 내려가던 도중.. 무엇에 화가 났는지 다 죽자며 도로에서 갓길로 확 박은 적이 있어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요. 다같이 약먹고 죽자던지, 죽자는 소리를 너무 자주 했어요.
- 여동생, 제가 쓰는 방에 술먹고 재떨이 들고 들어와 줄담배 펴대면서 사는게 너무 힘들다며 펑펑 우는데.. 무섭게 식구들 잡아가며 살아온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어요.
- 이른 새벽, 늦은 밤 술안주로 라면 끓이라고 닥달해놓고 차려주면 손도 안대고 술만 마셔요.
한두번이 아니어서 이번엔 꼭 드실거죠 하고 확답을 받고 만들어 드려도 결국 무시하는 센스....
- 재혼하기 전 상대를 우리에게 보여준 날이 있는데.. 전 아무래도 사람이 이상한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없었어요. 식 올리기 전부터 집에 드나들고 자고.. 그랬는데 같이 지낼수록 그 느낌이 점점 구체적이 되었어요.
비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라 웬만한 일은 그냥 넘기는 수준이었는데도 신세계를 만난 듯 이상했던 사람.
이 결혼 다시 생각해보시면 안되냐고 친부에게 말씀드렸는데 버럭 화를 내면서,
그럼 지금와서 엎자고!? 라며 자기 고집대로 일을 진행시켰어요. 아..그러고보니 엄마 기일 2년 넘겨놓고 연애하더니 상당한지 3년도 안되서 얼굴에 분칠하고 결혼식을 올렸네요.
우리 남매들은 식장 들어가지도 않고 사진 또한 안찍었어요.
- 아.. 생각났다. 그 아줌마 맛있는 간식이나 빵 과자 사와선 안방 서랍에 감춰놓고 혼자만 먹었던 거.
집 비웠을 때 방청소 해주고 빨래 갖다넣으러 들어갔을 때 가끔 발견하곤 참.....ㅎㅎ
겨울에 자기가 집 비우면 집안에 삼남매 다 있는데도 보일러 전원 끄고 나가곤 했어요.
차마 다시 보일러 켤 용기가 없어서 벌벌 떨며 지낸 지난 날..
갖은 악담과 욕에 방으로 돌아와서 문을 닫아 버리면 문 바로 앞에 서서 끝없이 욕을 하곤 했어요.
정말 들어본 적도 없는 수준 이하의 욕들. 저주 같아서 무서웠어요.
- 전문대 다닐 때 일주일 용돈이 2만원이었어요. 왕복 버스 4번 타고, 점심 사먹는데 하루에 4천원을 써야 했지요. 그때 역시 쪼들리는 돈이었구요. 점심을 2,500원짜리 먹고 버스 타면 백원도 안남는 생활.
한달 8만원이 필요했는데... 그 돈 그냥 월마다 줬으면 좋았을 걸,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껄끄러운 그 여자 방 앞에 서서 죄지은 사람처럼 차비 주세요....... 하면
누운채로 쳐다보지도 않고 지갑에서 2만원 꺼내 바닥에 휙 던지면 그거 주워가곤 한게 한달에 4번씩.
그마저도 안주고 "느네 아빠한테 달라고 해라!" 하며 사람 무시하기도 일쑤였고요.
그럼 학교 지각하더라도 주실 때 까지 문앞에서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곤 했지요.
하루는 너무 서러워서 아버지에게 제발 한달치 한번에 주시던지 아님 직접 주시면 안되냐고 간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느네 엄마한테 달라해라!!" ...
- 그렇게 돈 얻는 게 지쳐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동네가 후져 처음 구한 알바 시급이 1,700원이었네요. 그당시 제일 많이 쳐주던 곳이
2,500원.. 하루에 6시간씩 한달 꼬박 일해서 30만 6천원을 손에 쥐고 나서부터는 일체 차비며 식대를 끊고 휴대폰비까지 알아서 내라고 하네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동아리 친구들이랑 아주 친했는데, 저더러 백원짜리 막대사탕 하나 쏠 줄 모르는 짠순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같은반 친구들은 수업 끝나면 항상 음료수를 뽑으러 휴게실로 가곤 했는데 전 5백원이 없어서 "나 음료수 안좋아해" 라고 말하며 혼자 강의실 지키는 일도 앞으로는 없을 거니까...
