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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성공의 밑거름은 사랑하는 부모님이였습니다

다른 |2008.07.30 16:41
조회 470 |추천 0

안녕하세요.요즘은  여자친구땜에 싸이월드도 해보고 이런글도 보구해서

저의 따뜻한 얘기를 남겨보려고합니다.

제나이는 지금 30살입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엇고 심한 폭풍도 겪은적이 많앗다고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힘차게 세상을 살아갓으면 합니다.

 

저희 집은 옛날부터 많이 가난햇습니다.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셧고

어머니는 많이 아프셔서 집에 항상 누워 계셔야 햇습니다.

그 현실은 저의 학교생활과 저의 행동에 반영이 되엇습니다.

고2떄까지의 정말 제가생각해도 너무 철없는 방황을 한거같습니다.

학교끼리의 싸움, 술 , 담배 , 오토바이 정말 많이도 몹쓸짓을 햇습니다

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니깐 눈물이 나오네요 .

어느날 어머니가 급하게 응급실로 실려갓다는 아버지의 연락을받고

병원으로 갓습니다. 제가 그떄 몰랏던 사실을 알게됫습니다

의사가 위암말기라는 사실을 말햇을떄 의사가 설마 몰랏냐는 눈치를 줫습니다

어머니는 돈떄문에 그 사실을 숨겻던것입니다

그때 제 기억으로는 머리가 띵해지면서 삐~~~~~~~이런소리가 머리에 울리면서

응급실로 미친듯이 달려갓습니다 .

어머니에 손을잡고 말햇습니다. 나 이제 정말 열심히할게요

제발 이렇게 가지마세요 ..제발 어머니 제발  미친듯이 소리쳣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업다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는 의사를

제가 너무 흥분해서 주먹이 몰르고 나가버렷습니다.

하지만 그 의사는 나중에 이해한다는식으로 경찰에 신고 안하구

그냥 그렇게 끝낫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끝내  4월달에 돌아가셧습니다.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날 하늘을 쳐다봣는데 왜이렇게 맑던지. 이제 어머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햇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꼭 함께 성공하여

이성기같은세상 한번 내가 이겨본다는 생각을 정말 마음속으로 꿋꿋이

질근질근 씹고잇엇습니다.

아버지는 공사장일떄문에 집에 돌아오시면 항상 잠을 주무시고 힘든 내색도 안하셧습니다.

항상 아버지 방안이 파스냄새로 독할정도 엿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햇습니다. 의대를가서 나처럼 이렇게 아픈경험이 업도록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싶다는생각이 제 마음에 유리팍 처럼 박혓습니다.

그떄부터 고등학교를 떄려치고 2개월만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바로 수능준비를 들어갓습니다 .

검정고시는 교과서 위주로 조금만 공부하고 학원가서 그냥 프린트 남는거

모조리 구해와서 푸니깐 쉽게 봣다고 생각햇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힘들게 정말 말그대로 피땀이 섞인 돈으로

단과 학원을 끊고 독서실을 끊엇습니다.

의대가 등록금이 엄청나게 쌔다는걸 알고잇어서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하려고 햇는데

큰아버지가 의대만 가주면 등록금의 반을 내주겟다는 감사에 저는 공부를 시작햇습니다.

처음에 정말 힘들엇습니다.의대라는게 서울대 들어가는것보다 더 어렵다고들

해서입니다.하지만 그런 소리엔 귀를 귀울이지 않앗습니다 .

제겐 이미 더이상 잃을것도 업엇으니깐요 .

주말에 어머니의 산소를 들렷습니다. 근데 꽃이랑 편지한통이 산소앞에 잇엇습니다.

너무궁금해서 편지를 열어보니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쓴 편지엿습니다.편지의 내용은

우리 태현이가 의대에가서 나를 편히 먹고 살게 해준다네요

우리아들 많이 컷죠 .당신이 업는 세상 너무 힘들지만 하늘에서 우리 태현이 많이

응원해 주쇼 대충 이런내용이엿습니다.

정말 울고싶엇는데 눈물을 참앗습니다 .꼭성공해서 울겟다고 다짐햇습니다.

제가 일부러 20살때 수능을 안보고 2년반동안 준비해서 21살떄 시험을 보려고 햇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힘들엇습니다. 단과학원에서 영어 수학1 수학2 미적 과탐 언어를

감이 잡혓을떄 혼자 독학으로 독서실에서 살앗습니다.정말 하루하루가 긴 싸움이엿습니다.

점점 모의고사 성적도 많이 향상되고 9월달에 보는 모의고사는 만점 가까이 나왓습니다.

하지만 긴장을 풀면 안되는 거이기에 열심히 노력햇죠 . 저희아버지도 저만큼이나

일하시느라 많이 힘드셧습니다. 10월달에는 몸이 녹초가 되셔서 더이상 일을 할수없게

되셧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드디어 수능시험을 치웟습니다. 어머니가 힘을 주셧기 떄문일까요 ..

독학을 너무 오래해서일까요.. 문제가 그렇게 걸림돌이 업엇습니다.

정말 열심히 풀엇습니다. 제모든 기를 그날 다 쏟아부을정도로 정말 열심히 풀엇습니다.

1분 1초를 긴장을 놓치지 않앗습니다.

그 결과는 가톨릭대의대 3명 안에드는 수석 2등으로 절반의 장학금을 받고

의대를 다닐수 잇게되엇습니다. 정말 꿈만같앗고 그때 일부러 인터넷으로 확인을 안하고

학교가서확인할떄 정말 학교에서 집에올때까지 얼마나 울엇는지 몰르겟습니다.

꿈을 이뤗다는 성취감에 아버지 생각이 먼저낫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너무 공부에만 매달렷나봅니다 ..

아버지는 태현아 정말 고맙다 라는 말과함께 서로 꽉안아습니다.

그떄 아버지와 저는 같이 많이 울엇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를 한번이라도 껴안아 준적 잇습니까 ?꼭 한번쯤은 안아보세요

말로 할수없는 인생의 기분이 아버지와 저한테 집중이 됩니다.

그때 참 느낀게 우리아버지 언제이렇게 늙으셧는지 정말 많이 슬펏습니다.

합격증을들고 어머니의 산소를 갓습니다. 그떄도 참 하늘이 무척 맑앗습니다 .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집안사정을알고 등록금의 원래 50프로엿는데

거의 90프로 정도를 학교에서 이해해주고 저는 학교를 다녓습니다.

정말 꿈만 같앗죠 . 이제 성실한 의사가되어 아픈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살 일만 남은겁니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 제가 모은돈으로 아버지 작은 마당잇는 팬션을 하나 사드렷습니다.

물론 큰아버지도 집살때 반정도를 보태주셧습니다.

거기서 지금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저희 아버지가 함께 사시고 계시죠

사실 글로는 다할수없는 아버지의 힘이 너무나도 컷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볼때는 정말 성공이라는 단어만 생각나고

더욱더 열심히 수능을 준비햇던거같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제가 의사라는 직업떄문에 제가 좋아서가 아닌 의사라는 직업이 좋아서

많은 여자들이 이곳저곳 소개가 되곤하지만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 만난 마음씨 따뜻한 여자와 3년쨰 연예중입니다.

내년 4월달봄에 결혼식을 올릴려고 합니다 ^^; 어머니 떄문에

봄하늘이 너무나도 맑앗던 기억떄문일까요.

여러분들도 힘들다고생각할떄 포기하지 마십쇼 .

역경은 그저한순간 파도일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떄 슬퍼할 형편도안돼

현실로 받아들이고 꿈을 성취할때까지는 저도 정말 말로할수없는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이겨내고 이자리까지 온것이라고생각합니다.

여러분 삶은 떄론 상어의 이빨처럼 우리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위협과 긴장이 오히려 삶의 의욕을 자극합니다.

결코 절망하지 않고 쓰러지지만 않는다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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