- 제가 독립하고 몇년 지나니 그인간으로부터 자꾸만 전화가 와요. 딸들 다 집나가고 아들 군대가고 하니 허전하고 쓸쓸했나 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모두 머릿속에서 지웠는지, 어디 되도 않는 부녀간의 정 들먹이며 날이 춥네 덥네 건강은 어떠네 명절에는 안올거냐고 하덥디다...
몇번 받아주다가 제가 정신이 돌아버릴 거 같아서 재작년에는 크게 한방 터뜨렸어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양심이란 게 있으면 당신이 망치고 그렇게 내친 딸이 알아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 자숙해야 하는게 맞는거 아니냐고! 당신은 잊었을 지 몰라도 난 하루도 잊은 적 없고 고통속에 살고 있으니 정신병원 들어가는 꼴 보고 싶으면 더 연락해 보시라고 하고선 전화번호를 바꿨습니다.
- 제가 세대주가 되면 사는 곳 조회 못할 거라고 지금껏 철썩같이 믿고 지냈는데.. 직계가족이라면 해준다는 정보를 받고는 절망스러웠습니다. 안그래도 남동생이 그러더라구요.. "내가 너네 누나들 전화번호, 사는 곳 전부 알고 있다. 근데 손을 안대는 거다".... 바꾼 전화는 이모한테 들은건지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무서워 접근금지 신청도 알아보곤 했는데 당장의 증거물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하네요.
- 남동생에게 그러더랍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별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너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칠까봐.어이가 없어서 실소만 나오덥디다... 해먹을거 다해먹고.. 그아줌마도 살다살다 지쳐서 나가떨어진 걸텐데. 그러면서 자긴 아들밖에 없다고 세뇌시키고 매달린답니다. 자기도 집 나오고 싶은데 그러면 아버지 자살할까봐 무서워서 못나가겠다고 해요. 제가 봤을 땐 절~~~대 자살같은거 할 사람 아닌데...
- 친척들에게 저는 [아버지가 전세금 3천 해주고 월마다 생활비 대주는데도 그거 홀랑 먹고 절대 얼굴 안비치면서도 이제와서 자기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몰고 가는 파렴치한 년]으로 인식이 되있습니다.
저게 진실이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내가 돈도 넉넉히 가지고 나쁜일 당한적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친부는 자기방어의 달인이에요. 어릴때부터 주위 사람들이 너네 아버지만큼 가정에 자상하고 사람들한테 매너좋은 사람 없다고들 했는데 토할거 같더라구요.. 자기를 꾸며대고 거짓말하는데 능수능란해요.그런 사람이 저 어릴 때 학교에 가져가야 하는 가훈에 [거짓말을 하지 말자] 라고 써준 기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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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아닙니다. 사실 더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십몇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희미해지고 잊혀진것 뿐이지 이 글을 10년 전에 썼으면 네이트 사연중 막장 중 막장이었지 싶어요...
강산이 바뀌는 세월 동안, 아버지도 지난일에 후회란 걸 하고 반성이란 걸 하며 남은 가족들과 잘 지냈으면 하는게 제 유일한 바람이었지만..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면 죽기전엔 용서해 줄까 하는 맘이 있었지만.
예전 마지막으로 봤던 막나가던 모습과 전혀 다를게 없이,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다 절 모함하며 본인방어에 급급한 거 보면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이 심해진다.. 라는거 깨달았어요. 씁쓸하네요.
새부인이라도 잘 어르고 달래서 밥이나 얻어먹고 다니지.. 그것도 실패해서
아들한테 부엌일 시켜서 밥 얻어먹는다는 말 듣고 정이 떨어지네요.
그나저나.. 일일히 답글을 달아드리려 했는데 갑자기 너무나 많은 응원이 밀려오네요.
덧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번 이상 정독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게 다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니.. 가슴이 뭉클해요.. 뭐라 표현을 못하겠어요.
지나가면서 남겨주시고 가는 리플들.. 아마 내일쯤 모레쯤 덧글도 본문도 기억에서 잊혀지겠지만
저는 이 말씀들 죽기 직전까지 마음에 품고 살아갈 거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힘들고 지칠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얻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